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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사귀자마자 냉담하게 변한 여자, 3주의 연애.

by 무한 2014. 3. 4.
사귀자마자 냉담하게 변한 여자, 3주의 연애.
최형, 내가 군대에 있을 때 유독 이상한 의무병이 하나 있었어. 걔는 의무 특기병도 아니었거든. 일반 소총수로 입대를 했는데, 사단 내 의무병이 부족해서 그랬는지 훈련소에서 의무병으로 바뀐 거야. 그래서 후반기 의무 교육도 받지 않았지. 자대배치만 의무병으로 받았을 뿐, 그냥 일반 병사랑 아무 것도 다를 게 없었던 거야.

그런데 걔가 착각을 하더라고. 왜 부대 내에 있는 군의관의 경우는 간단한 처치만 하기 마련이잖아. 좀 심각하다 싶으면 군병원으로 후송하는 일을 하고. 그러다보니, 의무병인 걔는

'내가 하는 일이나 군의관이 하는 일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러므로 나 역시 군의관과 같은 지위를 가진다.'



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 걔가 할 일이라는 건 사실 소독을 해주거나 간호를 하거나, (우리 부대는 독립중대였으니)상비약을 주거나, 외진을 요청하는 환자가 새기면 군의관에게 전달해 주는 일 등이잖아. 헌데 걔는 군의관 빙의를 했는지, 자기가 진료를 하려 들기도 하고, 또 군의관에게 보고해야 할 일 등도 자기 선에서 자르는 등의 일들도 저지르더라고. 그의 그런 착각을 부대원 전부가 눈치 채게 된 까닭에 우리는 그를 '허준'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여하튼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사회에서도 저 의무병처럼 착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더라고. 세무사 사무실에서 일한다고 해서 세무사랑 똑같은 거 아니고, 병원에서 일한다고 해서 의사랑 똑같은 거 아니잖아.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갖거나 애사심을 갖는 것까지는 좋아. 그런데 눈만 높아지면 곤란한 거거든.


1. 아무래도 그녀나 그녀의 직장 동료들이….


그녀나 그녀의 직장동료들 중 '눈만 높은 사람'이 있다고 나는 생각해. 그리고 이게 최형의 연애가 3주 만에 막을 내린 이유 중 51%를 차지한다고 생각하고. 

우선, 그녀에게 내가 이 혐의를 둔 건, 그녀가 최형의 고백에 승낙하며

"오빠가 날 좋아하는 것만큼 내가 오빠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오빠가 나를 정말 좋아해 주기 때문에 더 만나보고 싶어서 결정한 거다."



라는 말을 대놓고 할 정도로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기 때문이야. 이것 외에도 그녀는 김형보고

"오빠는 날 만난 게 젤 큰 행운이니까."


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데이트 후엔 평가서를 제출하듯 

"토요일에 만났을 때에는 어색했다. 재미도 없고 편하지도 않았다. 
이럴 바에는 예전에 알던 사람들이나 친구들을 만나는 게 나을 것 같다."



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 그녀는 자신이 최형을 만나주는 것 자체가 '호의를 베푸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어디서 그런 자부심이 나오는지 모르겠는데, 여하튼 대단해. 그녀의 직장 동료들 역시, 최형을 한 번 보고 난 이후로 그녀에게 각자의 소감을 전달했지. 그 내용은 부정적이었고 말이야. 

내가 그녀들의 대화를 전부 들은 게 아니니 마음대로 판정을 내릴 순 없지만, 심증은 확실하게 들거든. 그 이유는, 첫째, 그녀들의 직장이 위에서 말한 '착각'에 빠지기 쉬운 곳이야. 둘째, 솔로부대 고위 간부급인 그녀의 직장동료(언니)들은 최형에 대한 비판만을 했어. 셋째, 그녀가 직장동료들의 이야기를 듣고 한 행동들은 마치 면접관이 면접 보러 온 사람 대하듯 하는 거였어. 넷째, 혼란스러워진 그녀가 친구들에게도 연애상담을 했는데, 친구들은 "계속 만나 본 네가 잘 알지, 한 번 만나 본 직장 언니들이 잘 알겠느냐."라며 옳은 조언을 해줬어. 

근 한 달을 만나면서 단 한 번도 그녀가 먼저 연락한 일이 없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 난 사실 최형보다 저 여자 분이 더 걱정돼. 그녀는 삼십대고, 또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소개팅을 했다고 했잖아. 그녀가 이전에 만난 소개팅남들에게 최형에게 한 것처럼 행동했다면, 몇 주 정도 연락하다가 흐지부지 되는 건 필연적이었을 거야. 그녀 자신은 관계에 대해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상대를 평가하기만 하려고 들거든. 그 평가에는 또 그녀의 직장동료인 '언니들'이 적극 참여해서 비평을 하고 말야.

데이트가 재미도 없고 편하지도 않았다? 그런 피콜로 더듬이 빠는 소리가 어딨어. 그녀는 데이트를 하러 나온 게 아니라 무슨 접대를 받으러 나온 사람처럼 굴어. 자신은 VIP고, 남자는 자신을 대상으로 영업을 해야 하는 영업사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2.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내가 방금 위에서 

"자신은 VIP고, 남자는 자신을 대상으로 영업을 해야 하는 
영업사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라고 했잖아.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말았어. 최형이

"그 영업, 제가 한 번 해 보겠습니다."


라며 나서고 만 거야.

최형, 내가 만약 그녀에게 그런 소리들을 들었다면 난,

"권리를 주장하려면 의무도 지켜야 하는 것 아닐까?
네가 불만 사항들을 말하니 나도 말하겠다, 하는 소리를 하는 게 아냐.
지금 내가 오디션을 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네가 심사위원인 것도 아니잖아.
연애는 우리 둘이 하는 거고, 그건 마치 듀엣과 같은 거야. 
그런데 넌 내게 '공기 반 소리 반의 소리를 내야 한다. 얼굴을 찡그리지 마라.'
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해. 난 네게 심사를 받고 싶은 게 아냐.
같이 노래를 부르고 싶은 거지. 넌 우리를 위해 무슨 노력을 하고 있나 생각해 봐."



라는 이야기를 해줬을 거야. 그런데 최형은 그녀의 지적을 받자마자. 

"아 그래? 미안해. 그러려던 건 아니었는데….
다음부터는 더 잘 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것도 미리 말해줘. 
그럼 그것도 다 네 뜻대로 고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
어떻게 바꿔볼까? 마음에 드는 스타일이 있으면 말해줘.
내가 실수한 것 때문에 싫어진 건 아니지? 
정말 열심히 할 거니까, 이번 실수는 너그럽게 이해해줘."


 
라는 이야기를 하고 말아. 둘의 차이점이 뭔지 알겠어? 싸우라는 게 아냐. 예컨대 그녀가 갑자기 돈을 빌려 달랬다고 해봐. 그런데 그녀는 그걸 카톡으로 요구했고, 최형은 나중에 확인했어. 내용은 아래와 같다고 해보자.

그녀 - 120정도 빌려줄 수 있어?
          가능하면 지금 최대한 빨리 좀 보내줘. 
          돈은 모레 줄게. 급해서 그래.
그녀 - 톡 확인 좀 해.
그녀 - 톡 보고 일부러 안 보내는 거야?
그녀 - 됐다. 다른 사람한테 빌렸어. 돈 얘기는 신경쓰지 마.
그녀 - 필요할 때 도움이 안 되네.



라는 거야. 최형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할 것 같아? 내가 파악한 최형이라면, 카톡확인을 늦게 해 그녀의 요구를 즉시 들어주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하며 지금이라도 빌려줄 테니 그 사람에게 빌린 거 주고 내가 준 돈으로 해결하라고 할 거야. 그리고 빌려간 돈은 늦게 줘도 상관없다고 말 할 거고. 그렇지 않아? 그렇게까지 하지 않더라도 빨리 대답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하겠지. 다음에는 꼭 도움을 줄 테니까 '필요할 때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그러면 안 된다는 거야. 저건 예의도 없고 순서도 없는 거잖아. 그리고 급하면 전화를 하든지. 톡으로 돈 빌려달라고 말만 툭 던져놓고, 나중엔 자기 혼자 화나서 최형을 나쁜 사람 만들고 있잖아. 내 말은, 저럴 경우 그것에 대해 지적을 해야 한다는 얘기야. 최형처럼 '그녀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서' 마냥 엎드려 잘못을 빌기만 하면, '상대를 모시는 영업사원'에서 벗어나지 못할 테니까. 


3. 종합 잘못 세트.


여기다가는 최형이 '다음 연애'를 위해 고쳐야 할 몇 가지를 적어둘게. 

우선, 예고를 길게 하지 마. 내가 최형의 카톡대화를 보면서 가장 답답했던 건, 그냥 만나서 하면 되는 이야기를 가지고 최형이 계속 '할 얘기가 있다'라는 걸 상대에게 거론하는 거였어. 
 
"할 얘기가 있는데…. 아, 이건 만나서 말해야 겠다."
"오늘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는데 다 못 했네."
"다음에 만나면 얘기해 줄게. 나 할 얘기 있어."
"하고 싶은 얘기 있는데, 카톡으로 말고 만나서 얘기할게."



저런 거, 앞으론 절대 하지 마. 할 말이 있으면 지금 하든가, 아니면 편지를 써. 카톡으로 대화를 나눌 땐 카톡으로 할 만한 말이 아니라서 못 하고, 또 만나서는 만나서 노느라 할 말을 못 하고…, 그러지 말고 지금 하든가 다른 방법으로 전달하라고. 그리고 난 궁금한 게, 최형의 그 '할 말'이라는 게 뭐야? 중요한 얘기 맞아? 내가 보기엔 "할 얘기가 있는데…."라는 말을 해가면서 까지 할 중요한 얘기는 없는 것 같은데, 진짜 할 말이 있기는 한 거야? 혹시 그거 "앞으로 우리 서로에게 플러스가 되는 연애를 해나가자."같은 거야? 그런 얘기라면 굳이 말을 안 해도 좋으니까, 예고하지 말고 넣어 둬.

그리고 말 예쁘게 해. 지금 그 대화를 나중에 내 자녀들이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해서라도, 거친 말 쓰지 마. 최형 말투는 부드러운데, 단어 선정은 종종 좀 드러워. 봐봐. 내가

"주선자랑도 어릴 때부터 친구였어요. 파주 쓰레기들이죠 ㅎㅎㅎ"


라는 이야기를 하면, 최형은 웃을 수 있어. 근데 대부분의 여자들은 저 말을 듣고 웃지 않아. TV에서 요새 '딸바보, 아들바보'하는 말 많이 쓰잖아. 그것 까진 괜찮아. 그런데 그걸 '딸병*'이라고 하는 순간 우린 웃을 수 있지만, 여자들은 안 웃는다고. 그 단어를 쓴 사람 자체를 무슨 세균처럼 볼 수 있어. 난 이게 최형이 남자들과만 어울려서 그렇다는 걸 아는데, 여자들은 그걸 모르니까 최형 자체를 불쾌하게 생각할 수 있다고.
 
두 가지 더 남았는데, 느끼한 얘기도 좀 안 했으면 좋겠어. 이건 저 위에서 말한 '할 얘기'랑 이어지는 부분이기도 한데, 역할극 하려고 들지 마.

"당신이 따뜻한 손으로 내 손을 잡을 때, 난 당신에게…."


그냥 "아까 먼저 손 잡아줘서 고마웠어."라고 말하면 되는 거야. 최형이 최익스피어가 아니잖아. 현실에서 "그녀의 눈이 말을 하고 있구나, 나는 대답을 해야지."하면 전문의와 상담해야 할 일이 벌어질 수 있어. 정 하고 싶으면 기념일이나 생일 같은 때에 한 번씩 하도록 해. 그렇지 않고 매번 저러면, 최형과 대화할 때에는 김치나 피클이 필요할 수 있어. 너무 느끼하니까.

끝으로 기프티콘 남발하지 마. 기프티콘을 보내고 싶어서 못 참겠으면, 그녀에게 말고 나한테 보내(응?). 최형 3주간 그녀에게 기프티콘 몇 개 보냈는지 알아? 이거 내가 또 정확하게 세어봤잖아. 열다섯 개 보냈더라. 그녀가 최형을 좀 차갑게 대한 날 다음 날엔, 막 세 개 씩도 보내고 그랬더라고. 그러면 좀 나아질 거라고 생각한 거야? 최형이 하도 기프티콘을 보내니까 난 그게 무슨 스팸처럼 보이던데, 그녀도 그런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마지막 주 대화를 보니까, 그녀는 최형이 기프티콘을 보낸 것에 대해 이젠 고맙다는 말도 안 하던데?


기프티콘 얘기가 나왔으니, 오늘은 이 얘기 마무리 하는 걸로 끝낼게. 선물은 직접 사서 눈 보고 줘야 더 가치가 있는 거야. 그럴 수 있는 건 반드시 그렇게 해야해.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그럴 상황이 안 되었을 때에는 기프티콘을 보낼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반드시 최형이 구입한 후 만나서 줘.

상대가 전날 술 먹었으니 숙취해소음료 기프티콘 틱 보내고, 커피 마시라고 커피 기프티콘 틱 보내고, 건강 생각하라고 영양제 기프티콘 틱 보내고, 그러는 거 아냐. 난 공쥬님(여자치구)이 잠시 외근 나갔다가 혼자 밥을 먹어야 할 때, 같이 먹을 수 없으니 새로 나온 햄버거 먹어보라고 기프티콘을 보낸 적 있거든. 그럴 땐 기프티콘을 사용하지만, 평소에 편의점 상품을 바꿔 먹으라며 기프티콘을 보내지 않아. 그리고 최형처럼 뭘 좋아하는지 모르니 상품권으로 보낸다며 액수가 적힌 상품권 기프티콘을 보내지도 않고.

"모바일상품권 3000원이 도착했습니다."


난 최형이 대체 저 상품권을 왜 보내는지 이해할 수가 없더라. 무슨 커피 좋아하는지 모르니까 저걸로 바꿔 마시라고? 난 저런 기프티콘을 받으면 기쁘기보다는 기분 나쁠 것 같아. 3000원 없어서 커피 못 사 마시는 사람 있어? 저건 성의도 없고 감동도 없잖아. 그녀가 야근을 하고 있는데 커피 한 잔 마시면서 하라고 커피 기프티콘을 보내는 것 정도는 괜찮아. 그런데, 그냥 평소처럼 업무시간에 일하고 있는데 저런 기프티콘을 받으면 '뭐 하자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것 같아. 주고도 욕먹는다는 건, 이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아, 그리고 이거 얘기 안 했네. 다음부터는 매일 '재미있는 사진'이나 '추천하는 음악'같은 거 링크로 계속 보내지 마. 최형은 자꾸 뭘 주려고 하면서 기프티콘이나 링크를 주는데, 그 빈도와 정도가 너무 심해. 내가 보기에도 스팸처럼 느껴져. 할 말이 없으니까 그걸 구실로라도 얘기할 겸 보내는 건 알겠는데, 받는 사람이 소화 시킬 시간도 주지 않고 계속 보내니까 즐겁긴커녕 지겨울 것 같아. 그리고 최형이 재미있다고 보내도 상대는 그저 징그럽게 여길 수 있고, 또 음악도 최형은 좋아서 보냈지만 상대 취향이 아닐 수 있잖아. 상대에게 맞지 않는 걸 계속 보내면, 상대에겐 그저 공해처럼 느껴질 수 있는 거야. 이것도 잊지 말길 바라.



"무한님께 모바일상품권 보내드릴까 했었는데…." 기분 나쁠 것 같다는 말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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