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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커플생활매뉴얼

연애를 막 시작한 남자들이 꼭 알아야 할 것들

by 무한 2011. 10. 6.
연애를 막 시작한 남자들이 꼭 알아야 할 것들
E군에게 먼저 축하의 인사를 건넨다. 곧 연애를 하게 될 것 같다는 E군의 말에 나도 동의한다. 사연에 첨부한 E군과 상대의 '깨알 같은 카톡대화'를 보면, 이미 상대는 '연애 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남들이 보면 '쟤들 미쳤나?'싶을 정도의 상황극까지 문자로 벌이는 건, 이미 호르몬이 파티를 시작했다는 증거다. 마님, 공주님, 뭐 고따위 말들로.

둘은 10월 8일에 횡성 한우축제, 10월 13일에 에버랜드에 갈 예정 이라고 한다. 그리고 에버랜드에서 돌아온 날  저녁, E군은 상대와 칵테일 바에 가서 "음, 할 얘기가 있어..."라며 고백을 할 거라고 한다. 깨알 같다. 깨알 같아. 이 글을 읽는 솔로부대원들은 또,

"나도 한우 먹을 줄 아는데..."


라며 얼어붙은 휴대폰을 볼 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참자. 그대도 먹게 될 거다. 한우.

여하튼, 'ㅋㅋㅋ'가 가득한 E군의 사연을 읽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들떠 있는 E군에게, 해가 지면 저녁이 올 거라는 얘기를 해 주어야지. 
어둠이 와도 겁먹지 않도록 랜턴을 챙기라고 말해줘야지.



그래서 준비했다. 연애를 막 시작한 남자들이 꼭 알아야 할 것들. 알아두지 않으면, 나중에 저녁이 왔을 때 "보채지 마. 캄캄해서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 왜 너까지 난리야."라는 얘기도 할지도 모르는 것들. 랜턴을 챙기는 야영객의 마음으로 살펴보자.


1. '생활'이란 땅에 발을 디뎌라.


연애를 시작하면 누구나 들뜬다. 여행을 떠날 때의 흥분. 거기 있는지 몰랐던 가로수까지도 반갑다. 두둥실. 날아오르는 기분이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에겐 날개가 없다.

그대가 하늘에 떠 있는 건 분명하지만. 날고 있는 건 아니다. 감정의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날리고 있을 뿐이다. 많은 대원들이 '날고 있다'고 착각한 채,

우리
내일은 뭐 할까?
주말엔 어디 갈까?
뭐 먹을까?
괜찮아
회사엔 아프다고 하면 돼.
그건 나중에 해도 돼.



따위의 이야기만 한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추락사로 연애를 마감한다. 특히 연애의 '현실도피기능'에 심취했던 대원들이 가장 처참하게 추락한다. 그들은 물을 좀 마시려고 땅에 발을 디딘 상대에게 이렇게 외친다.

"그러지 마. 우린 날고 있잖아. 물 따윈 안 마셔도 돼. 그냥 어서 다시 와!"


집착이다. '생활'이란 땅에 발을 디디지 않고는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는 법이다. 그런데 그들은 땅에 발 디디려 하는 상대에게 화를 내거나, 서운함을 전달한다. 그렇게 이별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E군의 사연을 읽다가 마음에 걸리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E군과 곧 연애를 할 것으로 보이는 상대는, '무료했던 내 생활에 활력소가 찾아왔어.'라는 기분으로 E군을 받아들이는 듯하다. 그런데 E군은 '거의 다 됐어. 이제 고백해서 승낙만 받으면 연애 시작이야. 시작만 하면, 다 달라지겠지.'라며 벼르고 있다. E군은 땅에서 발을 뗄 준비만 하고 있는 것이다. 명심하자. 땅에 발을 붙이지 않으면, 한우고 에버랜드고 죄다 바람일 뿐이다. 불고 나면 없어지는.


2. 상대에 대해 공부하라.
  

난 머지않아 그대가 여자친구에게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발견하게 되리라는 데 내 신한은행 통장을 건다. 현재 콩깍지가 얼마나 씌었냐에 따라 기간만 다를 뿐, 그대는 분명히 상대의 '이상한 성격'이나 '이상한 사고방식'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대가 발견할 그것들은 사실 '이상한'게 아니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상대에게 의학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이런 사연이 있었다. 사귄 지 몇 달 되지 않은 커플의 사연이었는데, 남자는 전화할 때마다 여자친구가 "어, 왜?"라고 묻는 것에 대해 심통이 나 있었다. 연인사이에 용건이 있어야만 전화를 하는 게 아닌데, 그녀는 전화 할 때 마다 "어, 왜?"라며 '왜 전화 했냐'는 뉘앙스를 풍긴다는 거였다. 그래서 남자는 일부러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 일종의 확인이며, 복수였다. 그러나 남자의 예상과 달리 여자친구는 먼저 전화를 했다. 여자친구의 마음을 확인한 남자는 여자에게 '전화하면, 항상 용건을 묻는 것 같아서 서운했었다'는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그 말에 여자친구는 "아 그래? 미안. 습관이야."라는 허탈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위에서 예로 든 사연은 '3 * x = 15일 때, x 값은?' 정도의 쉬운 문제다. 실제로 연애를 시작하게 되면, 수 없이 많은 '미지수'들이 나오는 문제를 풀어야 한다. 바로 그 때, 상대를 공부해 알아낸 값들이 '미지수'의 값을 채워준다. 상대에 대한 공부 없이, 그저 영화 보고, 밥 먹고, 손잡고 걷기만 했다면 훗날 구해야 할 '미지수'  개수에 겁먹고, 풀기를 포기하게 될 것이다.

잊지 말자, 모르면 풀 수 없다.


3. 거위의 배를 가르지 마라.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이야기는 다들 알 거라 생각한다. 매일 하루에 하나씩 황금알을 낳는 거위. 욕심 많은 노부부는 한꺼번에 황금을 얻으려 거위의 배를 가르고 말았다.

아쉬운 게 정상이다. 연애를 시작하면 당연히 계속 만나고 싶고, 보고 싶고, 만지고(응?) 싶다. 늘 아쉽고,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다. 그런 느낌이 들 때마다 모두 채우려 들진 말길 권한다. 오래 전 지구별에 살다간 사람들이 말하길, 꽉 차면 줄어들 일만 남는다고 했다. 꽃이 다 피면 지기 시작한다고도 했다. 한꺼번에 황금을 얻으려 하면, 거위는 죽고 만다.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그 거위가 아니다.)

전력질주를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또 있다. 그건 '호의'의 반대가 '악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법상으론 '호의'의 반대가 '악의'지만, 연애문법에선 좀 다르다. 연애문법에선 이와 관련해, '아홉 번 못하다 한 번 잘하면 기특한 놈, 아홉 번 잘하다 한 번 못하면 죽일 놈'이란 항목이 있다.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대원들은,

"그런 거 필요 없어요. 전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다 잘 할 거니까요."


라고 얘기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원들, 루이비통이 왜 세일을 하지 않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길 권한다. 세일을 하면 더 많이 팔 수 있을 텐데 왜 세일을 하지 않는지. 세일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왜 여전히 '똥가방! 똥가방!'을 외치는 사람들이 많은지.


상대에게 '오빠'소리 들었다고 정신줄 놓은 대원들이 많길래 이렇게 글을 적게 되었다. 이렇게 구구절절 이야기를 해도, 결국은 그대가 일을 저지르고 말 거라 생각한다. 그리곤 훗날 "그땐 왜 이 글이 눈에 안 들어왔을까요."라며 구조신호를 요청할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프랭크(알 파치노)는 말하지 않았는가.

탱고는 실수할 게 없어요.
인생과는 달리 아주 단순하죠.
탱고는 정말 멋진 겁니다.
만일 실수를 하면 스텝이 엉키고

그게 바로 탱고죠.

- 영화 <여인의 향기> 중에서


자, 그럼, 추실까요?



▲ <여인의 향기> 안 보신 분은 꼭 보세요. 두 번 보세요! 추천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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