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산 이천 원짜리 목줄을 매고 동네 창피하게 어떻게 나가냐고 간디(애완견 이름)가 발에 힘을 주며 반항했지만, 현관문 밖에 간식을 놔두니,
"지금 목줄이 문제가 아니지 말입니다."
라며 순순히 따라 나왔다. 그런데 이 녀석, 문지방만한 턱만 나와도 기겁하며 주저 앉는다. 하지만 역시, 간식을 내미니,
"지금 턱이 문제가 아니지 말입니다."
라며 가뿐히 올라선다. 예전에 지인이 키우던 개를 산책시킬 일이 있었는데, 그 녀석은 선천적으로 오지랖이 넓은지 지나가며 눈에 띄는 모든 것들에 참견을 하고 시비를 걸었다. 그런 까닭에 간디를 데리고 나가면서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간디는 공원에 가는 내내 호박 말리는 바구니에 잠시 관심을 보인 것 빼고는 내 옆에 붙어 종종종종 따라왔다.
공원에 들어서자 떨어진 낙엽들이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흩날렸고, 부스라라락 낙엽 날리는 소리에 간디는 내 바짓가랑이를 부여잡으며 안아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강아지가 그 신호를 보낼 때 마다 안아주면 자립심이 없어지고 의존적으로 변한다는 글을 읽었기에, 강하게 키우기 위해 오히려 낙엽이 있는 곳으로 간디를 이끌었다.
가만히 낙엽을 응시하던 간디는 조심조심 낙엽 냄새를 맡기 시작했고, 바람이 강하게 불 때에는 잠시 움찔 했지만 그 이후로 낙엽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며 놀았다.
그 짧은 산책도 잠시, 나와 간디는 벤치를 찾아 자리를 피해야 했는데, 그 이유는 목줄 없이 공원에 침을 뱉고 있는 다른 강아지들 때문이었다. 다른 강아지와 접촉하며 사회성을 길러줘야 한다는 글도 읽었지만, 송아지만한 개가 다가와 간디의 똥꼬냄새를 맡을 땐 간디도 떨고 나도 떨었다. 내가 간디를 들어 품에 안자, 그 송아지 같은 녀석은 자리를 옮겨 내 똥꼬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내..내 똥꼬냄새는 맡지마!'
난 만약 그 송아지 같은 녀석과 싸움이 벌어질 경우, 어디를 공격해야 최단시간에 제압할 수 있을지를 계산했다.
'목을 먼저 제압하는 쪽이 승리한다. 내 목을 노리고 녀석이 달려들면, 순식간에 돌아 팔로 녀석의 목을 휘어 감는 거다. 아냐, 운동신경이 더 뛰어난 쪽은 저 송아지 같은 녀석일지도 몰라. 난 팔을 먼저 희생한다. 녀석이 팔을 무는 순간 난 리어 네이키드 초크를 쓰는 거야. 살을 내 주고 뼈를 치는 거닷!'
그러나 저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며 웃고 있는 부부가 그 송아지 같은 녀석을 부르는 것으로 상황은 종료되었다. 난 간디를 데리고 가까운 벤치로 가서 앉았다. 간디도 방금 전 상황의 여운이 남은 듯 몸을 개 떨듯(응?) 떨고 있었다. 간디를 벤치에 앉혀 놓고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을 때,
"엄마야~"
하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아까 그 송아지만한 개가 게이트볼 장에 들어가 있었다. 게이트볼을 치고 있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개를 제지하려 게이트볼 스틱을 휘젓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며 개는 같이 놀자는 줄 알고 꼬리치며 날뛰고 있었다.
개 주인인 부부가 문제의 심각성을 느꼈는지 열심히 개를 부르며 달려왔고, 개가 지 이름을 듣고 게이트볼 장에서 나오는 것으로 역시 상황은 종료 되었다.
'저런 개라면 목줄을 해야지. 토끼만한 간디도 목줄을 하는데, 도대체 왜 저 송아지 같은 녀석을 풀어 두는 거야!'
가서 주인 부부에게 한 마디 해 주고 싶었지만, 나와 간디의 첫 산책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평화를 사랑하기에 시끄러운 일은 만들지 않기로 했다. 그 송아지 같은 개가 무서워서 안 한 것은 절대 아니다.
아무튼 마음에 참을 인자를 하나 더 새겨 넣으며 간디에게,
"간디야, 넌 목줄은 꼭 하자. 알았지?"
라고 말하는데,
간디는 왕방울만한 눈을 하곤 여전히 덜덜덜 떨고 있었다.
▲ 간디를 수컷으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간디는 여린 소녀(응?) 입니다. 추천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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