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포기하라고 말해주고 싶은 연애1부]를 발행한 이후, 엄청난 양의 메일이 도착했다. 애매한 상황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사연을 보내달라고 적어놨더니, 정말 갈피를 잡기 힘든 사연들이 많이 도착했다.
왜 자신이 보낸 메일을 안 읽냐고 항의메일을 보내신 분도 몇 분 계신데, 안 읽는 게 아니고 아직 못 읽고 있는 거라는 얘기를 전해드리고 싶다. 수백 통의 메일이 왔고, 대부분의 메일이 편당 A4용지 환산 4-5매 정도 되는 분량이다. 그 중에는 첨부파일로 단편소설 분량의 사연을 적어서 보내주신 분도 있고 말이다.
아무튼, 물리적인 한계가 있기에 아직 읽지 못한 것일 뿐 방치해 두고 있는 게 아니라는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지난 매뉴얼과 관련해 몇몇 대원들이,
"실수했다고 해서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제 친구는 그렇게 되었다가 나중에 다시 만나던데요?"
이런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맞는 말이다. '가능성'이나 '예외'까지 포함하면 어느 연애도 감히 포기하라고 말할 수 없다. 늘 하는 얘기지만, 매뉴얼은 "사고 다발 지역"의 표지판으로 생각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애매하고 갈팔질팡 하게 되는 그 상황에서 이러이러한 일이 많이 벌어진다는 얘기지, 무조건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얘기가 아니다. 가장 밑에 깔린 이런 전제를 무시하고 누구 말이 맞는지를 가리려 하면, 정말 쓸데없는 짓이 된다.
자, 그럼 오늘도 시원한 맥주 한 잔 급하게 들이키는 기분으로 출발해 보자.
발라드를 듣다보면, 상대의 연인이 될 수 없더라도 평생 멀리서 지켜보겠다는 뉘앙스의 곡들이 많은데, 이 문제가 현실로 다가온 사연이 있었다.
2년 쯤 같이 일하다가 그녀가 그만 두었습니다. 전 계속 일을 했구요..
본격적으로 친해진 건.. 그녀가 그만 둘 때쯤.. 회사일이 힘들다고..
세 달 정도.. 회사 끝나고 술을 마셨습니다. 그러다보니 연락도 자주 하게 되고..
그녀가 그만두었을 때에는 거의 연인처럼.. 문자를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죠..
제 마음 속에 감정이 어느 정도 커졌을 때.. 갑자기 그녀의 연락이 줄었습니다..
한 달.. 두 달.. 지나도 답문이 없었죠.. 지옥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아는 건 전화번호 밖에 없어서.. 계속 연락을 해 봤지만 통화가 안 되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이 흔해서.. 미니홈피를 찾아보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사진을 볼 수 없는 곳에는 방명록과 쪽지로.. 혹시 맞으면 연락 달라고 하고..
그렇게 일년 정도가 지나버렸습니다...
그러다 연락이 오더군요. 너무 태연하게... 잘 지내냐는 물음...
서운하긴 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반갑고 기쁘고...
아무튼 연락이 닿고 나서 제가 계속 만나자고 했는데.. 피하더군요...
문자와 전화로만 연락이 되고... 전 너무 답답해서.. 그동안 얼마나 찾았는지 얘기하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시간을 달라고 하더군요..
계속 기다려도 답을 안 주기에.. 몇 주 뒤에 다시 한 번 물어봤더니..
자기가 애를 키운다고 하더군요... 거절을 이런 식으로 하나 싶어서..
장난치지 말고 싫으면 싫다고 말해달라고 했더니...
정말 아기 사진을 보내주더군요........ 네......... 그녀의 아이 였습니다......
자초지종을 물으니.. 남자친구를 사귀었는데.. 임신하고 헤어졌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혼자 낳았고... 정말 힘들게 키우고 있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 한 3개월간 제가 아빠노릇을 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과 그녀의 생활비 등등...
제 월급을 모두 그녀에게 줬습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고..
아이의 진짜 아빠가 나타났습니다.... 그녀가 전에 저에게..
그 사람 다시 와도 절대 안 받아 줄 거라고.. 자기가 얼마나 힘들게 지냈는데..
그 사람 받아주냐고.. 했었는데........................받아 주더군요...
연락도 안 되고... 따지고 보면.. 결혼한 여자인데.. 제가 기다려야 하나...
뭐 그런 생각도 들고... 정말 몇 달간 저도 폐인처럼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마음을 정하고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이제 연락하지 말자고.. 그랬더니 그녀는... 예전처럼 그냥..
오빠동생 사이로 지내자고 하더군요.. 전.. 그녀가 이성으로 생각되어서..
그게 힘들 것 같다고 얘기했더니.. 오빠로 남아달라고 하더군요...
저도 사실 제가 지금 뭘 바라고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오빠로 남아달라는 그녀에게 넌 뭘 바라냐고 물었더니..
그녀도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 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는 사연이다. "그녀의 행복을 위한다면 오빠로 남아 옆에서 지켜주세요."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친구가 위와 같은 상황에 있다면, "니가가라 하와이."(응?)라고 말해주겠다. 그녀와의 연애는 그만 내려 놓으란 얘기다.
사실, 결론은 이미 나왔다. 사연을 주신 분 스스로도 '정지' 버튼을 눌러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저 그 버튼을 누르기 전 상대에게 계속 확인하고 있을 뿐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 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간단하다. 그녀에게 더이상 확인받으려 하지 말고 마음을 서서히 소멸시키면 된다.
주변에 비슷한 사례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위와 같은 상황에서 다른 사람과 연애를 했고, 짝사랑하던 그녀의 아이에겐 좋은 삼촌이 되어 주었다. 지금 당장은 위의 상황이 '상처'이기에, 만져도 아프지 않은 '흉터'가 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주제를 '그녀'가 아닌 '나'에 놓고 이쯤에서 점을 찍자.
한 커플부대 여성대원이 보내주신 사연인데, 각색이 어렵기에 사연에서 가장 중점적인 "상대의 멘트"만 뽑아서 살펴보도록 하자.
"내가 놀아? 일하느라 연락 못하는 거잖아."
연애를 하다보면, '환상'과 '현실'의 차이를 점점 느끼게 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지루한 '일상생활'을 생략하고 특별한 일들만 보여주는 까닭에 많은 대원들이 그 연애를 모방하려 하다 지치게 된다. 상대를 '특별함'으로만 생각한단 얘기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매일매일이 크리스마스 같을 순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커플부대원들이 이 시기가 찾아오면 "너, 변했어."라든가 "마음이 식었으니 그렇겠지."따위의 이야기로 이별을 맞이한다.
"난 널 챙겨줄 여력도 없고, 만나면 좋지만 안 만나도 그만이다."
이 대원은 갈등의 시기에, 남친의 위와 같은 멘트를 듣고는 이별을 결심했다. 그리고 헤어졌다. 개인적으로 여기서 권하고 싶은 방법이 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인데다 이번 매뉴얼과는 관련이 없으니 나중에 이야기 하기로 하고, 아무튼 헤어지고도 몇 주간 잘 살았다. 놓고 있던 일상생활을 다시 붙잡은 것이다.
그 후, 남친에게 연락이 왔고. 다시 만난 둘은 예전처럼 연인사이가 되었다. 여기서 잠깐. 저 위의 멘트에 대한 아무런 언급없이 다시 만났다는 게 놀랍다. 저 멘트는 투정부리는 여자친구에게 하는 멘트가 아니라, 상대의 생활에서 당신이 차지하는 부분이 '데코레이션' 정도라는 의미를 지닌 것 아닌가. 다시 만나고 나서도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고 하셨는데, 저 멘트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여전히 당신은 상대에게 "만나면 좋지만 안 만나도 그만"인 대상이란 얘기다. 내가 이렇게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은, 사연에 자세하게 적어주신 세부 내용들 덕분이다.
연인인 두 사람의 돈 관계야 내가 상관할 바 아니지만, '남자친구의 유흥비 계산'부분을 난 좀 이해하기가 힘들다. 노래방에서 수십만원이 나왔으면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겨드랑이 털 난 사람이라면 다들 눈치를 챌 텐데, 아무리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해도 거기까지 찾아가 계산을 해 준 것은 분명 잘 한 일이 아니라 생각한다.
누구 얘긴지 모르게 티 안내려니까 참 어렵다. 이런 저런 부분들을 숨기다 보면, 독자들은 매뉴얼에서 보여진 부분만 가지고 오해를 할 수도 있을 것 같고 말이다. 툭 터 놓고 말해보자.
같이 있을 때, 남친이 걸려오는 전화를 안 받는 거, 당연히 궁금한 일이다. 당신이 이상한 게 아니란 얘기다. 게다가 남친전화로 노래방 도우미가 연락한 전과(응?)가 이미 있지 않은가. 그런 상황에선 누구나 의심을 하게 된다. 돈 얘기를 잠시 더 하자면, 데이트비용을 당신이 대부분 부담하는 상황에서 남자친구가 경제사정이 어렵다며 당신에게 돈을 빌린 것, 상황이 어려워서 그런 거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의 남친은 노래방에서 수십만 원어치씩 노래를 부르다 왜 당신만 만나면 어려워 지는가.
지난 주 이후 또 며칠 째 상대의 연락이 없다는 당신에게 "왜 그 사람과 사귀고 있는 지 곰곰히 생각해 보세요." 라는 얘기를 해 주고 싶다. 이해득실을 따지라는 얘기가 아니다. 두 사람이 서 있는 곳 아래 '신뢰'와 '애정'이라는 근본이 있는 지 살펴보란 얘기다.
이 아래로 다른 분들의 사연을 몇 가지 더 썼다가 지웠다. 쓰다보니, 아직 포기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연을 주신 분들은 벽 앞에 붙어 액자를 걸고 있는 입장이라, 오른쪽으로 더 기울여야 하는지 아니면 왼쪽으로 기울여야 하는 지 갈피를 못 잡지만, 여기서 보면 참고할 만한 이야기를 건넬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자, 그럼 다음 매뉴얼 부터는 씁쓸한 얘기들 말고 가슴이 쿵쾅쿵쾅 거리는 이야기를 나눠보자. 어장 속에 살고 있는 왕 물고기 대원들도 수면위로 펄쩍 뛰어오를 만한 얘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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