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시작했다는 메일이 쏟아지던 것도 잠시, 아직 벚꽃이 피지도 않았는데, 헤어졌다는 소식들이 꽤 많이 날아든다. 다시 한 번 힘주어 이야기 하지만, 오늘 연애를 시작했다고 해서 어제까지 없던 능력이 생기거나 상상도 못한 변화가 찾아오진 않는다. 처음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사왔을 때 처럼 두근두근하고 자꾸 들여다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겠지만, 그 마음에만 의지해서는 곤란하다. 그대가 발을 들여 놓은 것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닌 마라톤에 더 가까우니 말이다.
"며칠 전까지 커플링 하자고 하더니... 바람 난 걸까요?"
위와 같은 질문으로, 헤어지고 난 뒤 상대를 의심부터 하는 몇몇 대원들에게 이야기 하자면, 전지적 작가 시점이 아니라서 맞다 틀리다 단정 짓긴 곤란하지만, 무작정 '다른 여자가 생겼을 것'이라고 심증부터 챙겨들진 말길 바란다. 관심있는 남자와 이루어지지 않으면 "저건 어장관리."라고 이야기하고, 이별통보를 받고 나서는 "다른 여자가 생긴 거지."라고 이야기 하며 합리화 시키는 일은 그만 두도록 하자.
상대에게 이별을 말했다는 남자대원의 메일을 토대로 그 속마음을 알아볼까 한다. 제목에 '사귄지 얼마 안 되어'라고 기간을 한정한 것은, 오랜 연애 후 헤어진 커플들과 좀 다른점이 있기 때문이니 이 점에 유의하며 오늘도 달려보자.
매뉴얼의 서두에서 이야기 한 것 처럼, 연애를 시작하면 지금의 상황이 모두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거나 매일매일 이벤트가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대원들이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으며, 잠시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끼더라도 머지않아 다시 땅에 발을 대고 걸어야 한다.
이러한 증상은 '모태솔로'대원들이 연애를 시작했을 때 많이 나타나는데, 설렘이 사라지고 난 뒤에 찾아오는 허무함으로 인해 "이건 내 운명이 아니군."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예전에 매뉴얼에서 한 번 이야기 한 적 있는 '타협점'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일부 대원들은 이번 연애를 '종점'이 아닌 '정류장'으로 생각하기도 한다는 거다. 더 긴 설렘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사람을 찾는 경우도 있다.
특히, 남자대원이든 여자대원이든 술 마시고 보이는 행동들 때문에 이 '환상'이 깨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적어둔다. 취하면 아무나 붙잡고 시비를 거는 남자친구 때문에 불안해서 더 사귈 수 없었다는 사연이 있었고, 여가수 Y양을 닮은 여자친구가 술 마시고 집에 네 발로 걸어가는 것을 목격한 뒤 헤어질 결심을 했다는 사연도 있었다.
위의 이야기와 이어서 살펴보자면, 우리가 흔히 듣는 이야기 중 "결혼하기 전까지 최대한 많이 만나봐."라는 말이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건 아니에요. 그 사람은 달라요."라는 말을 할 생각이라면 잠시 접어두어도 좋다. 그건 크로마뇽인들도 했던 얘기니 말이다. 내 마음과 그 사람 마음이 똑같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인정하자. 난 개인적으로 일산 아워스몰 앞에 있는 벤치를 참 좋아했는데, 건물 리모델링 하는 과정에서 그 벤치가 없어져 버렸다. 나에겐 소중한 것이, 타인에겐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단 얘기다. 내 마음과 똑같을 거라는 생각에서 한 발짝 벗어나면 조금 자유로워 질 수 있다.
여린마음동호회 회원이라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일반사람들보다 더욱 어려울 수 있다. 어떻게 그 표정, 말, 느낌이 없던 일이 될 수 있는 지, 마음으로 새끼손가락을 건 그 약속들이 현관문에 붙은 전단지보다 더 가벼운 것이 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럴 수 있다. 영혼이 '나'라는 독방에 갇힌 신세라면, 지금껏 내가 본 것은 창 너머의 일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갑자기 영혼이 어쩌구 하며 진지해지니 재미없어지기 전에 다음으로 넘어가자.
상대에 대한 사랑이나 관심을 수도꼭지처럼 틀고 잠글 수 있는 장치가 없기에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안타까운 것은, 둘 다 '내가 사랑하는 것 만큼 사랑하지 않는군.'이라는 생각을 무럭무럭 키운다는 거다. 먼저 '연애 유목민'에 대해 함축적으로 표현한 어느 사연을 보자.
"남자친구가 두 달째 연락이 없어요."
참 난감하다. "둘이 연애중이라는 걸 남자친구도 알고 있습니까?"라고 되묻고 싶어지는 사연이다. 아주 드물지만 커플들이 보내온 사연 중에는 이러한 경우들이 있다.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하지 않아도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만 있다면 사귀는 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들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지만, 다른 사람이 생겼다거나 헤어지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님에도 이런 '방목'상태에 접어들 수 있음을 알아두자.
주로 동굴로 들어가는 쪽은 남자대원들이라 위의 사연은 여자대원들이 보내는 경우가 많지만, 얼굴 보기 힘든 여자친구 때문에 피가 말라가고 있는 남자대원들도 있다. 연락이나 만남에 대해 스스로 정한 규칙이 있다면 할 말 없지만, 상대와 합의되지 않았다면 '방목당하고 있다'거나 '나에게 무관심 하다'로 해석될 수 있음을 적어두겠다.
이와 반대로 '집착'하거나 '구속'하는 대원들이 있다. 약이 없는 이 증상을 보일 경우, 당하는 상대도 괴롭지만,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본인 역시 채워지지 않는 결핍에 고통받는다. 집착을 하는 쪽이든, 구속을 당하는 쪽이든 결국 '이건 내가 생각하던 사랑이 아니야.'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무서운 병이다.
"아무리 그래도 잠깐 연락해 줄 시간은 있었을 거 아니야."
한 쪽은 숨 차고, 한 쪽은 숨 막힌다.
헤어진 이유로 "상대가 철이 없어서"라는 이야기를 하는 대원들이 있었다. 솔직히 이런 '이유'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을 하기가 어렵다. 남자대원들 뿐만 아니라 여자대원들도 이와 같은 이유로 헤어졌다는 사연을 보내오니 말이다. 어쩌면 서로가 서로를 어리다고만 생각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예전에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성공의 노예가 되어 희망이라는 진통제를 복용하는 한심한 사람들"이라는 말을 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도서관에 가방만 놔두고 PC방으로 게임을 하러 갔는데, 도서관에 남아 있던 다른 친구는 그 친구를 보며 혀를 찼다.
물론, 자신이 느끼는 둘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연상연하 커플이 가장 많이 보내오는 "얘가 아직 정신 못 차리고 친구랑 놀거나 게임만 하고 있어요. 미래에 대해서 아무 생각 없는 것 같아요."같은 사연처럼 말이다. 남자대원들도 "여자친구가 투정만 부리고, 조금이라도 의견이 엇갈리면 토라지고, 무슨 소꿉놀이 하듯이 연애를 하려고 해요."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은 상대와 가치관이 다르거나 코드가 맞지 않을 때 주로 발생하며, 한 번 위와 같은 색안경을 쓰게 되면 상대의 모든 행동이 '철이 없어서 하는 행동'으로 보이게 된다. 매뉴얼을 통해 늘 "당장 사귀는 것에만 목숨걸지 말고, 일단 친해지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이야기 하는 것 역시, 이러한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상대에게 잔뜩 의미부여를 하고, 혼자서 기대만 차곡차곡 쌓고 있다가 사귀게 된 이후 실망만 고지서처럼 받아드는 대원들이 많으니 말이다.
위와 같은 이유들 외에도 자기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이 사람 보다는 저 사람이 나은 것 같고, 저 사람 보다는 그 사람이 더 나은 것 같다는 '남의 떡 증후군'에 시달리는 대원도 있었다. 전에 이야기 한 적 있는 '동호회 사연'을 기억하는가? 처음 동호회 모임에 나가 여자사람 A를 봤을 때에는 그녀가 마음에 들었고, 다음에 여자사람 B가 오자 B가 진짜 사랑이라 생각되었다고 한다. 확신보다 고백이 먼저 달려나간 까닭에 A, B 모두에게 고백을 해 버리고 A, B는 친해져 그 사실을 공유하게 된다. 동호회에서 아무렇게나 찔러보는 남자로 소문이 났을 때, 여자사람 C가 동호회 모임에 나오고 이 대원은 C가 운명의 사람이라 느끼게 된다.
그 이름도 유명한 '옛 여친'의 효과도 무시할 수는 없다. 헤어진 뒤 외로움의 킬러로 다른 사람을 고용했지만, '옛 여친'이 다시 돌아오는 상황이 전개되고, 자신의 옆 자리를 다시 '옛 여친'에게 내어주는 것이다. 그간 위로해주고 힘이 되어주어 고맙다는, '뭥미?'같은 대사만 남기고 굿바이 하게 된다.
사람마다 헤어지는 이유는 가지각색이겠지만, 그 중 대표적인 이야기들을 함께 살펴봤다. 이런 이야기들말고 이별통보한 남자친구의 마음을 쉽게 돌릴 수 있는 방법이라든지, 마음대로 둘의 관계를 접어버린 상대에게 복수 할 방법을 알려달라는 이야기가 많지만, 백 번 마음을 돌려 곁에 두더라도 위와 같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백 번 모두 다시 헤어질 수 있고, 복수를 원한다면 이별 후 아무렇지 않게 잘 사는 것이 가장 훌륭한 복수가 될 것이다.
이제 막 이별한 후 처음처럼(응?)을 찾고, 패닉상태에서 뭘 해야 좋을 지, 뭘 할 수 있을지 손을 덜덜덜 떨고 있는 대원들에게 좀 아픈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만, 이 이야기가 당신을 그 폐허같은 상황에서 걸어나오게 해줄 거라 믿는다. 인생을 24시간이라 가정하면 몇 분도 안 되는 그 순간 때문에, 곰팡이 냄새 나는 우울 속에 갖혀있지 말고, 밝은 곳으로 나와 광합성(응?)이라도 해 보자. 그대에겐 지금 비타민D가 필요하다.
▲ 오늘은 10분이라도 제대로 광합성 해 봅시다. 봄날의 곰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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