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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개인, 집안 사정으로 차인 사람들. 진짜 이유는?

by 무한 2012. 1. 19.
개인, 집안 사정으로 차인 사람들. 진짜 이유는?
어제, 우리 집에서 가사를 담당하시는 아주머니(라고 쓰고 엄마라고 읽는다)께서 TV에서 본 이야기라며 '힐러리'의 얘기를 해 주셨다.

엄마 - 힐러리 있잖아. 클린턴 대통령 부인.
         힐러리가 클린턴하고 주유소엘 갔대.
무한 - 르윈스키 얘기도 나와?
엄마 - 들어 봐봐. 아무튼 주유소에 갔는데,
         거기 주유소 사장이 힐러리 예전 남자친구였대.
         기름 넣고 나오는데, 클린턴이 힐러리한테 그러더래.
         저 남자하고 결혼했으면, 지금쯤 주유소 사장 부인이 되었을 거라고.
         그랬더니 힐러리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알아?
         내가 저 사람하고 결혼했으면,
         저 사람이 지금쯤 미국 대통령이 되었겠지요.
그랬대.
무한 - 한국말로? 힐러리가 한국말 잘하나 보네?     


         
주유소 사장 바보 만들어 가며 둘이 서로 지 잘났다고 한 얘기를, 이렇게 나르는 것이 못마땅하긴 하다. 하지만 연인에게 이별의 말을 듣곤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대원들이 많기에 이렇게 옮겨서 적어 두었다. 상대에게

"너한텐 비전이 보이지 않아."
"미안하지만, 너희 집 사정,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네가 싫은 건 아니지만. 부모님의 반대도 있고,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고."



죠따위 이야기를 듣고 살아갈 희망을 놓은 대원들. 먼지 타게 희망을 바닥에 내려 놓지 말고, 얼른 다시 손에 쥐길 바란다. 저건 그럴듯하지만 '반토막'인 얘기들이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다가, '나'와 '너'로 다시 분리되며, '너'에 대한 이야기만 한 거란 얘기다. 나머지 반토막, 그러니까 '너'가 아닌 '나'의 이야기를 대신 좀 적자면 아래와 같다.

'너랑 계속 사귀긴 내가 아까워.
난, 너보다 괜찮은 사람이랑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방황을 시작하기 전에, 저 '나'에 대한 이야기를 곰곰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 저렇게 생각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대에게

"그럼 우리가 함께 한 시간들은 뭐야? 오빠는 왜 날 사랑한다고 했어?"


라는 말을 들어봐야. "미안해." 말고는 할 말이 없다. 착한남자로 남고 싶어 "지금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야. 사랑해. 하지만 감당할 자신이 없어." 따위의 얘기를 할 수는 있다. 그럼 또 그 얘기를 들은 그대는 "노력해 보자. 같이 감당해 보자. 오빠. 다시 한 번 생각해 봐. 내가 더 잘 할게."라며 매달린다. 그렇게 매달리는 그대를 보며 드는 생각은, 안타깝게도,

'내가 아까운 게 점점 분명해지는 것 같아.'


일 뿐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매뉴얼을 통해 그간 계속 "마음의 수도꼭지를 잠그세요. 쫓지 말고 도망가세요. 묻지 말고 묻으세요."라고 이야기를 했으나, 여전히 대부분의 대원들은

"이유라도 듣고 싶어요."
"끝났다는 걸 확인받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라는 이야기를 한다. 유효기간이 이미 한참 지난 옛 추억들. 함께 갔던 곳, 상대가 했던 말, 둘이 보낸 밤, 그냥 즐겁던 순간들, 함께 의미부여한 사물들, 그런 것들을 손에 가득 쥐고는 늪으로 빠져든다. 숨을, 숨을 쉬기가 힘들 정도로 괴로워진다. 세상이 회색빛으로 변한다. 믿어지지 않고 믿고 싶지 않고 믿을 수 없는 상황. 며칠은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지낸다. 그러다 정신이 좀 들면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을 살아가려 시도한다. 그러다 상대가 보냈던 문자나 메일이나 편지, 뭐 그런 것들을 본다. 악몽이다. 끔찍한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 삽질을 한다. 열심히 삽질을 한다.

구덩이가 깊어질수록 생활과는 단절된다. 구덩이를 계속 파 아무도 자신을 발견하지 못할 곳까지 내려간다. 그러다가

"너한텐 비전이 보이지 않아."
"미안하지만, 너희 집 사정,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네가 싫은 건 아니지만. 부모님의 반대도 있고,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고."



따위의 반토막짜리 말들을 기억해 내곤, 다시 울며 삽질을 시작한다.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개인사정, 나아지지 않는 집안사정. 캄캄한 그 구덩이에서 무서움에 덜덜 떨며 계속 삽질을 한다. 그렇게 한참 파고 있을 때, 구덩이 옆을 지나가던 무한씨와 만난다.

무한 - 거기서 뭐하세요?
그대 - ......
무한 - 구덩이 계속 파도 아무 것도 안 나와요. 얼른 올라오세요.
그대 - ......
무한 - 어휴, 삽질 열심히 해서 저 근육 좀 봐.
         올라와서 얼큰한 커피나 한 잔 합시다.
그대 - ......
무한 - 커피는 뫡심. 얼른 올라와요.



구덩이에서 나온 그대에겐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내 자전거는 비싼 거라 가볍고 속도도 빠르거든,
그런데 네 자전거는 무겁고 속도도 잘 안 나.
그래서 더 이상 같이 여행할 수는 없을 것 같아.
계속 뒤쳐지는 너와 함께 갈 수는 없을 것 같다.
느린 너 때문에 나까지 천천히 가게 되잖아."



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자신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상대. 그런 상대에게 "그럼 지금까지 나와 함께 달린 건 무슨 의미야? 그러지 마. 빨리 가 볼게. 늦춰지지 않게 더 열심히 가 볼게. 같이 갈 수 있을 거야. 뒤쳐지지 않을게."라는 얘기는 하지 말자. 그간의 정이 있어 잠깐은 상대가 인내하며 같이 달릴지 모르지만, 자신이 손해보고 있다는 생각은 떨치기 힘들 것이다.

가고 싶은 대로 가게 두자. 그래야 상대도 정말 자신이 손해를 보고 있었는지 아닌지를 돌아볼 수 있다. 당연한 듯 옆에 있기에 소중함을 잊은 사람에겐, 소중하게 생각해 달라고 부르짖는 것보다, 잠시 그것과 떼어두는 것이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더 좋은 방법이다.

물론, 그렇게 가게 둔다고 해서 모두 소중함을 깨닫는 건 아니다. 연애를 하며 서로 상대의 마음에 집을 짓지 못했다면, 그저 영화 보고, 차 마시고, 놀고 뭐 그러며 시간을 보냈다면, 학창시절 어울려 놀다가 연락이 끊긴 친구처럼 여겨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전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죠?"


라고 묻는 대원들이 많은데, 뭘 하고 싶은지 먼저 생각해 보길 권한다. 사람의 마음엔 시소가 하나 들어 있어서, 그게 왼쪽으로 기울면 뭔가를 적극적으로 하고 싶어진다. 반대로, 그 시소가 오른쪽으로 기울면, 아무 것도 하기 싫거나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된다. 도서관만 하더라도 왼쪽으로 기운 상태에서 바라보면 책을 읽고 있는 부지런한 사람들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기운 상태에서 바라보면 책만 붙잡고 있는 멍청이들이 보인다.

오랜 시간을 구덩이에서 보낸 까닭에 그대의 마음은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걸 반대로 기울이는 방법은, 내가 뭘 하고 싶은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간 자신이 뭘 원하는 지도 모르는 채 남들의 말에 의지해 팔랑거리던 모습을 벗고, 삶의 패달을 밟아보기 바란다. 뭘 해야 좋을지 모르는 이유는,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모르기 때문이니 말이다.



▲ 넘어졌다고 울지 말자. 넘어진 그곳에서 길을 발견한다는 말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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