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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마음에 드는 여자와 친해지기, 물음의 기술.

by 무한 2011. 10. 18.

'마음에 드는 여자와 친해지기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는 사연이 도착했다. 무려 40페이지짜리 사연이다. 지난 주 발행한 [연애 경험 없는 남자의 착각이 부르는 큰 실수들]의 J씨처럼, 이 사연의 주인공(편의상 A씨라고 부르자.) 역시 '모르는 여자사람'에게 한동안 눈길만 보내다 연락처를 알아냈다. 하지만 거의 비슷한 도입부를 가진 두 이야기의 결말은 전혀 다르다. 대체 어떤 요인들이 이 둘의 이야기를 정반대로 이끌어 간 것일까?

난 두 사연을 대조하며 '물음의 기술'이란 차이점을 발견했다. 무엇을, 어떻게, 왜 묻느냐에 따라 두 사연의 결말이 달라진 것이다. 물음의 기술에 대한 이야기, 바로 시작해 보자.


1. 뭘 묻느냐.



지난 주 J씨 사연에 등장한 "근데 결혼 하셨죠?"라는 멘트. 그 멘트에 대해 몇몇 독자 분들이

"결혼 했냐고 묻기 보다는 남친 있냐고 묻는 게 낫다."
"아니다. 남친 있냐고 묻기 보다는 남친 없냐고 묻는 게 낫다."
"남친 없냐고 물어보면 여자가 '남친 없어 보인다'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 별로다."
"'남친 있으시죠?'보다는 '남친 있으신가요?'라고 묻는 게 낫다."
"꼭 남친이 있는지, 결혼했는지 물어봐야 하는가?"

 

등의 의견을 남겨 주셨다. 그렇다면 '좋은 예'가 되는 사연을 보낸 A씨는, 언제 저 질문을 했을까? 10월 초에 상대와 첫 문자를 주고받은 A씨는, 지금까지도 '남자친구 유무'에 대해 상대에게 묻지 않았다. 이 얘기를 듣곤 "아니, 그랬다가 만약에 여자에게 남자친구가 있으면요?"라고 묻는 대원들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엔 꼭 묻지 않고도 알 수 있는 일들이 있는 법 아닌가. 이를테면, 올해엔 꼭 면허증을 따려고 한다는 상대에겐 아직 차가 없음을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 A씨는 상대의 나이도 묻지 않았다. 그는 그저 동네에 대한 얘기, 그녀가 시청 중이라는 TV프로그램에 대한 얘기, 불꽃축제와 관련된 카메라 얘기 등을 했을 뿐이다. 그렇게 3일 쯤 대화를 나누었을 때, 상대 여자사람이 먼저 A씨의 나이를 물었다. 연애에 소질이 없는 대원들이라면 "근데 혹시 저랑 얘기하는 게 불편하진 않으세요?"라거나 "저 같은 사람은 남자친구로 어때요?"라며 들이대고 떠봤겠지만, A씨는 그러지 않았다.

A씨가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에 주목하길 바란다. 한 문제 풀고 답안지 체크하고, 또 한 문제 풀고 답안지 체크하듯 상대를 대하지 않았다는 것. 또, "뭐해요? 뭐 먹었어요? 뭐 좋아해요?"라며 상대를 공략하려 들지 않았다는 것도 기억하자. A씨는 그저 편하게 대화를 한 거다. "난 이런데, 넌 어때?" 정도로 말이다.


2. 어떻게 묻느냐.



A씨의 사연을 '좋은 예'라고 한 또 다른 이유는, 설레는 '첫 연락'을 한 다음 날에도 A씨가 들뜨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솔로부대원들이 '첫 연락'을 한 다음 날에는 아침부터 들떠 연락을 한다. "출근하셨어요? 전 지금 막 집에서 나왔어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따위의 연락으로 말이다. J씨가 '첫 연락'을 한 다음 날 보낸 문자를 기억하는가?

"제 생각 하면서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아 잠깐, 눈물 좀 닦고.

상대에게 궁금해 할 시간을 주자. 어제 처음으로 생활에 '끼어들기'를 한 그대를, 상대도 궁금해 한다.  그대가 손을 흔들거나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상대는 그대의 존재를 충분히 안단 얘기다. 이제 상대와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다는 기쁨에 뛰어나가고 싶겠지만, 좀 기다리자. 매뉴얼을 통해 계속 강조하지 않았는가. '내 템포'에 상대를 맞추는 게 아니라, '상대 템포'에 나를 맞춰가는 거라고.

A씨는 전 날 상대와 나눈 대화를 통해, 상대가 외식업체에 근무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즈음해 이런 문자를 하나 보냈다.

"오늘 회사에서 점심메뉴는 제가 결정하기로 했어요!
지연씨도 점심 드셔야죠~
근데 **에서 근무하면, 맛있는 거 매일 나오는 거예요?"



자연스레 회사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는 좋은 질문이다. 이렇게 멘트만 갖다 놓으면 평범해 보일지 모르지만, ⓐ"점심 맛있게 드셨나요? 전 점심 먹었더니 졸리네요."라거나 ⓑ"전 이제야 점심 먹네요. 지연씨는 점심 뭐 먹었어요?"라는 멘트들과 비교해 보면 훨씬 훌륭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상대는 ⓐ 문자엔 "네."정도의 단답형 대답을, ⓑ 문자엔 "동태찌개 먹었어요."정도의 대답을 하게 된다. 그럼 또 그 답을 받은 솔로부대원들은, '철벽녀 스타일이군. 단답형 대답이라니, 무슨 얘길 어떻게 더 해야 하지?'라거나 '동태찌개가 맛있었냐고 물어볼까? 아니면 어디서 먹었냐고 물어볼까?'라는 고민을 하며 침몰한다.

같은 질문이라도, '어떻게 묻느냐'에 따라 대답이 달라진다는 걸 잊지 말자.


3. 왜 묻느냐.



마음에 드는 상대와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을 경우, 솔로부대원들이 상대에게 흔히 하게 되는 질문들은 아래와 같다.

ⓐ 이번 주말에 뭐해요?
ⓑ 오늘 몇 시에 끝나요?
ⓒ 영화 <뭐뭐뭐> 봤어요?


질문의 목적은 'ⓐ주말에 만나려고. ⓑ끝나고 만나려고. ⓒ영화 같이 보려고.'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는 법이니, 약속을 잡기 위해 질문을 하는 게 잘못된 건 아니다. 하지만 '약속을 잡기 위해서만 질문을 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A씨가 빛나는 건, '약속을 잡기 위해서만' 질문을 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A씨도 위와 비슷한 질문을 하긴 했다.

ⓐ 주말엔 주로 뭐해요?
ⓑ 항상 이 시간에 끝나요?
ⓒ 영화 <뭐뭐뭐> 봤어요?



하지만 질문 이후에 이어진 대화를 토대로 '목적'을 살펴보면, 'ⓐ상대가 주말에 뭘 하는지 알기 위해 ⓑ늦은 퇴근시간에 대한 상대의 불평을 들어주기 위해 ⓒ상대가 좋아하는 영화 장르와 상대의 감상을 듣기 위해'였다.

'내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상대에게 질문을 한 게 아니라, '상대'에 대해 알기 위해 질문을 했다는 거다. 그리고 그 질문에 상대는 귀여운 수다쟁이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껏 풀어 놓았다. 그 이야기에 A씨는 모조리 외울 기세로 집중했고 말이다.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내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질문을 던지던 대원들의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는 말은, 상대에게 '에휴, 저래놓고 또 무슨 수작을 부릴려고?'라는 생각을 부른다. 하지만 '상대'에 대해 알기 위해 질문을 던지던 A씨의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는 말은, 상대에게 '아, 나 곧 연애할 것 같아!'라는 생각을 부른다. 


오늘 글의 마무리는, 어제 발행한 매뉴얼에 달린 댓글들에서 발견한 '오해'에 관한 이야기로 대신할까 한다. 난 정말 여리고 순진하고 순수하기 때문에, 어제 달린 댓글들을 보고 오늘 아침까지 울었다. 

ⓐ 은진양에게 쪽지를 왜 보낸 거죠?
 - 쪽지를 보냈다는 건, 훼이크였다. 마지막에 '90년대식 반전'이라고 쓴 것처럼, 본 내용과 관련 없는 부분을 살짝 비틀었을 뿐이다. 원래 앞부분에 '은진'씨에 대한 설명을 좀 지우고 뒤에서 "은진아. 남자친구가 눈치 챈 것 같아. 앞으로 우리 폰으로만 연락하자."라고 쓰려고 했는데, 그럼 너무 많이 손대야 해서 뒷부분만 살짝 비틀었다. 노멀로그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충분히 오해하실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 남의 사연을 공개적으로 이렇게 밝히는 거 문제 아닌가요?
- 늘 얘기하지만, 사연은 철저한 각색을 통해 재구성 한 뒤 올린다. 사연에서 '문제'만 고르고 나머진 모조리 다 바꾸려 노력한다. 그래서 가끔 사연의 주인공도 자신의 문제를 다룬 매뉴얼에 "쯔쯔.. 저런 사람들이 있다니, 정말 문제네요."라는 댓글을 달기도 한다.
 
ⓒ 이 블로그 주인은 보상심리나 영웅심리가...
- 사실 이 '오해에 대한 답글'을 적고 나서 "아 진짜, 이렇게 깨알같이 오해도 풀어주고, 나 너무 친절해!"라며 드립을 한 번 하려고 했는데, 댓글을 읽고 나니 망설여진다. 그렇게 보일 수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매뉴얼을 발행하는 '무한'이라는 건 일종의 캐릭터다. 이 부분에 대해선 긴 얘기가 필요할 거라 생각하는데, 점심을 먹어야 하니 설명할 시간이 없고, 또,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아 예, 맞습니다. 제겐 그런 모습이 분명 있습니다."라고 적어두겠다. 

ⓓ 비평하려면 오지 말라는 분들, 무슨 여기가 성지입니까?
- 친구란, 그런 거다. 내 친구가 맞고 있을 땐, 그대가 '별 웃기는 논리'라고 말한 걸 들고서라도 막아주려 달려드는 거다. 혹시, 친구가 없나? 농담이고, 하고 싶은 말 마음껏 하셔도 괜찮다. 웹에서라도 하고 싶은 말 마음껏 하고 살아야지. 여기서까지 주눅 들어서야 되겠는가. 욕설과 비아냥만 아니라면 삭제도 하지 않으니 마음껏 즐기시길! 아우 씐나!



아 진짜, 이렇게 깨알같이 오해도 풀어주고, 나 너무 친절해! 이게 노멀로그 스타일.



▲ 심각해 하지 마세요! 다음 핼리 혜성이 올 때, 우리가 지구에 있을 지 없을 지도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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