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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커플생활매뉴얼

무뚝뚝한 여자와 애정결핍 남자의 연애

by 무한 2013. 6. 18.
무뚝뚝한 여자와 애정결핍 남자의 연애
사연을 보낸 건 '무뚝뚝한 여자'인 Y양인데, 오늘은 그녀를 내 여동생이라 생각하며 편하게 몇 가지 이야기를 전하는 것으로 매뉴얼을 대신할까 한다. 출발해 보자.


1. 네가 연애 가장(家長)이야?


Y양아. 넌 자신에 대해 '철이 빨리 들어서 속으로 삼키는 스타일'이라고 했는데, 그건 철이 빨리 든 게 아니야. 그저 혼자 다 감당해 버리기로 한 것일 뿐이지. 그런 성격은 유년기 이후 주변에 '어리광을 받아 줄 사람'만 없어도 쉽게 형성돼.

주변에 편애를 경험한 친구가 있다면 한 번 봐봐. 부모님이 남동생에게 올인 하는 집안의 장녀가 있다고 해보자. 그녀의 자존심이 강철만큼 단단하다면, 그녀는 틀림없이 너와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그녀의 자존심이 낮다면 '푼수'라는 캐릭터로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고 말이야.

빠른 체념과 희생이 습관화 된 여자. 그런 여자는 스스로에게 인색한 경우가 많아. 남을 위해 하는 행동의 반만 자신에게 해도 큰 문제가 없을 텐데, 안타깝게도 남에겐 커피메이커 선물하면서 자신은 커피 한 잔 못 사 마시는 경우가 많지. 물론 계속 그렇게 인색한 건 아니야. 가끔 사고를 치기도 해. 어느 날 '날 위한 선물'을 하겠다며 별 필요도 없는 사치품 같은 걸 하나 사버리는 등의 일을 저질러. 그렇게 저지르곤 곧 다시 '나에게 인색한 삶'으로 돌아오지.

이런 여자가 연애를 하면, 연애의 가장이 되려 할 가능성이 높아. 남자친구가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라고 물으면, 대답을 못 하지. '내가 먹고 싶은 걸 남자친구가 사주겠다고 하는 것'을 부담으로 받아들이거든. 그 물음에 대답하면 신세지는 느낌이 드는 까닭에 "특별히 먹고 싶은 거 없어. 넌 뭐 먹고 싶은데?"라는 말로 돌리는 경우가 많아. 사랑을 줄줄은 아는데, 받을 줄은 모르는 바보라고 할까.

연애에서마저 가장이 되려 하니, 받는 게 전부 부담스러운 거야. 그러니까 상대가 힘든 일 있냐고 물어봐도 없다고 하고, 뭘 같이 하자고 불러도 그냥 혼자 좀 있겠다고 대답하고, 도와주겠다고 말해도 알아서 해 보겠다고 대답하지.

"남자친구를 사랑하지만, 사랑에만 집중하기엔 제 상황에 어려움이 많네요."


넌 '남자친구'와 '연애'를 혼자 '감당'하려 하잖아. 그러니 당연히 힘들지. 힘들 때 다른 연인들은 서로의 품에 안겨 우는데, 넌 혼자 베개에 얼굴을 묻고 울잖아.


2. 남자도 문제가 있긴 해.
 

사람이 항상 웃거나, 즐거워하거나, 다정하게만 굴 수는 없는 법이거든. 예컨대 집에서 부모님이 싸우는 걸 보고 나왔다면,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울 거 아냐. 그런데 남자친구는 네가 조금이라도 시무룩해 하거나 얼굴에서 표정을 지우고 있으면, 그게 다 '자기 잘못' 때문에 그렇게 된 양 어쩔 줄을 몰라 해.

"화났어?"
"마음에 안 드는 거 있어?"
"왜 그래? 기분 풀어~"



전화통화를 할 때만 하더라도, 사람이 늘 '솔'톤으로 전화를 받을 수는 없는 거잖아. 피곤하거나, 졸리거나, 그냥 좀 갑갑한 일이 있을 땐 목소리가 가라앉을 수도 있는 건데, 네가 조금이라도 그런 기색을 보이면 남자친구는 죄 지은 사람처럼 끙끙 앓아. 

"말해봐. 무슨 일인데? 괜찮아. 말해봐. 왜? 목소리 안 좋은데? 왜 그래?"


집요해. 네가 "아냐, 좀 피곤해서 그래. 좀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거야."라고 솔직하게 대답해도, 그는 "아닌 것 같은데? 그냥 말 해 봐봐. 무슨 일인데?"라며 너를 흔들어 대지. 네가 거듭 "정말 그런 거 아니야. 피곤해서 그래."라고 대답하면, 이번엔 남자친구가 심각해져.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알았어. 일찍 자. 끊을게."


저런 얘기로 서운한 티나 기분 상한 티를 팍팍 내면서 너를 더 버겁게 만들어. 그는 자신이 만든 상상을 계속 붙잡고는, 

"네가 이렇게 나올 때, 난 대체 뭘 해야 좋을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따위의 말까지 해 버려. 그는 예민하고 소심한 까닭에 목소리 하나에서도 '이별징후' 같은 걸 읽어내곤 혼자 불안해하는 거야. 어쩌면 네가 남자친구와 연애를 '감당'하려 하게 된 건, 이처럼 남자친구가 어린모습을 보였기 때문일지도 몰라. 이런 상황이 찾아오면, 결국 네가 또 남자친구를 다독여주며 풀어야 하거든. 집과 직장의 사정만으로도 힘든 상황에서 남자친구마저 "난 ~했던 것뿐이야. ~하다는 건 아니니까. 난 신경 쓰지 마."라고 얘기하고 있으니, 다 놓고 싶어져 버리는 거지. 


3. 가끔은 기대도 괜찮아.
 

혼자 모든 걸 다 감당하며 살면, 느는 건 가시밖에 없어. 이 사람 저 사람 다 미워질 걸. 내가 힘들다는 걸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자연히 벽을 치게 되고, 누군가 '내 탓'을 하려는 모습이 보이면 가시부터 세우게 돼. 대략 아래와 같은 식으로 말이야. 

여자 - 내가 너무 무심했었네.
남자 - 네가 무심한 것 같다는 얘기를 하는 건 아니야.  
          널 탓하려는 게 아니고, 위로해 달라는 것도 아니야.

여자 - 그럼 난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겠네.



'내 탓'이라는 것에 엄청 민감하니까 저런 반응밖에 할 수 없는 거야. 그럴 경우 대개 대화의 마지막엔 아래와 같은 말들이 등장하게 돼.

"내가 잘못한 거네. 미안하다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서."
"난 뭘 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연애가 지금 나에겐 사치인 것 같다. 여력이 없다."



상황이 너무 버거우니까 저런 얘기를 하게 되는 거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나 함께 짊어져야 할 문제들을 혼자 짊어지고 있으니까 저런 비명을 지르게 되는 거야. 저건 마음속에 꽁꽁 언 감정들이 가득 담겨있는 거거든.

저럴 땐 남자가 손이라도 좀 잡아주며 토닥토닥 해주면 참 좋을 텐데, 훈련이 되지 않은 남자들은 그런 걸 할 줄 몰라.

"넌 연애가 의무였나 보구나. 난 사랑했는데. 우린 서로 다른 연애를 했던 것 같다."
"끝까지 그런 식이구나. 나도 이제 지친다. 네 감정만 생각하며 살겠다면, 그만 하자."
"너만 감정이 있고 난 감정이 없어? 내가 노력한 건 보이지 않아?"



라는 이야기를 하며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여자가 자신에게 기대길 바라는 남자와 혼자 모든 걸 다 감당하려는 여자. 누가 문제인 거냐고 묻는 건 사실 쓸데없는 일이고, 난 일단 네가 남자친구에게 속마음을 털어 놓는 게 문제를 푸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해. 남자친구는 기분 좋을 때만 만나서 데이트 하는 들러리가 아니거든.   

남자친구에게 말해봐야 해결되는 것 하나도 없는데 뭐 하러 그래야 하나, 싶지? 그런 생각을 '독단'이라고 해. 남자친구 손을 붙잡고 털어놔 봐. 그럼 마음에 꽁꽁 얼어있던 감정들이 사르르 녹는 걸 경험할 수 있을 거야. 네가 '털어놓는다고 뭐가 달라지나?'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분명 마음이 한결 가벼워 질 거고 말이야. 그걸 못하면 누굴 만나든 평생 끙끙 앓으며 살아야 할 거야. 넌 혼자 너무 오래 서 있었어. 가끔은 기대도 괜찮아. 


거기까지가 상대의 한계일 거라고 단정 짓는 순간, 연애는 딱 그만큼의 공간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제약을 받게 된다. '분갈이의 가능성'이 없어진 산세베리아 화분과 비슷해지는 것이다. 작은 화분 내에서 엉켜 자란 뿌리가 물빠짐을 방해해 썩기 시작하고, 흙 속의 영양분이 고갈되어 식물은 점점 시들게 된다. 

"통화하는 내내 넌 대답만 해. 내가 말하지 않으면 정적만 흘러."


Y양 남자친구의 말이다. 둘은 '물빠짐이 안 되는 상황'까지 왔다고 보면 된다. 남자는 Y양에게서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호소하는 중이고, Y양은 그걸 '투정' 정도로만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난 사실 Y양보다 Y양 남자친구에게 한 마디 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여자친구에게 안심하라고 말만 하지 말고, 함께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그리고 너도 네 생활을 좀 찾아.
여자친구 목소리에 힘이 없다고 하루 종일 그걸로 쩔쩔매지 말고,
여자친구가 혼자서 고민할 시간도 좀 줘.
폰 충전할 때, 충전기에 꽂아두고 좀 기다려야 충전되는 법이잖아.
그런데 넌 충전기에 꽂자마자 얼마나 충전되었나 보면서 초조해 해.
그거 확인하느라 조금 충전된 배터리마저도 다 닳겠다.
여자친구가 혼자 고민하다가 '이별'이란 결론을 낼까봐 불안해서 그래?
그런 믿음도 없이 넌 도대체 무슨 연애를 하고 있는 거야?
헤어지지 않으려는 연애를 하지 말고, 헤어질 수 없는 연애를 하라고."






▲ 헤어지면 훗날 Y양이 "내가 배불렀었구나."라며 반드시 후회한다는 데 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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