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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커플생활매뉴얼

여친 부모님의 반대로 떠난 남자, 다시 잡으려는 여자

by 무한 2013. 7. 23.
여친 부모님의 반대로 떠난 남자, 다시 잡으려는 여자
이 사연을 건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많이 고민했다. 사연을 보낸 K양이 이전 매뉴얼의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하고 있는 걸로 봐서는 노멀로그 애독자인 것 같은데, 그녀의

"제 행복을 응원해 주세요, 무한님!"


이라는 요청을 들어 줄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K양이 재회를 위해하겠다는 노력, 솔직히 다 쓸모가 없다. 미래 계획을 말하면 구남친이 "아, 그거 좋겠다. 그래, 다시 결혼을 진행해 보자."라고 말할까? K양 부모님을 설득하면 구남친이 "가장 큰 장애물이 해결되었으니 다시 잘 만나보자."라고 말할까? 또, K양은 약속을 지키겠다는 증거를 구남친에게 보여주겠다고 했는데, 각서 써서 공증 받는다고 해도 구남친의 마음은 꿈쩍도 안 할 거라는 데 내 카메라를 걸 수 있다. 구남친은 K양 때문에

마음을 다친 거다.

K양은 끝까지 가 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구남친이 밉다고 했던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K양은 구남친을 미워할 게 아니라 그에게 미안해해야 한다. 우선, 그 이유에 대해 살펴보자.


1. 가장 치명적인 부분.


K양은 연애하며 구남친에게 의지하고, 또 그를 '보호자'처럼 생각했기에 그의 마음은 무슨 단단한 강철 같은 걸로 만들어져 있으며, '여친 부모님의 반대'같은 것에는 별로 상처를 받지 않는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입장을 바꿔서, 구남친이 그의 부모님으로 부터 아래와 같은 '결혼 반대 사유'를 들었다며 K양에게 말한다고 생각해 보자.(아래의 내용은 K양이 부모님으로 부터 들었다며 남친에게 전한 '결혼 반대 사유' 중 일부다.)

"네가 졸업한 대학교, 꼴통들이 가는 학교라고 하셨다. 
우리 부모님이 너한테 헤어지라고 말하려고 내 친구에게 네 전화번호까지 물으셨다. 
네 직장 미래가 없다고 하셨다. 한계가 보인다고 하셨다. 직위도 평생 말단일 거라 하셨다."



남자친구로부터 저런 얘기를 들었다고 가정하면, K양은 K양이 남자친구에게 기대했던 "그럼 우리 다른 방법을 강구해 부모님을 설득해 보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저는
'내 남자는 왜 이렇게 못났을까.
왜 더 시도해 본다고 말하지 않는 걸까.
왜 우리 할 수 있어, 우리 이렇게 하자라며 계획을 세우지 않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K양은 높은 학벌을 가지고 있으며 탄탄한 직장에 다니고 있는 까닭에 저런 말들이 얼마나 상처가 될 수 있는지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만약, K양이 가진 콤플렉스가 '결혼 반대 사유'였다면 어떨 것 같은가?

"너보다 어리고 예쁜 애도 많은데 왜 하필 너 같은 애랑 결혼을 생각 하냐고 하셨다.
많이 배운 사람 중에도 예쁘고 착한 사람 많으니 그런 여자 만나라고 하셨다.
그리고 네가 나온 그 외국 대학교, 좋은 곳도 아니고 돈만 있으면 다 가는 곳이라고 하셨다."



구남친의 부모님을 증오하게 될 것 같지 않은가? 또, 저런 얘기를 하면서 남자친구가 "나도 부모님의 반대 때문에 괴롭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하게 반대하신다."라고 할 뿐이라면, K양도 당연히 이별을 생각할 것 같지 않은가?

"헤어지고 나서 제가 마지막으로 물어 본 것이 있습니다.
부모님의 반대를 극복해야 하는 힘든 상황에 놓이는 게 싫어서 헤어지자고 한 거냐고."



비유하자면, 구남친은 K양이 뺨을 힘껏 때리니 그게 싫어서 떠난다고 한 건데, 그런 사람 붙잡고 "나랑 있는 게 싫어서 떠나는 거냐?"라고 묻다니, 그건 또 무슨 어처구니없는 짓인가. 구남친은 학력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으며, 불안정한 자신의 직업 때문에 스스로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런 그를, K양은 그가 아무 저항도 못하고 있을 때 처참하게 짓밟아놓았다. 장담하는데, 그는 죽을 때까지 저 말을 잊지 못할 것이다.


2. 구남친은 괜찮은 남자가 맞다.


K양은 재회를 꿈꾸는 이유에 대해, 내게 아래와 같이 말했다.

"그 사람, 저한테 많이 아까운 사람이고,
전 그 사람이랑 함께라면 너무 힘든 순간에도
서로가 서로를 잡아주면서, 또 사랑하면서 견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 문장에서 '서로가 서로를'이라는 말은, '남자친구가 저를'이라는 말로 바꿔야 맞는 문장이 된다. 구남친은 그럴 수 있는 남자가 맞지만, K양은 그럴 수 있는 여자가 아니다.

K양이 구남친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갔을 때, 구남친의 부모님은 K양이 정말 예쁘고 마음에 들어서 그렇게 환대를 해 주셨던 걸까? 아니다. K양 구남친이 밝혔듯, 그 환대의 기반에는 구남친이 부모님께 K양 자랑을 하고, 정말 괜찮은 여자라고 좋게 말해둔 것이 있었다.

K양이 자신의 부모님에게 구남친과의 연애를 알릴 땐 어땠는가?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대충 이력서 내밀듯 그의 이력을 설명했을 뿐이다. 부모님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을 때 K양은 구남친을 변호하지 않았다. 혼나야 할 부분을 당연히 혼나고 있는 아이처럼 앉아 있다가, 그저 대들었을 뿐이다. 왜 이남자인지를 부모님께 설명했는가? K양이 본 그의 장점들을 말했는가? 아니다. K양은 부모님에게서 "인연을 끊겠다."는 말이 나오기 직전까지 그저 부모님과 감정적으로 대립했다.

헤어지고 나서도 구남친은 젠틀했다. 그는 부모님께 "아무래도 K가 집안의 기대를 많이 받는 아이인 까닭에, K부모님께선 제가 마음에 좀 안 차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을 뿐이다.

그러는 동안, K양은 뭘 하고 있었나?

"남자들은 한 번 끝이라고 생각하면 절대 돌아서지 않는다면서요.
그래서 두렵습니다.
남자친구는 자신이 이 상황에서 빠져나온 게 잘 한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절 잊기 위해 또 다른 여자를 만났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준차이가 보이지 않는가?

이거 하나는 분명히 하자. "더 큰 행복을 위해 이런 시련이…."라며 합리화 하거나 정당화 하는 건 K양 자유인데, 혼자 그렇게 모든 걸 다 좋게 해석한 뒤 구남친에게 다시 다가가려 하는 건 이기적인 행동일 뿐이다. K양은 자꾸 남자친구가 '포기'했다고 말하는데,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을 다 했다. 마지막에 이 관계를 놓아버린 건,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부분들까지 단점으로 지적받으니 손을 놓아버린 것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K양 역시 부모님의 반대사유를 전달하며 그 부분을 탓하지 않았는가. 자신을 '별 볼 일 없는 학교 졸업한 비전 없는 남자'라고 생각하는 여자와 결혼하고 싶어 하는 남자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


3. K양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


구남친을 속물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거면, K양도 속물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자. 미안하지만 K양 역시 우리나라 10위권 밖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다. 외국으로 건너가 유학생활을 한 것 때문에 막연히 K양이 높은 학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요즘 유학생 흔하다. 과거 '7막 7장 세대'만 하더라도 유학생이라고 하면 어느 대학 나왔는지도 안 보고 모셔가는 추세였지만, 요즘엔 대학 이름과 성적까지 확인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유학생'이라고 치켜세우는 건, 그런 생태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얘기다.

K양은 유학을 다녀온 다른 사람에게 "전 무슨 대학교를 이러이러한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K양이 유학을 간 건 부모님의 학구열 때문이었고, 전공 역시 K양의 희망에 따라서가 아니라 당시의 조건에 맞춰서 결정한 것이다.

내 주변에도 유학생활이 '잉여 학력'이 되어 버린 사례가 몇 있다. 그 중 지인 A의 사례를 보자. A의 부모님은, A를 본토로 유학을 보내는 게 부담스럽자 영어권의 다른 나라로 유학 보냈다. 당시만 하더라도 유학을 다녀왔다고 하면 무조건 일자리는 보장됐던 까닭에, 자연히 A의 부모님은 A가 졸업 후 한국에서 좋은 직장을 얻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A가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현실은 동네 영어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힘들 정도였다. 원어민도 많았고, 본토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현실의 벽에 부딪힌 A는 부모님께 전공과 다른 직종으로 취업을 하겠다고 말했다. A의 눈에 차지 않는 곳에서 A는 '쓸데없이 고학력'이었고, A가 가고 싶어 하는 곳에는 A보다 나은 조건의 사람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여기다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A가 택한 그 일에 대해 A의 부모님은

"억 단위의 학비 들여 유학시켰더니,
고작 한다는 게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할 수 있는 일이냐?"



라며 술을 푸셨다.

K양의 유학을 위해 가족 모두 외국에 건너가서 산 까닭에, K양의 부모님께는 이 부분에 대한 '최신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K양 부모님께 이 부분에 대한 최신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K양은 같은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부모님께 주입받은 '높아진 눈'을 가진 채 단순히 거기에 저항하려 하지 말고, 현재 상황이 어떤지를 차근차근 부모님께 설명 드리길 권한다.


나도 K양이 구남친, 그리고 부모님과 화해하고 양가 축복을 받으며 결혼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K양이 밝힌 대로 남자친구에게 청사진을 제시하고, 부모님을 설득하고, 이게 더 큰 행복을 위한 시련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 할 수 없을 것이다. 솔직히 난, 괜찮으면 한 번 보자는 K양의 연락에 남자친구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이건 재회고 축복이고를 떠나서, K양이 구남친에게 인간적인 사과를 해야 하는 게 먼저다. 둘이 앞으로 영영 안 보는 사이로 지내더라도, 완벽하게 구남친을 짓밟았던 그 행위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그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K양이 가서 약속을 하든 각서를 쓰든 다 부질 없는 짓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혼자 마음정리하고 합리화 할 거 다 합리화해서 하늘이 준 시련 운운 하며 혼자 용서하고 혼자 기대하는 건, 다시 말하지만 이기적인 짓일 뿐이다. K양이 만능 해결책처럼 생각하고 있는 그 '미래 계획'에, 구남친이나 구남친 부모님은 아무 관심도 없을 것이다. 혼자 뭔갈 열심히 해보겠다고 긍정적으로 합리화하다 나중에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라며 또 엄한 사람 탓하지 말고, 눈물을 쏟아서라도 사과부터 하길 바란다. K양은 구남친에게 총을 쏜 것과 같으니 말이다.



"네가 모자라서 그렇다."라는 말을 아무런 부정도 못한 채 듣고 있던 구남친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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