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행복을 위해 헤어지는 거라 말하는 남자
보경씨, 내가 보경씨 남자친구라고 해보자. 난 칸트 같은 남자야. 그래서 보경씨가 오늘 아침엔 일어나서 회사 가는 일이 너무 싫다며 그냥 좀 더 자고 지각해 버릴까 하는 얘기를 내게 했을 때, 보경씨에게 이렇게 말하지.
저 말을 들은 보경씨 기분은 어떨 것 같아? 아무래도 좀 짜증나겠지? 사람이 기계가 아닌 이상 좀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날도 있는 거고,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날 역시 있는 건데, 자로 잰 듯한 삶을 살라고만 채근하면 억압받는 느낌이 들 수 있잖아.
난 보경씨 커플의 문제가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해. "너의 행복을 위해서 헤어지는 거라고 말하는 남자와는 상종도 하지 말아라."라는 충고는 지인들로부터도 많이 들었을 테니까, 난 보경씨가 요청한대로 '남자의 입장'에서 이 관계를 이야기 해볼게. 출발해 보자.
보경씨가 남친보다 연상이어서 그런지, 이 관계에서 보경씨는 '누나'처럼 구는 일이 많아. 특히 내가 놀랐던 건, 남자친구가 동성의 지인들을 만나는 것까지도 보경씨가 터치한다는 거였어. 그거 보통 학생인 자녀를 둔 엄마들이 하는 행동이잖아. "나쁜 친구랑 어울리지 말아라."하는 거 말야.
물론 남자친구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늘 자기개발을 위해 힘쓰며, 연애에서도 늘 좋은 모습만 보이려 노력한다면 좋겠지. 그런데 남자친구도 사람이잖아. 그럼 실수할 때도 있는 거고, 그냥 좀 놀고 싶을 때도 있는 것이며, 어울리는 지인이 쓸데없는 짓을 하자고 하면 쓸데없는 짓을 같이도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보경씨가 보경씨 자신에 대해 말했지.
그런 어머니를 둔 내 친구가 있었어. 열아홉 살 때였는데, 그 친구의 어머니께서는 그가 PC방에 가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생각하셨고, 담배를 피우는 친구들은 악의 축이니까 절대 가까이 하지 말라고 그에게 가르치셨지. 뭐, 당시 중2병이 아직 큰 영향을 끼치던 나이여서 그랬겠지만, 그 친구가 어느 날 학원도 다 빼먹고 어디서 구했는지 소주를 병째 마시며 말하더라고
라고. 바로 그 날 난 그 친구에게 '껍데기'란 별명을 지어주었지. 여하튼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하는 거, 진짜 아무 쓸모도 없는 거잖아. 거기에 매달려서 프로게이머가 될 거라면 모르겠지만, 그냥 학교 끝나고 PC방 가서 한 시간 친구들과 어울리는 거, 차가운 시각으로 바라보면 말 그대로 시간낭비잖아. 그런데 지금 30대에 접어든 사람들 중에 스타크래프트 할 줄 모르는 사람도 있나? 인생은 혼자 사는 거라며 독고다이로 학창시절을 보낸 게 아니라면, 다들 SCV를 어떻게 뽑는 줄 알고 있겠지. 그 왜 영어책에 예문으로 자주 나오는 문장 있잖아.
둘이 다툴 때 남자친구가 답답함을 호소했던 부분도 바로 저 지점이거든.
보경씨의 얘기를 듣다 보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부분들까지도 '인격적 미성숙함'같은 걸로 생각하는 것 같아. 만약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보경씨 남자친구였다면, 그들이 자퇴한다고 했을 때 그것 역시 '아직 어리고 뭘 몰라서'라고 생각하며 극구 반대를 했겠지. 게다가 보경씨의 남친이 연하인 까닭에 주변에서 해 준 조언들 역시 "걔는 아직 어리니까. 그냥 아이라고 생각하며 잘 달래라."라는 거였어. 그러다보니 성격의 차이나 성향의 차이가 발생했을 때, 그건 '남자친구가 아직 어리고 뭘 몰라서' 그러는 일로 여겨지기도 했지.
보경씨 남자친구의 행동들이 마음에 안 드는 건 나도 마찬가지야. 근데 내 생각은, 그가 하려는 일이 정말 위태로운 일이 아닐 경우엔 남자친구가 시행착오를 할 수 있게 놔두거나, 내 생각이 틀릴 수 있으니 일단 좀 두고 보면 어떨까 싶거든. 보경씨가 남자친구와 어울리는 사람들의 질이 안 좋다는 식으로 말했을 때, 남자친구가 뭐라고 답했어?
라는 뉘앙스로 대답을 했잖아. 그럼 저 말에 대해서 보경씨도 존중해 줘야 하거든. 거기에 대고 계속 "그래도 걔들은 질이 나쁘다."라는 식으로만 주장을 펴면 안 되는 거야. 남자친구가 내가 옳다고 믿는 대로 살아줬으면 하는 기대는 할 수 있지만, 기대를 넘어 강요해선 안 되는 거라고.
누가 봐도 잘못인 행동을 남자친구가 해서 보경씨가 다그치더라도, '반성하고 고칠 수 있는 기회'는 언제나 열어두고 이야기를 해야 해. 작년이었나 올 초였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런 뉴스가 있었거든. 초등학생인 아이가 집에서 창밖으로 종이를 던진 거야. 그걸 본 경비실에서는 아이 엄마를 불러서 주의를 줬고, 아이 엄마는 집에 돌아와 아이를 야단쳤지. 그러고 잠시 후, 아이는 엄마를 창피하게 만들어 미안하다는 글을 써 놓고 창밖으로 뛰어내렸어.
보경씨와 남자친구가 헤어지기 직전에 나눈 대화를 봐봐. 보경씨가 한 말이야.
저건 설득이라기보다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통보에 가깝지 않아? 내가 보기엔
라는 말과 비슷한 것 같은데, 보경씨는 어떻게 생각해? 같은 뜻을 전달하더라도 좀 다르게 말할 수 있는 거잖아. 예를 들어, 얼마 전 내가 좀 과격하게 이야기를 한 적 있거든. 그때 공쥬님(여자친구)이, 같이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까 내가 강하게 말해서 상대방이 기분 나빴을 수도 있지 않겠냐고 묻더라고. 누군가 자신에게 그렇게 말했다면 기분 나빴을 것 같다면서 말이야.
이처럼 보경씨가 하려고 했던 말도 분명 좀 다르게 말할 수 있었을 거거든.
라고 말야. 앞서 말했듯 보경씨는 남자친구를 내려다보고 있어.
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말이야. 그래서 대화를 하기 보다는 남자친구를 가르치려는 태도가 계속 먼저 튀어나오는 것 같아.
'내 생각은 전혀 지지 받지 못하고, 난 늘 고쳐야 할 것투성이에 어리숙한 생각만 하는 존재로 여겨지는 연애'는, 하고 싶지 않을 것 같아. 매번 혼나듯이 해야 하는 대화에 질려서, 일부러 더 비뚤게 나가며 말도 안 되는 주장도 하게 될 것 같고.
그런데 어쨌든 연애는 둘이 하는 거잖아. 남자친구에게 단점이 있듯이, 내가 위에서 말한 부분들이 보경씨의 단점일 수도 있어. 그럼 남자친구도 자신이 느끼는 보경씨의 단점에 대해 이야기를 하든가, 아니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하거든.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거잖아. 그랬다면 보경씨도 그간 과격하게 주장하거나 상대를 궁지로 몰았던 것에 대해 돌아볼 수 있었을 거고 말이야.
하지만 보경씨의 남자친구는 좀 비겁한 방법을 선택했어.
라며 헤어지잔 얘기를 한 거지. 아니, 저건 또 무슨 중2병 돋는 소리야. 못 견딜 것 같아서 관계를 놓는 거면 놓는 거지, 네가 행복해지기 위한 어쩌고 하는 건 무슨 소리야.
저런 이야기를 하는 보경씨의 남자친구는 좀 황당한데, 그런 남자친구에게 보경씨가 제시한 해결책은 더 황당해. 보경씨는
라고 말하거든. 그 다음부터는 둘이 무슨 영화 같은 것도 찍더라?
아니, 무슨 남자친구가 불치병에 걸려서 결과를 알 수 없는 치료여행을 떠나며 나누는 대화라면 감동적이기라도 하지. 지금 남자친구는 앞으로 여자친구 눈치 안 보고 놀겠다며 헤어지자는 거잖아. 그러면서 그 행동을 거창하게 포장해 SNS에
라는 글을 올리기도 하고 말야. 보경씨 남자친구는 이렇게 노는 재미에 푹 빠진 것 같아. 그래서 보경씨가 마음을 접으려고 하면 다시 말을 걸기도 하고, 그걸 희망이라 여기며 보경씨가 다시 잘 해보려고 하면 우린 안 된다고 말하지. 그래서 보경씨가 다시 체념하면, 남자친구는 우리가 헤어진 게 실감이 안 난다면서 다시 생각해 보자며 여지를 남겨두고….
이쯤되는 확실히 못 쓰는 거야. 거기서 '사랑하기 때문에 한 여자를 보내 준 순정남 놀이'를 하고 있는 그에게 장단 맞춰주고 있지 말고, 보경씨도 그와의 육아 같던 오랜 연애에서 벗어나길 바라.
내가 위에서 한 말들은 보경씨의 '다음 연애'를 위한 조언들이라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 못쓰게 된 이번 연애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라고 보면 돼. 그리고 보경씨의 남자친구는 자신이 헤어지자고 저렇게 이야기를 한 후에도 아무렇지 않게 사귈 때처럼 하트도 찍어 보내고 안부를 붇기도 하는데, 난 그런 행동이 불편하다고 보경씨가 그에게 확실히 이야기 했으면 좋겠어. 헤어지자고 한 게 뒤집힌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헤어지자는 걸 둘 다 받아들이는 것도 아닌 채로 유야무야 하는 거, 아주 안 좋은 거거든.
이별을 말한 순간 남자친구는 앞으로 이 관계를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거야. 지금 남자친구가 사귈 때처럼 말을 걸고 대화를 하려고 하는 건, 이 관계에 대한 아무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사귈 때의 즐거움만을 느끼겠다는 거고. SNS로는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를 보내줘서 힘들다'고 동네방네 소문 다 내놓고, 뒤에서는 "여보~"하며 다시 말 거는 건, 자아가 분리돼서 그러는 건가?
내 여동생의 일이었으면, 작년 7월에 이미 헤어졌겠지. 내 여동생이 "짜증난다. 너 가라."라고 말하는 남자와 계속 사귀도록 내가 놔두지 않았을 테니까.
▲ 너를 위해 떠날 거면, 빨리 좀 떠나갑시다. 지겹게 무슨 예고만 몇 주씩 하고 그러세요.
<연관글>
연애할 때 꺼내면 헤어지기 쉬운 말들
바람기 있는 남자들이 사용하는 접근루트
친해지고 싶은 여자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찔러보는 남자와 호감 있는 남자 뭐가 다를까?
앓게되면 괴로운 병, 연애 조급증
<추천글>
★필독★ 연애사연을 보내는 방법
유부남과 '진짜사랑'한다던 동네 누나
엄마가 신뢰하는 박사님과 냉장고 이야기
공원에서 돈 뺏긴 동생을 위한 형의 복수
새벽 5시, 여자에게 "나야..."라는 전화를 받다
보경씨, 내가 보경씨 남자친구라고 해보자. 난 칸트 같은 남자야. 그래서 보경씨가 오늘 아침엔 일어나서 회사 가는 일이 너무 싫다며 그냥 좀 더 자고 지각해 버릴까 하는 얘기를 내게 했을 때, 보경씨에게 이렇게 말하지.
"지금 네가 하려는 행동이,
보편적인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한지를 생각해 봐.
모두가 너처럼 좀 더 자고 지각해 버리는 걸 가볍게 생각한다면,
어떤 사회가 될 지 생각해 보라고."
보편적인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한지를 생각해 봐.
모두가 너처럼 좀 더 자고 지각해 버리는 걸 가볍게 생각한다면,
어떤 사회가 될 지 생각해 보라고."
저 말을 들은 보경씨 기분은 어떨 것 같아? 아무래도 좀 짜증나겠지? 사람이 기계가 아닌 이상 좀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날도 있는 거고,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날 역시 있는 건데, 자로 잰 듯한 삶을 살라고만 채근하면 억압받는 느낌이 들 수 있잖아.
난 보경씨 커플의 문제가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해. "너의 행복을 위해서 헤어지는 거라고 말하는 남자와는 상종도 하지 말아라."라는 충고는 지인들로부터도 많이 들었을 테니까, 난 보경씨가 요청한대로 '남자의 입장'에서 이 관계를 이야기 해볼게. 출발해 보자.
1. 기대와 요구.
보경씨가 남친보다 연상이어서 그런지, 이 관계에서 보경씨는 '누나'처럼 구는 일이 많아. 특히 내가 놀랐던 건, 남자친구가 동성의 지인들을 만나는 것까지도 보경씨가 터치한다는 거였어. 그거 보통 학생인 자녀를 둔 엄마들이 하는 행동이잖아. "나쁜 친구랑 어울리지 말아라."하는 거 말야.
물론 남자친구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늘 자기개발을 위해 힘쓰며, 연애에서도 늘 좋은 모습만 보이려 노력한다면 좋겠지. 그런데 남자친구도 사람이잖아. 그럼 실수할 때도 있는 거고, 그냥 좀 놀고 싶을 때도 있는 것이며, 어울리는 지인이 쓸데없는 짓을 하자고 하면 쓸데없는 짓을 같이도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보경씨가 보경씨 자신에 대해 말했지.
"저는 또래보다 엄격하고 보수적인 도덕관과 가치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둔 내 친구가 있었어. 열아홉 살 때였는데, 그 친구의 어머니께서는 그가 PC방에 가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생각하셨고, 담배를 피우는 친구들은 악의 축이니까 절대 가까이 하지 말라고 그에게 가르치셨지. 뭐, 당시 중2병이 아직 큰 영향을 끼치던 나이여서 그랬겠지만, 그 친구가 어느 날 학원도 다 빼먹고 어디서 구했는지 소주를 병째 마시며 말하더라고
"내 인생은 껍데기야. 아무 것도 내 의지로 한 게 없어.
오늘은 진짜 내 마음대로 다 해볼 거야."
오늘은 진짜 내 마음대로 다 해볼 거야."
라고. 바로 그 날 난 그 친구에게 '껍데기'란 별명을 지어주었지. 여하튼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하는 거, 진짜 아무 쓸모도 없는 거잖아. 거기에 매달려서 프로게이머가 될 거라면 모르겠지만, 그냥 학교 끝나고 PC방 가서 한 시간 친구들과 어울리는 거, 차가운 시각으로 바라보면 말 그대로 시간낭비잖아. 그런데 지금 30대에 접어든 사람들 중에 스타크래프트 할 줄 모르는 사람도 있나? 인생은 혼자 사는 거라며 독고다이로 학창시절을 보낸 게 아니라면, 다들 SCV를 어떻게 뽑는 줄 알고 있겠지. 그 왜 영어책에 예문으로 자주 나오는 문장 있잖아.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
둘이 다툴 때 남자친구가 답답함을 호소했던 부분도 바로 저 지점이거든.
"너로 인해 제한과 압박을 받는 느낌이 싫다."
보경씨의 얘기를 듣다 보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부분들까지도 '인격적 미성숙함'같은 걸로 생각하는 것 같아. 만약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보경씨 남자친구였다면, 그들이 자퇴한다고 했을 때 그것 역시 '아직 어리고 뭘 몰라서'라고 생각하며 극구 반대를 했겠지. 게다가 보경씨의 남친이 연하인 까닭에 주변에서 해 준 조언들 역시 "걔는 아직 어리니까. 그냥 아이라고 생각하며 잘 달래라."라는 거였어. 그러다보니 성격의 차이나 성향의 차이가 발생했을 때, 그건 '남자친구가 아직 어리고 뭘 몰라서' 그러는 일로 여겨지기도 했지.
보경씨 남자친구의 행동들이 마음에 안 드는 건 나도 마찬가지야. 근데 내 생각은, 그가 하려는 일이 정말 위태로운 일이 아닐 경우엔 남자친구가 시행착오를 할 수 있게 놔두거나, 내 생각이 틀릴 수 있으니 일단 좀 두고 보면 어떨까 싶거든. 보경씨가 남자친구와 어울리는 사람들의 질이 안 좋다는 식으로 말했을 때, 남자친구가 뭐라고 답했어?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그렇게 볼지 모르지만,
지금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달려와 줄 사람들이다."
지금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달려와 줄 사람들이다."
라는 뉘앙스로 대답을 했잖아. 그럼 저 말에 대해서 보경씨도 존중해 줘야 하거든. 거기에 대고 계속 "그래도 걔들은 질이 나쁘다."라는 식으로만 주장을 펴면 안 되는 거야. 남자친구가 내가 옳다고 믿는 대로 살아줬으면 하는 기대는 할 수 있지만, 기대를 넘어 강요해선 안 되는 거라고.
2. 잘못된 설득방법.
누가 봐도 잘못인 행동을 남자친구가 해서 보경씨가 다그치더라도, '반성하고 고칠 수 있는 기회'는 언제나 열어두고 이야기를 해야 해. 작년이었나 올 초였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런 뉴스가 있었거든. 초등학생인 아이가 집에서 창밖으로 종이를 던진 거야. 그걸 본 경비실에서는 아이 엄마를 불러서 주의를 줬고, 아이 엄마는 집에 돌아와 아이를 야단쳤지. 그러고 잠시 후, 아이는 엄마를 창피하게 만들어 미안하다는 글을 써 놓고 창밖으로 뛰어내렸어.
보경씨와 남자친구가 헤어지기 직전에 나눈 대화를 봐봐. 보경씨가 한 말이야.
"어떻게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사귀냐.
서로에게 맞춰가기 위해 포기하는 것도 있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
네가 말하는 대로 할 것 같으면, 사귈 수 없는 거다."
서로에게 맞춰가기 위해 포기하는 것도 있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
네가 말하는 대로 할 것 같으면, 사귈 수 없는 거다."
저건 설득이라기보다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통보에 가깝지 않아? 내가 보기엔
"내 뜻에 따르지 않을 거라면, 헤어지자."
라는 말과 비슷한 것 같은데, 보경씨는 어떻게 생각해? 같은 뜻을 전달하더라도 좀 다르게 말할 수 있는 거잖아. 예를 들어, 얼마 전 내가 좀 과격하게 이야기를 한 적 있거든. 그때 공쥬님(여자친구)이, 같이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까 내가 강하게 말해서 상대방이 기분 나빴을 수도 있지 않겠냐고 묻더라고. 누군가 자신에게 그렇게 말했다면 기분 나빴을 것 같다면서 말이야.
이처럼 보경씨가 하려고 했던 말도 분명 좀 다르게 말할 수 있었을 거거든.
"난 네가 그런 행동을 할 때 이러이러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네가 말한 대로 나 역시 그렇게 행동한다면,
너에겐 어떤 기분이 들지 한 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네가 말한 대로 나 역시 그렇게 행동한다면,
너에겐 어떤 기분이 들지 한 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라고 말야. 앞서 말했듯 보경씨는 남자친구를 내려다보고 있어.
"남자친구의 사고가, 제가 느끼기엔 상당 부분 단면적이고 단순한 경향이…."
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말이야. 그래서 대화를 하기 보다는 남자친구를 가르치려는 태도가 계속 먼저 튀어나오는 것 같아.
'내 생각은 전혀 지지 받지 못하고, 난 늘 고쳐야 할 것투성이에 어리숙한 생각만 하는 존재로 여겨지는 연애'는, 하고 싶지 않을 것 같아. 매번 혼나듯이 해야 하는 대화에 질려서, 일부러 더 비뚤게 나가며 말도 안 되는 주장도 하게 될 것 같고.
3. 황당한 해결책.
그런데 어쨌든 연애는 둘이 하는 거잖아. 남자친구에게 단점이 있듯이, 내가 위에서 말한 부분들이 보경씨의 단점일 수도 있어. 그럼 남자친구도 자신이 느끼는 보경씨의 단점에 대해 이야기를 하든가, 아니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하거든.
"지금 네가 한 말대로라면, 나에겐 아무 선택권이 없는 듯 보인다.
넌 이걸 '대화'라고 말하지만 난 대화를 하는 게 아니라 훈계를 받는 느낌이 든다.
나처럼도 생각할 수 있다는 걸 조금 더 이해해 주거나, 존중해 주면 안 되겠냐."
넌 이걸 '대화'라고 말하지만 난 대화를 하는 게 아니라 훈계를 받는 느낌이 든다.
나처럼도 생각할 수 있다는 걸 조금 더 이해해 주거나, 존중해 주면 안 되겠냐."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거잖아. 그랬다면 보경씨도 그간 과격하게 주장하거나 상대를 궁지로 몰았던 것에 대해 돌아볼 수 있었을 거고 말이야.
하지만 보경씨의 남자친구는 좀 비겁한 방법을 선택했어.
"우리는 합의점을 찾을 수 없으니,
너는 내 모습들로 인해 상처를 받거나 힘들 것이다.
그러니 널 사랑하지만 너를 위해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이제는 압박과 제한에서 벗어나 내 자신을 좀 찾고 싶다.
이게, 네가 행복해지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너는 내 모습들로 인해 상처를 받거나 힘들 것이다.
그러니 널 사랑하지만 너를 위해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이제는 압박과 제한에서 벗어나 내 자신을 좀 찾고 싶다.
이게, 네가 행복해지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라며 헤어지잔 얘기를 한 거지. 아니, 저건 또 무슨 중2병 돋는 소리야. 못 견딜 것 같아서 관계를 놓는 거면 놓는 거지, 네가 행복해지기 위한 어쩌고 하는 건 무슨 소리야.
저런 이야기를 하는 보경씨의 남자친구는 좀 황당한데, 그런 남자친구에게 보경씨가 제시한 해결책은 더 황당해. 보경씨는
"너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주겠다.
나의 간섭 없이 온전히 혼자서 지내봐라.
맘 편히 자유를 느끼면서 하고 싶었던 것도 마음껏 다 해라.
그러는 동안 생각도 해보고, 나에게 결과를 말해달라."
나의 간섭 없이 온전히 혼자서 지내봐라.
맘 편히 자유를 느끼면서 하고 싶었던 것도 마음껏 다 해라.
그러는 동안 생각도 해보고, 나에게 결과를 말해달라."
라고 말하거든. 그 다음부터는 둘이 무슨 영화 같은 것도 찍더라?
"이렇게 가장 힘든 시기에 날 혼자 둬야겠냐."
"미안하다. 너 만한 여자는 정말 다시 못 만날 것 같다."
"기다리라고 말하면 기다릴 수 있다."
"기다리는 시간동안 네가 힘들 것 같아 그럴 수 없다."
"미안하다. 너 만한 여자는 정말 다시 못 만날 것 같다."
"기다리라고 말하면 기다릴 수 있다."
"기다리는 시간동안 네가 힘들 것 같아 그럴 수 없다."
아니, 무슨 남자친구가 불치병에 걸려서 결과를 알 수 없는 치료여행을 떠나며 나누는 대화라면 감동적이기라도 하지. 지금 남자친구는 앞으로 여자친구 눈치 안 보고 놀겠다며 헤어지자는 거잖아. 그러면서 그 행동을 거창하게 포장해 SNS에
"사랑하기 때문에 떠난다는 말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라는 글을 올리기도 하고 말야. 보경씨 남자친구는 이렇게 노는 재미에 푹 빠진 것 같아. 그래서 보경씨가 마음을 접으려고 하면 다시 말을 걸기도 하고, 그걸 희망이라 여기며 보경씨가 다시 잘 해보려고 하면 우린 안 된다고 말하지. 그래서 보경씨가 다시 체념하면, 남자친구는 우리가 헤어진 게 실감이 안 난다면서 다시 생각해 보자며 여지를 남겨두고….
이쯤되는 확실히 못 쓰는 거야. 거기서 '사랑하기 때문에 한 여자를 보내 준 순정남 놀이'를 하고 있는 그에게 장단 맞춰주고 있지 말고, 보경씨도 그와의 육아 같던 오랜 연애에서 벗어나길 바라.
내가 위에서 한 말들은 보경씨의 '다음 연애'를 위한 조언들이라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 못쓰게 된 이번 연애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라고 보면 돼. 그리고 보경씨의 남자친구는 자신이 헤어지자고 저렇게 이야기를 한 후에도 아무렇지 않게 사귈 때처럼 하트도 찍어 보내고 안부를 붇기도 하는데, 난 그런 행동이 불편하다고 보경씨가 그에게 확실히 이야기 했으면 좋겠어. 헤어지자고 한 게 뒤집힌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헤어지자는 걸 둘 다 받아들이는 것도 아닌 채로 유야무야 하는 거, 아주 안 좋은 거거든.
이별을 말한 순간 남자친구는 앞으로 이 관계를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거야. 지금 남자친구가 사귈 때처럼 말을 걸고 대화를 하려고 하는 건, 이 관계에 대한 아무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사귈 때의 즐거움만을 느끼겠다는 거고. SNS로는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를 보내줘서 힘들다'고 동네방네 소문 다 내놓고, 뒤에서는 "여보~"하며 다시 말 거는 건, 자아가 분리돼서 그러는 건가?
"제가 무한님의 여동생이라 생각하고 말씀해 주세요."
내 여동생의 일이었으면, 작년 7월에 이미 헤어졌겠지. 내 여동생이 "짜증난다. 너 가라."라고 말하는 남자와 계속 사귀도록 내가 놔두지 않았을 테니까.
▲ 너를 위해 떠날 거면, 빨리 좀 떠나갑시다. 지겹게 무슨 예고만 몇 주씩 하고 그러세요.
<연관글>
연애할 때 꺼내면 헤어지기 쉬운 말들
바람기 있는 남자들이 사용하는 접근루트
친해지고 싶은 여자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찔러보는 남자와 호감 있는 남자 뭐가 다를까?
앓게되면 괴로운 병, 연애 조급증
<추천글>
★필독★ 연애사연을 보내는 방법
유부남과 '진짜사랑'한다던 동네 누나
엄마가 신뢰하는 박사님과 냉장고 이야기
공원에서 돈 뺏긴 동생을 위한 형의 복수
새벽 5시, 여자에게 "나야..."라는 전화를 받다
'연애매뉴얼(연재중) > 연애오답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남친에게 다시 사귀자는 말을 듣고 싶은 여자 (97) | 2014.03.25 |
---|---|
엄마가 헤어지고 여교사 만나랬다는 남친 (90) | 2014.03.18 |
사귀자마자 냉담하게 변한 여자, 3주의 연애. (97) | 2014.03.04 |
여자의 촉으로 감지한 남친의 바람, 맞는 걸까? (84) | 2014.02.24 |
남친에게 회사 여직원들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여자. (116) | 2014.02.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