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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모임의 오빠를 좋아한 그녀가 저지른 실수들 2부

by 무한 2012. 10. 17.
모임의 오빠를 좋아한 그녀가 저지른 실수들 2부
언젠가 "경보선수들에게 가장 큰 유혹은 뛰는 것이다. 뛰기만 하면 몇 걸음 앞에 있는 상대 선수를 간단하게 앞지를 수 있는데, 두 발 중 한 발은 늘 지면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뛸 수 없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저 말을 인용하며 2부는 "연애에서도 유혹을 못 이기고 혼자 전력질주를 해 버리면, 아웃 당하고 맙니다."라고 시작하려 했는데, 한 경보선수의 인터뷰가 발목을 잡는다.

"걷다가 뛰려면 무척 힘들어요.
그런 생각(뛰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 국가대표 경보선수 김현섭의 인터뷰 중에서


김샜다. 각설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1. 영양가 없는 대화


지난 매뉴얼에서 "적지 않은 대화를 나눴지만, 둘은 서로의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는지도 알지 못한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녀가 썸남과 나눈 이야기의 8할이 '모임 얘기'였기 때문이다. 첨부된 카톡대화를 시간에 따라 전반, 중반, 후반으로 나눠 각각의 대화를 살펴보자.

(전반)
여자 - 오빠 경은 언니랑 같은 조예요?
남자 - 아니, 지선이랑 같은 조.
여자 - ㅋㅋㅋㅋㅋㅋㅋ 지선언니 감당 안 되실 텐데.
남자 - 그래도 뭐, 지선이가 힘은 잘 쓰니까.
여자 - 힘ㅋㅋㅋㅋㅋㅋ 지선언니 애드립도 쩔어요~ ㅋㅋㅋㅋ


(중반)
여자 - 어제 우리 만난 거 주희언니가 말했다고 해요...
남자 - 응. 나도 들었어. 창규랑 통화 했어.
여자 - 그 자리에 세희랑 지연언니도 있었다는데....
남자 - 이제 퍼지는 건 시간문제겠군.
여자 - 흐규흐규. 어떡하죠ㅋㅋㅋㅋㅋㅋ 몰라몰라.


(후반)
여자 - 주희언니가 우리 사귀는 거냐고 물어보던데...
남자 - 음, 수요일에 시간 있어?
여자 - 카톡으로 말해요. 우리 무슨 사이에요?
남자 - 사실 주희가 나한테도 물어봤었어. 사귀는 거냐고.
여자 - 뭐라고 대답했어요?



러시아 소설도 아닌데 등장인물 때문에 읽기 벅차다. 대화의 대부분을 '모임의 다른 사람들' 얘기로 할애한 까닭에 정작 두 사람이 나눠야 할 대화는 하지 못했다. 위에 옮겨 적지는 않았지만, 둘은 저녁시간 내내 '희진이가 술 마시고 꽐라 된 얘기'를 나누며 웃고 떠들다가 굿나잇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들은 자리 뜨면 사라진다. 남의 얘기를 하고 싶거든 차라리 상대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사람들의 얘기를 하자. 가족이라든지, 친구라든지, 살면서 만난 사람 중 제일 기억에 남는 사람이라든지 많지 않은가. '남들은 모르는 오빠의 속 이야기'가 핸드백이라면, '모임의 다른 사람들 뒷이야기'는 동전지갑 같은 거라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핸드백엔 동전지갑이 들어가지만, 동전지갑엔 핸드백이 들어가지 않는다.  


2. 예능 VS 교양다큐


예능에는 방청객의 웃음소리와 박수소리가 필요한 게 맞다. 그런데 사연을 보낸 대원의 썸남은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다. 장르로 따지면 '예능'보다는 '교양다큐'에 가깝다. 솔직히 좀 오글거리는 내용들이 많아 여기에 옮겨 적긴 좀 그렇고, 길을 걷다가 낙엽이 지는 걸 보고 갑자기 카톡을 보낼 때도 있을 정도다. 이건 뭐 어떻게 흉내 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살짝 각색해 보자면 이렇다.

"가로수들도 여름 내내 부르던 노래를 멈추고, 이젠 악기들을 손에서 놓은 채…."


각색이 어렵다. 여하튼 그는 19세기 낭만주의자들 못지않은 감수성을 자랑한다. 상대가 이처럼 감수성을 앞세워 나오면 감수성으로 받아 쳐 주는 것이 좋은 대화법이다. 아래와 같은 식으로 말이다.

남자 -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여자 - 산 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뭔가 통한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가? 강을 보며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가 옆에서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의 흐름이 마치 황허강 같구나."라며 받아 치니, 백아가 '헐 대박. 얘랑 나는 소울메이트.'라는 생각을 한 것 아닌가. 종자기가 병으로 세상을 뜨자 더 이상 이 세상에 내 음악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며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은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사연을 보낸 대원은

"ㅋㅋㅋㅋㅋ오빠 왜 센치해졌어요ㅋㅋㅋㅋㅋㅋㅋ"


라는 이야기를 하고 만다. 교양다큐에 예능 방청객의 모습으로 대처해 버린 것이다. 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감수성엔 감수성으로 대처하란 얘기는 아니다. 투수가 던지는 공을 타자가 모두 쳐야 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다만 사연을 보낸 대원은, 썸남이 세 번쯤 공을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방망이를 휘두르지 않았다. '꺄르르 모드'로 상대가 공 던지는 것만 지켜본 것이다.(스트라이크 세 번이면, 아웃이다.)

만약 두 사람이 <애정전전 형성 중>이라는 영화를 찍고 있는 거라면, 상대는 그대의 '꺄르르 모드'를 보며

'아, 얜 여자 주인공이 아니고, 그냥 내 팬클럽 회원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이건 사실 상대를 웃기는 데 목숨 건 남성대원들이 무리수와 자충수를 가리지 않고 던지다 벌이는 일인데, 여성대원이 저지르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3. 인혁당 사건(응?)


백과사전에서 '인혁당 사건'을 찾으면 아래와 같은 설명이 나온다.

인민혁명당 사건은 1974년 4월 군사독재에 맞서 대학생들이 궐기하자
당시 중앙정보부가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23명을 구속기소했으며
법원은 이 중 8명에게는 사형,
15명에게는 무기징역 및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한 사건이다.
사형이 선고된 8명은 대법원 상고가 기각된 지 20여 시간 만에 형이 집행됐다.

- 시사용어사전, <인혁당 사건> 중에서


미리 결과를 딱 정해 놓고, 집행을 후다닥 해 버렸단 얘기다. 사연을 보낸 대원 역시 후반부에는 인혁당 사건과 비슷한 진행을 해 버린다. 사연을 보자.

여자 - 오빠가 고민하는 건 이해해요. 사귀다 깨지면 모임에도 못 나갈 거고...
남자 - 음, 전에 내가 모임에서 연애를 했다가 깨진 경험이 있잖아. 
         그것 때문에 망설여지는 건 사실인데, 한편으론 
         너니까. 너라서 이전과는 다르게 사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여자 - 오빠. 사실 오늘 난 오빠한테 애매한 사이 그만 하자고 말하려고 해요.
남자 - 응. 그래...
여자 - 오빠의 입장도 이해가 가지만, 내가 힘들어요.
          앞으로는 그냥 좋은 선배로 생각하기로 했어요.
남자 - 그래. 그럼 예전처럼 좋은 선후배로…
여자 - 아뇨. 예전처럼은 지낼 수 없죠. 그럴 여력이 없어요.
남자 - 음, 혹시 내일 시간 있어? 만나서 얘기하고 싶은데.
여자 - 아뇨. 제가 할 얘긴 다 한 것 같고,
         보는 건 나중에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그 때 봐요.
남자 - 그래. 그러자...



어제까지 "ㅋㅋㅋㅋㅋㅋ우와 좋다좋다~ ㅋㅋㅋㅋ"라며 웃고 떠들던 사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갑자기 심각해졌다. "우린 무슨 사이예요?"라는 말을 꺼낸 지 20분도 채 안되어 둘은 남남이 된 것이다.

난 개인적으로 저 '폭풍절교'가 좋은 선택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풀어가는 과정에서 좀 모난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간의 '예스 걸' 이미지를 벗으며 혼자 설 수 있는 여자라는 걸 보여준 것이니 말이다. '여유'나 '여력' 얘기를 접어 두었다면 좋은 '충격요법'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저 이야기를 나눈 다음 날, 사연을 보낸 대원은 크고 아름다운 헛발질을 날리고 만다. 사연을 보자.

여자 - 저 내일 시간 될 것 같아요.
남자 - 음...
여자 - 일 끝나고 연락드릴까요?
남자 - 아냐. 담에 보자.



내가 옆에 있었으면 저 여성대원의 폰을 빼앗아 변기에라도 집어넣었을 텐데, 진심으로 안타깝다. 저 한 마디로 인해 충격요법이고 뭐고 허사가 되어 버렸다. 그러게 내가 택시요금 할증 붙는 시간엔 폰을 붙잡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12시 14분에 보낸 저 카톡으로 인해 상대에게 여전히 팬클럽 회원이라는 것을 증명했을 뿐더러, 앞선 '폭풍절교'는 '공갈협박' 이었다는 것을 들키고 말았다. 짝사랑 중인 솔로부대원들을 위해 '카톡 셧다운제(오전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카톡 발신 제한)' 같은 걸 얼른 실시해야 할 것 같다.


사연의 주인공에게는 [절대 만만하게 볼 수 없는, 백화점 같은 여자란?]이라는 매뉴얼을 추천한다. 그 매뉴얼을 읽으면 그대의 '연중무휴 24시간 칼 답장'이 왜 문제가 되는지, 그리고 '예능 방청객'의 태도만을 고수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이번 매뉴얼로 상대와 '남의 얘기'만 나누다간 메신저가 되어 버릴 수 있다는 걸 잘 알았을 거라 생각한다.)

썸남을 포함한 모임의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으려는 마음은 좀 덜어내고, 그 자리에 '존중받는 사람'이 되려는 마음을 더하기 바란다. '좋은 사람'은 남들이 꺼리는 일 나서서 하고, 듣기 싫은 소리 하지 않으며, 매사에 이타적으로 행동하기만 해도 받을 수 있는 칭호다. 하나 더. 모임을 자신보다 더 우선순위에 두지 말길 권한다.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참여하는 것이 모임인데, 그대는 모임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그들의 장단에 맞추느라 연애에 주도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모임의 그 누구도 그대의 인생을 대신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자. 

지난 매뉴얼에 "여자가 진짜 피곤한 스타일. 내가 오빠라면 인연 끊었을 듯."이라는 댓글이 달려 사연을 보낸 주인공이 상심이 큰 듯한데, 누가 뭐 라든 거기에 마음 뺏기지 말길 바란다. 콧물 한 번 흘리지 않고 유년기를 보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지금은 다 점잖은 척 하지만, 다들 기저귀 찬 시절이 있었고, 콧물 흘리던 시절이 있었으며, 애써 부정하고 싶은 흑역사를 몇 개쯤 간직하고 있는 법이다. 말은 쉽다. 송구스럽게 생긴 내 지인도 "야, 근데 조인성이 잘 생긴 얼굴은 아니잖아?"라며 말은 참 쉽게 한다. 난 그에게 "그럼 넌 도대체 어떻게 생겼다고 표현해야 하는 거냐?"고 묻고 싶다. 자, 수요일이다. 웃으며 전진해 보자.



▲ "조인성이 빨간 바지 입으면 화보인데, 네가 입으면 그냥 웃길려고 그러는 거 같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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