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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2)

사귀자는 말 없는 남자에게 해 줘야 하는 말

by 무한 2010. 5. 28.

그 자리에서 바로 말하지 못하고 뒤 돌아서 후회하는 일은 얼마나 많은가. 많은 대원들이 사연을 보내며 그 상황에서 적절한 말로 대응하지 못한 것에 대해 자책한다. 나 역시 퇴근시간, 사람이 붐비는 가운데 버스에 올라 이천원을 낸 적이 있다. 당시 요금이 1400원 이었으니 600원을 거슬러 받아야 하는데, 뒤에 사람들이 계속 올라오길래 일단 동전통에 나온 동전만 집어 뒤로 들어갔다. 뒷문 근처에 어정쩡하게 서서 동전을 확인해 보니 백원짜리 다섯개. 하나를 덜 받았다.

사람들의 정글을 뚫고 기사분에게 다가가 "저, 백원 덜 받았는데요."라고 말하면 개그가 되는 상황. 아무것도 아닌 그 백원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 지 모른다. 여린마음 동호회 회장이라 버스 번호를 적어서 명성운수에 전화를 해 계좌이체 해 달라고 하거나, 차고지까지 함께 가서 아저씨에게 사실을 털어놓고 백원을 돌려받을지 등등 엄청난 고민을 했다.

농담이고(전혀 농담같지 않잖아!), 상대가 뭐든 삼켜버리겠다는 블랙홀같은 기세로 나올 경우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해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상황이 좀 다르긴 하지만 지난 시간 노멀로그 애독자 '화이트오팔'님이 남겨주신 댓글에 적절한 상황 대처법이 나와있다.

관심남이 남친으로 승격하고 며칠 안 되었을때,
둘이 같이 강변을 산책할 일이 있었지요.
정말 오랜만에 상쾌한 기분에 들떠 있는데
며칠 안 된 남친이 조심스레 말을 꺼내더군요.
"나 어머니가 몇달 전부터 보라고 한 선자리가 있는데..."
그러면서 제 눈치를 보며
"보지 말라면 안 볼게. 근데 너 만나기 전에 약속한 거라 취소하기가 힘드네.."
이러더군요. 그러면서 제 기분을 물어보길래, 제가
"오늘 하늘 참 푸르고 바람에 꽃향기가 나고,
그런데 발밑이 뭉클, 해서 보이 똥이 내 하얀 운동화 밑에 있네.
딱 그런 기분이야 ^^"
이러면서 활짝 웃어주었지요. 그때 그의 표정이란 ㅋㅋ
그러면서 엄청 웃어대더군요.
지금은 아주 저에게 미쳐 있습니다. ㅋㅋ

 

사연 읽으면서 '강변 산책'이란 말에 또 흐뭇한 엄마미소만 짓지말고, 어떻게 상황을 풀어갔는지 잘 살펴보란 얘기다. 저 상황에서 "네가 보고 싶으면 봐. 네 마음이지."라고 쿨한 척 해 놓고 뒤돌아 나에게 이제 어쩌냐며 메일을 보내는 대원이 40%정도 되고, "그걸 말이라고 해? 내가 선본다면 넌 뭐라고 할 것 같아?"라며 엎질러 버리는 대원이 30%정도 된다. "나도 같이 갈까?" 라는 독특한 대원을 포함한 기타등등이 10%정도 되고 말이다.

이렇듯 같은 상황이라도 전혀 다른 전개를 할 수 있는 '말'들, 이번시간은 사귀자는 말이 없이 뺑뺑이 돌리는 그 남자에게 해 줘야 할 말들을 함께 살펴보자. 그리고 왜 그가 사귀자는 말을 하지 않는 지도 알아보자. 똥꼬에 힘 꽉 주고 후라이데이 매뉴얼 출발한다.


1.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덤벨남

 

앞으로 다가가면 멀어지고, 멀어지면 다가오는 관심남을 노멀로그에서는 '덤벨남(아령남)'이라 부르기로 한다. 덤벨남과 관련된 사연들은 대부분 이쪽에서 혼자 '착각'하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으나, 실제로 상대가 떡밥을 던진 뒤 되감고, 다시 떡밥을 던진 뒤 되감는 '들었다 놨다'를 하는 경우도 있다. 아래의 사연을 보자.

아는 오빠의 결혼식에 갔다가 만났어요. 그는 그 오빠 친구였죠.
첫 만남에서 부터,
"이런 후배 있었으면 진작 소개시켜주지 왜 안해줬냐."
"정말 귀엽다. 너무 예쁘다."
이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해서 제 연락처를 알아내서는
매일 볼 수 있게 우리동네로 이사온다느니, 뭐 그런 말을 하더군요.
저도 마음이 있었습니다. 완전 여동생처럼 대해주더군요.
제가 서울에서 혼자 생활하는 까닭에 불러내서 저녁에 밥사주고
잘 챙겨먹으라고 영양제도 사주고..
근데.. 그가 현재 취업이 안 되고 있는 상황이라..
만날 때 마다 이런 이야기도 합니다.
"빨리 취업해야 하는데.. 안 좋은 상황에 알게 되어 아쉽다.."
"너랑 놀려고 만나는 게 아니라 도움주고 조언 주려 만나는 거다."
"취업을 빨리 했으면 연애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취업하게 되면 이렇게 너랑 만나지도 못하겠지?"
이거 전에 매뉴얼에 나왔던 '연애가 사치로 느껴지는 남자' 그런 거죠?
아니면 그는 저를 그냥 귀여운 후배쯤으로 생각하는데..
저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건가요? 속터져 죽을 것 같아요..

 

너무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사실 이건 이쪽에서 '귀여운 후배'역할만 하고 있으니 벌어지는 일이다. 포지션만 바꿔도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는 거다. 여기서 절대 피해야 할 말은 "연애 하면서도 취업준비 할 수 있잖아요."라는 멘트다. 이 말은 그냥 상대를 앞에 세워놓고 무릎 꿇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데서나 무릎꿇지 말길 바란다.

위에는 옮기지 않았지만 아는 사람 시켜서 "오빠, 숙희 어때요?"라고 옵저버 띄운 상황인데, 앞으로는 친구나 아는 오빠를 시켜 그의 마음을 떠보려고 하지 말길 권한다. 그거야 말로 더더욱 당신을 '그냥 아는 동생'으로 만드는 지름길이다. 누가 도와준다고 해도 거절하기 바란다.

포지션을 옮겨 '누나'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거다. 취업에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모아서 그에게 전달하는 것도 좋고, 그 분야에 대해 잘 모른다면 취업준비에 필요한 책등을 선물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내 마음만 그에게 알리려고 하지 말고 그의 마음을 다독여 줄 수 있는 편지를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당신의 마음가짐부터 "사귀지 않아도 괜찮다. 이 순간을 이 사람과 알고 지내는 것이 행운이다."라고 가지며, 그것이 표현될 수 있는 말들을 하는 거다. 사귀자고 달려들지 말고, 이렇게 알게 되고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있어서 좋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연애를 사치로 느끼는 것 같은데, 이런 남자와는 만나도 힘든 건가요?"
"그는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 거죠? 그냥 좋은 동생인가요?"
"저에게 넘어오게 만드는 공략법은 뭐가 있을까요?"



이런 꼬꼬마 같은 이야기를 집어 치우고, 당신이 그의 보금자리가 되란 얘기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새라고 해도 내려와 쉴 수 있는 보금자리가 필요하니 말이다. 쫓기만 하면 지칠 뿐이다.


2. 사귀는 것 보다 이렇게 지내는 게 좋다는 남자

 

이 얘기는 '불문율'같은 거라서 공개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힘들어서 제가 만나지 말자고 했다가, 또 못 견뎌서 다시 잡았네요. 사귀는 것도 아니고 남남도 아닌사이, 너무 힘들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대원들이 있기에 이제는 그런 상황에서 상대가 가질 수 있는 '속마음'을 공개해야겠다. 남자들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여자들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상대'라고 말하면 또 자기 얘기 한다고 생각해 반발하는 대원들이 있으니, 내가 그 사람이라고 가정하자. 어차피 나는 IBM(이미버린몸)이라 무슨 소리를 들어도 괜찮다. 우선, 난 당신에게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사귀자는 말 없이도 연애하듯 지낼 수 있고, 그게 스킨십등을 제외한 거라고 해도 같이 영화를 보거나 밥을 먹는 것 정도로 만족한단 얘기다.

당신과 사귀게 되면 다른 여자들을 만나는 것이 '나쁜짓'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지금처럼 지내게 되면 내가 누굴 만나서 뭘 하든 아무 문제가 없다. 싸우고 화해하고를 반복하지 않아도 되고, 의무적으로 뭔가를 챙기거나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과 사귀는 일이 '속박'이 된단 얘기다. 확실히 해 달라는 말을 할 때마다 난 압박을 느낄 뿐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당신이 매몰차게 답을 요구하다 혼자 돌아선다고 해도 '어쩔 수 없지 뭐'라는 생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당신이 누군가와 사귀게 되었다고 얘기해도 별 감정이 없을 것 같다. 당신에게 내가 "이제야 네가 진짜라는 걸 알겠어."라고 하면 또 송두리째 흔들릴 것 까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 솔직한 말들인가?

이렇게까지 털어놨으면, "그래, 너란 남자 나쁜 남자" 이런 말을 미니홈피에 적는 헛발질만 할게 아니라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닌가. 사연 메일에

"삼일이 지났는데, 서로 연락을 안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라고 적어주셨나? 뭔가 단단히 착각을 한 것 같은데, 서로 연락을 안하고 있는 게 아니라 당신이 연락을 안 하고 있는 거다. 난 신경도 쓰지 않는다. 좀 기다리면 자기 성질에 못이겨 전화를 해 온다는 걸 알고 있으니 말이다. "넌 이렇게 지내도 괜찮다고 생각해?"라거나 "아무 상관없는 사이로 놓아주고 싶지만, 너를 안 보는게 너무 힘들다."이런 문자들로 말이다. 이래도 '서로 연락을 안 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할 건가?

아무리 당신이 진심을 메일에 적어보내고, 전화해서 사정한다고 해도 내 마음은 바뀌지 않는다. 왜? 당신이란 사람의 이미지가 이미 내 머릿속에 뚜렷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연락이 없으면 마음이 꽁한 상태라는 것이 그냥 보인다. 온갖 고민을 혼자 다 하고 있을 거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그게 내 머릿속에 만들어진 '당신'이라는 이미지니까. 당신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줘 버린 거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도 당신은 또 문자를 보내고, 참을성 없이 엎질러 버리고, 눈물로 호소를 한다는 걸 알기에 슬프다. 누구나 그런 시기를 겪으니 말이다. 불주사가 아프지만 누구나 한 번 맞아야 하듯, 그냥 불주사 같은 거라고 생각하길 바란다. 사귀자는 말 없는 남자에겐 아무 말도 해 주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답일 때도 있단 얘기다.


아 잠깐 눈물 좀 닦고. 힘들고 아프고 슬픈 사연들 말고 좀 가슴뛰는 사연들은 없는가? 채도가 없는 메일들만 읽으니 내가 방안에서 글루미 선데이 찍고 있는 것 같다. 블링블링한 사연들도 normalog@naver.com 으로 좀 보내주길 바란다.

말을 하자. 지금처럼 온통 회색범벅인 상태에서 암울한 말들만 꺼내지 말고, 당신이 밝은 노랑이나 화사한 핑크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해 보자. 싱그러운 녹색도 좋고 넓은 파랑도 좋다. 하늘 한 번 쳐다보고 하늘이 높고 넓은 만큼 크게 생각하란 얘기다. 무슨 색이든 당신이 검은색만 계속 섞는다면 검게 될 수 밖에 없다.

후라이데이, 당신의 명도와 채도를 높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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