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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커플생활매뉴얼

남자친구의 경조사, 어디까지 챙겨야 할까?

by 무한 2013. 6. 25.
남자친구의 경조사, 어디까지 챙겨야 할까?
어제 발행한 매뉴얼에 나온 '장례식'얘기 때문에 몇몇 독자 분들이 불편하셨던 것 같다. 관련된 사연과 함께 경조사 참여에 대한 기준을 묻는 메일, 과거 본인에게 벌어졌던 이야기가 담긴 메일 등이 여러 통 도착했다. 한 분은,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 그랬던 걸 수도 있는 건데,
글에서는 '남친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육개장만 먹고 오는 여자'정도로 말씀하셨더라고요.
제가 사연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비슷한 일을 경험했던 사람으로서,
사정에 따라 대처가 다를 수도 있음을 이해해 주셨으면 해요."



라는 이야기를 하시기도 했다.

보내주신 이야기들에 대한 답변을 좀 적어볼까 한다. 출발해 보자.


1. 전투에서 이기는 방법?


연인의 경조사에 대해

"상대방 집안 행사에는 어지간하면 참여하지 말고, 참여하면 손님 입장에서 얼굴만 비춰라.
결혼하기 전부터 참여하다 보면 집안 일 하게 된다. 최대한 거리를 유지해라."



라는 이야기가 진리처럼 여겨지는 것 같다. 이번 매뉴얼을 작성하며 여러 커뮤니티에 올라와 있는 경조사 관련 글을 읽기도 했는데, 그 중에는 "남자친구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삼일 내내 장례식장에 있었다. 주변에 이야기하니 실수한 거라고 하던데, 정말 실수한 건지 두렵다."는 글도 있었다. 그 글에 달린 몇 개의 댓글이 놀라웠다.

"왜 그러셨어요. 결혼 전에는 그러시는 거 아닌데."
"이제부터라도 적당한 핑계대고 가지 마세요."
"이번 일을 경험삼아 앞으론 후회할 일 만들지 마세요."



인생은 다들 자기 생각대로 사는 것이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남자친구 아버지 장례식에 참석하면 앞으로 집안 일 하게 될까봐 '적당한 핑계 대고 가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살면 된다. 다만, 전에 이야기 했듯 연애를 포함한 대인관계는 시간이 지나며 정제되기 마련인데, 저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그 과정 중에 '버릴 사람'으로 분류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노멀로그 대표 독설가인 '뮤게'님께서 어제 잘 설명해 주신 까닭에 그 댓글을 옮기는 것으로 대신할까 한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기쁠 때보다 슬플 때 도와준 게 기억에 남게 되어 있고, 슬플 때 모른척 한 게 더 서운하게 남음. 장례식, 특히 가까운 사람이 돌아가셨다면 위로하고 뭐 도울 게 있는지 묻는게 맞음. 하물며 남친 아버지... -_-; J양의 문제는 장례식에 가서 일을 했다 안 했다가 아니라 애초에 '난 손님이니까' 슬픔을 나눌 마음이 없었다는 것임. 남친 집안 경조사에 다니지 말라는 건, 나를 존중받는 사람으로 유지해서 좋은 관계를 만들라는 일종의 tip임. 그런데 J양은 주객을 전도해서 tip을 지키기 위해 좋은 관계를 망쳐버렸음. 멍청돋음.

- 뮤게님이 남겨주신 댓글 중에서.


전투에선 이겼지만 전쟁에선 지고 마는 것에 대한 얘기다. 아주 쉽게 생각해 보자. 경조사가 아니라, 그대가 친구 집들이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 전철이 중간에 끊겼다. 마침 그곳이 남자친구 집 근처인 까닭에 전화를 했는데, 남자친구는 "택시 타고 들어가."라는 대답을 한다. 그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얼마 전 동료들에게

"여자친구 기사노릇하면, 그거 버릇된다."


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는 '기사 노릇'에서만 벗어나는 게 아니라, '남자친구'에서도 벗어나게 되지 않을까?


2. 상황과 사정.


어제 매뉴얼의 요지가 '여자친구가 되어 가지고 남친 아버지 장례식에 하루 종일도 아니고, 몇 시간만 있다 갔다.'를 탓하는 게 아니다. 시간이나 상황과 사정에 따라 적어질 수도 있고, 많아질 수도 있는 문제다. 이와 관련해 '남자친구 아버지 장례식장이 차로 5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였고, 여러 사정이 있어서 잠깐 얼굴만 비추고 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 H양이 있다.

"그리고 저랑 남친 부모님이랑도 안면을 튼 상황은 아니었거든요.
저의 존재는 알고 계셨지만, 종교도 달랐고, 여하튼 좀 그랬습니다.
남친 가족들도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이었던지라 제가 계속 있기에도…."



H양을 탓하려는 건 절대 아니고, 개인적으로 조금 답답한 부분이 있어서 몇 가지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먼저, 남친 부모님이 H양을 탐탁찮게 생각하시는 중이었다면, 그 자리는 H양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단번에 뒤집어 버릴 수 있는 자리였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남자친구 가족들이 가지고 있는 H양의 이미지는 남자친구의 '설명'을 통해서 형성된 것일 뿐이다. 누군지 얼굴도 본 적 없는 상황에서 종교가 다르다거나, 조건이 어떠하다며 형성한 이미지란 얘기다. 그런 이미지는 사실, 상대 부모님께 조금만 살갑게 해도 금방 바꿀 수 있다. 상대 부모님을 괴물이나 적으로 정해둔 채 피하지만 않아도 작은 오해 같은 건 금방 풀린다.

그리고 장례식장은, 어디든 불편하고 낯설고 지겹다. 남친 가족들이 H양을 못마땅하게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니다. 상중이신 남친 어머니께서 웃으며 H양을 반겨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 않은가. 또, 다들 누구나 자신의 사정이 있다. 경조사에 참석해준 사람들이 고마운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 주었기 때문에 고마운 것이다.  

장례식장에 두어 시간 있다가 왔다고 잘못되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단 한 시간을 있더라도, 마음가짐에 따라 행동에서 차이가 난다. 자신이 '손님'이라 생각하며 찾아왔다면,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라는 말은 꺼내지 못한다. 구석진 곳 찾아 백 옆에 둔 채 육개장 먹고, 모르는 사람 사이에서 불편해하다 가보겠다며 일어설 뿐이다.

남친이 누구보다 H양의 상황과 사정을 잘 알았을 것 아닌가. 그러면 일단 남자친구가 사양하기 전까진 적극적으로 도움이 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하는 게 현명한 행동이다. 혼자 머릿속으로,

'내일 출근해야 하니까 오늘 늦게까지 돕는 건 못할 거고,
지금 내가 나서지 않아도 일 하는 사람 많은 것 같으니 우선 앉아 있자.
나섰다가 일 하게 되어서 서울 못 올라가면 큰일이니까, 대충 상황 봐서 자리를 뜨자.'



라는 생각을 하다가, '이쯤이면 그래도 꽤 오래 있었던 거지.'라며 자리 털고 일어나는 건 바보같은 짓이다.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데, 이 부분에서 너무 많은 지레짐작을 혼자 한 H양이 조금 안타깝다.


3.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대략 아래와 같은 이유들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무게감 있는 대화의 부재.
평소 둘의 대화가 "새로 나온 피자 맛있다는데, 주말에 그거 먹자." 정도의 수다를 넘어서지 못했을 때 이런 일이 발생한다. 몇 년을 사귀었든, 그저 '데이트 메이트'로 먹고 마시며 돌아다녔다면 서로에 대해 아는 게 없기 마련이다. 상대가 친가와 외가 중 어느 곳과 더 친한지, 친척의 구성은 어떻게 되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으니, 그 경조사의 경중을 파악하기가 힘들다. 때문에 누군가에게 "남자친구 이모가 돌아가셨다는데, 장례식에 제가 가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하기 마련이고, 응답자는 본인의 집안 상황을 기준으로 답을 해주게 된다. 이건 마치 다른 사람 남자친구의 신발사이즈를 물어 본인 남자친구의 신발을 사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그저 연인 코스프레를 하거나, 데이트 메이트로만 지낸 커플들에게 해당되는 얘기다.

ⓑ고립된 연애의 문제.
연애를 시작하면 오로지 '단둘이서만' 모든 일을 하는 커플들이 꽤 많다. 내 주변에도 몇 명 있는데, 연애를 시작하면 그 친구의 여자친구와 인사를 나누긴커녕, 그 친구의 얼굴을 보기도 힘들어진다. 이렇게 고립된 연애를 하는 사람들은 상대를 친구나 지인, 심지어 가족에게도 소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세상에 단 둘만 존재하는 것처럼 사귀는 것이다. 평소에 두루두루 얼굴 보며 지냈다면 그 커플의 경조사가 있을 때 마주쳐도 서먹서먹하지 않은데, 그렇지 않다면 대개 그 자리에서 서로 소 닭 보듯 하게 된다.

ⓒ인간적인 공감의 부재. 
연애마저도 '얕고 가볍게' 하는 경우,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연인이지만 둘 사이에 '우정'이 형성되지 않았기에, 상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남의 일'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 상대가 얼마나 큰 상심을 하고 있을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별 관심이 없고, 토요일 날 친구들과 가기로 한 펜션에 못 가게 될까봐 더 큰 걱정을 한다. 마음에 보호필름을 붙인 채 거래하듯 연애하고 있는 커플에게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소심함, 혹은 훈련되지 않은 모습.
겁이 많거나, 사람 대하는 걸 어려워하는 성격을 가진 경우에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소제목 2번에서 예로 든 H양과 같은 사람에게 해당되는 얘기다. 생각이 너무 많으면 행동으로 옮기기가 어려워진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도 고민해야 하고, 그곳에 갔을 때 벌어질 일들에 대해서도 상상해 봐야 하고,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지에 대해서도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해야 하니 말이다.
어느 남성대원의 이야기를 하나 들려줄까 한다. 그는 여자친구와 다투고 며칠간 대화를 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때 여자친구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결혼얘기 오가며 인사까지 드린 상황이라 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장례식장에 갔다가 여자친구나 여자친구 어머니께 불청객 취급을 당하지 않을까 싶어서 가지 않았다. 꼭 그것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여하튼 그가 영영 그녀를 잃게 된 이유 중에는 이 사건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말해도 어렵다면, 나름의 기준을 세워보기 바란다.

"남자친구 친척누나 아이 돌잔치 하는데, 제가 가야 하나요?"


라고 묻는 것 대신, 그 친척누나가 제보자 아이의 돌잔치에 올 사람인지를 생각해 보는 방법도 있다. 내 지인 중 하나는, '술을 한 번 같이 마셨으면 아는 사람, 세 번 같이 마셨으면 친한 사람, 열 번 이상 같이 마셨으면 친구.'로 나뉘어 대인관계를 관리하기도 한다. 이걸 응용해서 사용하는 방법도 있으니 고민해 보길 권한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남자친구가 '경조사 마니아'에 속하는 사람인지를 살펴야 한다는 점이다. '경조사'라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의 경조사에도 참석하는 '경조사 마니아'들이 있다.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눈다는 점에서는 훌륭한 일이지만, 이건 훗날 가정을 꾸려가는 데 엄청난 장애물이 될 수 있다. 내 주변에도 이런 지인이 둘 있는데, 가서 기분 낸다고 부조 많이 하고 먼 거리 마다 않고 어디든 다 가지만, 정작 그 자신의 경조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이건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니 주의하길 권한다.

그리고 남자친구가 그대를 '도구'로 사용할 기미가 보이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거절하길 권한다. 남자친구 친구 어머니 장례식장에 가서 열심히 서빙하고 테이블 치우다 온 대원의 사연이 있었다. 남자친구는 그녀에게 "가서 좀 도와."라고 말했다. 비슷한 사례로, 여자친구를 부모님이나 조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으니, 이 부분 역시 잘 살피길 바란다. 그대가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 버리는 순간, 그대는 그저 '무료 노동자'가 될 뿐이다.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상대가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 싶은 행동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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