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에게 회사 여직원들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여자.
주연씨, 이거 간단한데? 주연씨가 몇 년 간 '시험 준비'를 방패삼아 인생을 흘려보내고 있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주연씨에 대한 비전이 보이지 않아 남자친구도 이 관계를 그만 정리하려는 것 같은데?
시작부터 돌직구라 당황했을지 모르겠는데, 누군가는 주연씨를 잠에서 깨워야 하잖아. 남보다 조금 늦는 건 별로 문제가 안 돼. 그런데 잠만 자고 있는 건 분명 문제가 되거든. 주연씨 스물아홉이잖아. 얼마 안 있으면 인생 전반전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릴 텐데, 마냥 자고 있으면 어떡해? 골 넣고 세레모니 하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주연씨는 계속 코트 밖에서 자고 있을 거야?
반대의 상황이라고 생각해봐. 남자친구가 5년 째 시험 준비 중이야. 무슨 시험이라고 밝힌 순 없지만, 사법고시나 행정고시 급의 시험은 아냐. 여하튼 그는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데, 평소 그가 하는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등이 대부분이야. 그냥 힐끗 보기만 해도 그가 '시험 준비'를 방패삼아 인생을 흘려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 저런 남자에게서 비전을 찾아볼 수 있겠어?
주연씨가 남들에게 저렇게 보일 수 있는 거야. 결과만 가지고 원인을 찾는 건 아니니까 오해하진 마. 운이 없어서 떨어질 수도 있는 걸 가지고 전부 노력이 부족했다고 말하고 있는 게 아냐. 절반 이상의 에너지를 연애에 쏟고 있는 주연씨의 모습을 보고 하는 얘기야. 난 솔직히 주연씨가 이번 시험에서도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거든. 사연과 카톡대화를 읽으면서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으니까. 이건 내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는데, 내가 주연씨처럼 공부한다면 난 도서관가서 공부를 한 게 아니라 그냥 도서관을 방문한 게 될 것 같아. 시시각각 연인과 연락해야 하고, 또 흥미를 끄는 검색어들도 살펴야 하며, 문화생활까지도 즐기면서는, 난 공부를 할 수 없을 것 같아. 내 경우엔 공부가 아니라 독서만 해도 그렇거든. 내 멀티테스킹 능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일 수도 있는데, 책을 읽는 도중에 이것저것 하다보면 읽고 나서도 남는 게 별로 없더라고. 읽었던 곳 표시해 두고 딴짓 좀 하다가 다시 펼치면, 분명히 읽은 그 앞 장까지도 다시 새로워 질 때가 있어. 책을 덮어둔 기간이 길어지면 아예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할 때도 있고 말야.
이런 얘길 누가 직접 주연씨한테 하진 않을 거야. 내가 주연씨 지인이라고 해도 괜히 듣기 싫은 소리 해서 미운털 박히고 싶지 않기에, 그냥 주연씨가 풀어 놓는 수다나 들어주고 밥이나 같이 먹겠지. 그렇기 때문에 이건 누가 닦달해주길 기대할 게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을 조감하며 타파해야 하는 부분이거든. 그런 의미에서 오늘 한번 주연씨의 삶을 조감해 봐봐. 행운이 따라줄 가능성들은 일단 잠시 접어두고 지금까지의 삶에서 연장선을 그려보면 대략 어느 쪽으로 선이 그어질지 답 나오잖아. 마음에 들지 않는 그 연장선대로 삶이 흘러가지 않게 하려면 지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진지하게 한 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
이렇게 생각해 보자.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인 A군이 있어. A군에겐 수시에 합격한 친구인 B군이 있지. B군은 이미 대학 합격이 확정 되었으니 공부를 할 필요가 없었어. 그래서 학교 수업이 끝나면 A군에게 놀자고 했고, 주말에도 놀자고 했지. A군은 B군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고 늘 B군과 놀았어.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을 몇 번 하긴 했지만, B군이
라며 유혹하는 걸 뿌리칠 수 없었지. 아무래도 공부보다 게임이 재미있잖아. 게다가 수능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기도 했고, 이렇게 좀 논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건 없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B군이 영화 보러 가자고 하면 같이 갔고, 동대문 나갔다 오자고 하면 같이 나갔다 왔지. 그러다 수능이 다가왔고, A군은 늘 B군과 놀러 다닌 까닭에 형편없는 점수를 받고 말았지.
위의 이야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시험을 망친 건 전부 다 A군의 잘못일까? B군이 A군을 사망의 골짜기로 인도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A군의 자유의지로 거부할 수 있었던 거니까 B군에겐 아무 잘못이 없는 걸까?
내가 보기에 주연씨 남자친구는 B군과 같거든. 그는 주연씨가 시험에 계속 탈락하게 된 것에 기여를 한 일등 공신이야. 물론 시험을 본 건 주연씨고, 또 떨어진 것도 주연씨지만, 그 과정에 남자친구는 깊이 개입해 있었잖아. 주연씨는 그가
하면 바로 달려 나갔어. 잠깐 보자고 해도 나가고, 영화 보자고 해도 나가고, 술 한 잔 하자고 해도 나가고, 쇼핑 다녀오자고 해도 나가고, 여행 가자고 해도 나가고, 친구 만나는데 같이 가자고 해도 나가고, 커피 한 잔 하자고 해도 나가고….
여하튼 그렇게 불러낼 땐 언제고, 남자친구는 이제
따위의 이야기를 해. 이런 상황을 만든 것에 대한 책임은 분명 그에게도 있는데, 그는 그냥 다 주연씨의 탓으로 돌리며 귀찮아하고 지겨워하는 거지. 난 그에게 <어린왕자>를 선물해 주고 싶어. 읽다보면
라는 문장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주연씨를 매일 보고 싶어 매일 같이 불러내던 그는, 이제 주연씨가 길들여져 그를 매일 보려고 하니까, 주연씨보고 스케줄도 없는 여자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네.
난 이렇게 변한 남자친구를 보며 주연씨가 깨달았으면 좋겠어. 호의를 보이기 위해 "나에게 기대."라고 한 말만 듣고 계속 기대고 있으면 상대가 지치게 된다는 것, 그리고 선택을 권유한 사람을 믿고 따르더라도 어쨌든 책임은 주연씨 몫이라는 것. 이게 주연씨가 위기의식을 갖고 긴장해야 하는 이유야.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은 남에게 짐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거든.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얼른 주연씨 두 다리로 서서, '짐이 되는 여자'에서 벗어나는 게 먼저야.
어렵다. 난 사실 주연씨가
라고 물었으면, 당근이라고 대답하려고 했거든. 그는 이미 지친 단계를 지나 질린 상태인데다가, 주연씨에게
따위의 발길질 같은 얘기까지 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주연씨는 '관계를 개선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잖아. 그래서 참 어려워.
우선, 최대한 폰을 멀리 해봐. 주연씨는 현재 외적으로는 '시험 준비 중'이지만, 내적으로는 '오분대기조'와 같잖아. 언제든 남자친구가 연락을 하면 즉각 반응하는데다가, 주연씨 쪽에서도 -시험을 준비할 때 필연적으로 느끼게 되는-지루함과 외로움을 느끼게 되면 남자친구에게 연락을 하고 말아. 게다가 남자친구는 업무 때문에 바쁘니 영화검색도 주연씨가, 또 예매도 주연씨가 하는 등의 악순환이 반복되지.
결혼? 신혼여행을 어디로 가고, 아이를 몇 명 낳고 하는 이야기를 한 적 있으니까 사귀다 보면 자연스레 결혼할 것 같지? 절대 아냐. 남자 입장에서 현재 주연씨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과 결혼하는 건, 그녀의 부모와 바톤터치를 하는 일이 되어 버리거든. 부모야 당연히 당신 딸이니까 맹목적으로 사랑해주고 언제까지나 책임져 주려고 하지. 근데 남자친구는 부모가 아니잖아.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그녀를 인생의 걸림돌로 여기게 될 거야. 그녀는 그에게 함께 가정을 꾸려나가는 '아내'가 아니라, 돌봐야 하는 '아이'같으니까.
남자친구가 주연씨를 집에 보내기 전에, 주연씨가 알아서 먼저 들어가야 하는 거야. 오늘 정한 할당량만큼의 공부를 못 했으면 남자친구와의 만남을 미루기도 해야 하는 거고 말야. 지금처럼 연락 오면 바로 나가고, 나가서는 공부보다 데이트가 좋으니까 계속 붙어 있으려고 하면, 망가지는 건 주연씨거든. 놀 때는 같이 놀지만, 공부에서 벗어나 연애로 도피한 책임은 주연씨 혼자 져야 하니까.
아주 간단히 생각해봐. 시험에 계속 떨어져서 점점 주눅 들고 자신감도 떨어지면, 뭘 해야 해? 시험에 붙어야 하는 거잖아. 근데 지금처럼 생활하면 시험에 붙기가 어려워. 주연씨의 생활을 보면 남자친구와 평일에 두세 번 만나고, 주말에는 토요일 일요일 다 만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폰으로 연락해. 공부하려고 마음을 먹었다가도 남자친구가 술 한 잔 하자고 하면 나가고, 밥 먹자고 하면 나가고, 영화 보자고 하면 나가. 이게 끝이 아냐. 뉴스 봐야지, 웹서핑 해야지, 즐길 문화생활 알아봐야지, 쇼핑해야지, 친구 만나야지….
이거 지금, 도피처와 마취제만 찾는 자신에게 족쇄를 채워서라도 해야 할 일을 하게 만드는 게 먼저야.
남자친구가 여직원들과 카톡하는 것보다, 주연씨의 인생이 침몰해가고 있다는 게 더 문제라니까? 올해 시험에 합격 못하면 내년에도 주연씨는 깍두기로 살아야 해. 주연씨가 있는 힘을 다했는데도 능력이 안 돼서 불합격 한 거라면 내가 이런 얘기도 안 하지. 능력이 안 돼서가 아니라, 놀러 다니느라 공부를 안 해서 불합격 한 거잖아.
내가 주연씨 남자친구였다면, 우린 주말마다 12시간 마라톤 학습을 했을 거야. 레저나 문화생활 같은 건 합격 후에 하기로 하고 일단 공부에 집중했을 거야. 나도 사람이니까 당연히 공부하는 것보다는 치맥 먹으며 수다나 떠는 게 좋지. 그런데 지금 긴급상황이잖아. 주연씨가 친구들이랑 스키장 간다고 해도 말릴 거야. 사회에 이미 자리를 잡은 친구들이 놀 때 같이 놀고, 혼자 있을 때 놀고, 또 나랑도 놀고 하다보면, 주연씨가 계속 깍두기 인생을 살아야 할 수밖에 없으니까.
마취제는 그만 찾고 얼른 주연씨 본래의 감각을 찾아. 오랜 기간 마취제를 맞아온 까닭에, 지금 자신이 위급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걸 눈치도 못 챌 정도로 감각이 무뎌져 버렸잖아. 의지를 금방 허문 채 신나고 즐거운 것만 찾는 자신에게 화가 나서, 눈물이라도 흘려야 할 시점이야. 누가 견인해 주기만 기다릴 게 아니라 주연씨 스스로 시동을 걸어야 한다고. 이걸 극복하지 못하면, 누굴 만나든 그에게 짐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걸 잊지 말길 바라.
▲ 합격 하시고 나면 모든 상황이 다 달라질 겁니다. 오늘부터는 오로지 합격만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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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씨, 이거 간단한데? 주연씨가 몇 년 간 '시험 준비'를 방패삼아 인생을 흘려보내고 있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주연씨에 대한 비전이 보이지 않아 남자친구도 이 관계를 그만 정리하려는 것 같은데?
시작부터 돌직구라 당황했을지 모르겠는데, 누군가는 주연씨를 잠에서 깨워야 하잖아. 남보다 조금 늦는 건 별로 문제가 안 돼. 그런데 잠만 자고 있는 건 분명 문제가 되거든. 주연씨 스물아홉이잖아. 얼마 안 있으면 인생 전반전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릴 텐데, 마냥 자고 있으면 어떡해? 골 넣고 세레모니 하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주연씨는 계속 코트 밖에서 자고 있을 거야?
1. 반대의 상황이라면, 어떨 것 같아?
반대의 상황이라고 생각해봐. 남자친구가 5년 째 시험 준비 중이야. 무슨 시험이라고 밝힌 순 없지만, 사법고시나 행정고시 급의 시험은 아냐. 여하튼 그는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데, 평소 그가 하는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실시간 검색어에 대한 뉴스 얘기.
ⓑ인기를 얻고 있는 영화나 미드 얘기.
ⓒ함께 즐기고 싶은 문화생활 얘기.
ⓓTV방송 얘기, 쇼핑 얘기, 먹는 것 얘기.
ⓑ인기를 얻고 있는 영화나 미드 얘기.
ⓒ함께 즐기고 싶은 문화생활 얘기.
ⓓTV방송 얘기, 쇼핑 얘기, 먹는 것 얘기.
등이 대부분이야. 그냥 힐끗 보기만 해도 그가 '시험 준비'를 방패삼아 인생을 흘려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 저런 남자에게서 비전을 찾아볼 수 있겠어?
주연씨가 남들에게 저렇게 보일 수 있는 거야. 결과만 가지고 원인을 찾는 건 아니니까 오해하진 마. 운이 없어서 떨어질 수도 있는 걸 가지고 전부 노력이 부족했다고 말하고 있는 게 아냐. 절반 이상의 에너지를 연애에 쏟고 있는 주연씨의 모습을 보고 하는 얘기야. 난 솔직히 주연씨가 이번 시험에서도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거든. 사연과 카톡대화를 읽으면서
'이렇게 하고 싶은 거 다 하면, 대체 공부는 언제하나?'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으니까. 이건 내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는데, 내가 주연씨처럼 공부한다면 난 도서관가서 공부를 한 게 아니라 그냥 도서관을 방문한 게 될 것 같아. 시시각각 연인과 연락해야 하고, 또 흥미를 끄는 검색어들도 살펴야 하며, 문화생활까지도 즐기면서는, 난 공부를 할 수 없을 것 같아. 내 경우엔 공부가 아니라 독서만 해도 그렇거든. 내 멀티테스킹 능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일 수도 있는데, 책을 읽는 도중에 이것저것 하다보면 읽고 나서도 남는 게 별로 없더라고. 읽었던 곳 표시해 두고 딴짓 좀 하다가 다시 펼치면, 분명히 읽은 그 앞 장까지도 다시 새로워 질 때가 있어. 책을 덮어둔 기간이 길어지면 아예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할 때도 있고 말야.
이런 얘길 누가 직접 주연씨한테 하진 않을 거야. 내가 주연씨 지인이라고 해도 괜히 듣기 싫은 소리 해서 미운털 박히고 싶지 않기에, 그냥 주연씨가 풀어 놓는 수다나 들어주고 밥이나 같이 먹겠지. 그렇기 때문에 이건 누가 닦달해주길 기대할 게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을 조감하며 타파해야 하는 부분이거든. 그런 의미에서 오늘 한번 주연씨의 삶을 조감해 봐봐. 행운이 따라줄 가능성들은 일단 잠시 접어두고 지금까지의 삶에서 연장선을 그려보면 대략 어느 쪽으로 선이 그어질지 답 나오잖아. 마음에 들지 않는 그 연장선대로 삶이 흘러가지 않게 하려면 지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진지하게 한 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
2. 이게 다 주연씨 탓인가?
이렇게 생각해 보자.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인 A군이 있어. A군에겐 수시에 합격한 친구인 B군이 있지. B군은 이미 대학 합격이 확정 되었으니 공부를 할 필요가 없었어. 그래서 학교 수업이 끝나면 A군에게 놀자고 했고, 주말에도 놀자고 했지. A군은 B군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고 늘 B군과 놀았어.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을 몇 번 하긴 했지만, B군이
"PC방 잠깐 가서 게임 한 판만 하자. 한 판 하고 들어가서 공부하면 되잖아."
라며 유혹하는 걸 뿌리칠 수 없었지. 아무래도 공부보다 게임이 재미있잖아. 게다가 수능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기도 했고, 이렇게 좀 논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건 없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B군이 영화 보러 가자고 하면 같이 갔고, 동대문 나갔다 오자고 하면 같이 나갔다 왔지. 그러다 수능이 다가왔고, A군은 늘 B군과 놀러 다닌 까닭에 형편없는 점수를 받고 말았지.
위의 이야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시험을 망친 건 전부 다 A군의 잘못일까? B군이 A군을 사망의 골짜기로 인도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A군의 자유의지로 거부할 수 있었던 거니까 B군에겐 아무 잘못이 없는 걸까?
내가 보기에 주연씨 남자친구는 B군과 같거든. 그는 주연씨가 시험에 계속 탈락하게 된 것에 기여를 한 일등 공신이야. 물론 시험을 본 건 주연씨고, 또 떨어진 것도 주연씨지만, 그 과정에 남자친구는 깊이 개입해 있었잖아. 주연씨는 그가
"공부하고 있어? 저녁 같이 먹을까? 오랜만에 돈가스 어때?"
하면 바로 달려 나갔어. 잠깐 보자고 해도 나가고, 영화 보자고 해도 나가고, 술 한 잔 하자고 해도 나가고, 쇼핑 다녀오자고 해도 나가고, 여행 가자고 해도 나가고, 친구 만나는데 같이 가자고 해도 나가고, 커피 한 잔 하자고 해도 나가고….
여하튼 그렇게 불러낼 땐 언제고, 남자친구는 이제
"넌 스케줄이 없는 여자 같다."
"넌 내가 만나자고 했을 때 거절을 한 번 안 한다."
"넌 나밖에 모르는 바보 같다. 내가 바람을 피워도 봐줄 것 같다."
"넌 내가 만나자고 했을 때 거절을 한 번 안 한다."
"넌 나밖에 모르는 바보 같다. 내가 바람을 피워도 봐줄 것 같다."
따위의 이야기를 해. 이런 상황을 만든 것에 대한 책임은 분명 그에게도 있는데, 그는 그냥 다 주연씨의 탓으로 돌리며 귀찮아하고 지겨워하는 거지. 난 그에게 <어린왕자>를 선물해 주고 싶어. 읽다보면
"사람들은 이 진리를 잊어버렸어.
하지만 넌 잊지 마.
넌 네가 길들인 것에 책임이 있어.
넌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하지만 넌 잊지 마.
넌 네가 길들인 것에 책임이 있어.
넌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라는 문장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주연씨를 매일 보고 싶어 매일 같이 불러내던 그는, 이제 주연씨가 길들여져 그를 매일 보려고 하니까, 주연씨보고 스케줄도 없는 여자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네.
난 이렇게 변한 남자친구를 보며 주연씨가 깨달았으면 좋겠어. 호의를 보이기 위해 "나에게 기대."라고 한 말만 듣고 계속 기대고 있으면 상대가 지치게 된다는 것, 그리고 선택을 권유한 사람을 믿고 따르더라도 어쨌든 책임은 주연씨 몫이라는 것. 이게 주연씨가 위기의식을 갖고 긴장해야 하는 이유야.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은 남에게 짐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거든.
"제가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못해서 그럴까요?
사랑스러운 여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사랑스러운 여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얼른 주연씨 두 다리로 서서, '짐이 되는 여자'에서 벗어나는 게 먼저야.
3. 관계 개선 방법은?
어렵다. 난 사실 주연씨가
"이 사람은 이러이러한 말들까지 제게 한 적 있는데,
아무래도 헤어지는 게 답이겠죠?"
아무래도 헤어지는 게 답이겠죠?"
라고 물었으면, 당근이라고 대답하려고 했거든. 그는 이미 지친 단계를 지나 질린 상태인데다가, 주연씨에게
"넌 눈치도 없냐."
"이딴 걸로 속상해 하냐."
"설명해 줘야 아냐."
"널 보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든다."
"연락하는 게 귀찮고 지겹다."
"널 싫어하는 마음이 점점 커진다."
"이딴 걸로 속상해 하냐."
"설명해 줘야 아냐."
"널 보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든다."
"연락하는 게 귀찮고 지겹다."
"널 싫어하는 마음이 점점 커진다."
따위의 발길질 같은 얘기까지 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주연씨는 '관계를 개선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잖아. 그래서 참 어려워.
우선, 최대한 폰을 멀리 해봐. 주연씨는 현재 외적으로는 '시험 준비 중'이지만, 내적으로는 '오분대기조'와 같잖아. 언제든 남자친구가 연락을 하면 즉각 반응하는데다가, 주연씨 쪽에서도 -시험을 준비할 때 필연적으로 느끼게 되는-지루함과 외로움을 느끼게 되면 남자친구에게 연락을 하고 말아. 게다가 남자친구는 업무 때문에 바쁘니 영화검색도 주연씨가, 또 예매도 주연씨가 하는 등의 악순환이 반복되지.
결혼? 신혼여행을 어디로 가고, 아이를 몇 명 낳고 하는 이야기를 한 적 있으니까 사귀다 보면 자연스레 결혼할 것 같지? 절대 아냐. 남자 입장에서 현재 주연씨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과 결혼하는 건, 그녀의 부모와 바톤터치를 하는 일이 되어 버리거든. 부모야 당연히 당신 딸이니까 맹목적으로 사랑해주고 언제까지나 책임져 주려고 하지. 근데 남자친구는 부모가 아니잖아.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그녀를 인생의 걸림돌로 여기게 될 거야. 그녀는 그에게 함께 가정을 꾸려나가는 '아내'가 아니라, 돌봐야 하는 '아이'같으니까.
"최근에는 만나도, 남자친구가 저를 자꾸 집에 보내려 하고…."
남자친구가 주연씨를 집에 보내기 전에, 주연씨가 알아서 먼저 들어가야 하는 거야. 오늘 정한 할당량만큼의 공부를 못 했으면 남자친구와의 만남을 미루기도 해야 하는 거고 말야. 지금처럼 연락 오면 바로 나가고, 나가서는 공부보다 데이트가 좋으니까 계속 붙어 있으려고 하면, 망가지는 건 주연씨거든. 놀 때는 같이 놀지만, 공부에서 벗어나 연애로 도피한 책임은 주연씨 혼자 져야 하니까.
"저도 시험에 계속 떨어지다 보니 점점 주눅 들고, 자신감도 없어집니다."
아주 간단히 생각해봐. 시험에 계속 떨어져서 점점 주눅 들고 자신감도 떨어지면, 뭘 해야 해? 시험에 붙어야 하는 거잖아. 근데 지금처럼 생활하면 시험에 붙기가 어려워. 주연씨의 생활을 보면 남자친구와 평일에 두세 번 만나고, 주말에는 토요일 일요일 다 만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폰으로 연락해. 공부하려고 마음을 먹었다가도 남자친구가 술 한 잔 하자고 하면 나가고, 밥 먹자고 하면 나가고, 영화 보자고 하면 나가. 이게 끝이 아냐. 뉴스 봐야지, 웹서핑 해야지, 즐길 문화생활 알아봐야지, 쇼핑해야지, 친구 만나야지….
이거 지금, 도피처와 마취제만 찾는 자신에게 족쇄를 채워서라도 해야 할 일을 하게 만드는 게 먼저야.
"남자친구가 회사 여직원들과 다정하게 카톡을 하는 걸 본 적도 있는데…."
남자친구가 여직원들과 카톡하는 것보다, 주연씨의 인생이 침몰해가고 있다는 게 더 문제라니까? 올해 시험에 합격 못하면 내년에도 주연씨는 깍두기로 살아야 해. 주연씨가 있는 힘을 다했는데도 능력이 안 돼서 불합격 한 거라면 내가 이런 얘기도 안 하지. 능력이 안 돼서가 아니라, 놀러 다니느라 공부를 안 해서 불합격 한 거잖아.
내가 주연씨 남자친구였다면, 우린 주말마다 12시간 마라톤 학습을 했을 거야. 레저나 문화생활 같은 건 합격 후에 하기로 하고 일단 공부에 집중했을 거야. 나도 사람이니까 당연히 공부하는 것보다는 치맥 먹으며 수다나 떠는 게 좋지. 그런데 지금 긴급상황이잖아. 주연씨가 친구들이랑 스키장 간다고 해도 말릴 거야. 사회에 이미 자리를 잡은 친구들이 놀 때 같이 놀고, 혼자 있을 때 놀고, 또 나랑도 놀고 하다보면, 주연씨가 계속 깍두기 인생을 살아야 할 수밖에 없으니까.
"남자친구가 이제는 카톡에 하트도 찍어 보내지 않고…."
마취제는 그만 찾고 얼른 주연씨 본래의 감각을 찾아. 오랜 기간 마취제를 맞아온 까닭에, 지금 자신이 위급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걸 눈치도 못 챌 정도로 감각이 무뎌져 버렸잖아. 의지를 금방 허문 채 신나고 즐거운 것만 찾는 자신에게 화가 나서, 눈물이라도 흘려야 할 시점이야. 누가 견인해 주기만 기다릴 게 아니라 주연씨 스스로 시동을 걸어야 한다고. 이걸 극복하지 못하면, 누굴 만나든 그에게 짐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걸 잊지 말길 바라.
▲ 합격 하시고 나면 모든 상황이 다 달라질 겁니다. 오늘부터는 오로지 합격만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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