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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남자들이 요구하는 연애 판타지와 부작용들

by 무한 2012. 1. 16.
남자들이 요구하는 연애 판타지와 부작용들
주말에 피자를 먹으러 갔을 때의 일이다. 주문한 피자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 옆 테이블에 꼬꼬마 둘을 동반한 부부가 앉았다. 꼬꼬마들은 녀석들의 엄마가 점퍼를 벗기고 목도리를 풀어주자, 그게 신호인 것처럼 의자 위에 올라섰다. 그러곤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방방 뛰며, 테이블을 마주한 채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소란스러운 녀석들 때문에 다른 테이블의 사람들도 눈치를 주는데도, 그 부부는 아이를 앉히지 않았다. '아이들이 감정을 마음껏 분출할 수 있도록 억제하지 말아야 한다.' 따위의 육아법을 실천하고 있는 듯했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큰일에도 오순도순 얘기하며, 온순한 성품을 미덕으로 하는 안동장씨의 후손인 나에겐 충격적인 일이었다.(응?) 농담이고.

의자 위에서 뛰던 내 옆의 꼬꼬마가, 넘어지며 포크로 나를 내리쳤다. 녀석의 부모는 넘어져 울고 있는 아이의 상태만 살필 뿐, 나에게 괜찮냐고 묻지 않았다. 안타까웠다. 엄마랑 같이 왔으면 나도 의자 위에 올라서서 반격을 좀 해주는 건데.

일기는 이쯤 쓰고, 오늘은 "그 사람이 바라는 걸 다 들어줬더니, 남는 건 이별밖에 없네요."라는 사연을 보낸 대원들의 얘기를 좀 살펴보자. 아, 시작하기 전에. 루소는 말했다. "어린이를 불행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언제든지 무엇이라도 손에 넣을 수 있게 내버려두는 것이다."라고. 출발해 보자.


1. 의심 말고 신뢰를 보여 달라는 남자.


연애를 하며 여자는 사랑받길 원하고, 남자는 신뢰받길 원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믿어주는 여자, 아니 꼭 여자가 아니더라도 그런 신뢰를 보여주는 상대를 위해 남자는 보증까지 설 수 있다. 관포지교, 백아절현, 뭐 요런 얘기들 속엔 남자의 판타지가 담겨있단 얘기다.

우정 좋고, 신뢰 좋고, 다 좋은데. 왜 믿음을 요구하는 대부분의 남자들은 외줄 위에 서 있는 걸까. 내게 도착한 사연에 등장하는 '신뢰를 요구하는 남자친구'들은 하나같이 염려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 중 제일 흔한 사연은 다른 이성, 또는 옛 여자친구와 연락하는 남자에 관한 얘기다.

"정말 아무 감정 없이 친구처럼 만나는 거야.
네가 상상하는 그런 일들은 절대 일어나지 않아.
내가 거짓말 하거나 약속 안 지킨 적 있어?
제발 그냥 좀 믿어줘. 이성으로 만나는 거 아니야."



십 년 무사고 자랑한다고 사고 안 나나. 평생을 무사고로 운전했다 하더라도, 한 번 실수하면 훅 가는 거 아닌가. 교통사고를 낸 사람 중에 "오늘 사고 좀 내봐야겠다."며 시동을 건 사람이 있을까.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니 다들 조심 또 조심 하는 것 아닌가. 위험을 피하기 위해 눈이나 비가 오면 속도를 줄이고, 짐을 싣고 있는 큰 차 뒤는 피해 달리며 말이다.

동성친구와 달리 이성친구는 '가연성'이라는 위험이 있다고 말한 적 있다. 동성친구가 '물통'이라면, 이성친구는 '기름통'이다. 작은 스파크만 일어나도 활활 탈 수 있다. 기름통에 기름이 얼마나 남았나 보려고, 라이터를 켜서 확인하다 요단강을 건넌 K씨 이야기를 이미 한 적 있지 않은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벌어진 잘못을 우리는 '실수'라고 말한다. 신뢰를 요구하는 그에게, 그의 '의도'는 분명 신뢰 하지만, '의도하지 않았는데 벌어진 잘못' 즉 '실수'까지 신뢰하긴 어렵다고 말하길 권한다. "난 널 믿으니까, 너도 다른 이성을 만나."라고 말하는 상대에겐 그저 조용히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주고 말이다. 


2. 과감하게, 적극적으로를 외치는 남자.
  

동화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부부도 처음에는 거위를 얻고 기뻐했다. 거위가 매일 낳는 황금 알 덕분에 부자가 되었고 말이다. 하지만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게 사람인지라, 부부는 또 다른 욕심을 품었다.

"왜 감질나게 하루에 하나만 낳고 그래?"


부부에게 양계장 전용 LED 조명장치를 선물하고 싶다. 양계장에서 그러하듯, 거위가 밤낮을 구분 못하도록 언제나 적색 LED등을 켜 놓으면, 닭의 시신경과 뇌하수체 전엽을 자극해 난소발달이 촉진되고, 그로 인해 산란율이 8%나 높아질 테니 말이다. 또한 LED 조명은 기존 백열전구에 비해 80%의 에너지를 절감할 수도 있다.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거위를 키우는 부부가 거위 배를 가르고 싶어 하듯, 몇몇 남자들은 여자친구가 자신의 '엄마'가 되기를 바란다. 더 신경 쓰거나 노력하지 않아도 알아서 좀 잘 굴러가는 관계. 나아가 책임져야 할 일을 여자친구가 좀 더 맡아서 해주는 관계.

둘의 원활한 관계 유지를 위해서는 서로에게 맞춰가는 노력이 분명 필요하지만, 손대지 않아도 지속되는 관계가 되는 것은 위험하다. 상대가 무언가를 요구하거든, 그 요구가 두 사람 사이에 꼭 필요한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길 권한다. 상대의 요구를 들어준 뒤 '배 갈린 거위'와 같은 처지가 되어 버린 대원들은, 대부분 '상대 혼자 원하는' 요구들을 들어준 후 그렇게 되었으니 말이다.


3. 무조건적인 지지와 응원을 해달라는 남자.


그간 보여준 모습에 책임감이나 성실함이 있었다면, 왜 지지와 응원을 하지 않겠는가. 무조건적인 지지와 응원을 해달라는 남자들은 종로에서 뺨을 맞고 돌아온 경우가 많다.

"안 그래도 힘든데, 왜 너까지 그래?"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의 소설에 "극빈 상태에 이르면 자기가 먼저 자신을 모욕하려 드니까요."라는 문장을 적었는데, 내 생각엔 그 극단에 이르기 전 들르는 코스가 하나 더 있는 것 같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기 시작한다."

괜히 문장으로 적었다. 비교되게. 여하튼 남자친구가 무조건적인 지지와 응원을 해달라는 요구를 하더라도, 절대 그 요구를 들어주지 말길 권한다. 그랬다간 그대는 순식간에 '여자친구'에서 '팬클럽 회장'의 자리로 옮겨진다.

대신 그에게, 연인은 함께 서로의 비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자. 그대가 "어디 한 번 해봐. 잘 하나 못 하나 내가 볼 테니."라며 뒷짐 지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것이다. 그의 요구대로 '팬클럽 회원'이 될 것이 아니라, 그가 느끼고 있는 책임감과 부담감을 좀 덜어주는 편이 낫다. 방전상태에 있는 남자들이 흔히 위와 같은 모습을 보이니, 그런 남자는 '충전' 시켜주자.


영화 <부당거래>에 나왔던 대사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보다 좀 더 날카로운 문장을 하나 만들어 보고 싶었는데, 어렵다. 어떤 꾸러기가 쓴 문장인지 참 단단하다. 위에서 얘기한 '상대의 연애 판타지'들을 열심히 만족시키다 보면, 어느 순간 그 판타지를 당연한 듯 여기고 있는 상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조심히 다루지 않으면 깨질 위험이 있는 유리컵은 누구나 주의해서 다루지만, 던져도 부담 없는 강철그릇은 다들 막 다루는 법이다. 아, 그리고 위에서 소개한 대사 뒤엔 이런 대사가 이어진다.

"상대방 기분 맞추다보면, 우리가 일 못한다고. 알았어요?"


일만 못하는 게 아니다. 그러다보면, 연애도 못한다. 자동기어는 수동기어에 비해 확실히 편하다. 알아서 기어가 바뀌니 손 댈 일이 없다. 손 댈 일이 없다. 손 댈 일이. 알았어요?



▲ 추천 버튼 안 누르면, 일을 못한다고요. 알았어요? 월요일을 어금니로 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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