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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2)

소개팅에서의 어색한 침묵, 해결방법은?

by 무한 2010. 12. 3.

밤새 머릿속에서 상황극까지 해가며 소개팅을 준비했다. 새로 산 옷과 신발이 너무 새것처럼 보일까봐 일부러 입고 신은 채 새벽에 나가서 좀 돌아다니기도 했다. 평소 차지 않던 시계도 찼고, 오다가 바람에 날려 머리가 흐트러지진 않았는지 쇼윈도에 비춰보며 확인도 했다. 고지가 바로 저기다. 심호흡을 하고, 만나기로 한 커피숍 문을 여는 순간

딸랑

도어벨 소리와 함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다.
아직까진 뭐가 빠져나가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제일 아늑해 보이는 자리를 찾아간다. 저벅, 저벅, 걸음을 옮길 때 마다 보폭만큼의 뭔가가 머릿속에서 계속 빠져나간다. 종업원이 다가오고, 주문을 한다. 아, 기다렸다가 같이 주문했어야 하는 건데, 커피가 나온다. 잠깐, 지금 커피가 문제가 아니고, '어젯밤에 생각했던 게 뭐였지?' 라며 기억력을 채근하고 있는데

저어..

웬 여자가 말을 걸어온다. 아, 웬 여자가 아니고 만나기로 한 여자다. 아무튼 그 여자의 등장으로 인해 머릿속에 있던 것들이 모두 비워졌다. 수능 언어영역 듣기평가 시간, 뒷 문제를 훑어 보다가 정신을 차리니 스피커에서 2번 문항의 설명이 나오고 있는 느낌이다.

뭐로 드릴까요?

종업원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혼자만 커피를 마실 뻔 했다. 그녀에게 뭔가 얘기를 해야 하는데, 할 얘기가 없다. 머릿속엔 애국가 3절 가사 같은 것만 떠오른다.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머릿속이 가을 하늘이다. 가을엔 말이 살찐다고 했는데,

과천에서 쭉 사신 거예요?
네? 아, 네.

경마장의 말들이 떠오른다. 머릿속에서 빠져나간 생각들을 다시 불러보려 하지만, 녀석들은 앞서 달리는 말처럼 잡힐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사십 분, 드디어 자리에서 일어선다. 어색할 때 마다 아랫입술에 침을 발랐더니 입술이 부은 것 같다. 커피숍 문을 열고나오며,

식사, 아직 안하셨죠?
아, 친구들하고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요. 이따가 먹으려고요.

라는 대화를 끝으로 소개팅이 끝났다. 꼬꼬마 시절, 손가락 끝부터 손목까지 쥐어짜듯 피를 몰아내 손목을 꽉 쥐고 있다 일순간 손목을 쥔 손을 풀면 혈관에 피가 돌아오며 알싸한 느낌이 들었던 전기놀이. 바로 그 느낌으로 생각들이 머릿속에 돌아온다.

늘 이런식으로 진행되는 소개팅을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숨쉬기가 불편할 정도로 목을 조여오는 어색한 침묵, 그리고 그 침묵으로 인해 점점 더 새하얗게 변하는 머릿속, 오늘은 이런 어려움을 호소하는 대원들을 위해 함께 달려보자.


1. 침묵의 킬러, 공감

 

어색한 침묵을 몰아내기 위해 대화 소재를 찾고 있는가? 그런 소재들을 찾고 있는 거라면 상대와 마주 앉은 자리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다. 무슨 영화가 어떻고 좋아하는 계절이 어떻고 하는 얘기들 말고, "어? 약지가 검지보다 엄청 기신데요?" 라는 멘트 하나로도 이야기의 홍수를 일으킬 수 있다.

저 멘트를 들은 상대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손을 살펴보며 "왜요? 약지가 검지보다 길면 뭔데요?"라고 물을 수밖에 없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손을 펴서 자신의 약지와 검지 길이를 비교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손 본 김에 손톱정리를 하길 바란다는 건 보너스고,

"이게 비율이 있는데요, 중지 끝 마디를 기준으로 살펴보는 건데, 숙희씨 약지는 다른 사람에 비해서 상당히 긴 편이에요. 약지가 긴 사람들은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하다고 하더라구요. 아, 그리고 화가 나도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성격이라, 나중에 후회하거나 혼자 상처를 받는 일도 많다고 하구요."

정도의 대답을 해주면 된다. 그럼 "맞아요. 저 그럴 때 있어요." 정도의 반응이 올 것이고, 그땐 "경험담토크 한 번 할까요? 상품은 목욕용품세트."라며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상대의 에피소드를 들으며 상대를 더 알 수 있다. 좋아하는 영화를 묻고 계절을 묻고 하는 일 보다 훨씬 둘의 관계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공감대라는 게, 같은 장르의 영화 좋아하고 같은 곳에 살고 뭐 그런 것만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일부 대원들은 질문 폭격을 해가며 '통하는 거 하나만 걸려라'라는 심정으로 소개팅 자리에서 투망을 던지는데, 그런 식으로 찾은 공감대는 기억에 잘 남지 않을 뿐더러 의미가 없기 마련이다. 비슷한 부분만 찾는 거라면 뭐 하러 문화 전반을 돌아 어릴 적 살던 고향까지 물어보는가? 그냥 "어, 숙희씨 팔 두 개? 나도 팔 두 개!"라고 말하는 게 더 쉬운데 말이다.

그냥 웃자고 한 말은 아니다. '공감대'에 대해 정확히 이해를 했다면, 저 '팔 두 개'멘트를 한 뒤, "아, 죄송해요. 소개팅 때문에 공부를 좀 했는데, 공감대를 찾으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일단 팔을 찾았어요. 또 무슨 공감대가 있는지 열심히 찾으려구요."라며 딱딱한 분위기를 말랑말랑하게 만들 수 있다. 전에 한 번 인용한 적 있는 <펄프픽션>의 대사를 기억하는가? 

"왜 어색하지 않으려면 수다를 떨어야 할까요?"

- 영화 <펄프픽션> 중에서

 

소개팅 자리에서의 긴장과 어색함도 '공감대'로 활용할 수 있단 얘기다. 온 힘을 다해 침묵을 몰아내려 애쓰지만 말고, 의자를 하나 빼 침묵의 자리를 마련해 주는 방법이 있다는 걸 잊지 말자.


2. 손님 보다는 주인의 마인드로

 

성격상 과묵하다거나, 하루에 사용하는 단어가 10개 미만인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 '말'을 사용해 의사소통하는 것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소개팅에 나가서 물만 먹고 들어왔다는 대원들이 이렇게 많을까? 그것은 바로, 대부분의 대원들이 '손님'의 마인드로 소개팅에 임했기 때문이다.

식당을 떠올려 보자. A가 식당에 들어와 갈비탕을 시키고, 잠시 후 B가 A의 옆 테이블에 앉아 칼국수를 시켰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둘은 메뉴판을 쳐다보거나 물컵에 물을 따르거나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보거나 하는 일 밖에 하지 않는다. 둘이 말을 섞을 때라곤, 음식이 나온 후 A가 테이블에 양념통이 없다는 걸 깨닫곤 B에게 "저, 죄송하지만 양념통 좀..."이라는 말을 할 때뿐이다. B는 그 얘기를 듣고 "아, 네."라며 양념통을 전해주는 것뿐이고 말이다.

당신을 A나 B에 대입하더라도 위의 상황에서 크게 변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소개팅에 나간 당신과 상대가 모두 '손님'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면, A와 B가 나누는 대화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저 둘이 많은 대화를 나누려 노력해봐야 얼마나 많은 대화를 할 수 있겠는가? 공통의 화젯거리를 찾았다고 해도, "그건 너무 뭐뭐 한 것 같아요.", "그러게요." 따위의 대화를 넘어설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손님A나 손님B가 아닌 주인이라면 어떨까? 자신의 식당인 까닭에 행동이 자연스러우며 손님에게 말을 거는 것도 편안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말을 걸거나 상대의 대답에 리액션을 하는 것도 훨씬 부담 없이 할 수 있고 말이다.

당신이 어색한 침묵으로 고생했던 소개팅을 떠올려 보자. 혹시 '손님'의 입장에서 우물쭈물하며 시간을 보내진 않았는가? 옷가게를 하는 내 지인 P양도 자신의 가게에선 손님에게 달라붙어 칭찬폭격을 하느라 정신없지만, 다른 가게에 쇼핑하러 가서는 묵묵히 자신이 살 옷만 고르기 마련이다. 평소의 자신과 소개팅에서의 자신이 너무 달라 어려운 대원들이 있다면, '손님'이 아닌 '주인'의 마인드를 가져보길 권한다. 


3. 그게 아니라면, 과묵해도 괜찮다


모든 대원들이 소개팅에 나가 '주인'의 마인드를 가지고 '검지약지'얘기를 할 필요는 없다. 과묵한 성격을 가지고 있거나 평소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스타일이라면, 무리하면서까지 말을 많이 하려 노력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무리한 개그콤보로 인해 좋지 않은 상황을 만들거나, 준비해간 말을 다 한 후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패닉상태에 접어들 수 있다.

위에서 한 이야기들은 긴장감 때문에 자신의 매력을 보여주지 못하거나, 침묵을 없애야 한다는 강박에 평소 자신의 모습과는 달리 행동하는 대원들을 위한 것이다. 그런 문제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외워간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말이 많은 사람이 있는 반면 말이 적은 사람도 있듯, 과묵한 것은 당신의 특징이 될 수 있다. 그게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 정도가 아니라면, 당신이 상대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고개를 끄덕거리거나 살며시 웃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화'가 가능하다. 당신에게 맞는 장르가 '멜로'라면, 애써 '코믹'연기를 할 필요는 없단 얘기다.

단, 당신의 과묵함을 상대가 알아서 이해해 주길 바라진 말자. 당신의 친구들이야 당신을 오래 겪어 왔기에 당신의 과묵함에 대해 잘 알고 있겠지만, 상대는 당신을 이제 막 알아가려는 사람이지 않은가. 그 상황에서는 '침묵'이 부정적인 의사표시로 오해받을 수 있고, '과묵함'이 불편함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오해가 없도록 알려주길 권한다. 그렇다고 "제가 원래 말이 별로 없어요. 원래 그런 거니까 신경 쓰지 마시고, 숙희씨 하고 싶은 얘기 하세요."라며 책임을 떠넘기란 얘긴 결코 아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이야기 하자면, 어색한 침묵으로 소개팅을 도배해 놓고, 소개팅이 끝난 후 그 실수를 만회하겠다며 문자나 전화, 메일 등으로 연락의 폭격을 가하진 말자. 소개팅 자리에서 보여준 자신의 모습이 평소와 달리 너무 긴장하고 얼어있던 모습이었다며 어떻게든 자신의 유쾌함과 유머러스함을 보여주려는 대원들이 있는데, 그러지 말자.

내가 당신과 소개팅을 한 상대라고 가정해 보자. 당신 앞에서는 안경을 치켜 올리고, 코를 만지고, 입에 침 바르는 모습만 보여줘 놓고, 몇 시간 후에는 전혀 다른 사람인 듯 변해 연락을 한다면 당신은 혼란스럽지 않겠는가? 게다가 "아까 그게 제 진짜 모습이 아니고, 이게 제 모습이에요. 아까 모습은 잊어주세요."라는 멘트는 별로 다가가고 싶지 않은 느낌마저 준다.

만약 당신이 '어색한 침묵'을 '실수'로 생각한다면, 그 실수의 만회는 되도록 다음 번 얼굴을 볼 때 하도록 하자. 그렇지 않으면 만나선 '과묵남', 연락할 땐 '수다남'이라는 인식이 생길 수 있다. 만회를 빌미로 애프터 신청을 하는 것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자, 그럼 다음 매뉴얼에선 '애프터 신청'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며 우리는 여기서 손을 흔들자. 오늘 소개팅이 있는 대원들은, 상대에게 초대받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상대를 초대한다는 생각으로 임하길 바라며, 모두 블링블링한 후라이데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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