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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고백에 성공했지만 안타깝게 차인 그녀, 이유는?

by 무한 2012. 5. 8.
고백에 성공했지만 처참하게 차인 그녀, 이유는?
지인이 수제 자전거에 빠진 적이 있다. 그는 남들 다 타는 평범한 자전거는 싫다며 희소성이 높은 수제자전거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대전에 사는 판매자가 내 놓은 M자전거였다. 판매자는 외국에서 직접 그 자전거를 구입해 왔으며, 부속품들을 자신이 최고급으로 교체한 까닭에 한국에 그 자전거는 한 대 뿐이라고 말했다. 지인은 판매자에게 연락해 자신이 구매하겠다고 말했다.

판매자는 파손 등의 우려가 있으니 화물거래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고, 지인은 자신이 직접 가지러 내려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약속을 잡았는데 몇 시간 뒤 판매자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더 높은 가격으로 구입하겠다는 같은 동네 사람이 있다는 거였다. 지인은 더 높은 가격을 불렀고 다음 날 대전에 내려가 자전거를 받기로 했다. 

차를 몰고 대전으로 간 지인은 자전거를 본 후 충격을 받았다. 판매자가 웹에 올려 둔 사진과 달리 자전거가 너무 낡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사진에 있던 라이트나 에어펌프 같은 건 달려 있지 않았다. 지인이 항의하자 판매자는 "사진엔 찍혀 있었지만, 글을 자세히 보면 라이트나 에어펌프가 포함이라는 얘기가 안 적혀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하튼 대전까지 내려간 상황이고, 이번 거래를 하지 않으면 수제자전거가 언제 또 매물로 올라올지 모르니 지인은 그 자리에서 자전거를 구입해 일산으로 돌아왔다. 

며칠간 지인은 흐뭇해했다. 자전거를 타고 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다 쳐다봤고, 자전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지인에게 이것저것 묻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큰 단점이 있었으니, 자전거가 편하지 않다는 거였다.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 있는 호수공원 같은 곳에서는 불편함 없이 탈 수 있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니거나, 근교로 라이딩을 가기엔 안정성이 떨어졌다. 작은 돌 하나만 밟아도 핸들이 쉽게 돌아갔고, 충격흡수가 잘 되지 않아 한 시간만 타도 온 몸이 피로해졌다. 일반 자전거 30대 가량 살 수 있는 돈을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껏 라이딩을 하기엔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이 고백해 사귀었다가 처참하게 차였다는 Y양의 사연을 읽으며 난 수제자전거 이야기가 떠올랐다. Y양은 가랑비 작전을 사용해 반년을 심남이에게 다가갔고, 몇 달 전엔 그와 연인이 되었다. 하지만 사귄 첫 날을 제외하곤 늘 걱정이 가득한 얼굴만 하고 있다가 며칠 전 헤어졌다. 그녀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왜 그렇게 된 걸까? 오늘 함께 살펴보자.


1. 목마른 그녀의 우물파기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요. 뭘 더 해야 하죠?"라고 묻는 Y양에게,

"뭔갈 못 해서 그런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걸 다 해서 문제 입니다."


라는 대답을 해 주고 싶다. Y양은 최선을 다 했다. 고기를 먹고 체해 출근도 하지 못하고 집에서 쉬고 있는 남자친구. Y양은 아무 것도 못 먹고 있는 남친을 위해 닭죽을 사가지고 남자친구의 집으로 갔다. 남자친구의 집까진 두 시간 좀 넘게 걸렸지만, Y양은 '내 남자가 아파서 누워있는데. 이런 건 일도 아니지.'라는 생각으로 간 것이다.

남자친구의 집에 도착해 Y양은 남자친구의 상태를 확인하고, 어질러진 집안을 청소했다. 전 날 차를 이상한 곳에 주차했다며 걱정하는 남자친구를 위해 차를 찾아 안전하게 지하주차장에 세워 두었다. 오다보니 차에 기름이 얼마 없기에 차에 기름도 가득 넣어 두었다. 이런 행동을 하고 Y양이 남자친구에 들은 말은 아래와 같다.

- 기름을 왜 가득 넣냐. 가득 채우면 연비가 떨어지는데 뭐하러 그런 짓을 했냐.
- 고기 먹고 체해서 고기 냄새도 맡기 싫은데, 왜 닭고기 들어간 죽을 사왔냐.



난 사실 저런 이야기를 한 Y양의 남자친구보다, 저 얘기를 듣고도

"전 할 수 있는 걸 다 했는데, 남친이 저런 이야기를 하니 진이 빠지더라고요."


라는 말을 할 뿐인 Y양의 멘탈이 더욱 놀랍다. 

Y양이 알아서 우물을 다 파 놓으니 남자친구는 지나가다 목마르면 우물에 들러 물을 마시는 거다. 남자친구는 우물을 판 Y양의 수고나 노력 뭐 그런 걸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물마시고 갈증이 사라지면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가 "야, 물이 시원하질 않잖아."라고 말하면, Y양은 "아 그래? 알았어. 다음엔 시원한 물로 준비해 볼게."라는 이야기만 한다.

"전 제가 할 수 있는 온 힘을 다해 우물을 계속 파 왔는데,
남자친구는 왜 우리가 함께 마실 우물을 파지 않죠?"



라고 묻는 Y양에게, "Y양이 알아서 혼자 우물을 다 파기 때문에, 남자친구는 우물을 팔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는 겁니다."라고 대답해 주고 싶다. 남자친구가 갈증을 느낄 때까지 Y양이 느긋하게 기다렸어야 한다. 하지만 헤어진 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 Y양은 남자친구가 좋아하는 걸그룹 콘서트 티켓을 예매해 남자친구에게 주며 마음을 돌리려 한다. Y양에게 노벨 헌신상(응?)을 주고 싶다.


2. 내 남자친구는 자존감 헌터?


커플부대에 있다가 솔로부대로 돌아 온 대원들의 사연 중엔 종종 '자존감 헌터'로 불리는 남자들의 얘기가 나온다. 보통 연상인 남자가 연하의 여자친구에게 이상한 정신교육을 시키거나, 연애를 인질삼아 여자친구를 세뇌시킨다는 이야기다. 그 중 최고를 뽑는다면, 난 망설임 없이 Y양의 남자친구를 선택하겠다.

그는 현대판 프로타고라스다. Y양이 자신에게 반했다는 걸 잘 이해하고 있는 그는 Y양을 만난 후 프로타고라스의 말을 조금 비틀어 이런 주장을 했다. 

"나는 만물의 척도다."


그냥 알고 지내는 사람이 저런 얘기를 하면 "요즘 힘든 일 있냐?"고 묻고 말겠지만, 상대의 마음이 바뀔까 두려운 Y양은 저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Y양이 자신의 프레임에 들어온 걸 확인한 남자친구는 즉시 Y양에 대한 정신교육을 실시했다.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 너 자신이 바라는 게 많은 여자라는 걸 알라.
- 내가 너에게 뭘 해주길 바라기 전에, 네가 나에게 뭘 해줄까를 생각하라.
- 지금 네가 한 행동은 내게 기분 나쁠 수 있다는 걸 깨우쳐라.
-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건 어리광일 뿐이다.
- 바라는 게 있으면 사랑이 아니다. 나에게 바라지 말아라.
- 이러이러한 이유로 넌 최악의 인간이다.



그는 Y양과 패밀리 레스토랑에 한 번 다녀와서는

"그런 곳을 가자고 했던 의도가 뭐냐.
난 지금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당했다는 기분이 든다.
가자고 한 건 너였는데, 계산은 내가 하지 않았냐.
난 네가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모습을 봤다.
넌 된장녀를 욕하지만, 난 너에게서 된장녀를 본 거다.
연인이라 분위기를 잡기 위해 그런 곳에 가야 한다면
난 연애를 하고 싶지 않다. 헤어지자."



라며 이별 통보도 했다. Y양이 다신 그러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고 난 뒤에 둘은 다시 사귈 수 있었다. 저 예는 가치관의 차이로 인해 다툰 거라 치자. 문제는 Y양의 연애가 전부 저런 식이었다는 거다. 그는 Y양에게 매일매일 '너는 최악의 여자다.'라는 이야기를 했고, Y양은 늘 죄인의 입장에서 반성해야 했다. 상대에게 폐만 끼치는 것 같은 송구스런 마음으로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버틴 것이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이유에 대해 '데미안'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만일 사람이 누군가를 두려워한다면
그건 그 사람이 자기를 지배하고 있는 힘을
누구한텐지 내준 데 원인이 있는 거야.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에서


명쾌하다.


3. 잘못된 첫 단추


연애까지 이어졌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관계가 어긋나는 이유는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기 때문이다. 서두에서 이야기 한 지인은 '자전거의 용도'를 생각하지 않은 채 '자전거 구입'에만 열을 올렸다. 결국 자전거를 구입하긴 했지만, 자전거 도로가 아닌 곳에서 타면 한 시간만 타도 몸이 아파오는 까닭에 라이딩을 즐길 수는 없었다.

Y양의 경우도 이와 같다. 가랑비 작전을 포함해 울기, 매달리기, 선물하기, 헌신하기 등의 이야기는 Y양이 보낸 12통의 메일에 가득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나와 있지 않다.

왜 그 사람과 사귀어야 하는가?


Y양이 첨부한 카톡대화에 '다른 사람들과는 나누기 힘든 밀도 높은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거기엔 대부분 내가 간디(애완견, 애프리푸들)와 나누는 이야기 정도가 있을 뿐이었다.

배고파?
나갈까?
잘 자.



사연을 읽으며 내가 발견한 '사귀어야 하는 이유'는 '소개팅 이후 상대가 곧 사귈 것 같은 분위기로 다가오다가 연락두절 된 일이 있기 때문에'였다. 이것 말고는 발견할 수 있는 힌트가 없다. 상대의 매력에 대한 이야기나,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설명 대신 '이 사람과 연애하기'에 대한 이야기만 가득하다.

'난 이 사람에게 마음을 열기로 했는데, 이 사람이 그냥 뒤돌아서면 어쩌지?'


라는 걱정을 하루 빨리 내려놓길 바란다. 그걸 계속 들고 있으면 내가 왜 이걸 구매해야 하는 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상대가 부르는 높은 가격에 계속 응하게 된다. 겁을 좀 주면 높은 가격을 불러도 그대가 쉽게 응한다는 걸 눈치 챈 상대는, '이별'이나 '연락 두절'등을 무기로 그대를 괴롭힐 거고 말이다.

Y양이 작년 가을에 보냈던 메일에서 한 이야기를 다시 Y양에게 돌려주고 싶다. 상대에게 스며드는 가랑비 작전을 펼치며 Y양이 한 말이다.

"꼭 애정으로 발전하지 않는다고 해도 좋아요. 좋은 친구가 되어도 괜찮아요.
가끔 만나서 다독다독 해주고, 산책도 하고 차도 한 잔 마실 수 있는."



그랬던 Y양이, 지금은 상대가 좋아하는 걸그룹 콘서트 티켓을 빌미로 어떻게든 상대의 마음을 돌리고 싶어 하고 있다. 너무 멀리까지 가 버린 것이 느껴지지 않는가? 어서 다시 '차 한 잔'의 마음으로 돌아오길 진심으로 바란다.


마지막으로, 자존감이 방전된 Y양에게, 앞으론 '자존감 헌터'인 그가 무슨 말을 하든 그대로 거울로 비춰 돌려주길 권한다.

- 너 자신이 바라는 게 많은 남자라는 걸 알라.
- 내가 너에게 뭘 해주길 바라기 전에, 네가 나에게 뭘 해줄까를 생각하라.
- 지금 네가 한 행동은 내게 기분 나쁠 수 있다는 걸 깨우쳐라.
-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건 어리광일 뿐이다.
- 바라는 게 있으면 사랑이 아니다. 나에게 바라지 말아라.
- 이러이러한 이유로 넌 최악의 인간이다.
+ 너 자신을 알라.



소피스트에겐 소크라테스를 붙여줘야 제 맛이다. 



▲ 산파술 너무 쓰면 상대가 지칠 수 있으니 호흡도 같이 하면서. 습습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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