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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4)

자존심은 높은데 자존감은 낮은 여자의 연애

by 무한 2014. 6. 11.

자존심은 높은데 자존감은 낮은 여자의 연애

언젠가 어느 여성솔로부대원 어머니께서

 

"우리 딸이 학교 다닐 땐 정말 인기 많았거든.

어딜 가기만 하면 남자들이 쫓아다녔고,

피아노도 잘 쳐서 콩쿨 나가 상도 받은 적 있어."

 

라는 이야기를 하신 적 있다. 난 그 여성대원과도 직접 대화를 해봤는데, 그녀가 이상한 기준을 가지고 있음에 놀란 적이 있다. 그녀가 한 말들은 아래와 같다.

 

- 난 이제껏 고백 받아 사귀어 왔다.

- 내 친구 남친이 날 좋아한 적 있을 정도로 인기 많았다.

- 서울대 다니는 오빠랑 사귄 적 있다.

- 어딜 가든 예쁘고 참하다, 동안이다 하는 소리 들어왔다.

- 공부도 잘 했으며, 석사학위 가지고 있다.

- 이런 내게 걸맞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싶다.

 

그녀에게 내가 했던 말들을, 사연을 보낸 K양에게 소개해 주고 싶다.

 

 

1. 옛날얘기 말고 지금 얘기를 해주세요.

 

난 그녀에게, 그녀가 내 놓는 떡밥들이 모두 쉰 떡밥이라는 얘기를 해줬다. 과거에 고백을 많이 받았다는 게 지금도 고백을 많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될 수 없고, 친구 남친이 이쪽을 좋아한 건 그가 두 마음을 품어서 그런 것일 수 있으며, 서울대 다닌 오빠와 사귀었던 건 그 오빠가 서울대를 다닌 거지 그녀가 서울대를 다닌 게 아니었다는 걸 말해주었다.

 

더불어 어딜 가든 예쁘고 참하다는 소리를 하는 대상이 대부분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었던 것과, 동안이라는 말을 듣는 게 그저 키가 몸집이 좀 작아도 동안이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라는 얘기도 해줬다. 석사학위를 딴 것은 그녀가 그쪽에 관심이 많아서 길게 배운 것일 뿐 그걸 남들이 우러러 봐줘야 하는 것이 아니며, 요즘엔 석사학위를 액세서리 달듯이 따는 사람들도 많지 않냐고도 되물었다. 내 지인 중 몇 명도 당장 취직을 하자니 마음에 드는 자리는 없고, 학위를 딸 동안 뒷받침 해줄 수 있는 부모님이 계시니 '취직 유예'의 형태로 대학원에 다리를 걸쳐 놓고 있다는 이야기도 했고 말이다.

 

저런 충격과 공포의 이야기를 한 까닭에 그녀와 나의 사이는 멀어졌지만, 여하튼 그 이후로 그녀는 자신의 스펙을 품질보증서처럼 열거하던 습관을 버리고 현재는 한 남자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잘 살고 있다. 예전 습관 중 고쳐지지 않은 것이 있는지 요즘은 카스에 자기 남편과 딸 자랑을 계속 올리고 있던데….

 

자신의 높은 자존심에 힘겹게 매달려, 현실이라는 땅에 발 딛지 못하고 있으면 괴로울 수밖에 없다. 지나간 건 지나간 대로 두고 현재를 살며, 또 예전에 만났던 누구 얘기가 아니라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해야 하는데, 높은 자존심을 지닌 대원들은 '내가 한 것 중 제일 잘 한 것, 내 인생 중 가장 빛났던 시간'들에 대해서만 이야기 한다.

 

자존심과 자존감의 밸런스를 맞추자. 그렇지 않으면 천만 원짜리 백을 들었지만 스타킹 발바닥 부분엔 큰 구멍이 난 여자처럼, 우쭐함과 불안함을 오가며 감정의 널을 뛰는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 난 똑똑하고 직관이 뛰어난데, 상대도 나만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 상대는 한심한 부분이 많은데, 나 역시 뜯어보면 그런 부분이 많을 것이다.

 

라고 넓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K양은 자신의 장점만 보거나 상대의 단점만 보는데, 그러지 말고 자신의 단점과 상대의 장점도 보길 권한다. 그래야 상대와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날 수 있고, 친구가 될 수 있다. 현재 K양은, 상대를 '결혼의 들러리'나 '평생 두고 부릴 머슴' 정도로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2. 뭐라고요? 등신이 헌신을 안 해요?

 

난 K양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하고 싶다. 첫째,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과 왜 사귀려 하는 것인가?"

 

라는 질문이다. K양은 그의 조건이 훌륭하기에 그에게 인생을 걸어 보겠다고 말하는데, 그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지도 못 하면서 그와 결혼할 생각만 하고 있으니 문제가 발생하는 게 당연하다. K양은 그에게 애정도 없고 그를 따뜻하게 대해 주지도 않는데, 그러면서 '그가 날 좋아하게 만들 방법'을 찾고 있지 않은가.

 

K양 - 어떻게 연락을 3일 동안 안 할 수 있어요?

상대 - K양도 안 했잖아요.

 

K양은 상대의 저 대답만 놓고 "저런 대답을 보면, 절 좋아하는 마음이 없는 게 확실해 보이네요."라고 말하는데, 내가 상대라도 누워서 밥상 차려오라고 말만 하는 사람과는 밥을 먹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상대가 저를 위해 헌신한다는 느낌은 전혀 받고 있지 못 해요."

 

신청서에 적힌 내용만 보면 K양은 상대를 '스펙만 좋은 허당'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K양이 상대를 그런 취급 하고 있다는 걸 상대도 분명 느꼈을 것이다. 늘 얘기하지만, 남자가 어린애 같은 구석이 많긴 해도 바보는 아니다. 설마, 이게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를 그가 정말 모를 거라 생각하는가? 너구리 레벨 최대치를 달리고 있을 삼십대 중반, 그것도 눈치 없이 둔해서는 올라가지 못했을 모 기업의 관리자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이? K양은 그를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두려고 하는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엔 이미 K양이 그의 손바닥 위에 올라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두 번째 질문은

 

"왜 전부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가?"

 

이다. K양은 상대와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만났는데, 그러면서

 

"결혼정보업체 특성상, 한 주에 한 번씩 매칭상대가 보내져요.

그럴 때마다 그 사람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겨 제가 낙동강 오리알 될까봐…."

 

라는 이야기를 한다. K양이 염려하는 그 부분은 상대 역시 똑같이 염려할 수 있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K양은 상대가 이 관계에서 언제라도 발을 빼는 게 아닐까 걱정만 하고 있다. 또 K양은 상대와의 모든 다툼의 이유가 '상대의 소홀한 연락'때문이라며,

 

"제가 혼자 기분이 나빠져 있고,

상대는 그 부분에 오해를 풀거나 아니라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풀리긴 해요."

 

라는 말을 한다. 난 개인적으로 K양이 상대에게 "양다리 걸친 거냐, 연락 없는 동안 선 본 거 아니냐?"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이 관계는 끝났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혹 다른 사람에게 가버릴까 아쉬운 상황에서 자존심은 세워야 하니 먼저 연락은 안 하고, 그렇게 참다 폭발해 "나 버리려고 하는 거냐?"라는 뉘앙스의 말만 해 버리고 마는 상황. 그런 와중에 K양은 또

 

"주변 지인들에게도 보여줬는데, 그에 대해 좋은 얘기 하는 사람이 없음.

안 맞는 것 같으니 헤어지라는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 많이 만나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잘 모르는 남자 가르치면서 만나기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라며 정신적 판정승을 거두고자 노력하고 있는데, 이쯤 되면 상대를 등신이라 말하면서 등신이 내게 헌신하게 만드는 방법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얘기밖에 되질 않으니, 보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 상대와의 만남은 여기서 접길 권하고 싶다.

 

 

3. 세 가지 제안.

 

결혼은 2년 뒤에 한다고 생각하자. 그래야만 K양이 조급증에 빠져 상대의 멱살을 잡는 걸 막을 수 있다. 더불어 어머니께도 2년 안에 결혼할 생각이니, 그동안 남자를 만나볼 수 있도록 여유를 가지고 조금만 기다려 주시길 부탁드리자. 밖에서 보기엔 K양 어머니께서 K양에게 걸었던 기대가 크신 까닭에, K양이 책임감 없는 남자와 5년 연애하다 삼십대 중반이 될 때쯤 유기된 것에 더욱 가슴 아파 하시는 것 같다.

 

그런데 K양 어머니께서 K양을 격려할 때 사용하시는 방식이 "내 딸 괜찮아."라는 위로가 아니라, "너는 그렇게 나이를 먹…."이라는 분노의 속사포 랩핑과 대놓고 돌직구 던지는 안티활동인 까닭에, 더욱 다급해진 K양은

 

"자 다음, 다음, 결혼 언제? 올해 안 돼요? 그럼 다음, 다음 분 들어오세요."

 

라고 말하듯 급하게 남자들을 만나고 있다. 그러다 이번 상대와 썸을 타게 되었던 건데, 빨리 상대가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결혼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상대가 헌신하지 않으니, K양은

 

"내가 연락을 안 하는 건 착한 기다림이고,

네가 연락을 안 하는 건 어디 가서 양다리 걸치고 있을지도 모르는 나쁜 짓인데,

너 나한테 헌신 안 하고 다른 여자 만나 이거 무를 거면 얼른 말 해. 나 시간 없어."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오로지 '결혼할 상대로 괜찮나?'만을 잣대로 상대와 상대의 행동들까지 판단하는 모습. 결혼을 좀 나중에 한다고 생각하면, 지금처럼 왜 아침에 연락 안 했냐고 목에 핏대를 세우지 않고 먼저 잘 잤냐고 안부 인사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K양의 머슴살이를 하겠다며 쉽게 무릎부터 꿇는 남자를 주의하길 권한다. K양은 이런 남자가 나타나면

 

'드디어 내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이 나타났군. 그래.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지.'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난 그 만남이 '불장난'으로 끝날 수 있다는 것에 내 국민은행 통장을 걸 수 있다. 특히 "누난 너무 예뻐."하며 시작부터 비행기 태워주는 연하남과의 만남은, K양의 남은 삼십대 전부를 갉아 먹을 수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상대가 비행기 태워줘서 쌓인 마일리지는, "누난 엄마 같아."라는 말 한 마디와 함께 유효기간이 끝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자. 함께 할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같이 고민할 수 있는 사람과 만나길 바란다.

 

끝으로 상대에게는 화풀이 하지 말길 권한다. 난 K양이 '침묵'과 '비꼬기'를 버리지 않는 한, 누군가에게 사랑 받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 될 거라 예상한다. K양의 그 모습이 너무 밉다. K양은 화나고 짜증나서 그랬다지만, 남자입장에서 말하자면 그 태도는 오만 정이 다 떨어지게 만드는 태도다. 만약 반대로 남자가

 

"아 됐으니까 그만 말해."

"연락 안 하고 선 봤냐?"

"하아, 또 연락 안 하네?"

 

라는 이야기를 하면, K양 역시 저 감정이 널뛰는 고문기술자 같은 남자와는 연을 끊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연락이 없다는 것에 서운함을 표출하려다가, 인연을 이어갈 마음 자체를 사라지게 만들어 버리는 실수는 하지 말자. 

 

 

이렇게만 적어 놓으면 전부 K양이 잘못한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진 않다. 썸남 역시

 

"나 좋다고 줄 서있던 재력 있는 여자도 있다.

그런데 참고 만나려고 해도 외모가 도저히 아니라서 그만 뒀다.

솔직히 여자가 돈 많으면 남자도 좋은 거 아니냐.

나 그런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너랑 연락하고 있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 대책 없는 남자긴 했다. 결혼정보회사 관련 에피소드 중 이런 충격과 공포의 에피소드도 많은데 언제 한 번 모아서 특집을 발행해야겠다. 전에 한 번 소개한 사연에 등장한

 

"여자 나이 그 정도면 출산에 문제 있는 거 아시죠?

그러니까 비싸게 굴지 마시고 저한테 잘 하시죠."

 

라고 말한 의사도 결혼정보회사에서 매칭해 준 사람이었는데, 비싼 돈 주고 가입해 나간 자리에서 저런 얘기를 듣고 온 주인공은 저 사건으로 인해 멘탈이 붕괴되고 말았다. 세상은 넓고….

 

▲ Be modest! It is the kind of pride least likely to offend.  -Jules Ren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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