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합성하기 알맞은 화창한 날씨가 이어짐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내 메일함에는 솔로부대원들의 헛발질 끝말잇기가 진행중이다. 어제 날아온 상큼한 사연을 보자.
무한님이 그렇게 말리셨지만.. 제 감정을 숨길 수 없었거든요..
그래서 그 오빠한테...
직접적으로 말은 못하고...
"오빠 저 좋아하면 빨리 잡으세요. 아니면 딴사람한테 갈지도 몰라요."
이렇게 문자를 보냈더니..
"그냥 떠나가라"
이런 답장이 왔어요...
역시 괜한짓 한 거겠죠 ㅠ.ㅠ
이제 어쩌면 좋은가요..
굉장히 쿨한 아는 오빠를 두신 것 같다. 아, 그리고 위에 옮기지는 않았지만 좋아하는 오빠가 있으면 상황파악부터 하자. 커피를 안 마시는 오빠한테 자꾸 "오빠, 우리 커피마시러 가요."라고 하니까 당연히 안 간다고 하는 거 아닌가. 그리고 남자는 '부탁'에 약하다고 마흔 네 번쯤 얘기한 것 같다. 같은 말이라도 커피를 먹으러 가자는 말 보다 커피 한 잔 사달라고 하는 쪽이 낫단 얘기다.
오늘 주제가 '착각'이니까 관련된 남자대원의 사연에 짧은 코멘트를 하나만 더 하자.
다들 그녀가 뭘 하려고 하면 소처럼 나타나서 일 대신 해주고,
두꺼비처럼 나타나서 도와주고 그러는 중입니다.
그럴수록 그녀는 더욱 더 도도해져서
회사 대부분의 남자사람들의 '영화보자'는 제안을 거절했을 정도죠.
뭐 그 사람들은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들이대는 케이스였고..
저는 좀 신중하게 다가갔습니다. 괜찮으면 주말에 영화 보자고.
그랬더니.. 주말에 부모님과 어디 가기로 했다고 하더군요.
미리 선약을 체크 안한 제 잘못이 큰 것 같습니다.
이건 제 잘못이라고 치고.. 주변에서 앞으로 그녀에게 정을 주지 말고
조금 멀리 대해보라는 조언을 해 주던데 그렇게 하면 될까요?
잠깐, 근데 저거 신데렐라가 아니고 콩쥐팥쥐 아닌가? 뭐, 나도 신데렐라에 나오는 난쟁이가 몇명이냐는 질문에 일곱명이라고 대답한 적이 있으니 넘어가자. 위의 사연에서 대부분의 회사 사람들이 거절당했다고 했는가? 그런데 왜 자신에게만 관대한 판결을 내리는가.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면 별 다를 것 없는 '거절'이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그녀에게 정을 주지 말고 멀리 대하라는 주변의 조언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월드컵 결승에서 1-0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이라면 천천히 공을 돌리는 것이 당연히 좋겠지만, 0-1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 몇 분 안 남았으면 공 몰고 상대진영을 파고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빈틈을 찾고 파고들길 권한다.
코멘트를 달다보니 글이 울퉁불퉁해졌다. 이쯤에서 자르고, 오늘은 갓 헤어진(응?) 솔로부대 전입신병들을 위한 매뉴얼을 발행할까 한다. 이 글을 읽기 전에도 또 그의 미니홈피를 찾아가 투데이 하나를 추가하고 왔을 지도 모르는 대원들, '다음페이지'로 넘어가는 방법을 함께 찾아보자.
사실 이건 막연한 추측이 아니다. 솔로부대 벨기에 연구소의 연구결과 헤어지자는 남자의 통보를 받은 뒤 여자가 다시 잡으면 되돌아올 확률이 32.7% 정도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다시 만나더라도 비슷한 이유로 헤어지거나 더욱 비참한 이별을 재경험 할 확률은 92%였다.
왜 이렇게 많은 수의 연인들이 비슷한 이유로 헤어지거나 더 비참한 이별을 경험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내가 늘 시달리는 '휴대폰 배터리'문제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나는 삼팔선 이남 지역에서 휴대폰 충전을 안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충전을 잘 안한다. 그렇기에 늘 사람을 만나러 외부에 나갔을 때나 결정적인 순간에 전원이 꺼져 고생을 한다. 얼마 전 이사를 할 때에도 도시가스나 케이블, 인터넷 기사분들의 연락을 핸드폰으로 받기로 했는데 전원이 꺼져 결국 편의점을 찾아가 충전을 했다.
늘 그런 상황에 답답하고 짜증나며 미리 충전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만 지금도 내 휴대폰은 배터리가 한 칸만 남아있는 상황이다. 스스로 아무 변화도 일으키지 않았기에 같은 일이 또 벌어질 거란 얘기다.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일 역시 그저 '재회'에만 의미를 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의 전원은 또 위협받을 것이다.
헤어진 이유를 생각해 보고, 그 이유마저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자. 아무 변화없는 지금 그 상태라면 잡아서 다시 온 상대가 또 마음에 넘치는 일이 일어나고, 그때에는 이별에 굳은살이 박히기 시작할 것이다.
시간은 울퉁불퉁해진 마음에 풍화작용을 일으킨다. 격동적인 감정의 쓰나미가 지나가고 난 뒤에는 평화로운 시간이 찾아온 듯 부드러운 마음이 된다는 얘기다. 대부분 사연에서 접하는 전화통화의 스크립트를 보면, 이처럼 온화해진 상태에 가루만 남은 듯 이야기가 오가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쪽에서는 그 대화에 긍정적인 의미부여만 하기 때문에 모든게 다 정상으로 돌아온 느낌을 가지는 거다.
사랑이 교통사고라면, 이별은 화재다. 거센 불길이 마음의 집을 휘감고 타오른다. 시간이 지나 다 타고 나면 불길은 사라지고 불탄자리만 남는다. 새카맣게 타버린 마음의 집을 보고 뭐라고 말할 생각인가.
"불길이 다 잡힌거죠? 이제 다시 들어가도 되죠?"
불탄자리에 다시 들어갈 수는 있지만 예전처럼 살 수는 없다. 다시 들어가고 싶다면 상대가 마음의 집을 리모델링 할 시간을 줘야 한다. 이 시기를 맞이한 대부분의 대원들이 마구 몰아치거나, 추궁하거나, 대답을 요구하며 상대로 하여금 리모델링을 포기하게 만든다.
"나도 널 잊을 거야. 니가 줬던 것들 다 택배로 보냈어."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나랑 헤어지고 싶다는 생각 변함 없는 거지?"
"나 정말 너 아니면 안되겠어. 우리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까?"
리모델링 할 시간을 주라는 거다. 헤어진 후 혼자하는 일이라면 알콜을 링겔로 맞든, 하루종일 그의 미니홈피만 들락날락하든 뭘 해도 좋지만 상대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말길 바란다. 위에 나온 '단골멘트'들은 대부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고, 그에게 답을 듣는다고 호랑이 기운이 솟아난다거나 하지 않는 것들이다. 대답이 정 궁금하다면 내가 대신 해줄테니 그에게 묻진 말길 바란다.
이정도면 되겠는가? 이별통보를 받은 직후 제정신으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힘들기에 많은 대원들이 "복수하고 싶어요."같은 얘기를 하기도 한다. 가장 좋은 복수방법은 당신이 잘 먹고, 잘 웃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 모습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언니 퍼가요~♥"라며 싸이중독증을 보이는 후배에게도 스크랩하라고 전해 널리널리 알리자. 당신에게 아픈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이 말이다.
그 심정 이해한다. 김장훈의 <나와 같다면>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또 목에 매운 깍두기 걸린 느낌이 나며 눈에서 라면국물을 쏟어내게 되는 것. 상대는 라디오 주파수를 어떻게 맞추는 지도 모르는 사람인데, "늘~ 우리가 듣던 노래가 래디오 에서 나오면~ 나처럼 울고 싶은지~ 왜 자꾸만 후회 되는지~"이런 노래를 부르며 급하게 알콜을 찾는 상황, 힘들다는 걸 안다.
미안하지만, 이별통보를 받은 당신과 달리 이별통보를 한 상대는 당신처럼 힘들어 하기보다 '해방감'을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일부는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는 거지'라며 벌써 친구에게 소개팅을 부탁해 놓았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당장 달려가서 멱살을 잡고 "넌 왜 안 힘들어해 이 좌식아!" 라고 말할 순 없지 않은가.
"그 사람... 자존심이 세서 다시 오지 못하는 걸 수도 있잖아요..."
노스트라다무한이 예언을 하나 하자면, 범인이 다시 사건현장을 찾는 것 처럼 상대는 분명 언젠가 다시 연락을 해 올 것이다. 그리고 멘트는 "뭐해?"나 "잘 지내지?"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마무리 멘트는 "너한테 미안하다.."가 될 것이다.
중요한 건, 상대가 힘들어하고 있는지의 유무를 아는 것이 아니고, 자존심 때문에 다시 오지 못하고 있는 지를 근심하는 것도 아니다. 상대보다 당신에게 더 신경을 쓰란 얘기다.
"제가 얼마나 싫길래.. 이렇게 까지 하는 데도.. 목소리 한 번 들려주지 않을까요.."
"이렇게 평생 연락도 못 하고.. 못 보는 사이로 지내고 싶은 걸까요..."
몇 밤만 더 자고 다시 읽어보면 얼굴 붉어질 이야기들은 접어두자. 당장 상대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한다고 시한부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상처받은 당신의 마음을 먼저 보듬어주자. 괜찮지 않다고 계속 상처를 만지며 딱지만 뜯지 말고 말이다.
별 아픔없이 마음에 세모표시 하나만 해 두고 다음이야기로 넘어가길 바랄 것이다. 머쓱하고 어색한 순간도 다 좋으니 친구와 싸운 뒤 화해하듯 편의점 야외 의자에 앉아 맥주 한잔 마시는 기분으로 웃을 수 있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기지 않으면 다음이야기를 알 수가 없다. 아무리 사정해도, 전력으로 매달려도, 페이지는 당신이 넘겨야 하는 것이다. 엄마에게 울며 조른다고 엄마가 대신 해 줄 나이는 한참 전에 지나지 않았는가. 이대로 일시정지 해 두면, 인생의 번외편 같은 시간만 계속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 매뉴얼은 당신에게 '다음페이지'로 넘어갈 것을 권하고 있다. 류시화 시인의 번역시집 제목 중에도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헤어졌으니 이 사랑은 접고 어서 다른 사랑을 찾아가라는 얘기가 아니다. 당신이 지금 놓지 못하고 있는 그 사람과 다시 사랑하기 위해서도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 같은 당신이 되어야 한다. 지금, 당신 마음의 집도 다 타버린 채 아닌가.
우선 내 마음의 집 리모델링을 해 보자. 재료는 노멀로그에 많이 준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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