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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이성과의 대화, 지루하지 않게 이어나가려면?

by 무한 2011. 6. 24.
오래 전에 소개한 적 있는 '노부부와 오징어'의 이야기를 기억하는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 든 노부부가 생의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기차여행을 떠났는데, 그 기차 안에서 오징어를 나누어 먹다가 할아버지는 사실 오징어 몸통보다 다리를 좋아한다는 것을, 할머니는 오징어 다리보다 몸통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노부부는 그것도 모른 채 그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상대가 더 좋아할 것이라 생각해, 늘 할머니는 몸통부터 할아버지께 드리고, 할아버지는 다리를 더 좋아하지만 할머니가 다리를 좋아하는 거라 생각해 양보해왔다는 이야긴데, 아무튼 오징어가 중요한 게 아니고, 그렇게 수십 년을 함께 산 부부라고 해도 '말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부분'이 생긴다는 요점만 챙기면 되겠다.

자, 그럼 이 '말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는 '말'을 해야 하는데, 이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평소 글을 쓸 일이 별로 없는 사람이 백지를 대하면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것처럼,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일이 별로 없는 사람들 역시 '꼭 말을 해야 하는 자리'에 앉을 경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헛소리'를 하게 되거나, 주제에서 계속 벗어나 전력질주를 하는 '삼천포 레이스'를 벌이게 된다.

글 몇 줄 읽어 '대화'에 관한 부분을 마스터 하려는 대원에겐 "그건 오늘 헬스장 등록해서 기구 사용법을 배워놓고, 내일 몸짱이 되어 있길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 아래에서 할 이야기들은 '기구 사용법'과 같다는 것과 머리로 잘 알고 있더라도 반복과 숙달의 과정이 생략되면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미리 알리며, 출발해 보자.


1. 주인공 의식이 없다면, 대사도 없다.
 

말하기 보단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스타일이네 뭐네를 떠나서, 그대가 이미 '주인공'이 되기를 거부했는데, 어찌 많은 대사를 할 수 있겠는가? 소개팅 하는 상대와 밥을 먹으러 가서도 이미 남의 집 온 듯 쭈뼛거리며 몸둘바를 몰라 하는데 무슨 드라마가 나올 수 있겠느냔 얘기다. 

화술이고 화법이고, 그대가 가장 먼저 가져야 할 것은 '주인공 의식'이다. 주인공 의식이 없다면, 달변가가 되더라도 주어지는 역할은 '조연' 뿐이다. 어느 자리에서나 주인공이 되기 위해 노력하라는 얼빠진 얘기가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엔 드라마가 하나 있고, 그 드라마에는 주인공이 하나 있는데, 그대 인생의 주인공은 그대가 되란 얘기다.

왜 그대는 그대의 드라마를, 시청자처럼 바라보고 있는가?

그대보다 머리가 좋거나, 돈이 많거나, 재능이 다양하거나, 외모가 뛰어난 사람들은 많다. 그래서? 그게 뭐? 그런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고, 그대는 그대다. 난 요즘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내 그림실력으로 말할 것 같으면 손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정형외과를 찾아가 봐야 하는 수준이다. 그래서? 그게 뭐? 내 그림실력이 어떻든,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데 움츠러들 이유는 무언가?

남의 눈을 의식하다보면 눈치만 보다가 인생이 끝난다. 주변을 의식하느라 머뭇거리고, 쭈뼛거리고, 망설인 일은 얼마나 많은가! 발로 그린 것 같은 엉터리 그림도 꼬꼬마 시절엔 액자에 넣어 집에 걸어 두었지만, 이제는 미술을 전공한 사람을 제외하곤 거의 모두가 자신의 그림을 집에 걸어두지 않는다. 자신의 그림이 걸려있어야 할 자리에, 유명한 '남의 그림'을 걸어두려 할 뿐이다.

대사를 잊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시청자의 입장에서 살고 있으니 대사가 없는 거다. 내 드라마에 남을 주인공으로 앉혀 놓고 박수만 치고 있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런 상황에서 아무리 화술을 익히고 화법을 배워봐야 '남의 드라마' 얘기 말고는 할 게 없다.

실수를 해도 좋고, 어설퍼도 좋고, 누군가 비웃어도 좋으니, 당신의 드라마에 집중하자. 당신은 그 드라마의 주인공이고, 그 누구를 만나도 '주인공 대 주인공'으로 만나는 거다. 그 누가 당신에게 뭐라고 하든 당신은 주인공이다. 세상사람 모두가 당신에게 '넌 그저 조연감이야.'라고 손가락질 하더라도, 그대가 그대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다는 걸 잊지 말자.


2. 한국어 원어민(응?)


며칠 전 내 메일함에 사연인 척 도착한 스팸메일을 열어보니,

"이 강좌를 2개월 수강하면 원어민과 기본적인 대화를 할 수 있고,
4개월 들으면 외국 여행시 현지인과의 대화에 전혀 지장이 없는 실력이 갖춰집니다.
1년 코스를 수강하시면 세세한 감정까지 표현할 수 있게 됩니다.
일단 방문하셔서 확인해 보세요."



라는 메일이 와 있었다. 하버드와 옥스퍼드 등 세계 어느 대학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는 영어를 가르쳐 준다는 문장을 읽으며,

'얘..얘들은 대체 뭐..뭘 가르치려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드는 메일이었는데, 여기서도 영어가 중요한 게 아니고, 저 위에 옮겨 놓은 광고 내용 중 우측에 있는 문장들을 유심히 보면 '언어구사'에 대해 세 단계로 나눠 놓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1. 기본적인 대화
2. 현지인과의 대화에 전혀 지장이 없는 실력
3. 세세한 감정까지 표현



자, 위의 '언어구사의 단계'를 '영어'가 아닌 '한국어'에 대입해 보자. 그대는 몇 단계의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가? 누군가와 계속해서 말을 해야 하는 직업을 가졌거나, 오프라인 모임이 활성화 되어 있는 커뮤니티에 오랜 기간 참여했거나, 다양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취미인 사람이 아닌 이상 대부분 1, 2단계의 한국어 구사실력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럼, 이미 답은 나온 것 아닌가. 3단계 '세세한 감정까지 표현'의 레벨에 도달하려면 다양한 사람들과 말을 많이 해야 한다. 사람과 마주할 일이 별로 없는 동선을 정비하고, 낯선 사람과 대화 하는 것에 겁먹지 않고 계속 부딪히며 배우는 수밖에 없다.

그대가 최근 누군가에게 사과나 칭찬을 하거나, 고마움을 표현한 것은 언제인가? 그게 일주일 이상 지났다면, 그대의 '한국어 구사실력'엔 벌써 녹이 슬고 있을 것이다. 정말 필요한 순간에 녹슨 연장을 탓하지 않도록, 늘 가까이 두고 손보자.


3. 운전 잘하기와 말 잘하기의 공통점


그대가 '운전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고속 주행시 위기대처 능력이 뛰어난 것? 아니면, 불가능해 보이는 공간에 주차를 하는 것? 뭐, 여러 가지 대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일산지역에서 31년 째 학원차 운전을 하고 계신 황봉고(가명, 57세)씨는 '운전을 잘한다는 것은?'이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옆에 탄 사람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차를 모는 것."


말도 마찬가지다. 대화하고 있는 상대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말을 잘하는 것'이란 얘기다. 웃긴 얘기 몇 개 외워 풀어 놓거나, 익숙하지도 않은 애드립을 연습해 시험 삼아 해 보는 것 따위론 절대 말을 잘 할 수 없다.

우선, 위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그대의 긴장부터 풀자. 갈빗집에 다녀온 사람에겐 고기 냄새가 진동을 하듯 긴장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선 감추려 해도 긴장의 냄새가 진동을 한다. 손이 덜덜덜 떨리고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라는 건 아니다. 떨리면 떨린다고 얘기하자. 떨리는 걸 참으려 하면 더 어색해 진다. 그대가 긴장했다는 걸 상대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그대의 긴장은 반으로 줄 것이다.

대화가 잠시 막혔다고 해서 다른 이야깃거리를 찾느라 상대를 혼자 두지도 말자. 아이스커피를 마시다가 대화가 끊겼다고 해서 얼음만 씹어대지 말고, "얼음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이라도 던지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 냉동실에 꽁꽁 얼어 있는 얼음에 호기심을 느낀 경험이 있으니, 그런 일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지금 얘기하긴 좀 그렇고, 좀 더 친해지면 '얼음에 얽힌 슬픈 이야기'를 해 준다고 하자.

"전 얼음에 얽힌 슬픈 이야기 같은 게 없는데요?"

라고 말하는 대원들은 반성하자. 지금 얼음 따위가 중요한가. 더 친해지는 것이 중요하지. 드라마 예고편을 보면 항상 다음 주에는 뭔가 대단한 일이 일어날 것 같지만, 결국 다음 주 드라마 에서는 그 다음 주 드라마에 더 대단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고만 보여주며 끝난다. 내가 이 매뉴얼을 화요일에 올리려고 했다가 금요일인 오늘 올리는 이유도, 다 그 예고편 때문이다. 예고편의 강력한 힘을 활용하자.

무엇보다, 집중하자. 집중이 곧 경청이고, 집중해야 상대의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으며, 집중만이 '상대'라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알 수 있는 방법이다. 전에 얘기한 '링컨과 경청'에 대한 이야기를 기억하는가? 링컨이 많은 사람들에게 "링컨은 내가 만나 본 사람 중 가장 말을 잘 하는 사람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건 단 하나의 이유에서였다. 링컨은 자신과 대화를 하는 사람에게 집중했고, 상대의 말을 경청했다.


농구 경기를 수백 편 감상하고, 농구 이론서를 외울 정도로 읽었다고 해도 농구공을 손에 잡아 본 일이 없다면 골을 넣기 힘든 법이다. 대화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주인공 의식이나 언어 구사능력, 그리고 경청과 집중에 관한 것은 몸에 익어 있지 않는다면 머리로 백날 알고 있어도 실제 상황에서 활용하기 어렵다.

농구를 하려면 농구 골대가 있는 곳을 찾아가야 하는 것처럼, 대화를 잘하고 싶다면 누군가를 만나 대화하며 익혀야 한다. 낯모르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처음엔 시도하기 어렵겠지만, 그 한 번만 시도해 성공하고 나면 그 이후엔 밥을 숟가락으로 퍼서 먹는 것보다 쉬울 것이다. 오늘 당장 편의점에서 마주하는 직원에게든, 경비원 아저씨에게든,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던 친구에게든 말을 걸자. 오늘 어렵다며 미룬 일은 내일도 어렵고, 모레도 어렵다. 오늘 시작하자.




▲ 예고한 '최후의 방법' 매뉴얼은 다음 주에 업로드 됩니다. 전 나쁜 남자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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