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사모] 중매로 만난 남자 외 2편
난 중학생 시절 미술선생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 여자 선생님은 차가워 보이는 외모만큼이나 차갑게 수업을 진행했다. 한 번도 학생들에게 칭찬을 한 적 없으며, 기계적으로 수업하고 로봇처럼 채점을 했다. 유쾌한 구석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선생님이 우울증 같은 걸 앓고 있던 건 아니었나 싶은데, 여하튼 삶에 대한 기쁨이 전혀 없는 사람 같아 보였다.
누굴 좋아하지도, 그렇다고 미워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준비물을 안 챙겨온 학생들에게 벌을 세우지도 않았다. 평소점수에서 깎기 위해 이름만 적었을 뿐이다. 그러고는 녹음기를 틀어 놓은 것처럼 수업을 진행했다. 장난을 잘 치는 몇몇 학생들이 그 선생님께 농담을 건 적도 있었는데, 그럴 땐 의무적인 리액션만 살짝 할 뿐이었다.
물론 수업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 시기에 만들어야 할 거 다 만들었고, 그려야 할 거 다 그렸으며, 배워야 할 것도 그 선생님은 다 가르쳐주었다. 다만 학생들로 하여금 미술에 '흥미'를 갖게 만들지 않았을 뿐인데, 개인적으로 난 그게 수업과 평가 보다 훨씬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연을 보낸 M양에게서, 난 저 '미술선생님'의 모습을 봤다. M양은 소개팅과 선으로 복근이 단단해 진 까닭에 상대에게 '흠 잡힐 일'같은 건 하지 않는다.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상대에게 맞추는 편이며, '무난한 만남'이 될 수 있도록 정형화 된 리액션을 한다.
이걸 어떻게 비유해야 좀 명쾌할지 지금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는데, 수동적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능동적이지도 않은 여자라고 할까. 나쁘게 말하자면 '소개팅 머신'같다. 만약 M양과 중매로 만난다면 아래와 같은 대화를 나누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좀 과장해서 적긴 했지만, 저런 '비지니스'하는 느낌이 들 것 같다는 얘기다. 아래는 M양이 내게 한 질문이다.
그건 나도 모른다. 남들이 추천한 순대볶음집이 M양의 입에도 맞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결과를 알고 싶다면 가서 먹어봐야 한다는 거다. 직접 가서 먹어보지는 않고 남들이 블로그에 올려놓은 식당소개만 보고 있으면 영영 알 수 없다.
M양은 완전히 잘못된 태도로 소개팅남, 중매남들을 만나고 있는 거다. M양이 심사위원이고 상대 남자들이 오디션 보러 온 사람은 아니잖은가. 솔직히 내가 가장 경악했던 부분은, M양이 상대에 대해
라는 이야기를 하고도, 그가 한 달 넘게 만나면서 사귀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그에게 또 '감점'을 한 부분이다. 이건 연애를 하려는 게 아니라 결혼할 사람을 뽑으려는 것 같다. 집까지 데려다 주면 플러스, 담배를 피우면 마이너스. 그 이전에, 손톱만큼의 호감이나 관심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가?
이거 이러다 진짜 난감해 질 수 있다. 선보러 나갔다 들어와선 어머니, 언니와 함께 품평회만 하고 있다간, '결혼이 급해서 결혼할 여자 찾는 남자'를 만나지 않는 이상 맺어지기 힘들다. M양이 가서 로봇처럼 행동했다는 부분을 쏙 빼 놓은 채 남자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당연히 지인들은 "그 남자가 소심한 것 같다, 너에게 마음이 없어서 적극적이지 않은 것 같다. 간 보는 것 같다."따위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걸 두고 또 M양은 그를 괘씸하게 생각하며 복수한답시고 "그럼 민준씨는 혼자 사셔야겠네요."라는 얘기를 하고 있으면…, 하아. 진짜 대체 왜들 그러는가!
착각할만 해. 준현이가 아주 강적을 만났어. 그건 그렇고 준현이가 보낸 사연에 등장하는 '물고기들의 강제 정모'가 난 참 인상 깊었어. SNS가 발달하니까 그렇게 정보교환도 하는 구나.
여하튼 순도 100% 어장이야. 더 의심할 것도 없어. 어장관리를 하는 그녀가 꽤 적극적인 까닭에, 이번 어장엔 물고기들도 참 많은 것 같아. 준현이 너에게도 그녀가 먼저 연락처를 물어봤잖아. 그녀는 오는 고기만 잡아 가두는 게 아니라, 직접 픽업까지 해서 가둘 정도로 적극적인 여자 같아.
만나자는 약속을 해도 당일에 극적으로 취소되고, 또 언제 꼭 보자는 이야기를 해도 지켜지지 않잖아. 그런지가 벌써 1년이야.
물고기들을 달래는 것도 수준급이야.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기프티콘을 보낸 적도 있고, 아무튼 강적이야. 준현이가 직구를 던지면 그녀는 몸을 살짝 갖다 대곤 데드볼로 걸어 나가기도 하잖아. 이건 뭐 작정하고 그렇게 나오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녀가 자기 셀카사진을 보내는 건 '자뻑' 때문에 그런 것 같고, 기프티콘을 준 건 "그간 떡밥이 없어서 속상했지? 자, 이거 한 잔 마시고 다시 충성하도록."하면서 뿌리는 것 같아. 딱 그 행위만 보지 말고 전후 상황도 좀 봐봐. 걔는 너에게 말을 놨었는지 존대를 했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잖아. 네가 얘기했던 걸 기억하고 있기는 한데 뭔가 '다른 이야기들(다른 오빠들이 한 것으로 추측되는 말)'까지 섞여 있고 말이야. 게다가 걔는 기프티콘을 하나 보냈을 뿐인데, 준현이 넌 거기에 감동해서 그 이후로 심심하면 기프티콘을 보내고 있잖아.
또, 그녀가 먼저 밥 먹자는 얘기를 꺼내는 것도 그래. 말만 하지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잖아. 딱 한 번, 일 년 전에 만난 적이 있긴 한데, 그녀는 밥만 먹은 뒤에 서둘러 집에 돌아갔어. 준현이 넌 "최근 카톡대화를 봐도 그녀와 제가 잘 될 가능성이 안 보이시나요?"라고 물었는데, 전혀 안 보여. 그런 식으로 레벨이 계속 올라도 결국은 '아는 오빠'일 뿐이야.
그녀의 구남친이라는 남자조차 어장관리에 혀를 내두를 정도고, 또 그녀의 거짓말에 치를 떨 정도인 것 같은데, 이거 그냥 접으면 안 될까? 그녀의 핑계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것도 그렇고, 네가 뜸하면 먼저 연락해서 밥 얘기 꺼내는 것도 그렇고, 악질이야. 사람 잔뜩 부풀려 놓곤 미루고, 거절하고, 파토내지. 정 놓지 못하겠으면 앞으론 너도 일단 똑같이 행동하길 권할게. 걔가 언제 한 번 봐야지, 하면 너도 그래 언제 한 번 봐야지, 하고 답해봐. 아쉽지 않은 남자가 되면, 그녀가 널 아쉽게 만들기 위해 좀 더 다가올 수 있거든. 물론, 개인적으론 비추야. 철새와 가까워지면 철이 바뀔 때마다 울 일이 생기게 되니까.
아, 그리고 다른 물고기들 말을 못 믿겠으면 직접 가서 확인해 봐. 나라면 그런 상황에서 진짜 알바 하나 안 하나 확인하러 몰래 다녀왔을 것 같아. 내가 가기 좀 그러면 친구에게라도 가서 알아 봐 달라고 부탁했을 것 같고. 어려운 거 아니잖아. 머리 빠지게 혼자 고민만 하지 말고, 가서 보고 눈으로 확인해.
수지야, 남의 눈 무서워하면 연애 못 해. 넌 '이 바닥이 좁아서 호감을 표시했다가 알려지면 어쩌나.'하는 고민을 하는데, 그 바닥이 좁아도 다들 연애하고 결혼하잖아. 안 알려지는 대가로 평생 조용히 살다가 나중에 실버타운 독거노인 동으로 들어갈래? 인어공주 봐봐. 왕자랑 밥 한 번 같이 먹겠다고 목소리 내주고 다리 얻잖아.
지금 내가 목소리 내주라는 게 아니잖아. 소문? 너 호감 표현한 게 평생 주홍글씨로 남아서 사람들이 눈 감는 날까지
할 것 같아? 전혀 안 그래.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사람들은 너에게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아. 그냥 잠시 남의 얘기 하는 걸 즐길 뿐이지, 그걸 두고 평생 네 오점으로 삼지 않아. 누군가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게 오점이 될 일도 아니고 말야.
그리고 너 혹시 쌈디의 'Control'들어봤어? 그 노래 첫 마디가
거든. 네 연애에서도 딱 그 태도로 가는 거야. 분위기 잘 띄우는 그 동기 끼워서 썸남이랑 만나려고 하지 마. 내가 늘 얘기하잖아. 아무도 네 연애에 못 끼어들게 하라고. 당장은 푼수 짓도 살짝 해 주면서 계기를 마련해주는 동기가 '해결사'로 느껴지겠지만, 그러다가 썸남과 동기가 이어지는 사례가 많아. 또, 당장은 동기가 들러리 역할을 해 주는 것 같아 마냥 고마울지 몰라도, 그러다 갑자기 돌변해 판을 엎는 경우도 있어. 셋이 어울리다 둘만 어울리니까 걔 딴에는 심술이나 질투가 날 수도 있지. 셋이 만났다가 오히려 네 수동적인 태도가 더 단점으로 부각될 수도 있고 말야.
썸남과 가까워지고 싶으면 그에게 질문과 부탁을 해. 그가 도와주거나 대답해 줄 수 있는 걸로. 썸남이 선배직원이라며. 일과 관련해서 물어보면 되잖아. 너랑 나만 사람이고 썸남은 무슨 다른 세계의 사람이 아니야. 할 말이 있어서 내게 사연을 보낸 것처럼, 썸남과도 그렇게 시작하면 되는 거야.
내가 마음에 딱 하나 걸리는 건, 수지 네가 너무 빨리 대화를 마무리 하는 습관이 있다는 거야.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급하게 끝인사 하지 마. "네. 또 봬요.", "주말 잘 보내세요."하고 급하게 끊지 마. 말 꼬리를 좀 잡아도 괜찮거든. 상대가 "~하시겠네요."했을 때를 보자.
무슨 얘긴지 알겠지? 얼른 대화 마치고 어디 가야 하는 사람처럼 끊지 말라고. 내가 후배라면 선배에게 근처 식당을 추천 받거나, 사무실 필수 용품을 추천 받거나, 회사 생활 노하우를 좀 알려 달라고 부탁할 거야. 그럼 자연히 대화가 이어지거든. 상대가 추천해 준 거 산 뒤에 사진 찍어서 보내면, 그걸 계기로 또 대화가 이어질 수 있고 말야. 일단 이렇게 다가가 봐. 가다가 막히면 또 내게 사연 보내면 되니까, 걱정은 좀 내려놓고 가 봐. 알았지?
매뉴얼을 통해 주로 '주의해야 할 부분'들을 적다 보니, 운전대를 잡고 '이제 뭘 주의해야 하지? 이거? 저거?'하며 긴장만 하고 있는 대원들이 있는 것 같다. 그들에게
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따위의 질문 같은 건 할 필요도 없이, 그냥 하면 된다. 그가 내 구원이 되기를 바라며 매달리지만 않으면 되는 거다.
도로 위에서 '사고주의 표지판'만 찾진 않았으면 한다. 가다가 그게 보이면 주의하면 되는 거지, 그것만 찾으려 도로 위에서의 시간을 다 보내진 말자. 그러면 몸과 마음 모두 피곤해지고 만다. 벌써 몇 번째 하는 얘기지만, 2062년 다시 핼리혜성이 찾아올 때 그대나 내가 지구에 살아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게다가 청춘은 그보다 더 짧다. 그런데 왜 망설이고만 있는가? 불금의 힘으로 도전해 보길 권한다. 도전!
▲ 사연은 꼭 신청서(http://normalog.com/notice/1339)에 작성해서 보내주세요. 추천은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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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중학생 시절 미술선생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 여자 선생님은 차가워 보이는 외모만큼이나 차갑게 수업을 진행했다. 한 번도 학생들에게 칭찬을 한 적 없으며, 기계적으로 수업하고 로봇처럼 채점을 했다. 유쾌한 구석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선생님이 우울증 같은 걸 앓고 있던 건 아니었나 싶은데, 여하튼 삶에 대한 기쁨이 전혀 없는 사람 같아 보였다.
누굴 좋아하지도, 그렇다고 미워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준비물을 안 챙겨온 학생들에게 벌을 세우지도 않았다. 평소점수에서 깎기 위해 이름만 적었을 뿐이다. 그러고는 녹음기를 틀어 놓은 것처럼 수업을 진행했다. 장난을 잘 치는 몇몇 학생들이 그 선생님께 농담을 건 적도 있었는데, 그럴 땐 의무적인 리액션만 살짝 할 뿐이었다.
물론 수업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 시기에 만들어야 할 거 다 만들었고, 그려야 할 거 다 그렸으며, 배워야 할 것도 그 선생님은 다 가르쳐주었다. 다만 학생들로 하여금 미술에 '흥미'를 갖게 만들지 않았을 뿐인데, 개인적으로 난 그게 수업과 평가 보다 훨씬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1. 중매로 만난 남자.
사연을 보낸 M양에게서, 난 저 '미술선생님'의 모습을 봤다. M양은 소개팅과 선으로 복근이 단단해 진 까닭에 상대에게 '흠 잡힐 일'같은 건 하지 않는다.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상대에게 맞추는 편이며, '무난한 만남'이 될 수 있도록 정형화 된 리액션을 한다.
이걸 어떻게 비유해야 좀 명쾌할지 지금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는데, 수동적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능동적이지도 않은 여자라고 할까. 나쁘게 말하자면 '소개팅 머신'같다. 만약 M양과 중매로 만난다면 아래와 같은 대화를 나누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남자 - 시간 괜찮으시면 오늘 저녁 같이 할까요?
M양 - 네. 그래요.
(두 번째 만남 후)
M양 - 왜 사귀자는 말씀을 안 하시죠?
남자 - 아, 그게 우리 나이에 언제부터 사귀기로 하고 그러는 것도 좀 그렇고 해서….
M양 - 네.
(다섯 번째 만남 후)
남자 - 손잡아도 될까요?
M양 - 사귀기로 했고, 다섯 번째 만남이니까…, 네. 손잡는 건 괜찮아요.
(일곱 번째 만남 후)
M양 - 부모님께서는 뭐라고 하시나요?
남자 - 아, M양 얘기를 제가 좀 했더니 마음에 들어 하시더라고요.
M양 - 그럼 이제 저는 결혼 준비 하면 되는 건가요?
M양 - 네. 그래요.
(두 번째 만남 후)
M양 - 왜 사귀자는 말씀을 안 하시죠?
남자 - 아, 그게 우리 나이에 언제부터 사귀기로 하고 그러는 것도 좀 그렇고 해서….
M양 - 네.
(다섯 번째 만남 후)
남자 - 손잡아도 될까요?
M양 - 사귀기로 했고, 다섯 번째 만남이니까…, 네. 손잡는 건 괜찮아요.
(일곱 번째 만남 후)
M양 - 부모님께서는 뭐라고 하시나요?
남자 - 아, M양 얘기를 제가 좀 했더니 마음에 들어 하시더라고요.
M양 - 그럼 이제 저는 결혼 준비 하면 되는 건가요?
좀 과장해서 적긴 했지만, 저런 '비지니스'하는 느낌이 들 것 같다는 얘기다. 아래는 M양이 내게 한 질문이다.
"제가 마음을 열고 잘 했더라도 달라질 게 없는 관계였던 건지 궁금합니다."
그건 나도 모른다. 남들이 추천한 순대볶음집이 M양의 입에도 맞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결과를 알고 싶다면 가서 먹어봐야 한다는 거다. 직접 가서 먹어보지는 않고 남들이 블로그에 올려놓은 식당소개만 보고 있으면 영영 알 수 없다.
M양은 완전히 잘못된 태도로 소개팅남, 중매남들을 만나고 있는 거다. M양이 심사위원이고 상대 남자들이 오디션 보러 온 사람은 아니잖은가. 솔직히 내가 가장 경악했던 부분은, M양이 상대에 대해
"음식이 다 식을 때까지 상대가 말을 많이 하더군요. 좀 피곤했어요."
라는 이야기를 하고도, 그가 한 달 넘게 만나면서 사귀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그에게 또 '감점'을 한 부분이다. 이건 연애를 하려는 게 아니라 결혼할 사람을 뽑으려는 것 같다. 집까지 데려다 주면 플러스, 담배를 피우면 마이너스. 그 이전에, 손톱만큼의 호감이나 관심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가?
이거 이러다 진짜 난감해 질 수 있다. 선보러 나갔다 들어와선 어머니, 언니와 함께 품평회만 하고 있다간, '결혼이 급해서 결혼할 여자 찾는 남자'를 만나지 않는 이상 맺어지기 힘들다. M양이 가서 로봇처럼 행동했다는 부분을 쏙 빼 놓은 채 남자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당연히 지인들은 "그 남자가 소심한 것 같다, 너에게 마음이 없어서 적극적이지 않은 것 같다. 간 보는 것 같다."따위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걸 두고 또 M양은 그를 괘씸하게 생각하며 복수한답시고 "그럼 민준씨는 혼자 사셔야겠네요."라는 얘기를 하고 있으면…, 하아. 진짜 대체 왜들 그러는가!
2. 준현아, 어장 물 안 차갑냐?
착각할만 해. 준현이가 아주 강적을 만났어. 그건 그렇고 준현이가 보낸 사연에 등장하는 '물고기들의 강제 정모'가 난 참 인상 깊었어. SNS가 발달하니까 그렇게 정보교환도 하는 구나.
물고기1 - 넌 어장 어디까지 가봤니?
물고기2 - 뭐야, 너도 있었어?
물고기3 - 니들은 뭐야? 난 걔 썸남인데.
물고기2 - 썸남 좋아하네. 너 걔 알바 하는 거 알아?
물고기3 - 알바? 무슨 알바?
물고기1 - ㅋㅋㅋㅋㅋ 걔 알바 안 해. 너 속았구나.
물고기2 - 걔 거기서 알바 하거든?
물고기1 - 멍청한 놈. 알바 핑계 대고 너 떼어낸 거야. 걔 알바 안 해.
물고기2 - 사장님이 갑자기 불러서 간 적도 있다고 했는데?
물고기1 - 그게 걔 전용 핑계라고. 걔 알바 같은 거 안 해. 내가 확인했어.
물고기2 - 네 말을 어떻게 믿어. 뻥쳐서 경쟁자 제거하는 걸 수도 있지.
물고기3 - 뭐가 진실이야?
물고기1 - 믿기 싫으면 믿지 마라. 물고기 자식들.
물고기2 - 너도 물고기잖아. ㅋㅋㅋㅋ
물고기2 - 뭐야, 너도 있었어?
물고기3 - 니들은 뭐야? 난 걔 썸남인데.
물고기2 - 썸남 좋아하네. 너 걔 알바 하는 거 알아?
물고기3 - 알바? 무슨 알바?
물고기1 - ㅋㅋㅋㅋㅋ 걔 알바 안 해. 너 속았구나.
물고기2 - 걔 거기서 알바 하거든?
물고기1 - 멍청한 놈. 알바 핑계 대고 너 떼어낸 거야. 걔 알바 안 해.
물고기2 - 사장님이 갑자기 불러서 간 적도 있다고 했는데?
물고기1 - 그게 걔 전용 핑계라고. 걔 알바 같은 거 안 해. 내가 확인했어.
물고기2 - 네 말을 어떻게 믿어. 뻥쳐서 경쟁자 제거하는 걸 수도 있지.
물고기3 - 뭐가 진실이야?
물고기1 - 믿기 싫으면 믿지 마라. 물고기 자식들.
물고기2 - 너도 물고기잖아. ㅋㅋㅋㅋ
여하튼 순도 100% 어장이야. 더 의심할 것도 없어. 어장관리를 하는 그녀가 꽤 적극적인 까닭에, 이번 어장엔 물고기들도 참 많은 것 같아. 준현이 너에게도 그녀가 먼저 연락처를 물어봤잖아. 그녀는 오는 고기만 잡아 가두는 게 아니라, 직접 픽업까지 해서 가둘 정도로 적극적인 여자 같아.
만나자는 약속을 해도 당일에 극적으로 취소되고, 또 언제 꼭 보자는 이야기를 해도 지켜지지 않잖아. 그런지가 벌써 1년이야.
"오빠 나 진짜 거절하는 거 아니야. 상황 때문에…. 이해해줘서 고마워."
물고기들을 달래는 것도 수준급이야.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기프티콘을 보낸 적도 있고, 아무튼 강적이야. 준현이가 직구를 던지면 그녀는 몸을 살짝 갖다 대곤 데드볼로 걸어 나가기도 하잖아. 이건 뭐 작정하고 그렇게 나오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녀가 자기 셀카사진을 보내는 건 '자뻑' 때문에 그런 것 같고, 기프티콘을 준 건 "그간 떡밥이 없어서 속상했지? 자, 이거 한 잔 마시고 다시 충성하도록."하면서 뿌리는 것 같아. 딱 그 행위만 보지 말고 전후 상황도 좀 봐봐. 걔는 너에게 말을 놨었는지 존대를 했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잖아. 네가 얘기했던 걸 기억하고 있기는 한데 뭔가 '다른 이야기들(다른 오빠들이 한 것으로 추측되는 말)'까지 섞여 있고 말이야. 게다가 걔는 기프티콘을 하나 보냈을 뿐인데, 준현이 넌 거기에 감동해서 그 이후로 심심하면 기프티콘을 보내고 있잖아.
또, 그녀가 먼저 밥 먹자는 얘기를 꺼내는 것도 그래. 말만 하지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잖아. 딱 한 번, 일 년 전에 만난 적이 있긴 한데, 그녀는 밥만 먹은 뒤에 서둘러 집에 돌아갔어. 준현이 넌 "최근 카톡대화를 봐도 그녀와 제가 잘 될 가능성이 안 보이시나요?"라고 물었는데, 전혀 안 보여. 그런 식으로 레벨이 계속 올라도 결국은 '아는 오빠'일 뿐이야.
그녀의 구남친이라는 남자조차 어장관리에 혀를 내두를 정도고, 또 그녀의 거짓말에 치를 떨 정도인 것 같은데, 이거 그냥 접으면 안 될까? 그녀의 핑계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것도 그렇고, 네가 뜸하면 먼저 연락해서 밥 얘기 꺼내는 것도 그렇고, 악질이야. 사람 잔뜩 부풀려 놓곤 미루고, 거절하고, 파토내지. 정 놓지 못하겠으면 앞으론 너도 일단 똑같이 행동하길 권할게. 걔가 언제 한 번 봐야지, 하면 너도 그래 언제 한 번 봐야지, 하고 답해봐. 아쉽지 않은 남자가 되면, 그녀가 널 아쉽게 만들기 위해 좀 더 다가올 수 있거든. 물론, 개인적으론 비추야. 철새와 가까워지면 철이 바뀔 때마다 울 일이 생기게 되니까.
아, 그리고 다른 물고기들 말을 못 믿겠으면 직접 가서 확인해 봐. 나라면 그런 상황에서 진짜 알바 하나 안 하나 확인하러 몰래 다녀왔을 것 같아. 내가 가기 좀 그러면 친구에게라도 가서 알아 봐 달라고 부탁했을 것 같고. 어려운 거 아니잖아. 머리 빠지게 혼자 고민만 하지 말고, 가서 보고 눈으로 확인해.
3. 썸남에게 다가가려는 H양에게.
수지야, 남의 눈 무서워하면 연애 못 해. 넌 '이 바닥이 좁아서 호감을 표시했다가 알려지면 어쩌나.'하는 고민을 하는데, 그 바닥이 좁아도 다들 연애하고 결혼하잖아. 안 알려지는 대가로 평생 조용히 살다가 나중에 실버타운 독거노인 동으로 들어갈래? 인어공주 봐봐. 왕자랑 밥 한 번 같이 먹겠다고 목소리 내주고 다리 얻잖아.
"하지만 인어공주는 비극이잖아요? 결국 물거품이 되는….
그리고 밥 한 번 먹자고 목소리 내준 게 아닌 걸로 아는데요."
그리고 밥 한 번 먹자고 목소리 내준 게 아닌 걸로 아는데요."
지금 내가 목소리 내주라는 게 아니잖아. 소문? 너 호감 표현한 게 평생 주홍글씨로 남아서 사람들이 눈 감는 날까지
"수지가 그때 고백을 했었지…."
할 것 같아? 전혀 안 그래.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사람들은 너에게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아. 그냥 잠시 남의 얘기 하는 걸 즐길 뿐이지, 그걸 두고 평생 네 오점으로 삼지 않아. 누군가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게 오점이 될 일도 아니고 말야.
그리고 너 혹시 쌈디의 'Control'들어봤어? 그 노래 첫 마디가
"회사는 잠깐 뒤로 빠져있어."
거든. 네 연애에서도 딱 그 태도로 가는 거야. 분위기 잘 띄우는 그 동기 끼워서 썸남이랑 만나려고 하지 마. 내가 늘 얘기하잖아. 아무도 네 연애에 못 끼어들게 하라고. 당장은 푼수 짓도 살짝 해 주면서 계기를 마련해주는 동기가 '해결사'로 느껴지겠지만, 그러다가 썸남과 동기가 이어지는 사례가 많아. 또, 당장은 동기가 들러리 역할을 해 주는 것 같아 마냥 고마울지 몰라도, 그러다 갑자기 돌변해 판을 엎는 경우도 있어. 셋이 어울리다 둘만 어울리니까 걔 딴에는 심술이나 질투가 날 수도 있지. 셋이 만났다가 오히려 네 수동적인 태도가 더 단점으로 부각될 수도 있고 말야.
썸남과 가까워지고 싶으면 그에게 질문과 부탁을 해. 그가 도와주거나 대답해 줄 수 있는 걸로. 썸남이 선배직원이라며. 일과 관련해서 물어보면 되잖아. 너랑 나만 사람이고 썸남은 무슨 다른 세계의 사람이 아니야. 할 말이 있어서 내게 사연을 보낸 것처럼, 썸남과도 그렇게 시작하면 되는 거야.
내가 마음에 딱 하나 걸리는 건, 수지 네가 너무 빨리 대화를 마무리 하는 습관이 있다는 거야.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급하게 끝인사 하지 마. "네. 또 봬요.", "주말 잘 보내세요."하고 급하게 끊지 마. 말 꼬리를 좀 잡아도 괜찮거든. 상대가 "~하시겠네요."했을 때를 보자.
"네 ㅎㅎ. 주말 잘 보내세요~"(X)
"네. 그런데 ~하는 게 좀 걱정이에요."(O)
"네. 그런데 ~하는 게 좀 걱정이에요."(O)
무슨 얘긴지 알겠지? 얼른 대화 마치고 어디 가야 하는 사람처럼 끊지 말라고. 내가 후배라면 선배에게 근처 식당을 추천 받거나, 사무실 필수 용품을 추천 받거나, 회사 생활 노하우를 좀 알려 달라고 부탁할 거야. 그럼 자연히 대화가 이어지거든. 상대가 추천해 준 거 산 뒤에 사진 찍어서 보내면, 그걸 계기로 또 대화가 이어질 수 있고 말야. 일단 이렇게 다가가 봐. 가다가 막히면 또 내게 사연 보내면 되니까, 걱정은 좀 내려놓고 가 봐. 알았지?
매뉴얼을 통해 주로 '주의해야 할 부분'들을 적다 보니, 운전대를 잡고 '이제 뭘 주의해야 하지? 이거? 저거?'하며 긴장만 하고 있는 대원들이 있는 것 같다. 그들에게
"제가 솔로부대원이라면, 아무 것도 가리지 않고 다 해볼 것 같습니다."
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3년 전 알고 지내던 썸남에게 연락을 해봐도 될까요?"
따위의 질문 같은 건 할 필요도 없이, 그냥 하면 된다. 그가 내 구원이 되기를 바라며 매달리지만 않으면 되는 거다.
도로 위에서 '사고주의 표지판'만 찾진 않았으면 한다. 가다가 그게 보이면 주의하면 되는 거지, 그것만 찾으려 도로 위에서의 시간을 다 보내진 말자. 그러면 몸과 마음 모두 피곤해지고 만다. 벌써 몇 번째 하는 얘기지만, 2062년 다시 핼리혜성이 찾아올 때 그대나 내가 지구에 살아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게다가 청춘은 그보다 더 짧다. 그런데 왜 망설이고만 있는가? 불금의 힘으로 도전해 보길 권한다. 도전!
▲ 사연은 꼭 신청서(http://normalog.com/notice/1339)에 작성해서 보내주세요. 추천은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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