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에 있는 융털만큼이나 개개인의 다양한 '기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매뉴얼의 주제를 '연애할 때 만나지 말아야 할 남자와 여자는?'으로 잡은 까닭은 첫 단추를 잘못 끼워,
"무한님.. 단추가 모자라요.."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 대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귀며 맞춰가는 것이 연애라곤 하지만 전혀 다른 생각으로 연애에 임하고 있는 두 사람은 서로의 모난부분에 지쳐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비밀댓글과 메일을 통해 끊임없이 물어오는 질문,
"열심히 돌아다녀도 여자사람과 대화할 확률이 0%라서 요즘 랜덤채팅을 하고 있습니다. 랜덤채팅을 통해 연애를 하는 것에 관한 매뉴얼을 올려주실 순 없나요?"
이 물음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하는 생각에 이런 주제를 잡았다. 매뉴얼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이야기하자면, 사람을 만나는 것에 어떤 절대적 기준 따위가 있진 않다는 거다. 이 매뉴얼에서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강아지는 죽을 위험이 높습니다" 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더라도, 예방접종 없이 잘 사는 강아지도 존재한다는 것. 그 점에 염두하며 릴렉스 하게 출발해보자.
"채팅을 통해 만난 사람과 연애를 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은 예전에 매뉴얼에서 한 번 다룬 적 있는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있는가?"라는 명제와 비슷하다. 채팅에 대한 자신의 경험이 결국 '결론'을 이끌어 낸다는 거다.
뜬금없지만 전자제품을 보자. 노멀로그를 통해서 한 번 이야기 한 적 있듯, 나는 전자제품과 악연이 깊은데 공동구매한 제품도 꼭 내 것에만 문제가 생긴다. '뽑기운'이 없다고 하면 딱 맞겠다. 핸드폰은 충전이 안 되고, 프린터는 글자를 두 번씩 찍어내며, 컴퓨터는 때때로 심장마비를 일으킨다. 내 인생의 2할 정도는 이 '마이너스의 손' 덕분에 A/S를 받느라 지나가 버렸다.
그러나 이런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절대 이 심정을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네가 뭔가 잘못한 거 아니야?" 따위의 이야기를 하며 원형탈모의 위험을 선물 할 뿐이다. 채팅을 통한 연애에 대해서도 난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단, 그저 '운'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적어두겠다.
채팅에 빠져있을 경우, 앉으나 서나 오늘 등장할 '뉴페이스'를 기다리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기대하고 있을테니 "채팅을 목적으로 접속하는 경우, 일반적인 경우보다 많은 '결핍'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라고 까진 적지 않겠다. 채팅을 그저 여가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테니 말이다.
조심스럽게 내 얘기를 좀 꺼내자면, 내 경우 과거 '채팅'을 하며 느꼈던 것은 그저 '욕구'만 가지고 방을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고, 현실에서 해소하지 못한 것들을 사이버상에서 풀려는 사람도 있으며, 채팅을 무료한 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거였다. 무작정 '별로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어쨋든 대부분 '사람'이나 '대화'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단 얘기다. 채팅방에 접속하지 않으면 생활이 불가능 할 정도로 중독되어 방만 만들어 놓고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채팅이 '계기'가 되어 실제 만남을 가지며 연애를 시작하는 것은 성공적인 케이스라 생각한다. 그러나 활자로만 인식되던 상대에게 의미를 덧붙이고 거대하게 만든 '이미지'를 사랑하는 것은 현실과의 격차를 좁히기 힘들 거라고 적어두겠다. 채팅을 통해 상대에 대해 알 수 있는 부분은 30% 미만이라 생각한다. 나머지 70%는 눈을 마주보고 채우길 권한다.
매뉴얼을 통해 늘 사귀기 전 충분히 만남을 가지거나 대화를 많이 나눠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저 당신의 사랑을 지연시키려고 하는 게 아니다. 이 이야기를 하면 늘,
"그렇게 어영부영 하다가 다른 사람이 채 가면 어쩌라구요?"
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생각 때문에 불안함이 든다면 오늘 사귀든 내일 사귀든 마음대로 해도 좋다. 단, 나중에 "이런 사람인 줄 몰랐어요."라는 얘긴 하지 말길 바란다. 도파민이 분비되며 왕성한 애정이 솟아날 때에는 언제든 상대를 마음의 첫 번째 자리에 놓을 수 있다. 그 '열렬한 구애'를 상대의 특징이라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와 관련된 문제들은 어제 발행한 [사귄지 얼마 안 되어 헤어지자는 남친, 왜 그래?]라는 글에서 자세히 이야기를 나눴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뿐만아니라 지난 '소개팅'관련 매뉴얼에서 이야기 한 적 있는, '한가함'도 복병이 될 수 있다. 대부분의 소개팅은 한가한 시기에 진행되는데,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필연적으로 바빠질 수 밖에 없는 때가 올 수 있다. 쉽게 말해 대학생으로 비유하면 '방학'기간에 사귀기 시작해, 상대의 학기가 시작되면
"예전과 달리 연락이 줄었는데, 이 사람 마음이 변한 거 맞죠?"
이런 물음을 던지게 된다는 거다. 그 사람의 봄여름가을겨울을 경험해 본 뒤 연애를 하길 추천한다. 1년을 기다렸다가 사귀라는 얘기가 아니라, 상대에게 늘 봄날만 있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잔 거다. 상대가 이쪽을 생각하는 것 역시, 진짜 '나'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상대가 만든 '이미지'일 수 있으니 거품이 가라앉은 뒤 연애를 시작해도 늦지 않다.
위와 같은 '여유'를 갖는다면 흔히 이야기 하는 '나쁜 사람'도 구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어장관리나 '욕구'를 위해 달려드는 경우 지구력이 없다는 아킬레스건을 가지고 있으므로 구별할 수 있을 것이며 헤어진 커플들이 이별의 원인이라 이야기 하는 '성격차이' 등에 대해서도 좀 더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절대 조급함을 갖진 말길 바란다. 이건 지극히 내 주변의 이야기지만, 내 주변 호감가는 사람 중엔(이걸 '외모'얘기로 읽을까봐 아니라고 친절히 적어둔다) 그 사람이 솔로부대원이라도, 연애를 못한다고 안달하거나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힘주어 '이런 사람은 만나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매뉴얼에서도 이미 연애할 때 피해야 할 상대에 대한 글이 있었고, 연애와 관련된 여러 칼럼들에서도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을 분류해 놓고 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사람과 연애할 일도 없고,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는 부분들도 포함되어 있다.
생각해보자. 피해야 할 사람들로 잘난 척 하는 사람이나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 등을 꼽는데, 그런 사람이라면 당신이 계속 만남을 지속할 가능성이 없지 않은가. 게다가 상대의 바람기나 어려운 상황에 등을 돌릴 것 같은 예감, 이런 건 오래 지켜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고 그 상황이 다가오기 전까진 알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누굴 만나라 누굴 만나지 마라가 아닌, 연애를 시작 하기 전 둘이 가졌던 긴장감을 사귀게 된 후로 완전히 허물진 말라는 거다. 누군가를 잘못 만나서 헤어지는 사람들 보다, 편안하다는 이유로 함부로 굴다가 헤어지는 커플이 더 많다. 사랑은 사다리타기가 아니다. 정해져 있는 상대를 고르는 것이 아닌, 당신, 그리고 둘이 만들어 내는 상황이 상대를 만든다는 얘기다. 위에서 이야기 했듯, 누구를 만나더라도 충분히 알아갈 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면 문제될 건 없다. 상대든 당신이든, 마음의 거품이 사라질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보자. 그래야 상대를 정확히 볼 수 있을 것이다.
▲ 거품 얘기 하니까 맥주가 땡기는 군요. 아침부터 술이라니. 사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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