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귀면 늘 차이는 여자들, 그녀들의 문제는?
몇 주 전 '노로바이러스 의심소견'을 자가진단으로 냈었는데, 그 이후로도 계속 속이 편치 않아 결국 병원엘 다녀왔다. 매운 것을 먹고 난 다음 날 복통에 시달리게 되는 증상이, 매운 것을 먹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타난다고 의사에게 말했다. 의사는 내게 누워보라고 한 뒤 배 여기 저기를 눌러댔는데, 그 마사지가 시원한 까닭에 "여기는 어때요?"라고 묻는 의사의 질문에 답도 하지 않은 채 잠시 가만히 있었다. 내시경을 해 본 적 있냐고 묻기에 없다고 했고, 이번 주 수요일에 내시경 검사를 하기로 예약하고 왔다.
내시경은 첫 경험이라 몹시 떨린다. 혹시 잘못될 수도 있으니 유서를 미리 써놔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내가 그간 울다가 웃은 적이 많은 까닭에 말하기 좀 그런 문제가 있는데 제모를 미리 하고 가야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연애매뉴얼이나 빨리 발행하지 왜 드럽게 이런 얘기를 하냐고 하실 독자 분들도 있을 텐데, 혹 수요일 이후로 매뉴얼이 올라오지 않는다면 내시경과 관련된 문제가 생긴 거라는 걸 미리 알려드리고자 글을 적게 되었다. 늘 죽음을 생각하고 사는 까닭에 내겐 약간의 강박증이 생긴 것 같다. 여하튼 그건 그렇고, 오늘은 '사귀면 늘 차이는 여자들'의 사연을 토대로 그녀들의 문제와 해결책을 알아보도록 하자. 출발.
1. 그럴 줄 알면서도 시작하니 당연히….
아닌 것 같으면 돌아 나오자. 예감이 좋질 않아 '이거 아무래도 뭔가 이상한데….'라며 계속 직진을 하면, 나중에 돌아 나오기가 어렵다.
"그때만 해도, '만나보다 아니면 말지 뭐.' 하는 생각이 컸던 것 같아요."
거의 모든 불행이 그렇게 시작된다. 뜬금없이 이쪽의 SNS에 찾아와 댓글을 남긴 남자. 그의 SNS에 들어가 보니, 이런 식으로 이성들에게 찝쩍거리고 다니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올린 사진과 글을 보니 아주 악당은 아닌 것 같고, 연애가 아쉬워 여자들에게 매달릴 정도의 조건을 가진 남자도 아닌 것 같다. 게다가 그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해서 SNS를 돌아다니다가 이쪽에까지 연이 닿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왜 나에게? 이런 남자가 왜 날? 도대체 왜?'
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다 한 번 만나서 영화 보고 밥 먹고 하는 건 크게 잘못될 일도 아니니 만나기로 한다.
만나보니 그는 실물이 훨씬 나은데다가, 진솔한 것 같고, 또 이쪽을 섬세하게 챙길 정도로 매너가 좋다. 말도 잘 하고, 또 이쪽을 집까지 바래다주기도 했다. 이런 경험이 얼마만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이 남자, 분명히 이쪽에게 반한 것 같다. 이건 절대 이쪽의 착각이나 설레발이 아니다. 분명히 관심이다. 분명히 관심일 거라고, 누가 뭐래도 믿고 싶어진다.
이후 그를 몇 번 더 만났는데, 그는 진지하게 만나보고 싶다며 사귀자고 말한다. 드디어 목 빼고 기다렸던 핑크빛 나날들의 시작이다. 그런데 이 남자, 오늘 밤을 함께 보낼 수 있냐고 물어온다. 이거 분명 '꾸러기'들이 보이는 행동패턴인데, -역시 누가 뭐래도-아니라고 믿고 싶어진다. 그래서 그 날이든, 아니면 며칠 지난 후든 그의 리드를 따라갔는데, 그 이후 연락이 없다. 카톡을 보내도 영혼 없는 답변이 돌아오고, 이 핑계 저 핑계가 잔뜩 쏟아진다. 아버지가 어쩌고 어머니가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하기에 '설마 부모님을 팔아서까지 거짓말을 하겠어?'라는 생각까지 해가며 애써 믿으려 노력했는데, 그 시간에 이 남자, 남의 SNS에 가서 '좋아요'버튼을 누르고 있다. 좋아요? 뭐지?
그래도 참다보면 그가 다시 성실해지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기대완 달리 '연락 없음'이 점점 굳어져, 이젠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작정하고 따졌더니, 잘 해 줄 수 없는 게 미안해서라고도 하고, 연애할 때가 아닌 것 같다고도 하고, 얽매이는 걸 싫어하는 타입이라고도 하고, 뭐 기억하기도 싫은 괴상한 대답들이 쏟아진다. 이즈음 내게 사연을 보낸 대원들은,
"아닌 걸 알면서도 제 손가락은 그에게 카톡을 보내고 있네요."
등의 이야기를 한다. 이래놓고는 내게
"제가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쓴소리를 좀 해주세요."
"저 정말 바보 같죠? 여기서 벗어날 수 있게 욕이라도 해주세요."
"뼈저린 직언이 필요합니다. 적나라하게 말해주세요."
라는 부탁을 하는데, 그러지 말자. 내가 그런 부탁을 들어주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날 신경질적인 악당으로 오해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가. 전에 어떤 분은 내게 오늘 기분 안 좋아서 글을 저렇게 썼냐고 물어보기까지 하던데…. 난 오천 원짜리 점심특선 갈비탕을 행복해하며 먹는 소박한 농촌남자다. 그러니 그럴 줄 알고 시작했다 결국 그렇게 되어버리지 말고, 애초에 아닌 것 같으면 그 순간 곧바로 돌아 나오도록 하자.
2. 가시를 세우는 사람은 외톨이가 될 수 있다.
그러니까 꼭 위에서처럼 '즤랄꾸러기'를 만난 경우가 아니더라도, 그대가
"전 감정기복이 심하고 화가 나면 잘 못 참는 타입입니다."
"전 뒤끝이 없습니다. 앞에서 다 말해버립니다."
"아닌 것 같으면 인연을 끊습니다. 오랜 친구와도 절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 여자라면, 상대로 하여금 이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이런 일을 벌이는 것에는 다양한 사례들이 있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 세 가지만 살펴보자.
ⓐ쿨한 척 하다가 굿바이.
끝까지 쿨하지도 못 할 거면서, 괜찮은 척 하다가 결국 폭발해 이별통보를 받는 경우다. '연락'과 관련된 사례를 보면, 이쪽에서도 연락이 아쉽지 않은 '쿨함'을 보여주려고 연락하지 않다가, 결국 화가 나 '가시 돋힌 말'이나 '의무'를 이야기하다 깨지는 경우가 많다. 상대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고 있는 걸 보면서도 말해주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그가 멀리까지 가 버리면 그제야 "너 왜 거기로 가? 거기 잘못된 길인 거 몰라?"라고 따지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두고 보지 말고, 그 즉시 말을 하자. 어제 카톡 하나 보냈으면 충분히 대화로 풀 수 있었을 문제를, 오늘까지 두고 보다가 결국 곪아 터지게 만들어선 안 된다. 이쪽에서 말 안 꺼내고 대신 속으로 칼 갈고 있는 건 전혀 '쿨한 것'이 아니니, 제발 그러지 말자. 화를 내도 상대에게 '나'라는 사람에 대해 충분히 가르쳐 준 뒤에 그가 못 하면 그때 화를 내야 하는 거지,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고 있다가 멱살을 잡는 건 옳지 않다.
ⓑ과잉진압으로 굿바이.
이건 좀 심각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혹시, 무기를 만든 것은 소심하고 겁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얘기를 들어 본 적 있는가? 나도 언젠가 책에서 본 말인데, 대략 소심하고 겁이 많기에 상대를 제압할 무기를 만들었다는 식의 주장이었다. 겁이 없고 저돌적인 사람들은 무기가 필요 없었다는 내용도 있던 글인데, 여하튼 그 때 읽은 저 말이, 사연을 받을 때마다 자꾸 생각난다.
그건 여린 마음을 지니고 있으며 상처를 잘 받는다는 사람들이, 오히려 공격에 있어서는 어떻게든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히려는 모습을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남자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아 남자가 무섭다고 한 어느 대원이, 연애를 하다 자신은 남자친구에게 "너도 다를 것 없는 X끼네."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연애 중 이런 폭언이나 상대의 자존심을 짓밟는 말, 또는 남친의 가족이나 지인까지 싸그리 묶어서 비난하는 말을 해버리면, 결국 둘이 할 수 있는 건 이별밖에 남지 않는다.
상대가 먼저 잘못을 한 게 분명하다고 해서 상대의 가슴에 못을 박아 버리곤, 나중에 그가 먼저 찾아와 사과까지 하길 기다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다. 그건 마치 상대가 내 발을 밟았다고 해서 곧장 상대에게 따귀를 올려붙이는 것과 같은 것이니, 연애 중 오로지 반격할 기회만을 엿보고 있진 말길 권한다.
ⓒ이별로 위협하다 굿바이.
이별은 귀가 밝아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귀신같이 찾아온다고 내가 지겹도록 이야기 하지 않았는가. 당장은 둘의 관계를 인질로 삼아 이별로 위협하는 것이 먹히더라도, 결국 그 행위들은 상대에게 연애의 피로를 쌓이게 만들고, 금속판을 앞뒤로 계속 휘게 되면 어느 순간 뚝- 부러지고 마는 것처럼 둘의 연애도 끝날 수 있다.
전에 소개한 사연에서처럼 "전 딱 한 번 헤어지자는 얘기를 했을 뿐인데, 어떻게 그 한 번으로 이렇게 끝날 수 있는 거죠?"라고 묻는 대원들도 있는데, 금속판이 아니라 유리판이라면 단 한 번의 힘을 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파괴될 수 있다. 상대라고 해서 강철로 만들어진 사람이 아니니, 내가 쉽게 상처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상대 역시 상처 받을 수 있다는 걸 늘 염두에 두도록 하자.
3. 남친은 메시아? 연애는 구원?
그간 매뉴얼을 통해, 연애는 '같은 차를 타고 떠나는 여행'이라는 비유를 여러 번 한 적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같은 비유를 하면 지겹겠지만, 이게 가장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 생각해 양해를 구하고 다시 한 번 사용할까 한다.
운전을 못 하는 까닭에, 자신의 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운전해 줄 사람, 또는 그 사람의 차로 자신을 태워다 줄 사람을 찾는 여자가 있다고 해보자.(이 매뉴얼은 여성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니, 저 '운전해 줄 사람, 태워다 줄 사람'을 '남자친구'라고 생각해도 좋다.) 그럼 그녀는 차량의 주인인 사람이 가고자 하는 곳에 따라가는 모양이 될 수 있으며, 의견충돌이 있을 경우 운전하고 있는 상대로 부터 "너 내려."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다. 차가 그녀의 것일 경우, 그가 그냥 내려서 가 버리면 이쪽은 어딘지도 알 수 없는 곳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모양이 될 수 있고 말이다.
그런 그녀가 매번 같은 일을 당한다고 했을 때,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
운전을 배우는 것이다. 누가 운전을 대신 해 주거나 남의 타를 얻어 타지 않아도 자신의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또 운전을 하던 상대가 차에서 내렸을 때 본인이 자기 차를 운전할 수 있도록 배워두는 것이다. 그래서 난 "자기 삶의 운전대를 잡으세요."라는 말로 '의존만 하진 않는, 주도적인 삶'을 살 것을 권한 적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만난 건 제가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힘들 때였는데…."
"남자에게 크게 데었을 때라 연애 같은 건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을 때였는데…."
"이 사람은 분명 다를 거라 생각해서 시작한 것이었는데…."
라며, 여전히 남의 차만 타거나 남이 운전대를 잡아주길 기다리고만 있는 대원들이 있다. 혼자서는 외롭다는 생각을 떨친 채 공휴일을 보내지 못 하고, 주말엔 누가 자신의 심심함을 처치해주지 않을까 마냥 기다리다가, 그럴듯한 사람이 나타나면 그가 바로 내 메시아라 생각하며 매달리는 것이다. 그럴 경우 연애는 그녀에게 '구원'과 같은 의미가 되는 까닭에, 오로지 연애에 모든 걸 걸고 연애만이 인생의 목표인 양 살게 된다.
때문에 상대는 점점 그녀가 부담스러워지고, 의무만 가득한 이 연애가 자신의 목을 조여 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럼 결국 이별하게 되는데, 이렇게 헤어지고 나면 그녀는 또 죽네 사네 하며 시동이 꺼진 연애 근처에서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다가,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면 그가 또 메시아가 되어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그에게 매달리게 된다.
이런 악순환의 연속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는 대원들이 생각보다 많다. 사랑은 사랑으로 잊는 거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연애나 사랑이 인생의 전부도 아닌데 계속 사랑의 상처를 새 사랑으로 잊는 일에만 매달려 있으면 본인의 삶에는 대체 언제 바짝 당겨 앉아 살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새 사랑이 '구 사랑을 잊기 위한 도구'로만 존재하는 것도 아닌데, 그걸 그런 용도로만 사용하면 결국 새 사랑도 이쪽의 이기심을 확인하고 떠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건 뭐 '연애 정비사'로 취직한 것도 아닌데, 여자친구에게 '구남친을 잊기 위한 도구'로 고용된 느낌을 받는 건 마냥 유쾌할 순 없는 일 아닌가.
대개 감수성이 풍부하며 연애에 대한 큰 환상을 가지고 있는 '금사빠' 대원들이 이런 일을 벌인다. 그들은 금방 사랑에 빠지기에 쉽게 행복해하지만, 그런 만큼 이별을 하게 되면 누구보다 빨리 구덩이의 저 밑바닥까지 추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녀는 거기서 또 누군가 손을 잡아 자신을 끌어내 주길 기다리게 되는데, 그 손을 잡고 올라와 금방 행복해 졌다가 상대가 떠나면 또 그 구덩이 속으로 추락해 버리는 일을 반복한다. 난 그녀들에게
"거기 그렇게 깊지 않아요. 지금 주저앉아 있으니 못 나오는 거지,
일어서서 나오려고 하면 허리 정도의 높이밖에 안 돼요. 나와 보세요."
라고 꾸준히 말하는 중인데, 아프다고 울기만 할 뿐 자신의 힘으로 나올 생각은 하지 않는 대원들이 종종 있다. 어느 대원은 바닥을 치고 나가겠다고 말은 잘 하면서, 실제로는 삽을 들고 그 구덩이를 더 깊게 파고만 있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연애 노숙자가 되어 늘 관심과 사랑을 구걸하는 태도는 오늘부로 접도록 하자.
이렇게 쓰고 보니, 세 번째 소제목에서 비유를 '차'가 아니라 '집'으로 하는 게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쓰기엔 밀린 사연들이 많아 좀 촉박하니, 자신을 위한 마음의 집 없이 누군가의 마음에 집에 들어가 동가식 서가숙 하며 지낼 때 저런 문제들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주셨으면 한다.
자 그럼, 새해의 첫 월요일 다들 조금만 더 힘내서 버티시길 바라며, 작심삼일로 끝난 계획이 있으면 다시 한 번 계획을 세우는 하루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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