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젠 날도 덥고 해서 점심을 밖에서 먹었다. 자주 가는 지중해풍의 인테리어를 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했는데, 바로 옆 테이블에서 이제 막 알아가는 사이로 보이는 남녀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내가 종업원에게 "늘 먹는 걸로요."라고 얘길 한 뒤, 웻 넵킨(물수건)으로 손을 닦을 때 쯤, 옆 테이블에선 여자의 리액션에 신난 남자가 안타까운 말들을 내뱉고 있었다.
난 사실 저 이야기를 하는 남자보다, 맞은편에 앉아 저런 이야기까지 "아~"라며 리액션 해주는 여자에게 더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마치, 한 여름에 전기장판을 팔러 온 남자와 겨드랑이에서 땀을 흘리는 여자가 현관문을 어정쩡하게 열어놓고 대화하는 것 같았다. 저 대화 이후 남자가, 변호사 친구 이야기를 하며, 그 친구와 자기는 베스트니 법적인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얘기하라는 할 때 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난 고기가 붙은 뼈를 앞 접시에 놓으며 종업원에게 이야기 했다.
"들깻가루 좀 더 주세요."
역시, 뼈해장국에는 들깻가루를 더 넣어야 맛이 난다.
지중해풍의 인테리어를 한 뼈해장국 집에서, 뼈에 붙은 고기를 뜯으며 생각했다. 앞으로 몇 주간 날은 더 더워질텐데, 부푼 마음을 안고 나간 솔로부대원들끼리 눈에서 땀나는 이야기들은 하지 말도록 권해야겠다, 라고. 그래서 오늘은 오랜기간 솔로로 지내온 남자대원들이 보낸 사연 중 세 가지를 뽑아, 왜 그 사연이 눈에서 땀이 나게 만드는 지를 함께 살펴 볼 예정이다. 찬 물수건으로 끈적한 손 닦듯 읽어보자.
유머감각이야 뭐, 서로 코드가 다를 수도 있고, 이게 사실 재미있는 이야기 외운다고 되는 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치고 빠지는 타이밍이 몸에 베어 있어야 하니 그렇다 치자. 남자들끼리 있을 때는 당장 개콘에 데뷔할 정도의 만담을 해 대지만, 이성을 앞에 두곤 수능시험보는 기분이 들어서 제 실력을 못 발휘할 수 있고 말이다.
그러나 '센스'까지 부족하다면 당신은 축구경기에서 중앙선을 넘지 못하는 공격수가 되어 버린다. 용감한 시민상 받으러 나온 것도 아닌데, 각잡고 앉아서 곧 '수상소감'을 발표할 사람처럼 머릿속에 수 많은 멘트들만 굴리고 있다. 애써 미소를 지어보지만, 엉덩이가 바지를 씹고 있는 사람처럼 뭔가 불편해 보인다. 노래방에서 차렷자세로 댄스곡을 부르는 모양이 된단 얘기다.
한 번 더 양보해서, 만남에선 그럴 수 있다고 치자. 맘에 드는 사람이 옆에 앉아 있으면 손 떨리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상대를 웃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대형마트 개그를 남발해도 괜찮다. 값 싼 개그와 안 웃으면 원플러스원의 다음 개그를 쳐도 좋단 얘기다. 하얗게 불태우며 자멸하는 것 까지도 이해할 수 있다. 내 지인도 자주가는 PC방, 엘프같은 여자 알바생에게 나이를 묻는 다는 게, "저, 레벨 몇이세요?" 라고 물은 적 있으니 말이다.
얼굴 보고 하는 대화가 아닌, 문자나 전화 등의 연락에서 까지 센스가 없다면 그땐 정말 곤란해진다. 몇몇 사연에 등장한 '문제의 대사'들을 옮겨 잠시 살펴보자.
"감기 걸린 거 같던데, 빨리 나으셨음 좋겠어요. ^^"
재미도 감동도 없다. 우리동네 안경점에서 보내는 "신종플루가 유행입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눈까리확 안경점" 이런 문자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상대가 "네, 감사합니다. ^^"를 보내고 나면 더 할 말이 없다. 왜 전파를 이런식으로 낭비하는가. 이런 상황이라면 중앙선을 좀 넘어보자. 감기약까진 오버고, 비타민 음료나 비타민제 정도를 건넬 수 있는 것 아닌가.
상대에 따라 반응이 다르기에 '최고의 방법'을 추천하긴 힘들지만, 적어도 혼자 질문하고 혼자 답하는 위의 멘트는 하지 말자는 거다. 상대에게 종종 개그를 치는 상황이라면, "감기입니까?" 정도로 운을 띄울 수 있다. 개그 코드가 전혀 달라서 저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저건 모기 물려 긁고 있는 상대에게 "모기입니까?"라고 묻는 듯한 뉘앙스다. 문제있는 멘트를 하나 더 보자.
"좀 있으면 16강전 하네요. 축구 재미있게 보세요ㅋ"
마찬가지로 "네^^창식씨도 재미있게 보세요."라는 답장이 오면 대화는 끝난다. 3개월간 저런 문자를 주고 받았지만 더 가까워 지지 않기에, 상대가 어장관리 하는 것 같다고 적어주셨는데, 그게 어떻게 어장관리인가? 난 오히려 3개월간 저런 문자에 꾸준히 답을 해 준 여자분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중앙선도 넘지 않고 자기 진영에서 볼만 돌리는 당신을 계속 상대해 준 것 아닌가.
앞으로 어떤 진행이 될 지 궁금한가? 중앙선을 넘지 않고 자기 진영에서 패스만 계속하는 당신에게 상대는 질리게 될 것이다. 그럼, 그동안 꼬박꼬박 오던 답장도 줄어들게 된다. 형식적인 그녀의 답장으로 만족을 채우던 당신은 불안해진다. 그리곤 대략 이런 뉘앙스의 문자를 보내게 될 것이다.
"친해지고 싶었는데, 친해지는 방법을 잘 모르겠네요. 혹시 제 연락이 귀찮으셨다면 사과 드립니다. 앞으로는 좀 자제하려구요. 그럼 잘 지내시구요^^"
아마 당신에게 완전히 질렸다면 위의 문자에도 답장이 없을 것이고, 그정도로 최악이 아니라면 당신의 말에 손을 흔들며 부정하는 듯한 답장이 올 것이다. 당신의 연락이 귀찮지 않다거나, 문자가 부담된 건 아니라는 이야기를 담아서 말이다. 그럼 당신은 그 답장에 하늘을 날 것 같은 희망을 가지며, 다시 공을 차기 시작할 것이다. 앞서 하던 것 처럼 당신 진영에서 말이다. 자, 그럼 이번엔 그녀도 완전히 질릴 것이다.
위의 1번에서 다룬 사연과는 정 반대의 이야기다. [앓게되면 괴로운 연애의 병, 연애조급증]이라는 매뉴얼을 며칠 전에 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사귀는 것'에 목숨거는 대원들이 여전히 많다.
이런 멘트들로 자신의 조급증을 합리화 시킨다. 왜 이런 피해의식을 가지게 되었는 지 모르겠지만, "자기 마음을 잘 모르겠다는 얘기는, 절 좀 더 가지고 놀겠다는 얘깁니까?" 라는 질문을 하는 대원들도 있다.
그러니까 이게, 상대와 봄, 여름, 가을, 겨울 한 사이클을 함께 보내 봤든가, 아니면 상대의 친한 친구 이름을 세 명 정도 댈 수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뭐라고 말이라도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상대와 겨우 밥 몇 번 같이 먹은 뒤 고백해 놓고, 무슨 확신을 바라고 무슨 가능성을 원하는가?
"무한님이 보시기에 이 여자는 저랑 인연이 아닌건가요?"
연애조급증에 대한 매뉴얼을 읽고도 위의 질문을 하는 거라면, 인연이 아니라고 얘길 해 주고 싶다. 상대에게 어느정도 이쪽에 대한 마음이 있다면 계속된 구애로 사귈 수는 있겠지만, 그 후로도 '속도'에 관련된 문제들이 많이 뒤따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킨십을 예로 들자면, 상대가 이쪽의 기준으로 만든 '스킨십의 진도'를 따라오지 못한다면 당신의 '흑백론'은 고개를 들 것이다. 당신이 세운 기준과 맞지 않으니, 그건 당신이 생각하는 사랑이 아닌 것이 될 거고, 마음이 급한만큼 포기도 빠를테니 이별도 쉽게 말하게 될 것이다.
미안하지만, 난 솔직히 이와 관련된 사연들을 읽으며 대부분이 '그녀'와 사귀고 싶다는 얘기라기 보다는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얘기라고 생각했다. 뭐 그게 그거라고 생각하는 대원들도 있겠지만, 연애를 '낮은가격순' 정렬해서 물건 구매하듯 하진 말길 권한다.
위와 같은 '연애'와 '이별'의 질풍노도(응?)시기를 지나고 나서야, 상대의 진심을 깨닫고 돌아가고 싶어하는 솔로부대원들이 많은 사연을 보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 번 부숴버린 보금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낮다.
좀 날카로운 말을 하자면, 당신은 끝까지 이기적이다.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녀의 마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당신은 그저 마음속에 있는 후회와 미련을 처분하기 위해 다시 다가가는 것 아닌가? 이런 상황까지 온 대원들이 있다면, 어떻게 다시 다가갈 지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과할 지를 생각하길 권한다. "날 용서할 수 있다면, 다시 한 번 기회를 줘."따위의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당신의 미안함을 진심으로 꾹꾹 눌러 써 사과하란 얘기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한 두 발짝도 아닌 몇 킬로미터 정도 앞선 걱정을 하는 솔로부대원들이 있다. 사연을 보자.
난감이 소름 돋듯 돋는 사연이다. 언젠가 겨울철 별자리에 대해 검색하다가, 이제 막 중학교에 입학한 학생이 올려놓은 질문을 본 적 있다.
이 질문을 마주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크고 아름다운 질문이다. 자, 그럼 해외에서 날아온 저 앞선 걱정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지 함께 살펴보자.
우선 좋은 소식을 먼저 전하자면, 아주 가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 들어와 선을 봤을 때 필리핀에 나가서 같이 살자는 제안을 받아들일 여자도 분명 있다. 이제 나쁜 소식을 전하자면, 그 가능성은 로또 1등에 당첨되는 것 보다 훨씬 낮다는 것이다.
여자사람과의 선, 30여년의 솔로생활 탈출, 장가, 필리핀 이민 등 너무 많은 조건들이 엉켜있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은 우선 솔로생활을 청산하는 것이다. 선이나 소개팅을 통해 커플이 되는 확률이 27%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만 해도 쉬운 일이 아니란 얘기다.
솔로생활을 오래 하셨기에, 결혼을 전제로 한 선을 '구인'이나 '면접'정도로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아무리 결혼을 전제로 선을 보더라도 상대가 자신의 반평생을 함께해도 될 것 같다는 확신을 가져야 장가를 갈 수 있는 것이지, 선 본다고 무조건 장가가는 게 아니라는 얘기를 해 드리고 싶다.
그리고 이민. 이것도 택배 보내는 것 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얼른 떠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는 상태라면 모르겠지만, 사연중엔 서울-대전 커플이 결혼 후 어디에서 살 것인가를 놓고 조율하다가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해 헤어진 경우도 있었다. 아직 상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상대에게 말을 꺼내 본 것도 아닌 상황에서 '선보러 나온 여자에게, 결혼해서 필리핀에 와 같이 살도록 설득하는 법'을 알려달라는 건, 천문학자 이야기를 꺼낸 중학생의 질문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을 하자면, 필리핀에서 살고 싶어하는 비슷한 나이의 여자분을 찾아 보시거나, 필리핀에 계신 한국여성분들 중 결혼을 전제로 선을 보실 분을 찾아 보시길 권하겠다. 결혼에 대해 할 말도 많이 있지만, 위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머리가 아프니 그 부분은 접어두자.
유화를 그리는데, 아직 스케치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가 명화를 그릴 수 있을까요?" 라고 묻는 대원들이 있다. 명화를 그리고 싶다면 일단 그려보자. 연필부터 쥐라는 얘기다. 시작도 안 한 상태에서 백날 남들에게 물어봐야 답을 얻을 수 없다. 아직 찾아오지도 않은 문제들을 왜 혼자 염려하고 있는가? 연애는 점치는 게 아니다. 카드 뒤집어서 예측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거다. 해답을 알고 싶으면 직접 해 보는 수 밖에 없다. 이제 유리구슬을 통해 미래를 보려는 짓은 그만하고, 직접 상대를 만나보자. 별을 따려면 하늘을 먼저 봐야 하는 것 아닌가.
혹시 오늘 매뉴얼을 읽고 마음이 아팠다면 미안하다. 그녀가 어장관리인지 아닌지를 알고 싶었거나, 지금 친해지고 있는 상대와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대답을 기대했는데, '듣기 싫은 말'이 적혀 있어 불쾌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결혼을 전제로 한 선자리에서 상대에게 이민을 설득하는 방법 대신 들춰보고 싶지 않은 현실 얘기를 해서 씁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역시, 미안하다.
더운 여름에, 불쾌지수만 높이는 실수를 하지 말자는 뜻에서 매뉴얼을 작성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 셋을 묶은 이유는, 연애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대원이 자신의 문제를 돌아보긴 커녕 '어장관리'매뉴얼을 읽곤 상대를 어장관리자로 낙인찍고, 너무 들이대서 문제인 대원들은 '소심남'매뉴얼을 읽고 한 번 더 들이대고, 앞선 걱정을 하는 대원들은 '소개팅'매뉴얼 등을 읽으며 연애를 머릿속에서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럼 그동안 덥고 습하던 연애에 한 줄기 바람이 되었기를 바라며, 내일 [포기하라고 말해주고 싶은 연애 2부]에서 다시 만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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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딱 세 번은 참아요. 특공무술이랑 합기도를 좀 했는데 아무리 화가 나도 세 번은 그냥 넘어가요. 아, 태권도도 좀 했어요. 아무튼 딱 세 번은 그냥 참고, 그 이후로 더 실수하면 그 때는 정말 인정사정 보지 않고 확실하게 가르쳐주죠. 현구한테 얘기 들으셨는지 모르겠는데, 그래서 제 친구들 중에도 저한테 함부로 하거나 그런 거 없어요. 지킬 건 정확하게 지키죠."
난 사실 저 이야기를 하는 남자보다, 맞은편에 앉아 저런 이야기까지 "아~"라며 리액션 해주는 여자에게 더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마치, 한 여름에 전기장판을 팔러 온 남자와 겨드랑이에서 땀을 흘리는 여자가 현관문을 어정쩡하게 열어놓고 대화하는 것 같았다. 저 대화 이후 남자가, 변호사 친구 이야기를 하며, 그 친구와 자기는 베스트니 법적인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얘기하라는 할 때 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난 고기가 붙은 뼈를 앞 접시에 놓으며 종업원에게 이야기 했다.
"들깻가루 좀 더 주세요."
역시, 뼈해장국에는 들깻가루를 더 넣어야 맛이 난다.
지중해풍의 인테리어를 한 뼈해장국 집에서, 뼈에 붙은 고기를 뜯으며 생각했다. 앞으로 몇 주간 날은 더 더워질텐데, 부푼 마음을 안고 나간 솔로부대원들끼리 눈에서 땀나는 이야기들은 하지 말도록 권해야겠다, 라고. 그래서 오늘은 오랜기간 솔로로 지내온 남자대원들이 보낸 사연 중 세 가지를 뽑아, 왜 그 사연이 눈에서 땀이 나게 만드는 지를 함께 살펴 볼 예정이다. 찬 물수건으로 끈적한 손 닦듯 읽어보자.
1. 왜 중앙선(하프라인)을 넘지 못하는가?
유머감각이야 뭐, 서로 코드가 다를 수도 있고, 이게 사실 재미있는 이야기 외운다고 되는 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치고 빠지는 타이밍이 몸에 베어 있어야 하니 그렇다 치자. 남자들끼리 있을 때는 당장 개콘에 데뷔할 정도의 만담을 해 대지만, 이성을 앞에 두곤 수능시험보는 기분이 들어서 제 실력을 못 발휘할 수 있고 말이다.
그러나 '센스'까지 부족하다면 당신은 축구경기에서 중앙선을 넘지 못하는 공격수가 되어 버린다. 용감한 시민상 받으러 나온 것도 아닌데, 각잡고 앉아서 곧 '수상소감'을 발표할 사람처럼 머릿속에 수 많은 멘트들만 굴리고 있다. 애써 미소를 지어보지만, 엉덩이가 바지를 씹고 있는 사람처럼 뭔가 불편해 보인다. 노래방에서 차렷자세로 댄스곡을 부르는 모양이 된단 얘기다.
한 번 더 양보해서, 만남에선 그럴 수 있다고 치자. 맘에 드는 사람이 옆에 앉아 있으면 손 떨리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상대를 웃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대형마트 개그를 남발해도 괜찮다. 값 싼 개그와 안 웃으면 원플러스원의 다음 개그를 쳐도 좋단 얘기다. 하얗게 불태우며 자멸하는 것 까지도 이해할 수 있다. 내 지인도 자주가는 PC방, 엘프같은 여자 알바생에게 나이를 묻는 다는 게, "저, 레벨 몇이세요?" 라고 물은 적 있으니 말이다.
얼굴 보고 하는 대화가 아닌, 문자나 전화 등의 연락에서 까지 센스가 없다면 그땐 정말 곤란해진다. 몇몇 사연에 등장한 '문제의 대사'들을 옮겨 잠시 살펴보자.
"감기 걸린 거 같던데, 빨리 나으셨음 좋겠어요. ^^"
재미도 감동도 없다. 우리동네 안경점에서 보내는 "신종플루가 유행입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눈까리확 안경점" 이런 문자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상대가 "네, 감사합니다. ^^"를 보내고 나면 더 할 말이 없다. 왜 전파를 이런식으로 낭비하는가. 이런 상황이라면 중앙선을 좀 넘어보자. 감기약까진 오버고, 비타민 음료나 비타민제 정도를 건넬 수 있는 것 아닌가.
상대에 따라 반응이 다르기에 '최고의 방법'을 추천하긴 힘들지만, 적어도 혼자 질문하고 혼자 답하는 위의 멘트는 하지 말자는 거다. 상대에게 종종 개그를 치는 상황이라면, "감기입니까?" 정도로 운을 띄울 수 있다. 개그 코드가 전혀 달라서 저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저건 모기 물려 긁고 있는 상대에게 "모기입니까?"라고 묻는 듯한 뉘앙스다. 문제있는 멘트를 하나 더 보자.
"좀 있으면 16강전 하네요. 축구 재미있게 보세요ㅋ"
마찬가지로 "네^^창식씨도 재미있게 보세요."라는 답장이 오면 대화는 끝난다. 3개월간 저런 문자를 주고 받았지만 더 가까워 지지 않기에, 상대가 어장관리 하는 것 같다고 적어주셨는데, 그게 어떻게 어장관리인가? 난 오히려 3개월간 저런 문자에 꾸준히 답을 해 준 여자분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중앙선도 넘지 않고 자기 진영에서 볼만 돌리는 당신을 계속 상대해 준 것 아닌가.
앞으로 어떤 진행이 될 지 궁금한가? 중앙선을 넘지 않고 자기 진영에서 패스만 계속하는 당신에게 상대는 질리게 될 것이다. 그럼, 그동안 꼬박꼬박 오던 답장도 줄어들게 된다. 형식적인 그녀의 답장으로 만족을 채우던 당신은 불안해진다. 그리곤 대략 이런 뉘앙스의 문자를 보내게 될 것이다.
"친해지고 싶었는데, 친해지는 방법을 잘 모르겠네요. 혹시 제 연락이 귀찮으셨다면 사과 드립니다. 앞으로는 좀 자제하려구요. 그럼 잘 지내시구요^^"
아마 당신에게 완전히 질렸다면 위의 문자에도 답장이 없을 것이고, 그정도로 최악이 아니라면 당신의 말에 손을 흔들며 부정하는 듯한 답장이 올 것이다. 당신의 연락이 귀찮지 않다거나, 문자가 부담된 건 아니라는 이야기를 담아서 말이다. 그럼 당신은 그 답장에 하늘을 날 것 같은 희망을 가지며, 다시 공을 차기 시작할 것이다. 앞서 하던 것 처럼 당신 진영에서 말이다. 자, 그럼 이번엔 그녀도 완전히 질릴 것이다.
2. 당신은 그녀와 왜 사귀려 하는가?
위의 1번에서 다룬 사연과는 정 반대의 이야기다. [앓게되면 괴로운 연애의 병, 연애조급증]이라는 매뉴얼을 며칠 전에 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사귀는 것'에 목숨거는 대원들이 여전히 많다.
"확신이 있다면 기다릴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포기하겠습니다."
"전 이성관계에 대해서는 확실한 사이를 원합니다."
"사귀지 않을 거라면 힘들더라도 잊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제 사연을 읽어보시고, 가능성이 있는 지 없는 지만 말씀해 주세요."
"전 이성관계에 대해서는 확실한 사이를 원합니다."
"사귀지 않을 거라면 힘들더라도 잊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제 사연을 읽어보시고, 가능성이 있는 지 없는 지만 말씀해 주세요."
이런 멘트들로 자신의 조급증을 합리화 시킨다. 왜 이런 피해의식을 가지게 되었는 지 모르겠지만, "자기 마음을 잘 모르겠다는 얘기는, 절 좀 더 가지고 놀겠다는 얘깁니까?" 라는 질문을 하는 대원들도 있다.
그러니까 이게, 상대와 봄, 여름, 가을, 겨울 한 사이클을 함께 보내 봤든가, 아니면 상대의 친한 친구 이름을 세 명 정도 댈 수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뭐라고 말이라도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상대와 겨우 밥 몇 번 같이 먹은 뒤 고백해 놓고, 무슨 확신을 바라고 무슨 가능성을 원하는가?
"무한님이 보시기에 이 여자는 저랑 인연이 아닌건가요?"
연애조급증에 대한 매뉴얼을 읽고도 위의 질문을 하는 거라면, 인연이 아니라고 얘길 해 주고 싶다. 상대에게 어느정도 이쪽에 대한 마음이 있다면 계속된 구애로 사귈 수는 있겠지만, 그 후로도 '속도'에 관련된 문제들이 많이 뒤따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킨십을 예로 들자면, 상대가 이쪽의 기준으로 만든 '스킨십의 진도'를 따라오지 못한다면 당신의 '흑백론'은 고개를 들 것이다. 당신이 세운 기준과 맞지 않으니, 그건 당신이 생각하는 사랑이 아닌 것이 될 거고, 마음이 급한만큼 포기도 빠를테니 이별도 쉽게 말하게 될 것이다.
미안하지만, 난 솔직히 이와 관련된 사연들을 읽으며 대부분이 '그녀'와 사귀고 싶다는 얘기라기 보다는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얘기라고 생각했다. 뭐 그게 그거라고 생각하는 대원들도 있겠지만, 연애를 '낮은가격순' 정렬해서 물건 구매하듯 하진 말길 권한다.
위와 같은 '연애'와 '이별'의 질풍노도(응?)시기를 지나고 나서야, 상대의 진심을 깨닫고 돌아가고 싶어하는 솔로부대원들이 많은 사연을 보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 번 부숴버린 보금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낮다.
"제가 잘못한 것은 인정합니다... 제 조급증 때문에...
이렇다 할 말도 없이 연락을 끊은 것도 저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제야 그녀가 보여준 진심들을 깨닫게 되었는데..
이렇게 그냥 삭히자니 미쳐버릴 것 같고..
화장실 갔다가 밑을 안 닦고 나온 듯 찝찝한 상태가 계속 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다시 다가갈 수 있는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이렇다 할 말도 없이 연락을 끊은 것도 저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제야 그녀가 보여준 진심들을 깨닫게 되었는데..
이렇게 그냥 삭히자니 미쳐버릴 것 같고..
화장실 갔다가 밑을 안 닦고 나온 듯 찝찝한 상태가 계속 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다시 다가갈 수 있는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좀 날카로운 말을 하자면, 당신은 끝까지 이기적이다.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녀의 마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당신은 그저 마음속에 있는 후회와 미련을 처분하기 위해 다시 다가가는 것 아닌가? 이런 상황까지 온 대원들이 있다면, 어떻게 다시 다가갈 지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과할 지를 생각하길 권한다. "날 용서할 수 있다면, 다시 한 번 기회를 줘."따위의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당신의 미안함을 진심으로 꾹꾹 눌러 써 사과하란 얘기다.
3. 별을 따려면 하늘부터 보자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한 두 발짝도 아닌 몇 킬로미터 정도 앞선 걱정을 하는 솔로부대원들이 있다. 사연을 보자.
안녕하세요. 전 필리핀에서 일을 하고 있는 솔로대원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이제껏 솔로로 지내다가.. 결혼할 나이가 되어서..
이번에 한국에 들어가면 결혼을 전제로 선을 보려고 합니다.
근데... 몇 달 후에 다시 필리핀에 들어와야 하는데..
혹시 선을 볼 때.. 필리핀에 와서 같이 살 수 있냐고 물으면..
괜찮다고 하는 여자가 있을까요?...
여기도 한국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결혼하신 분들이거나.. 학생들이라..
이번 한국에 가서 꼭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고 싶은데..
무한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어떤 식으로 말해야.. 여자를 설득할 수 있을까요?
장가가고 싶습니다. 답변 꼭 좀 부탁드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이제껏 솔로로 지내다가.. 결혼할 나이가 되어서..
이번에 한국에 들어가면 결혼을 전제로 선을 보려고 합니다.
근데... 몇 달 후에 다시 필리핀에 들어와야 하는데..
혹시 선을 볼 때.. 필리핀에 와서 같이 살 수 있냐고 물으면..
괜찮다고 하는 여자가 있을까요?...
여기도 한국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결혼하신 분들이거나.. 학생들이라..
이번 한국에 가서 꼭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고 싶은데..
무한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어떤 식으로 말해야.. 여자를 설득할 수 있을까요?
장가가고 싶습니다. 답변 꼭 좀 부탁드립니다...
난감이 소름 돋듯 돋는 사연이다. 언젠가 겨울철 별자리에 대해 검색하다가, 이제 막 중학교에 입학한 학생이 올려놓은 질문을 본 적 있다.
제가 천문학자가 되고 싶은데 질문이 있습니다.
천문학자가 되려면 무슨 과목을 열심히 공부해야 하나요?
제가 공부를 반에서 중간 정도 하는데 천문학자가 되는 게 가능한가요?
천문학자로 유명한 대학교가 어디인가요? 학교 이름 말해주면 내공 드립니다.
진짜 천문학자가 되고 싶고 월급 상관 없습니다.
정말 진지하게 물어보는 거니까.. 자세히 답변 적어주시기 바랍니다.
천문학자가 되려면 무슨 과목을 열심히 공부해야 하나요?
제가 공부를 반에서 중간 정도 하는데 천문학자가 되는 게 가능한가요?
천문학자로 유명한 대학교가 어디인가요? 학교 이름 말해주면 내공 드립니다.
진짜 천문학자가 되고 싶고 월급 상관 없습니다.
정말 진지하게 물어보는 거니까.. 자세히 답변 적어주시기 바랍니다.
이 질문을 마주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크고 아름다운 질문이다. 자, 그럼 해외에서 날아온 저 앞선 걱정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지 함께 살펴보자.
우선 좋은 소식을 먼저 전하자면, 아주 가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 들어와 선을 봤을 때 필리핀에 나가서 같이 살자는 제안을 받아들일 여자도 분명 있다. 이제 나쁜 소식을 전하자면, 그 가능성은 로또 1등에 당첨되는 것 보다 훨씬 낮다는 것이다.
여자사람과의 선, 30여년의 솔로생활 탈출, 장가, 필리핀 이민 등 너무 많은 조건들이 엉켜있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은 우선 솔로생활을 청산하는 것이다. 선이나 소개팅을 통해 커플이 되는 확률이 27%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만 해도 쉬운 일이 아니란 얘기다.
솔로생활을 오래 하셨기에, 결혼을 전제로 한 선을 '구인'이나 '면접'정도로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아무리 결혼을 전제로 선을 보더라도 상대가 자신의 반평생을 함께해도 될 것 같다는 확신을 가져야 장가를 갈 수 있는 것이지, 선 본다고 무조건 장가가는 게 아니라는 얘기를 해 드리고 싶다.
그리고 이민. 이것도 택배 보내는 것 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얼른 떠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는 상태라면 모르겠지만, 사연중엔 서울-대전 커플이 결혼 후 어디에서 살 것인가를 놓고 조율하다가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해 헤어진 경우도 있었다. 아직 상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상대에게 말을 꺼내 본 것도 아닌 상황에서 '선보러 나온 여자에게, 결혼해서 필리핀에 와 같이 살도록 설득하는 법'을 알려달라는 건, 천문학자 이야기를 꺼낸 중학생의 질문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을 하자면, 필리핀에서 살고 싶어하는 비슷한 나이의 여자분을 찾아 보시거나, 필리핀에 계신 한국여성분들 중 결혼을 전제로 선을 보실 분을 찾아 보시길 권하겠다. 결혼에 대해 할 말도 많이 있지만, 위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머리가 아프니 그 부분은 접어두자.
유화를 그리는데, 아직 스케치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가 명화를 그릴 수 있을까요?" 라고 묻는 대원들이 있다. 명화를 그리고 싶다면 일단 그려보자. 연필부터 쥐라는 얘기다. 시작도 안 한 상태에서 백날 남들에게 물어봐야 답을 얻을 수 없다. 아직 찾아오지도 않은 문제들을 왜 혼자 염려하고 있는가? 연애는 점치는 게 아니다. 카드 뒤집어서 예측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거다. 해답을 알고 싶으면 직접 해 보는 수 밖에 없다. 이제 유리구슬을 통해 미래를 보려는 짓은 그만하고, 직접 상대를 만나보자. 별을 따려면 하늘을 먼저 봐야 하는 것 아닌가.
혹시 오늘 매뉴얼을 읽고 마음이 아팠다면 미안하다. 그녀가 어장관리인지 아닌지를 알고 싶었거나, 지금 친해지고 있는 상대와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대답을 기대했는데, '듣기 싫은 말'이 적혀 있어 불쾌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결혼을 전제로 한 선자리에서 상대에게 이민을 설득하는 방법 대신 들춰보고 싶지 않은 현실 얘기를 해서 씁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역시, 미안하다.
더운 여름에, 불쾌지수만 높이는 실수를 하지 말자는 뜻에서 매뉴얼을 작성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 셋을 묶은 이유는, 연애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대원이 자신의 문제를 돌아보긴 커녕 '어장관리'매뉴얼을 읽곤 상대를 어장관리자로 낙인찍고, 너무 들이대서 문제인 대원들은 '소심남'매뉴얼을 읽고 한 번 더 들이대고, 앞선 걱정을 하는 대원들은 '소개팅'매뉴얼 등을 읽으며 연애를 머릿속에서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럼 그동안 덥고 습하던 연애에 한 줄기 바람이 되었기를 바라며, 내일 [포기하라고 말해주고 싶은 연애 2부]에서 다시 만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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