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떠냐고 계속 묻는 썸남, 대체 왜 그럴까?
주전자로 물 끓이다가, 넘어지는 주전자를 바보같이 손으로 잡아서 지금 손 상태가 좋질 않다. 주전자에 닿은 부위가 으르렁 대는 고통도 고통이지만, 평소보다 대략 3.7배쯤 예민하게 느껴지는 촉감 때문에 불편하다. 보드라운 이불을 쓰다듬어도 그 섬유의 골이 모두 느껴질 정도다.
현재 내 손이 예민해진 것처럼, 사연을 보낸 M양은 마음이 예민해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내가 만약 M양의 썸남이라고 가정한다면,
라는 이야기만 해도 M양의 좌심방과 우심실은 바빠질 것이다.
하아, M양과 심남이의 카톡대화 읽다가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내 손이 더 아프다. 환상이 사랑의 촉매인 건 맞다. 그러나 촉매에만 기댄 채 시작된 사랑은 곧 위태로워진다. <냉정과 열정 사이>의 '준세이'와 영혼이 닮았다고 생각했던 그가 '춘식이'라는 걸 곧 발견하게 될 테니 말이다.
그냥 놔둬도 사귀다 보면 '춘식이'라는 걸 알게 될 텐데 굳이 내가 참견할 필요가 있을까, 하다가 M양 나이가 벌써 시즌3(30대)에 접어들었는데 이렇게 시간낭비만 하게 되는 건 치명적일 것 같아 적기로 했다. 왜 위험한지, 무엇이 문제인지, 걔는(응?) 왜 그러는지에 대해 함께 살펴보자.
정희를 좋아했던 광렬이가 생각난다. 광렬이는 문학소년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땐가 그랬는데, 광렬이는 내가 다니던 독서실 앞엘 자주 왔다. 왜 왔냐고 물어보면 그는, "독서실 앞에 있는 공중전화가, 정희가 살고 있는 백마마을 3단지에서 가장 가까운 공중전화라서."라는 대답을 하곤 했다. 난 '얘가 좀 이상한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라는 생각을 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광렬이의 그런 태도 때문에 정희는 광렬이를 싫어했다. 외모 때문에 싫어한 게 아니냐고 누가 물으면 부정하진 못하겠지만, 여하튼 그랬다. 아니, 생각해 보면 광렬이보다 외모가 별로인 친구들하고도 정희는 잘 지냈던 것 같다. 광렬이 빼 놓고는 정희가 대놓고 피하는 남자는 없었으니 말이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광렬이의 모든 행동이 '부담스러운 짓'이었다. 체육시간에 축구나 농구를 하게 되면 광렬이는 열외자(아프거나 체육활동에 흥미가 없어서 운동장 한 편에 앉아 있는 친구들)들과 그늘진 곳에 앉아 정희를 쳐다봤다. 정희를 비롯한 여자애들이 광렬이의 시선에 수근대도 광렬이는 꿋꿋하게 쳐다봤다. 광렬이가 정희를 쳐다보는 건 교실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심지어는 아침에 학교에 일찍 도착해선 창밖을 내다보며 정희가 등교하는 걸 지켜보기도 했다.
위에서 말했지만 광렬이는 문학소년이었다. 그래서 광렬이가 하는 모든 행위와 그의 감정들은 고스란히 글로 옮겨졌다. 그때는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이라 대부분 PC통신을 했는데, 그 중엔 같은 지역의 학생들이 교류하는 커뮤니티도 있었다. 광렬이는 그 커뮤니티에 자신의 글을 올렸다. 타 학교의 여학생들은 그 글이 너무 가슴아프고 애잔하다며 광렬이를 응원했다. 광렬이가 반 강제로 정희에게 쪽지를 건넨 뒤 도망친 일도, 그의 글 속에서는 북극성을 향한 순수한 구애처럼 표현되었다. 그 글을 정희의 친구 중 누군가가 정희에게 알려주었고, 정희는 광열이이에게 '나라는 걸 알아볼 수 있는 이야기를 공개된 공간에 올리지 말아주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직후 광렬이가 담배를 피웠다. '버림 받은 상처로 인해 타락하기 시작한 남자'의 제스쳐를 취했던 것이다. 커뮤니티에는 "혼자서 좋아하는 것도 하지 말라고 한다면…."의 뉘앙스로 글을 적어가기 시작했다. 뜬금없지만, 그러다 광렬이는 대진고에 다니는 한 여학생과 사귀기 시작했다. 광렬이의 글을 보며 가슴 아파하던 여학생과 연이 닿은 것이다.
난 광렬이와 그 여학생의 연애사를 꽤 자세히 알고 있다. 광렬이와 백일장에 같이 가는 일이 생기면, 내가 묻지 않아도 광렬이가 이야기 해줬기 때문이다. 광렬이가 하는 얘기를 듣다 보면, '이야기 할 거리'를 위해 그녀와 만나는 듯이 보였다. 또 광렬이는 자신이 여전히 정희를 잊지 못하고 있으며, 때문에 사귀고 있는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난 속으로 '즤랄이 풍년'이라고 생각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사실 난 광렬이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보다는, 광렬이가 말할 때마다 보이는 앞니의 누런 때에 대해 생각했다. 그 여자애도 저 우둘두둘 누렇게 달라붙은 때를 봤을 텐데 그걸 보고도 사귈 수 있는 건 사랑의 힘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광렬이 이에 낀 누런 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둘은 한 계절을 넘기지 못하고 헤어졌다. 이별에 대해 광렬이는 자신이 나쁜 놈이라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난 그녀가 광렬이에 대해 '생각보다 훨씬 이상한 놈'이라는 걸 알았기에 헤어졌으리라 생각한다. 이별 후 광렬이는 정희에 대한 글을 쓰는 것과 동시에 헤어진 그녀에게도 꾸준히 연락했지만 그녀는 연락을 받지 않았으니까.
이 긴 이야기를 적은 건 M양의 심남이에게서 광렬이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좋게 보자면 낭만적이지만, 나쁘게 보자면 이상하다. 게다가 그는 M양을 애칭으로 부르는 것에 거리낌이 없으며 사귀는 사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귀는 사이처럼 구는 꾸러기의 모습도 가지고 있다.
라는 말을 하는 남자. 그래서 난 M양이 걱정된다. 서두에서 말했듯 저 모습은 '준세이'보다는 '춘식이'에 가까운데, M양은 그를 '준세이'로 보고 있다. M양에게서도 광렬이와 잠깐 사귀었던 그 여학생의 모습이 보인다. 낭만을 좇으며 독백하는 남자와 그 독백에 빠져 그에게 자신의 환상을 씌우는 여자의 연애. 이게 내가 보는 M양과 썸남의 관계다.
낭만을 좇으며 독백하는 남자는 둘로 나눌 수 있다. 먼저 A타입을 보자. A타입은 광렬이와 같은 '자기 혐오형'이다. 이들은 자신이 아프다고 생각하며 계속 앓는 소리를 한다. 소개팅에 나와서 자신의 옛사랑 이야기 줄줄 늘어놓는 남자는 대개 이 타입에 속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해와 공감과 위로를 받고 싶어 한다. 모성애를 자극해 연애를 시작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대개는 구질구질 하게 굴다가 차단당하는 경우가 많다. 남들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들에서 혼자 엄청난 의미를 느끼며 그걸 과장스레 말하곤 한다.
B타입은 '자기 과시형'이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허세'라는 별명을 가진 모 연예인이 있다. A타입이 이해와 공감과 위로를 받고 싶어 하는 것과 달리 B타입은 사랑과 관심과 인기를 얻고 싶어 한다. 또 구애의 과정에서 A타입이 "난 30점이지만 이런 날 받아줘."라고 말하는 것과 달리, B타입은 "난 90점 이상인데 이런 나에게 반하지 않은 거야?"라는 태도를 취한다. A타입과 B타입의 차이는 '자존감과 자신감'으로 인해 나뉜다고 보면 된다.
저런 손발 로그아웃 하게 만드는 말도, 외로울 때 들으면 달콤하게만 들린다. 상대의 뜨거운 구애로 인해 마음이 예민해진 M양은, 처음엔 '얘 좀 이상하네.'라고 생각하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상대의 팬클럽 회원이 된 것이다. M양이 자신의 팬클럽 회원이 되었음을 확인한 상대는 "오늘 같은 날엔 널 정말 보고 싶다."라는 말로 자극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언제 만나자는 얘기는 꺼내지 않는다. 그가 원하는 건 자신의 한 마디에 열광하는 M양의 반응이지, 실제로 M양과 진지한 관계를 맺을 생각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제 M양은 그를 만나러 갈 마음까지 먹었다. M양이 내 여동생이라면
라는 이야기를 해주겠지만, M양은 내 여동생이 아니니 괜한 말은 꺼내지 않기로 하자.
어디보자 자축인묘…, 40일쯤 지났으니까 앞으로 40일쯤 더 지나면 급격히 흥미를 잃은 듯한 썸남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여성대원이 이쯤에서 변한 썸남의 태도를 두곤 '내가 뭘 잘못한 거지?'라는 고민을 하기 마련인데, M양은 그러지 말길 권한다. 촉매를 다 쏟아 부어 급격하게 반응이 끝난 것일 뿐 꼭 뭘 잘못해서 그런 건 아니니 말이다.
물론 반응이 끝나기 전까진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의 풍부한 표현은 M양을 기쁘게 만들 것이고, 달콤한 약속들은 둘이 신혼부부라도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 것이다. 또 그는 M양에게서 칭찬과 사랑의 말을 듣고 싶어 할 것이기에 '여자가 좋아할 만한 말과 행동들'을 거침없이 M양에게 베풀 것이다. "나만한 남자 없지?"라는 말로 자주 M양이 자신에게 반했다는 걸 확인하려 들 것이고 말이다.
들떠있는 M양에게 초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그 길로 들어선 거의 모든 선배대원들이 그런 일을 경험했다. "남편 출근하는데 굿모닝 키스 해 줘야지~"라며 놀거나, 내년쯤으로 여행을 계획한 후 그 여행얘기를 하면서 즐기거나, 미용실에서 머리 한 거 가지고 연예인 누구 같다며 수다 떨며 노는 것. 그렇게 '아, 드디어 운명적인 사랑을 나도 하는구나!'라며 들떠 즐기다 보면 어느새 이별이다.
B타입인 남자와 헤어지고 나면 후유증이 크다. 그는 이별이 자신의 지구력과 책임감 없음으로 인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사실과 전혀 다르게 낭만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여자는 그 말이 그의 진심인 줄 알고 미련을 놓지 못하는데,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그건 그에게 '그래야 멋있어 보이니까' 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가 나쁜 사람이라면, 여지를 남겨둔 채 자기 심심하고 외로울 때만 찾아와 '충전'만 하고 가는 행위를 할 수도 있다. 이 얘기를 길게 하면 지금도 누군가의 콘센트로 살고 있을 대원들이 슬퍼할 수 있으니 여기까지만 적도록 하자.
난 M양에게, 그곳은 사고다발지역이니 천천히 가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가 보고 싶다는 얘기를 한다고 달려가지 말고, 만나자는 얘기를 할 때까지 지금처럼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를 유지하자. 칭찬과 듣기 좋은 말만 가득한 대화는 줄이고, '친한 친구'사이에 하는 대화를 해보자. 지금 M양과 썸남이 나누고 있는 대화는 어플에서 오늘 만나 사귀기로 한 '사이버 러버'들도 나눌 수 있는 대화다. 호 하고 불기만 해도 날아갈 듯 가벼운 대화 말이다.
라는 말로 그를 시험해 볼 생각-또는 어중간하게 밀어낼 생각-도 하지 말길 바란다. 저건 주먹도 통과할 만한 망으로 채를 치는 것과 비슷하다. 쓸데없는 짓이란 얘기다. M양이 저런 말을 했을 때 상대가 "내가 장난치는 걸로 보여?"라는 이야기만 해도 M양은 정신 못 차리고 휘둘리게 되니, 밀어내야 할 순간엔 물어보지 말고 밀어내길 권한다.
M양은 말한다.
어디가? 어떤 문장이? 너 보고 싶다는 거? 너 귀엽다는 거? 너 안아주고 싶다는 거? 너 생각난다는 거? 하아, 냉수마찰 한 번 하고 나와서 애국가 틀어 놓은 채 카톡대화를 다시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아무 사이도 아닌데 걸핏하면 뽀뽀하겠다는 말을 해 경계선을 불분명하게 만들고, "널 순수하게 안고 싶다."같은 꾸러기스러운 멘트를 하는 남자가 보이지 않는가? 정신 줄 놓은 채 그 남자가 휘두르는 대로 휘둘리는 여자도.
적당히 하자 미선아. 오빠 힘들다.
▲ 어제 댓글 12개 달리는 동안 추천은 3개던데…. 범인은 이 안에 있어! 추천은 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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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자로 물 끓이다가, 넘어지는 주전자를 바보같이 손으로 잡아서 지금 손 상태가 좋질 않다. 주전자에 닿은 부위가 으르렁 대는 고통도 고통이지만, 평소보다 대략 3.7배쯤 예민하게 느껴지는 촉감 때문에 불편하다. 보드라운 이불을 쓰다듬어도 그 섬유의 골이 모두 느껴질 정도다.
현재 내 손이 예민해진 것처럼, 사연을 보낸 M양은 마음이 예민해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내가 만약 M양의 썸남이라고 가정한다면,
"지금 하늘 한 번 올려다 봐봐. 우린 멀리 있어서 만날 수 없지만,
같은 순간에 같은 하늘을 본 거야.
앞으로 하늘을 보면 난 널 떠올릴 게. 넌 날 떠올려줘."
같은 순간에 같은 하늘을 본 거야.
앞으로 하늘을 보면 난 널 떠올릴 게. 넌 날 떠올려줘."
라는 이야기만 해도 M양의 좌심방과 우심실은 바빠질 것이다.
하아, M양과 심남이의 카톡대화 읽다가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내 손이 더 아프다. 환상이 사랑의 촉매인 건 맞다. 그러나 촉매에만 기댄 채 시작된 사랑은 곧 위태로워진다. <냉정과 열정 사이>의 '준세이'와 영혼이 닮았다고 생각했던 그가 '춘식이'라는 걸 곧 발견하게 될 테니 말이다.
그냥 놔둬도 사귀다 보면 '춘식이'라는 걸 알게 될 텐데 굳이 내가 참견할 필요가 있을까, 하다가 M양 나이가 벌써 시즌3(30대)에 접어들었는데 이렇게 시간낭비만 하게 되는 건 치명적일 것 같아 적기로 했다. 왜 위험한지, 무엇이 문제인지, 걔는(응?) 왜 그러는지에 대해 함께 살펴보자.
1. 내 친구 광렬이 얘기.
정희를 좋아했던 광렬이가 생각난다. 광렬이는 문학소년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땐가 그랬는데, 광렬이는 내가 다니던 독서실 앞엘 자주 왔다. 왜 왔냐고 물어보면 그는, "독서실 앞에 있는 공중전화가, 정희가 살고 있는 백마마을 3단지에서 가장 가까운 공중전화라서."라는 대답을 하곤 했다. 난 '얘가 좀 이상한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라는 생각을 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광렬이의 그런 태도 때문에 정희는 광렬이를 싫어했다. 외모 때문에 싫어한 게 아니냐고 누가 물으면 부정하진 못하겠지만, 여하튼 그랬다. 아니, 생각해 보면 광렬이보다 외모가 별로인 친구들하고도 정희는 잘 지냈던 것 같다. 광렬이 빼 놓고는 정희가 대놓고 피하는 남자는 없었으니 말이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광렬이의 모든 행동이 '부담스러운 짓'이었다. 체육시간에 축구나 농구를 하게 되면 광렬이는 열외자(아프거나 체육활동에 흥미가 없어서 운동장 한 편에 앉아 있는 친구들)들과 그늘진 곳에 앉아 정희를 쳐다봤다. 정희를 비롯한 여자애들이 광렬이의 시선에 수근대도 광렬이는 꿋꿋하게 쳐다봤다. 광렬이가 정희를 쳐다보는 건 교실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심지어는 아침에 학교에 일찍 도착해선 창밖을 내다보며 정희가 등교하는 걸 지켜보기도 했다.
위에서 말했지만 광렬이는 문학소년이었다. 그래서 광렬이가 하는 모든 행위와 그의 감정들은 고스란히 글로 옮겨졌다. 그때는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이라 대부분 PC통신을 했는데, 그 중엔 같은 지역의 학생들이 교류하는 커뮤니티도 있었다. 광렬이는 그 커뮤니티에 자신의 글을 올렸다. 타 학교의 여학생들은 그 글이 너무 가슴아프고 애잔하다며 광렬이를 응원했다. 광렬이가 반 강제로 정희에게 쪽지를 건넨 뒤 도망친 일도, 그의 글 속에서는 북극성을 향한 순수한 구애처럼 표현되었다. 그 글을 정희의 친구 중 누군가가 정희에게 알려주었고, 정희는 광열이이에게 '나라는 걸 알아볼 수 있는 이야기를 공개된 공간에 올리지 말아주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직후 광렬이가 담배를 피웠다. '버림 받은 상처로 인해 타락하기 시작한 남자'의 제스쳐를 취했던 것이다. 커뮤니티에는 "혼자서 좋아하는 것도 하지 말라고 한다면…."의 뉘앙스로 글을 적어가기 시작했다. 뜬금없지만, 그러다 광렬이는 대진고에 다니는 한 여학생과 사귀기 시작했다. 광렬이의 글을 보며 가슴 아파하던 여학생과 연이 닿은 것이다.
난 광렬이와 그 여학생의 연애사를 꽤 자세히 알고 있다. 광렬이와 백일장에 같이 가는 일이 생기면, 내가 묻지 않아도 광렬이가 이야기 해줬기 때문이다. 광렬이가 하는 얘기를 듣다 보면, '이야기 할 거리'를 위해 그녀와 만나는 듯이 보였다. 또 광렬이는 자신이 여전히 정희를 잊지 못하고 있으며, 때문에 사귀고 있는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난 속으로 '즤랄이 풍년'이라고 생각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사실 난 광렬이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보다는, 광렬이가 말할 때마다 보이는 앞니의 누런 때에 대해 생각했다. 그 여자애도 저 우둘두둘 누렇게 달라붙은 때를 봤을 텐데 그걸 보고도 사귈 수 있는 건 사랑의 힘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광렬이 이에 낀 누런 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둘은 한 계절을 넘기지 못하고 헤어졌다. 이별에 대해 광렬이는 자신이 나쁜 놈이라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난 그녀가 광렬이에 대해 '생각보다 훨씬 이상한 놈'이라는 걸 알았기에 헤어졌으리라 생각한다. 이별 후 광렬이는 정희에 대한 글을 쓰는 것과 동시에 헤어진 그녀에게도 꾸준히 연락했지만 그녀는 연락을 받지 않았으니까.
이 긴 이야기를 적은 건 M양의 심남이에게서 광렬이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좋게 보자면 낭만적이지만, 나쁘게 보자면 이상하다. 게다가 그는 M양을 애칭으로 부르는 것에 거리낌이 없으며 사귀는 사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귀는 사이처럼 구는 꾸러기의 모습도 가지고 있다.
"너 자꾸 그러면 내가 뽀뽀해 버린다."
라는 말을 하는 남자. 그래서 난 M양이 걱정된다. 서두에서 말했듯 저 모습은 '준세이'보다는 '춘식이'에 가까운데, M양은 그를 '준세이'로 보고 있다. M양에게서도 광렬이와 잠깐 사귀었던 그 여학생의 모습이 보인다. 낭만을 좇으며 독백하는 남자와 그 독백에 빠져 그에게 자신의 환상을 씌우는 여자의 연애. 이게 내가 보는 M양과 썸남의 관계다.
2. M양의 썸남과 광렬이의 차이.
낭만을 좇으며 독백하는 남자는 둘로 나눌 수 있다. 먼저 A타입을 보자. A타입은 광렬이와 같은 '자기 혐오형'이다. 이들은 자신이 아프다고 생각하며 계속 앓는 소리를 한다. 소개팅에 나와서 자신의 옛사랑 이야기 줄줄 늘어놓는 남자는 대개 이 타입에 속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해와 공감과 위로를 받고 싶어 한다. 모성애를 자극해 연애를 시작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대개는 구질구질 하게 굴다가 차단당하는 경우가 많다. 남들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들에서 혼자 엄청난 의미를 느끼며 그걸 과장스레 말하곤 한다.
B타입은 '자기 과시형'이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허세'라는 별명을 가진 모 연예인이 있다. A타입이 이해와 공감과 위로를 받고 싶어 하는 것과 달리 B타입은 사랑과 관심과 인기를 얻고 싶어 한다. 또 구애의 과정에서 A타입이 "난 30점이지만 이런 날 받아줘."라고 말하는 것과 달리, B타입은 "난 90점 이상인데 이런 나에게 반하지 않은 거야?"라는 태도를 취한다. A타입과 B타입의 차이는 '자존감과 자신감'으로 인해 나뉜다고 보면 된다.
"양치만 하고 나와 굿바이 키스해야 하니까."
"넌 내가 보호해 줘야 해. 그러니까 혼자 다니지 마."
"친구들에게 운명의 남자를 만났다고 말 해ㅎㅎ."
"나 어때? 나처럼 네 생각 하는 남자 찾기 힘들 거야."
"왜 내 허락 없이 감기 걸리고 그래. 아프지 마. 만나면 안아줄게."
"넌 내가 보호해 줘야 해. 그러니까 혼자 다니지 마."
"친구들에게 운명의 남자를 만났다고 말 해ㅎㅎ."
"나 어때? 나처럼 네 생각 하는 남자 찾기 힘들 거야."
"왜 내 허락 없이 감기 걸리고 그래. 아프지 마. 만나면 안아줄게."
저런 손발 로그아웃 하게 만드는 말도, 외로울 때 들으면 달콤하게만 들린다. 상대의 뜨거운 구애로 인해 마음이 예민해진 M양은, 처음엔 '얘 좀 이상하네.'라고 생각하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네가 꼭 안아주면 나을 것 같아."
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상대의 팬클럽 회원이 된 것이다. M양이 자신의 팬클럽 회원이 되었음을 확인한 상대는 "오늘 같은 날엔 널 정말 보고 싶다."라는 말로 자극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언제 만나자는 얘기는 꺼내지 않는다. 그가 원하는 건 자신의 한 마디에 열광하는 M양의 반응이지, 실제로 M양과 진지한 관계를 맺을 생각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제 M양은 그를 만나러 갈 마음까지 먹었다. M양이 내 여동생이라면
"선유동 쪽으로 넘어가는 길에 낚시터 하나 있거든. 손맛터라서 1인당 5000원 밖에 안 해.
손맛터가 뭔 줄 알아? 낚시로 고기를 잡는 과정만 즐길 뿐, 가져오진 않는 곳이야. 그래서 싸.
네가 만약 다음 주에 안양에 가서 걔를 만난다면, 너는 손맛터의 붕어가 될 뿐이야.
환상이 사랑의 촉매라고 내가 말했잖아. 촉매가 영향을 많이 끼칠수록 반응속도는 빨라져.
너 이번 썸은 참 쉽지? 발톱사진을 찍어서 보내도 걔는 다정하게 반응해주고. 그쟈?
넌 거기서 반응속도를 더 높이고자 이번엔 네가 안양까지 올라가. 그게 현명한 일일까?"
손맛터가 뭔 줄 알아? 낚시로 고기를 잡는 과정만 즐길 뿐, 가져오진 않는 곳이야. 그래서 싸.
네가 만약 다음 주에 안양에 가서 걔를 만난다면, 너는 손맛터의 붕어가 될 뿐이야.
환상이 사랑의 촉매라고 내가 말했잖아. 촉매가 영향을 많이 끼칠수록 반응속도는 빨라져.
너 이번 썸은 참 쉽지? 발톱사진을 찍어서 보내도 걔는 다정하게 반응해주고. 그쟈?
넌 거기서 반응속도를 더 높이고자 이번엔 네가 안양까지 올라가. 그게 현명한 일일까?"
라는 이야기를 해주겠지만, M양은 내 여동생이 아니니 괜한 말은 꺼내지 않기로 하자.
3.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이야기.
어디보자 자축인묘…, 40일쯤 지났으니까 앞으로 40일쯤 더 지나면 급격히 흥미를 잃은 듯한 썸남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여성대원이 이쯤에서 변한 썸남의 태도를 두곤 '내가 뭘 잘못한 거지?'라는 고민을 하기 마련인데, M양은 그러지 말길 권한다. 촉매를 다 쏟아 부어 급격하게 반응이 끝난 것일 뿐 꼭 뭘 잘못해서 그런 건 아니니 말이다.
물론 반응이 끝나기 전까진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의 풍부한 표현은 M양을 기쁘게 만들 것이고, 달콤한 약속들은 둘이 신혼부부라도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 것이다. 또 그는 M양에게서 칭찬과 사랑의 말을 듣고 싶어 할 것이기에 '여자가 좋아할 만한 말과 행동들'을 거침없이 M양에게 베풀 것이다. "나만한 남자 없지?"라는 말로 자주 M양이 자신에게 반했다는 걸 확인하려 들 것이고 말이다.
들떠있는 M양에게 초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그 길로 들어선 거의 모든 선배대원들이 그런 일을 경험했다. "남편 출근하는데 굿모닝 키스 해 줘야지~"라며 놀거나, 내년쯤으로 여행을 계획한 후 그 여행얘기를 하면서 즐기거나, 미용실에서 머리 한 거 가지고 연예인 누구 같다며 수다 떨며 노는 것. 그렇게 '아, 드디어 운명적인 사랑을 나도 하는구나!'라며 들떠 즐기다 보면 어느새 이별이다.
B타입인 남자와 헤어지고 나면 후유증이 크다. 그는 이별이 자신의 지구력과 책임감 없음으로 인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사실과 전혀 다르게 낭만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여자는 그 말이 그의 진심인 줄 알고 미련을 놓지 못하는데,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그건 그에게 '그래야 멋있어 보이니까' 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가 나쁜 사람이라면, 여지를 남겨둔 채 자기 심심하고 외로울 때만 찾아와 '충전'만 하고 가는 행위를 할 수도 있다. 이 얘기를 길게 하면 지금도 누군가의 콘센트로 살고 있을 대원들이 슬퍼할 수 있으니 여기까지만 적도록 하자.
난 M양에게, 그곳은 사고다발지역이니 천천히 가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가 보고 싶다는 얘기를 한다고 달려가지 말고, 만나자는 얘기를 할 때까지 지금처럼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를 유지하자. 칭찬과 듣기 좋은 말만 가득한 대화는 줄이고, '친한 친구'사이에 하는 대화를 해보자. 지금 M양과 썸남이 나누고 있는 대화는 어플에서 오늘 만나 사귀기로 한 '사이버 러버'들도 나눌 수 있는 대화다. 호 하고 불기만 해도 날아갈 듯 가벼운 대화 말이다.
"장난치는 거면 하지 마."
라는 말로 그를 시험해 볼 생각-또는 어중간하게 밀어낼 생각-도 하지 말길 바란다. 저건 주먹도 통과할 만한 망으로 채를 치는 것과 비슷하다. 쓸데없는 짓이란 얘기다. M양이 저런 말을 했을 때 상대가 "내가 장난치는 걸로 보여?"라는 이야기만 해도 M양은 정신 못 차리고 휘둘리게 되니, 밀어내야 할 순간엔 물어보지 말고 밀어내길 권한다.
M양은 말한다.
"그는 정말 센스와 재치가 뛰어난 듯해요. 여자를 설레게 할 줄도 알고."
어디가? 어떤 문장이? 너 보고 싶다는 거? 너 귀엽다는 거? 너 안아주고 싶다는 거? 너 생각난다는 거? 하아, 냉수마찰 한 번 하고 나와서 애국가 틀어 놓은 채 카톡대화를 다시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아무 사이도 아닌데 걸핏하면 뽀뽀하겠다는 말을 해 경계선을 불분명하게 만들고, "널 순수하게 안고 싶다."같은 꾸러기스러운 멘트를 하는 남자가 보이지 않는가? 정신 줄 놓은 채 그 남자가 휘두르는 대로 휘둘리는 여자도.
"장거리 연애의 각오도 되어 있습니다."
적당히 하자 미선아. 오빠 힘들다.
▲ 어제 댓글 12개 달리는 동안 추천은 3개던데…. 범인은 이 안에 있어! 추천은 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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