예식장 예약 2주 후 파혼당한 여자, 어떡해?
어제도 한 독자분을 극적으로 말렸습니다. 남자친구 부모님을 뵙고 오신 분이었는데, 그녀는 그분들에 대한 어마어마한 실망감으로 인해 남자친구에게 "오빠 부모님께 사과 받기 전까지 난…."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준비 중이셨습니다. 어떤 일인지는 자세히 밝힐 수 없습니다만, 제가 보기에 그 말을 남자친구에게 하는 건 최악의 선택이었습니다. 그 여자분께서는
라고 하셨는데, '오빠 부모님의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말하는 건 대화가 아니라 통보입니다. 이미 혼자서
라는 과정을 거쳐 답을 구한 뒤, 그 답대로 남자친구를 움직이게 하는 일일 뿐입니다. 매뉴얼을 통해 제가 말하는 대화를 하려면, ⓓ가 아닌 ⓐ를 내 놓아야 하는 겁니다. ⓐ를 내 놓기 전, 먼저
라는 생각도 해보아야 하는 것이고 말입니다. "오빠 부모님께 사과 받기 전까지 난…."이라는 건 지극히 감정적인 대응이며, 남친의 능력으로 풀 수 있는 영역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남친의 부모님이 무슨 남친의 친구나 룸메이트가 아니잖습니까? 때문에 남친에게 "어머니, 민경이가 어머니 사과를 받기 전까지는 결혼 못 하겠다고 합니다."라는 얘기를 들으면, 당신이 실수했다는 걸 깨달으시긴커녕 피만 거꾸로 솟을 뿐입니다.
고교시절의 일입니다. 저는 제 동성친구에게 저녁 10시쯤 전화했다가, 그 친구 부모님께 혼난 적이 있습니다. 친구가 휴대폰을 가지고 있지 않아 친구 집으로 전화했는데, 친구 부모님께서는
라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당시 당황한 제가 "어버버버, 죄송합니다."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여린마음동호회 회장이라 이런 일을 마음에 담아 두는 것을 잘 합니다. 누군가에게 지적을 받으면 그걸 상처로 여기며 계속 핥는 것에는 천부적인 소질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정확히 1년 후, 그 친구의 부모님께서는 저녁 11시가 넘은 시각에 제게 전화를 하십니다. 뒤늦게 질풍노도의 시기에 접어든 그 친구가, 집을 나갔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급하게 그 친구를 찾으시는 부모님께 "그런데 지금 9시가 넘었습니다만?"이라고 반격을 하진 않았습니다. 제가 수소문해본 뒤 전화 드리겠다고 말씀을 드렸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가정마다 분위기가 좀 많이 다릅니다. 어떤 친구의 집에서는 들어갈 때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놓지 않는 것이 실례가 되고, 또 어떤 친구네 집에서는 싱크대에서 손을 씻는 것이 실례가 되며, 또 어떤 친구의 집에서는 문턱을 밟는 일이 실례가 됩니다. 외투를 벗어 소파 등에 올려두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집이 있는 반면, 그렇게 두는 걸 옷을 팽개쳐 두는 것으로 여기며 '옷걸이에 걸어두지 않는 미개인'으로 생각하는 집도 있었습니다. 식사할 때에도 식탁에 앉은 사람들이 다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리는 집이 있는 반면, 빨리 먹은 사람이 먼저 일어나면 되는 거지 뭐하러 멀뚱히 앉아 있냐며 자유롭게 식사하라는 집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것들을 '로마에 가서는 로마법을 따르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렇지 않고
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답이 나오질 않습니다. 일단은 '이 집은 이런가 보다.'하며 받아들이고, 그 가운데서 다시 타협안을 찾아가는 게 현명한 일입니다.
그런데 L양은 남친의 가정과 정면으로 맞선 것 같습니다. 특히 남친 부모님과의 만남에서 "일을 이렇게 순서 없이 하는 거 아니다. 오늘 너를 혼내려고 불렀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예비 시부모님께 예쁨과 사랑과 축복을 받을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백태클을 당하자, L양은 폭주를 해 버리고 맙니다. 남자친구에게
이라는 말을 하고 만 것입니다. 또 이 억울하고, 분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 만든 상처를 계속 핥으며 L양은 남자친구에게 더욱 심한 말까지 해 버립니다. 이게 다 너의 무능함과 경제력 없음 때문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둘의 관계가 요단강을 건넜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들로 인해 남자친구는 이 관계의 목적을 잃어버렸을 테니 말입니다. 저 말을 요약하자면 "너희 부모님은 이상하고, 너는 한심하다."라는 것과 같은데,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 저는 생각합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저 상황에서 L양이
하는 생각을 한 번 해봤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제가 L양의 입장이었어도 떡 사들고 가서 환영은커녕 따귀 맞고 돌아온 느낌이라 분명 분하고 억울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사람에게 "나 이거 그냥 못 넘어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 내가 맞아 너희 부모님이 맞아? 떡 사들고 인사 갔는데 따귀를 때려? 무슨 자격으로? 예비 시부모가 벼슬이야? 해주는 게 뭐 있다고 큰소리를 쳐?"라고는 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건 내 사람을 적으로 만든 뒤 그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저라면 그에게 이 일로 인해 내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는 걸 이야기한 뒤, 분하고 억울하고 자존심 상하는 내 기분에 공감한 상대가 내 편이 되어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을 것 같습니다.
L양을 탓하려고 하는 얘기가 아님을 미리 밝힙니다. 하늘이 도와 둘의 결혼이 다시 진행되더라도, 이 부분을 모른 채 그냥 '결혼을 위해 내가 참는다'는 생각으로만 버티고 있으면, 훗날 세상에서 제일 마주치기 싫은 사람들을 시부모로 두고 살 수밖에 없기에 하는 얘기라는 걸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L양은 말했습니다.
물론 L양의 입장에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L양의 부모님 역시 딸의 결정을 믿고 따라주시는 편이신 까닭에, '선조치 후보고'를 하는 게 L양에게는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게, 그의 부모님 입장에서는 '순서 없는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선보고 후조치'를 선호하는 그분들의 입장에선 L양과 아들의 태도가 못마땅할 수 있습니다. 아들은 본인이 결혼 하겠다고 예식장까지 알아보는 중인데, 그러는 와중에도 L양의 얼굴은 보이지가 않습니다. 아들에게 신혼집을 어디에 구하겠으니 얼마를 보태달라는 얘기를 듣거나, 또 상견례가 언제로 잡혔다는 통보만 받을 뿐입니다.
저는 두 사람의 이런 모습이, 그의 부모님께는 L양이 연하인 남자친구 뒤에 숨어 그를 조종하고 있는 것으로 비춰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현재 L양과 남자친구가 진행하고 있는 순서에 따라가면, 남친의 부모님들께선 '신혼집 사주는 사람', '예식장에서 부모석에 앉아 있는 사람', '상견례 한다고 부르면 가서 덕담 해주고 오는 사람'의 물주나 들러리 역할밖에 할 수 없기도 합니다. 그런 이유로 인해 결혼에 심드렁한 태도를 보이셨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L양과 남자친구의 만남은, 대부분 L양이 원하는 것을 하거나, L양의 주장대로 남자친구가 따르거나, L양이 불평하면 그 부분에 대해 남자친구가 사과하고 잘 해보겠다고 말하는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여기서 L양이 간과하고 있는 게 하나 있는데, 남자친구의 부모님 역시 솔로부대 전역 후 30년 이상 커플부대에 복무한 커플부대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때문에 그분들은 지금 아들의 연애가 어떻게 진행되어가고 있는지, 아들의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당장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도 하고 있는 그가 L양에게는 좋은 남편감이었겠지만, 그의 부모님 입장에선 "이런 못난 놈."이라고 혼낼만한 행동을 하고 있는 아들로 보였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가능성이 있는 다른 이유들에 대해서는, L양이 자세히 적지 않은 까닭에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예만 하나 들어 보자면, 낯을 가리고 소극적인 까닭에 예비 시부모님께 오해를 받은 사례가 있습니다. 그녀는 시부모님을 뵈러 가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었고, 과일을 깎거나 설거지를 하는 일 등에 조금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습니다.(빈말이라도 "어머니, 주세요. 사과 제가 깎을게요. 느낌 아니까."라고 하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안녕하세요. 네, 아니요. 네. 네. 시청 공무원이세요. 네, 아니요, 네. 안녕히 계세요."하고 돌아왔을 뿐입니다. 그녀는 남친의 부모님들과 있는 게 불편하니 남친이 방에 들어가면 쫓아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한 번은 남친이 일어날 때 따라가려고 하다가, 남친이 화장실 가려고 일어난 것이라는 걸 알고는 당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상대의 부모님이 가지는 그녀의 이미지는 '그녀의 말과 행동' 그리고 '아들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들'을 통해 만들어지는 까닭에, 이러한 부분에서 L양에 대한 '못마땅한 이미지'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L양과 남친은 결혼을 거의 전적으로 남친 부모님들께 의존하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고르는 건 우리가, 지불은 부모님이'식의 결혼진행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모습은 부모님께 결혼 허락을 받으려는 모습이 아니라 결제 요청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경제적으로 독립한 뒤에야 결혼을 해야 한다는 제 주장은 잠시 접어두더라도, 억 단위의 현금을 금방 마련할 수 있는 집은 흔치 않은 것 아니겠습니까? 내년쯤 연천이나 당진의 땅값이 좀 더 오르면 팔아서 아들 장가를 보내려고 했는데, 당장 돈 달라고 한 까닭에 "우린 올해 장가보낼 생각이 없었다."라는 이야기를 하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주 등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까닭에 아홉수에 들어 있는 아들의 결혼을 미루려고 하셨을 수도 있고 말입니다. 그런데 L양은 이런 대화를 할 시간도 없이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를 알아본 뒤 남친을 통해 통보하고 있으니, 그게 못마땅하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후 L양과 남친은 금이 간 관계를 밟아 부쉈습니다. L양은 이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남친에게 돌렸고, 남친은 문제를 풀만한 역량도 안 되면서 자신의 가족들과 부딪쳤습니다. 때문에 부모님으로부터 인연을 끊자는 말도 들었고, 형제들도 그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L양이 울며 그를 탓할 때마다 그가 무작정 자신의 가정으로 돌진한 결과입니다. 그러다 지쳐 이제 그는 L양마저 놓아버렸습니다.
L양은 말합니다.
이 문제만 보면 그런 생각이 드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크게 봤을 때에는 이게 다 L양의 잘못 때문에 벌어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L양의 남자친구였다면 집안 식구들을 원수로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고, 중간에서 미리 중재를 해 부모님이 다짜고짜 L양을 혼내시겠다는 상황을 만들지도 않았을 겁니다. 결혼이 무슨 친구랑 에버랜드 다녀오겠다는 허락 받는 가벼운 일도 아닌데, 말없이 예약 다 해놓고 돈 달라는 식으로 부모님께 떼를 쓰지도 않았을 것이고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L양에게,
라는 멍청한 통보도 하지 않았을 겁입니다. 저는 대체 저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찬찬히 두 사람을 설득해 나가도 모자랄 판에, "자, 두 분 다 글러브 끼시고. 허리 아래는 때리시면 안 됩니다. 파이트! 홍코너 팔꿈치 써서 실격입니다."라며 심판을 보고 있다니….
그의 부모님들께서 하신 행동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당신들께서 보시기에 모자란 점이 있으면 이건 이런 것 같다라든가, 그건 아닌 것 같다는 식으로 말씀을 해주시면 되는데, 가르쳐주시진 않고 먼저 갈구시려고만 합니다. "너희들이 다 계획해놨으니 결혼은 해라. 다만 난 너도 못 마땅하고, 이 결혼도 못마땅하다."라는 말을 듣고 멀쩡한 정신으로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분들께서 하신 행동을 보면, 예의와 절차는 그저 밥상을 엎어버릴 구실이었던 게 아니었나 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입니다.
L양은 결혼만을 생각했고, 남친은 L양이 말하는 대로 따르기만 했으며, 남친의 부모님은 그런 아들을 보며 L양을 못마땅하게 여긴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런 와중에 L양과 남자친구는 결혼할만한 경제적, 정신적 독립도 안 된 상황이라 일반적인 경우보다 부모님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말입니다.
L양은 말합니다.
제 생각에 L양은 독하게 헤어지실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또 그를 의지한다고 해서 힘이 되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권하고 싶은 방법은 아래에 적어두도록 하겠습니다.
위의 이야기를 읽으며 L양은 '친구랑 에버랜드 가기로 했다가 친구 부모님께 혼나 좌절한 아이'에서 한 발짝 벗어났으리라 저는 생각합니다. 오로지 그 친구의 부모와 그 친구를 원망하던 감정에서 벗어나, 친구와 놀러 가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깨달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무조건 사과해서 친구 부모님의 승낙을 받아내겠다고 친구에게 말해봐야, 지칠 대로 지친 친구는 "나 안 갈래."라는 대답만 할 것이라는 것도 말입니다.
이번엔, 그동안 L양이 모든 걸 결정해서 남자친구에게 통보하던 모습에서 벗어나 보시길 권합니다. 그에게 묻고, 그의 선택을 존중하는 겁니다. 다만 그게, '다시 결혼에 도전할 거냐, 아니냐'가 되어선 안 됩니다. 폐허가 된 듯한 이 지점에서 다시 시작해 볼 의사가 있는 것인지를 물어야 합니다. 물론 L양의 '결론'이 아닌 '생각'은 그에게 충분히 전달해야 합니다. 위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L양이 생각해 보게 된 것, 또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된 것들에 대해서도 남자친구에게 이야기하시길 바랍니다. L양 혼자서 했던 결정에 대해 왜 그런 결정을 했던 것인지 이야기하고, 또 그에게 맹목적으로 따르기를 요구했던 점과 그것에 대한 부작용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시기 바랍니다.
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L양이 선택하고 그에게 통보를 해 버리면, L양은 후회의 포로가 되어 자신만을 계속 탓하게 될 것입니다. L양이 화가 나서 그에게 던졌던 날 선 말들에 대해 사과하고, '우리'가 아닌 '결혼'에만 집중한 탓에 돌보지 못했던 관계에 대해서도 사과하시기 바랍니다. 용기를 내라고 종용하거나, 다시 결혼생각을 해 달라며 구걸할 필요는 없습니다. 혼란스러운 L양의 마음을 정리해서 그에게 말하고, 그것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의 생각을 들어보려는 시도를 너무 늦은 지금에서야 하는 것이 아닌지는, 그의 생각을 들어보면 알게 될 것 같습니다.
▲ 죽지 마세요. http://goo.gl/l2kBAb <- 이렇게도 한 번 못 놀아보고 죽긴 억울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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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한 독자분을 극적으로 말렸습니다. 남자친구 부모님을 뵙고 오신 분이었는데, 그녀는 그분들에 대한 어마어마한 실망감으로 인해 남자친구에게 "오빠 부모님께 사과 받기 전까지 난…."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준비 중이셨습니다. 어떤 일인지는 자세히 밝힐 수 없습니다만, 제가 보기에 그 말을 남자친구에게 하는 건 최악의 선택이었습니다. 그 여자분께서는
"이런 상황을 저 혼자 감당하고 이해하며 결혼할 순 없을 것 같아요.
무한님이 문제가 생기면 연인과 대화를 해서 해결책을 찾으라고 하셨죠?
이걸 오빠에게 털어 놓고 답을 찾을 생각이에요.
저는 (생략)하게 말 할 생각인데, 무한님 생각은 어떠신가요?"
무한님이 문제가 생기면 연인과 대화를 해서 해결책을 찾으라고 하셨죠?
이걸 오빠에게 털어 놓고 답을 찾을 생각이에요.
저는 (생략)하게 말 할 생각인데, 무한님 생각은 어떠신가요?"
라고 하셨는데, '오빠 부모님의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말하는 건 대화가 아니라 통보입니다. 이미 혼자서
ⓐ오빠 부모님이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했다는 것은 날 이러이러하게 생각했다는 거다.
ⓑ내 주변의 상황들을 살펴봐도 예비 시부모께 이런 취급을 당한 친구나 지인은 없다.
ⓒ이런 취급을 당하며 결혼하면, 안 봐도 이러이러한 결혼생활이 될 게 뻔하다.
ⓓ오빠 부모님께 사과 받아 내가 걱정하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는 게 증명되어야 한다.
ⓑ내 주변의 상황들을 살펴봐도 예비 시부모께 이런 취급을 당한 친구나 지인은 없다.
ⓒ이런 취급을 당하며 결혼하면, 안 봐도 이러이러한 결혼생활이 될 게 뻔하다.
ⓓ오빠 부모님께 사과 받아 내가 걱정하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는 게 증명되어야 한다.
라는 과정을 거쳐 답을 구한 뒤, 그 답대로 남자친구를 움직이게 하는 일일 뿐입니다. 매뉴얼을 통해 제가 말하는 대화를 하려면, ⓓ가 아닌 ⓐ를 내 놓아야 하는 겁니다. ⓐ를 내 놓기 전, 먼저
ⓐ내 어떤 모습을 보고 그분들은 그런 말을 하셨을까?
ⓑ오빠가 부모님께 날 어떤 사람으로 소개했기에 그렇게 보신 걸까?
ⓒ내가 예비 시어머니라면, 어떤 마음일 때 예비 며느리를 그렇게 대할까?
ⓓ앞으로 내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해야 오빠 부모님과의 이 문제를 풀 수 있을까?
ⓑ오빠가 부모님께 날 어떤 사람으로 소개했기에 그렇게 보신 걸까?
ⓒ내가 예비 시어머니라면, 어떤 마음일 때 예비 며느리를 그렇게 대할까?
ⓓ앞으로 내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해야 오빠 부모님과의 이 문제를 풀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아야 하는 것이고 말입니다. "오빠 부모님께 사과 받기 전까지 난…."이라는 건 지극히 감정적인 대응이며, 남친의 능력으로 풀 수 있는 영역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남친의 부모님이 무슨 남친의 친구나 룸메이트가 아니잖습니까? 때문에 남친에게 "어머니, 민경이가 어머니 사과를 받기 전까지는 결혼 못 하겠다고 합니다."라는 얘기를 들으면, 당신이 실수했다는 걸 깨달으시긴커녕 피만 거꾸로 솟을 뿐입니다.
1. 각기 다른 가정 분위기.
고교시절의 일입니다. 저는 제 동성친구에게 저녁 10시쯤 전화했다가, 그 친구 부모님께 혼난 적이 있습니다. 친구가 휴대폰을 가지고 있지 않아 친구 집으로 전화했는데, 친구 부모님께서는
"지금 몇 시니? 9시가 넘었는데 전화를 하는 건 실례 아니니?"
라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당시 당황한 제가 "어버버버, 죄송합니다."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여린마음동호회 회장이라 이런 일을 마음에 담아 두는 것을 잘 합니다. 누군가에게 지적을 받으면 그걸 상처로 여기며 계속 핥는 것에는 천부적인 소질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정확히 1년 후, 그 친구의 부모님께서는 저녁 11시가 넘은 시각에 제게 전화를 하십니다. 뒤늦게 질풍노도의 시기에 접어든 그 친구가, 집을 나갔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급하게 그 친구를 찾으시는 부모님께 "그런데 지금 9시가 넘었습니다만?"이라고 반격을 하진 않았습니다. 제가 수소문해본 뒤 전화 드리겠다고 말씀을 드렸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가정마다 분위기가 좀 많이 다릅니다. 어떤 친구의 집에서는 들어갈 때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놓지 않는 것이 실례가 되고, 또 어떤 친구네 집에서는 싱크대에서 손을 씻는 것이 실례가 되며, 또 어떤 친구의 집에서는 문턱을 밟는 일이 실례가 됩니다. 외투를 벗어 소파 등에 올려두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집이 있는 반면, 그렇게 두는 걸 옷을 팽개쳐 두는 것으로 여기며 '옷걸이에 걸어두지 않는 미개인'으로 생각하는 집도 있었습니다. 식사할 때에도 식탁에 앉은 사람들이 다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리는 집이 있는 반면, 빨리 먹은 사람이 먼저 일어나면 되는 거지 뭐하러 멀뚱히 앉아 있냐며 자유롭게 식사하라는 집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것들을 '로마에 가서는 로마법을 따르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렇지 않고
'이 사람들은 대체 왜 이렇게 귀찮고, 번거롭고, 비효율적으로 사는가?'
'뭐가 맞는 건가? 어디까지가 상식인가?'
'이렇게 빡빡하게 살면 행복한가? 뭘 그렇게 많이 따지는가?'
'뭐가 맞는 건가? 어디까지가 상식인가?'
'이렇게 빡빡하게 살면 행복한가? 뭘 그렇게 많이 따지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답이 나오질 않습니다. 일단은 '이 집은 이런가 보다.'하며 받아들이고, 그 가운데서 다시 타협안을 찾아가는 게 현명한 일입니다.
그런데 L양은 남친의 가정과 정면으로 맞선 것 같습니다. 특히 남친 부모님과의 만남에서 "일을 이렇게 순서 없이 하는 거 아니다. 오늘 너를 혼내려고 불렀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예비 시부모님께 예쁨과 사랑과 축복을 받을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백태클을 당하자, L양은 폭주를 해 버리고 맙니다. 남자친구에게
"너희 집 진짜 대단하다. 내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너희 부모님도 진짜 대단하시다. 해주시는 거라곤 꼴랑…."
너희 부모님도 진짜 대단하시다. 해주시는 거라곤 꼴랑…."
이라는 말을 하고 만 것입니다. 또 이 억울하고, 분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 만든 상처를 계속 핥으며 L양은 남자친구에게 더욱 심한 말까지 해 버립니다. 이게 다 너의 무능함과 경제력 없음 때문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둘의 관계가 요단강을 건넜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들로 인해 남자친구는 이 관계의 목적을 잃어버렸을 테니 말입니다. 저 말을 요약하자면 "너희 부모님은 이상하고, 너는 한심하다."라는 것과 같은데,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 저는 생각합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저 상황에서 L양이
'둘이 좋으면 그것으로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집안이 있는 반면,
예의와 절차도 그것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집안이 있구나.'
예의와 절차도 그것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집안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 번 해봤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제가 L양의 입장이었어도 떡 사들고 가서 환영은커녕 따귀 맞고 돌아온 느낌이라 분명 분하고 억울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사람에게 "나 이거 그냥 못 넘어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 내가 맞아 너희 부모님이 맞아? 떡 사들고 인사 갔는데 따귀를 때려? 무슨 자격으로? 예비 시부모가 벼슬이야? 해주는 게 뭐 있다고 큰소리를 쳐?"라고는 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건 내 사람을 적으로 만든 뒤 그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저라면 그에게 이 일로 인해 내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는 걸 이야기한 뒤, 분하고 억울하고 자존심 상하는 내 기분에 공감한 상대가 내 편이 되어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을 것 같습니다.
2. 그의 부모님은 무엇이 그렇게 못마땅했나?
L양을 탓하려고 하는 얘기가 아님을 미리 밝힙니다. 하늘이 도와 둘의 결혼이 다시 진행되더라도, 이 부분을 모른 채 그냥 '결혼을 위해 내가 참는다'는 생각으로만 버티고 있으면, 훗날 세상에서 제일 마주치기 싫은 사람들을 시부모로 두고 살 수밖에 없기에 하는 얘기라는 걸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L양은 말했습니다.
"일이 순서 없이 보일 수 있었던 건, 급하게 구체화 되어간 결혼이어서 그랬습니다."
"제가 부족한 거 없이 다 준비해가고 있었는데 뭐가 그리 못마땅하셨을까요?"
"제가 부족한 거 없이 다 준비해가고 있었는데 뭐가 그리 못마땅하셨을까요?"
물론 L양의 입장에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L양의 부모님 역시 딸의 결정을 믿고 따라주시는 편이신 까닭에, '선조치 후보고'를 하는 게 L양에게는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게, 그의 부모님 입장에서는 '순서 없는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선보고 후조치'를 선호하는 그분들의 입장에선 L양과 아들의 태도가 못마땅할 수 있습니다. 아들은 본인이 결혼 하겠다고 예식장까지 알아보는 중인데, 그러는 와중에도 L양의 얼굴은 보이지가 않습니다. 아들에게 신혼집을 어디에 구하겠으니 얼마를 보태달라는 얘기를 듣거나, 또 상견례가 언제로 잡혔다는 통보만 받을 뿐입니다.
저는 두 사람의 이런 모습이, 그의 부모님께는 L양이 연하인 남자친구 뒤에 숨어 그를 조종하고 있는 것으로 비춰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현재 L양과 남자친구가 진행하고 있는 순서에 따라가면, 남친의 부모님들께선 '신혼집 사주는 사람', '예식장에서 부모석에 앉아 있는 사람', '상견례 한다고 부르면 가서 덕담 해주고 오는 사람'의 물주나 들러리 역할밖에 할 수 없기도 합니다. 그런 이유로 인해 결혼에 심드렁한 태도를 보이셨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L양과 남자친구의 만남은, 대부분 L양이 원하는 것을 하거나, L양의 주장대로 남자친구가 따르거나, L양이 불평하면 그 부분에 대해 남자친구가 사과하고 잘 해보겠다고 말하는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여기서 L양이 간과하고 있는 게 하나 있는데, 남자친구의 부모님 역시 솔로부대 전역 후 30년 이상 커플부대에 복무한 커플부대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때문에 그분들은 지금 아들의 연애가 어떻게 진행되어가고 있는지, 아들의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당장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도 하고 있는 그가 L양에게는 좋은 남편감이었겠지만, 그의 부모님 입장에선 "이런 못난 놈."이라고 혼낼만한 행동을 하고 있는 아들로 보였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가능성이 있는 다른 이유들에 대해서는, L양이 자세히 적지 않은 까닭에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예만 하나 들어 보자면, 낯을 가리고 소극적인 까닭에 예비 시부모님께 오해를 받은 사례가 있습니다. 그녀는 시부모님을 뵈러 가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었고, 과일을 깎거나 설거지를 하는 일 등에 조금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습니다.(빈말이라도 "어머니, 주세요. 사과 제가 깎을게요. 느낌 아니까."라고 하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안녕하세요. 네, 아니요. 네. 네. 시청 공무원이세요. 네, 아니요, 네. 안녕히 계세요."하고 돌아왔을 뿐입니다. 그녀는 남친의 부모님들과 있는 게 불편하니 남친이 방에 들어가면 쫓아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한 번은 남친이 일어날 때 따라가려고 하다가, 남친이 화장실 가려고 일어난 것이라는 걸 알고는 당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상대의 부모님이 가지는 그녀의 이미지는 '그녀의 말과 행동' 그리고 '아들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들'을 통해 만들어지는 까닭에, 이러한 부분에서 L양에 대한 '못마땅한 이미지'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L양과 남친은 결혼을 거의 전적으로 남친 부모님들께 의존하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고르는 건 우리가, 지불은 부모님이'식의 결혼진행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모습은 부모님께 결혼 허락을 받으려는 모습이 아니라 결제 요청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경제적으로 독립한 뒤에야 결혼을 해야 한다는 제 주장은 잠시 접어두더라도, 억 단위의 현금을 금방 마련할 수 있는 집은 흔치 않은 것 아니겠습니까? 내년쯤 연천이나 당진의 땅값이 좀 더 오르면 팔아서 아들 장가를 보내려고 했는데, 당장 돈 달라고 한 까닭에 "우린 올해 장가보낼 생각이 없었다."라는 이야기를 하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주 등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까닭에 아홉수에 들어 있는 아들의 결혼을 미루려고 하셨을 수도 있고 말입니다. 그런데 L양은 이런 대화를 할 시간도 없이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를 알아본 뒤 남친을 통해 통보하고 있으니, 그게 못마땅하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3. 둘은 결혼할 준비가 되어있었는가?
이후 L양과 남친은 금이 간 관계를 밟아 부쉈습니다. L양은 이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남친에게 돌렸고, 남친은 문제를 풀만한 역량도 안 되면서 자신의 가족들과 부딪쳤습니다. 때문에 부모님으로부터 인연을 끊자는 말도 들었고, 형제들도 그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L양이 울며 그를 탓할 때마다 그가 무작정 자신의 가정으로 돌진한 결과입니다. 그러다 지쳐 이제 그는 L양마저 놓아버렸습니다.
L양은 말합니다.
"그때 제가 그렇게 화를 내지 않았더라면,
그를 벼랑 끝에 세우지 않았더라면,
마지막에 한번만 더 그의 얘기를 들었더라면….
이런 생각 끝에 저는 제 행복을 제가 스스로 깬 것 같아서
저를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싶습니다."
그를 벼랑 끝에 세우지 않았더라면,
마지막에 한번만 더 그의 얘기를 들었더라면….
이런 생각 끝에 저는 제 행복을 제가 스스로 깬 것 같아서
저를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싶습니다."
이 문제만 보면 그런 생각이 드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크게 봤을 때에는 이게 다 L양의 잘못 때문에 벌어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L양의 남자친구였다면 집안 식구들을 원수로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고, 중간에서 미리 중재를 해 부모님이 다짜고짜 L양을 혼내시겠다는 상황을 만들지도 않았을 겁니다. 결혼이 무슨 친구랑 에버랜드 다녀오겠다는 허락 받는 가벼운 일도 아닌데, 말없이 예약 다 해놓고 돈 달라는 식으로 부모님께 떼를 쓰지도 않았을 것이고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L양에게,
"네가 이 결혼 못 하겠다고 말한 거 말씀드렸다.
이제 우리 부모님도 널 용서하지 않으실 것 같다."
이제 우리 부모님도 널 용서하지 않으실 것 같다."
라는 멍청한 통보도 하지 않았을 겁입니다. 저는 대체 저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찬찬히 두 사람을 설득해 나가도 모자랄 판에, "자, 두 분 다 글러브 끼시고. 허리 아래는 때리시면 안 됩니다. 파이트! 홍코너 팔꿈치 써서 실격입니다."라며 심판을 보고 있다니….
그의 부모님들께서 하신 행동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당신들께서 보시기에 모자란 점이 있으면 이건 이런 것 같다라든가, 그건 아닌 것 같다는 식으로 말씀을 해주시면 되는데, 가르쳐주시진 않고 먼저 갈구시려고만 합니다. "너희들이 다 계획해놨으니 결혼은 해라. 다만 난 너도 못 마땅하고, 이 결혼도 못마땅하다."라는 말을 듣고 멀쩡한 정신으로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분들께서 하신 행동을 보면, 예의와 절차는 그저 밥상을 엎어버릴 구실이었던 게 아니었나 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입니다.
L양은 결혼만을 생각했고, 남친은 L양이 말하는 대로 따르기만 했으며, 남친의 부모님은 그런 아들을 보며 L양을 못마땅하게 여긴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런 와중에 L양과 남자친구는 결혼할만한 경제적, 정신적 독립도 안 된 상황이라 일반적인 경우보다 부모님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말입니다.
L양은 말합니다.
"모든 걸 무너뜨린 2주가 지난 지금,
이제 전과 같지 않은 그를 보며 저는 서럽고 외롭습니다.
저는 독하게 그와 헤어져야 할까요.
아니면 무뎌져가는 그라도 곁에 둘 수 있을 만큼 두고 의지해야 할까요."
이제 전과 같지 않은 그를 보며 저는 서럽고 외롭습니다.
저는 독하게 그와 헤어져야 할까요.
아니면 무뎌져가는 그라도 곁에 둘 수 있을 만큼 두고 의지해야 할까요."
제 생각에 L양은 독하게 헤어지실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또 그를 의지한다고 해서 힘이 되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권하고 싶은 방법은 아래에 적어두도록 하겠습니다.
위의 이야기를 읽으며 L양은 '친구랑 에버랜드 가기로 했다가 친구 부모님께 혼나 좌절한 아이'에서 한 발짝 벗어났으리라 저는 생각합니다. 오로지 그 친구의 부모와 그 친구를 원망하던 감정에서 벗어나, 친구와 놀러 가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깨달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무조건 사과해서 친구 부모님의 승낙을 받아내겠다고 친구에게 말해봐야, 지칠 대로 지친 친구는 "나 안 갈래."라는 대답만 할 것이라는 것도 말입니다.
이번엔, 그동안 L양이 모든 걸 결정해서 남자친구에게 통보하던 모습에서 벗어나 보시길 권합니다. 그에게 묻고, 그의 선택을 존중하는 겁니다. 다만 그게, '다시 결혼에 도전할 거냐, 아니냐'가 되어선 안 됩니다. 폐허가 된 듯한 이 지점에서 다시 시작해 볼 의사가 있는 것인지를 물어야 합니다. 물론 L양의 '결론'이 아닌 '생각'은 그에게 충분히 전달해야 합니다. 위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L양이 생각해 보게 된 것, 또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된 것들에 대해서도 남자친구에게 이야기하시길 바랍니다. L양 혼자서 했던 결정에 대해 왜 그런 결정을 했던 것인지 이야기하고, 또 그에게 맹목적으로 따르기를 요구했던 점과 그것에 대한 부작용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시기 바랍니다.
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L양이 선택하고 그에게 통보를 해 버리면, L양은 후회의 포로가 되어 자신만을 계속 탓하게 될 것입니다. L양이 화가 나서 그에게 던졌던 날 선 말들에 대해 사과하고, '우리'가 아닌 '결혼'에만 집중한 탓에 돌보지 못했던 관계에 대해서도 사과하시기 바랍니다. 용기를 내라고 종용하거나, 다시 결혼생각을 해 달라며 구걸할 필요는 없습니다. 혼란스러운 L양의 마음을 정리해서 그에게 말하고, 그것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의 생각을 들어보려는 시도를 너무 늦은 지금에서야 하는 것이 아닌지는, 그의 생각을 들어보면 알게 될 것 같습니다.
▲ 죽지 마세요. http://goo.gl/l2kBAb <- 이렇게도 한 번 못 놀아보고 죽긴 억울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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