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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4)

크리스마스에도 만나자는 말 없었던 썸남 외 2편

by 무한 2014. 12. 29.

크리스마스에도 만나자는 말 없었던 썸남 외 2편

오늘은 가장 최근에 도착한 사연 중 몇 편을 골라 다룰까 한다. 먼저 온 사연부터 다루다 보니, 발행이 계속 밀려 결국

 

"무한님, 제 사연 안 다뤄주셔도 될 것 같아요. 끝나버렸습니다…."

 

라는 메일들이 오고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라는 역에서 대형 사고라도 난 것처럼 썸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는데, 그 중 아직 의식이 남아 있는 사연들을 골라 인공호흡을 할 생각이다. 출발해 보자.

 

 

1. 크리스마스에도 만나자는 말 없었던 썸남.

 

사연을 보낸 H양도 이미 썸의 심정지가 찾아왔다가 의식이 돌아온 것 같다. 친구들이 H양의 사연을 듣고는 "남자가 완전 개매너."라는 식으로 그나마 용기를 주었기에, H양이 의식을 회복한 후

 

"이 사람이랑 맞춰가기에 제 태도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좀 알려주세요."

 

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답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상대를 시험해보려는 H양의 태도가 문제다. H양이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정도 남겨두고 저질렀던 일을 보자.

 

"아침부터 일체 카톡도 안 보고 페북도 접속을 안 했어요.

'그럼 지가 어련히 걱정이 돼서 연락을 하든가, 관심 없음 안 하겠지.'

라고 생각을 했는데 아침 8시에 아침인사 카톡 오고,

오후 5시나 돼서야 바쁘냐고 묻는 카톡 오더군요.

제가 밤 10시까지 답장을 안 했는데 아무 톡이 없었어요."

 

난 이 부분을 읽다가 H양이 정말 이십대 중반이 맞는지도 다시 스크롤을 올려 확인했고, 대체 이 멍충이 같은 짓을 H양이 왜 했는지 그 이유를 찾아보고자 열심히 뒷이야기를 읽었다. H양은 저런 '시험'을 한 것이,

 

- 하루 종일 연락이 안 되면,

(내게 마음이 있을 경우)썸남이 걱정이 된다며 폭풍연락을 해 올 테니까.

 

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이 와중에 H양과 별반 다르지 않은 회사 동료는 "마음이 없나보네. 그냥 포기해."라며 옆에서 추임새를 넣었고 말이다. 그래놓고는 무슨 썸남과의 애정도, 친밀도, 호감도를 알아봐 주는 어플이 있다며 그 어플로 분석한 결과들을 참고하라며 내게 첨부해서 보냈다. 거기엔 H양의 호감도가 79%, 상대의 호감도가 58%로 표시되어 있었다.

 

아니, 21세기에 스마트폰을 부여잡고 고작 '꽃별천지'같은 걸 하고 있다니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 그가 선톡 보내고, 밥 사고, 만나자는 이야기를 했으면 그도 나름대로 충분히 어필을 한 것이다. 그런데 H양은 그가 자신에게 무릎을 꿇고 구애하지 않았다며 "이 사람 초식남 인가요? 아니면 무심남?" 따위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만약 내가 솔로부대원이라도,

 

남자 - 시간 괜찮으면 25일에 볼까? 몇 시간이라도.

여자 - 네.

 

라며 수동적이고 성의 없는 태도로 대답하는 여자와는 만나고 싶지 않아질 것 같다. 이쪽에서도 뭔가를 해야 같이 흥이 나는 거지, 오로지 그가 혼자 헌신하고 충성하며 열렬히 구애하길 바라기만 하는 건 욕심 아닌가.

 

"물론 잘잘못을 따지자면, 계속 약속 얘기 없었다가

하루 다 지나고 나서 우리 만나기로 한 거 아니었냐고 묻는 저도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는 거 알아요."

 

알면 그러지 말자. 상대가 보이는 태도가 H양 마음에 차지 않으면 더 잘 할 수 있게 도와줘야지, 거기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칼을 갈고 있다가 '차가운 대답'같은 걸로 복수를 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나무를 심어도 그게 좀 자란 뒤 꽃이 한 번 피고 나서야 열매를 맺는 거다. 그런데 H양은 나무를 심자마자 열매를 안 맺는다며 뿌리째 뽑아버릴 생각만 하고 있으니, 그러지 말고 상대의 발가락이 어떻게 생겼나를 보기 전까진 밀어내지 말고 노력하자. 그의 발가락도 본 적 없으면서 H양은 그에 대해 모든 판정을 내리는 것 아닌가. 그를 시험에 들게 하는 일은 오늘부로 그만두고, 문제를 함께 풀길 바란다.

 

 

2. 크리스마스에 응급실 간 그녀, 묻지도 않는 남친. 

 

진이씨 잘 봐봐. 진이씨가 아플 때,

 

"어디가 어떻게 아픈데? 알았어. 일단 집에 가서 쉬고 있어."

 

라고 대답하는 게 '무뚝뚝'한 거야. 보통의 남자라면 저 상황에서, 의사는 뭐라고 했는지, 약은 타왔는지, 지금은 좀 어떤지 등을 물어보겠지. 그런데

 

"괜찮아? 난 이따가 창수형이 이쪽으로 온다고 해서 소주 한 잔 하려고."

 

라고 말하는 건, '무관심'한 거야. 이건 서운해 할 게 아니라, 헤어져야 맞는 거야. 저 사람에겐 애정도 없고 개념도 없고 관심도 없는 거거든. 지금까지 그래왔듯 진이씨가 이런 무관심도 꿋꿋하게 받아들이며 얼른 나아 그에게 다시 애교를 부리면 데이트 같은 건 할 수 있겠지. 물론 그래봐야 집, 극장, 식당, 모텔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채 그 안에서 뺑뺑이를 도는 데이트겠지만.

 

그리고

 

"야, 오빠가 말하면 좀 들어. 오빠가 그거 잘 아니까 하는 말이잖아."

 

라고 말하는 게 '권위적인' 거야.

 

"어디서 어린 것이 기어오르려고 해? 대드냐?"

 

라고 말하는 건 '언어폭력'인 거지. 저 말엔 그가 진이씨를 '사람'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는 의미가 깔려 있거든. 이왕 얘기가 나왔으니 하나만 더 말할게. 보수적이라는 건, 조신하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거나, 너무 늦게까지 밖에서 노는 게 안 좋은 거라고 말하거나, 이성인 친구와 단독으로 만나는 것을 상대가 싫어할 때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거야. 만에 하나 진이씨가 그랬다간 목숨의 위협이 느껴질 정도라면, 그건 보수적인 게 아니라 그냥 말 그대로 '공포'이고 '억압'이고 '독재'인 거지. 그래놓고 상대는 진이씨와 대화를 하다 짜증이 나면 그냥 연락을 끊어버려. 그러곤 며칠 동안 연락이 안 될 때도 있고.

 

그런데 신기한 건, 이런 연애도 길게는 3년, 4년 지속될 수 있다는 거야. 이건 가장 극단적인 감정의 위에서만 하는 연애이기에, 당시 그 전쟁 같은 상황에만 몰입하다 보면 전체를 보기가 힘들어 지거든.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에 열중하다 보니, 어느 새 육지에서 한참이나 멀어지고 만 것과 비슷한 거야. 어느 순간 이제 힘도 빠지고, 바닥에 발도 닿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되는데 그땐 너무 늦은 까닭에 허우적거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지게 돼. 지금 진이씨가

 

"제가 참으면 됐을 걸 하는 생각도 들고…."

"제가 너무 보채서 그랬던 걸까요."

 

하며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말이야. 당장 물에 빠질 것 같으니 상대를 붙잡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해, 맹목적으로 잡는 거야.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봐. 그가 등을 보이는 액션을 취한다고 해서 맨발로 달려 나가 붙잡지 말고, 간다고 하면 그냥 가게 둬. 그에게 진이씨가 1g이라도 소중한 사람이라면, 그에게 진이씨에 대한 애정이 1g이라도 있다면 그가 액션을 취하며 겁을 주던 것에서 벗어나 진이씨에게로 당겨 앉을 테니까. 그게 아니라면 "그래, 나 없이 네가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남친 생겼니? 남친 생겼으면 말해줘. 다시는 연락 안 할게." 따위의 떡밥을 던지며 진이씨를 다시 희롱하겠지. 연애만 보지 말고 상대를 좀 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진이씨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는 이 관계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있는 그대로 봐봐. 당장 헤어질 것 같다고 무작정 다급해져서 손을 뻗지 말고, 이번만은 차가운 머리로 생각해 봐.

 

 

3. 썸녀의 '편하다'는 말에 다운 된 재철씨.

 

아니야 재철씨 일어나. 여기서 다운되면 안 돼. 1라운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어. 그러니까 복부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눈앞이 핑 돌고 숨이 잘 안 쉬어져도 다운되면 안 돼. 다시 가드를 올려.

 

일단 사귀는 건 내년 구정 지나서 사귄다고 생각을 해. 그래야 스텝을 좀 밟을 수 있어. 지금 재철씨는 당장 그녀에게서 긍정적인 반응이 보이면 바로 연애로 이어보려고 하니까 스텝을 안 밟고 '한 방'만 노리게 되는 거거든. 그래선 곤란해. 성급하게 훅을 날리려고 하다가 어퍼컷을 맞을 수 있어. 그러니 일단 가드를 올리고 스텝을 좀 밟아봐.

 

스텝은 괜히 밟는 게 아니야. 아플 것 같은 공격이 들어오면 피하려고 밟는 거고, 사뿐사뿐 스텝을 밟으며 상대의 허점을 찾으려고 밟는 거지. 딱 봐봐.

 

"저 오늘은 같이 못 칠 것 같아요. 갑자기 친구 달래줄 일이 생겨서 ㅠㅠ"

 

라는 공격이 들어왔어. 그럼 어떻게 해야 해? 당연히 피해야지. 오늘 같이 배드민턴 못 친다고 이 관계가 끝나는 것도 아닌데, 저걸로 급 좌절해선 실망할 필요 없잖아. 괜찮은 거야. 당연히 괜찮아야지. 그러면서 동시에 이쪽에서도 상대에 대해 알아볼 기회가 생긴 거니, 묻는 거야. 물론 나라면

 

"그래? 친구가 달래를 좋아하나봐? 

달래에는 비타민C와 칼슘이 풍부한데."

 

라고 드립을 날린 후 수습해 나가겠지만, 재철씨는 그게 불가능 할 수 있잖아. 그러니 그녀에게, 혹시 친구들 사이에서 해결사로 통하는 것 아니냐, 또는 아니 이 좋은 불금에 왜 슬퍼하고 있는 친구가 있느냐, 정도의 이야기를 하며 약간이나마 상대의 인간관계에 대해 알아두며 쉼표를 찍어두는 거지. 이렇게 해두면, 다음번에 다시 대화를 하게 되었을 때 "친구는 잘 달래준 거야?"라며 다시 이어갈 수도 있는 거고 말이야. 그런데 재철씨는 저 상황에서 "목 빠지게 기다렸는데…." 따위의 대답을 해버렸어. 나중에 한 번 묻긴 했지만, 그건 그냥 형식적으로 안부인사 하듯 대충 꺼낸 거고 말이야.

 

썸녀가 '편하다'고 한 것에 대해 재철씨가 잔뜩 실망한 것도, 재철씨가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그녀에게 듣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거든. 그러지 마. 지금 그녀가 가진 생각은 그녀의 생각대로 존중하는 거야. 그녀의 뒤를 쫓으며 '예쁜 짓'을 해서 좋은 점수를 받으려 하지 말고, 앞장서서 이끌어. 내가 늘 말했잖아. 우리 동네에 대해 잘 모르는 친척동생에게 우리 동네를 소개시켜 주듯이! 그렇게 하자는 거야.

 

재철씨가 이걸 못 하는 건 아닌데, 어느 순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에게 자꾸 채점 받으려 들거든. 지금까지 분위기 정말 좋았어. 재철씨가 소소하게 챙겨주기도 하고, 또 그녀 역시 재철씨에게 관심이 있는 듯 크리스마스이브에 둘이 만나서 놀기도 했지. 그럼 그 분위기 이어서 점점 더 가까워지면 되는 거야. 그러다 보면 어딘가에서 '신메뉴'를 발견했을 때, 제일 먼저 서로가 딱 떠오르며 같이 먹으러 갈 생각을 하게 되는 거고 말이야. 그런데 재철씨는 '이 정도면 됐을까? 이제 내가 고백하면 받아줄까? 나한테 정말 사귈 만큼의 호감이 있나? 그냥 친한 오빠로 생각해서 날 만나는 거 아니고 남자로 생각하는 거 맞나?' 하고 있거든. 뜸이 들 동안은 뚜껑 열지 말고 좀 기다려. 이거, 잘 되고 있다가도 재철씨가 뚜껑 열면 망칠 수 있어.

 

별로 걱정이 되는 사연은 아니니 이쯤에서 줄일게. 아, 그런데 꼭 하나 얘기해 주고 싶은 게 남아 있어. '배드민턴'은 그냥 둘에게 배경처럼 녹아들게 만들라는 거야. 배드민턴은 그냥 둘의 시간이 맞을 때 치면 되는 거야. 안 되면 마는 거고. 재철씨는 지금 자신이 준선수 급이라면서 그녀의 배드민턴 실력향상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그녀에게 배드민턴을 잘 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며 진짜 진지하게 거기에 매달릴 때가 있잖아. 무슨 식단조절 얘기까지 해가면서 말이야. 그런 거 노노노노. 그녀랑 아시안게임 배드민턴 혼합복식 나갈 거야? 아니잖아. 그러니 배드민턴은 그냥 배드민턴으로 생각하고 시간 될 때 같이 쳐.

 

그녀가 많이 가르쳐 달라고 한 건, 배드민턴장에서 만나면 같이 쳐달라는 얘기라고 받아들이면 돼. 배드민턴 용어를 몰라서 내가 뭐라고 설명을 못 하겠는데, 여하튼 인핸드 백핸드 막 시키면서 손목 각도와 허리를 이용해 내려치는 것들을 가르치면 안 되는 거라고. 단언컨대, 그녀는 배드민턴 달인이나 선수가 되고 싶은 게 분명 아닐 거야. 그러니 '준선수 수준'으로 끌어올리려 혹독하게 연습시키진 말고, 샤방샤방하게 즐길 수 있을 정도로만 쳐. 내 지인 중에서도 자전거 타는 지인이 있는데, 썸녀가 자전거 타고 아라뱃길 다녀오고 싶다니까 무슨 평속 25km/h를 유지해야 한다면서 썸녀 토하려고 할 때까지 굴리더라고.

 

아, 하나 더 생각났다. 그리고 '다이어트'에 대한 조언도 좋지만, 너무 적나라하거나 직설적으로 말하면 안 돼. 살은 그녀가 빼는 거지 재철씨가 빼는 게 아니야. 이것 역시 내 친구 중에 '살 빼는 걸 도와달라'고 어떤 여자지인이 부탁한 걸 들어준 적 있거든. 그 여자지인이 막 자신이 살을 뺄 수 있도록 냉정하고 직설적인 이야기들을 막 던져달라고 했었어. 그래서 내 친구가 그녀보고 '네 배의 마블링'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했다가 지금 둘이 아예 안 봐. 그러니까 재철씨도 조심하라고. 재철씨는 자신의 드립력에 자신이 있어 하는 편인데, 정말 웃긴 게 생각나도 말해선 안 되는 게 분명 있는 거야. 알았지? 그럼 행운을 빌어!

 

 

모 마트에서 애완견 사료포대 만한 봉투에 커피 원두를 넣어서 싸게 팔길래 사왔다. 한 번 갈아서 마셔봤는데 시럽으로 된 감기약 맛이라, 오늘은 배웅글 적을 기분이 나질 않는다. 3kg이 넘는데 이거 언제 다 마실지 모르겠다. 검게 탄 원두에서 무슨 기름 같은 게 흘러 나왔는지 전부 반짝반짝 거리기까지 하는데, 혹시 이거 상한 건가? 뜯어서 환불도 안 될 텐데….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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