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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급한 남자들이 여자에게 사용하는 떠보기 멘트들

by 무한 2011. 11. 1.
몇 년 전, 동생이 우편물을 확인하다 뭔가를 발견하고 이렇게 외친 적이 있다.

"형, 이것 봐봐. 십만 원짜리 상품권이야. 인터넷 여기로 들어가서 받으래."


이미 눈치 챈 독자들도 있겠지만, 그 상품권은 개인정보 수집을 목적으로 한 광고지였다. 당시 그 전까지 광고지들은 '쿠폰'등의 이름을 달아, 확연히 그 목적을 알 수 있도록 요란하게 인쇄되어 나오곤 했다. 하지만 동생의 우편물 속에 들어 있던 그 광고지는, 언뜻 봐서는 그 목적을 알 수 없도록 백화점 상품권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내게 사연을 보내는 솔로부대 여성대원들 중에도 위에서 말한 '동생의 외침'과 비슷한 이야기를 꺼내는 대원들이 있다. 특히 아직 연애경험이 없거나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딘 대원들이 그렇다.

"그 사람 말을 들어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진심으로 하는 말인 것 같았어요. 다른 의도로 없이요."



그들에게 "그거, 그냥 개인정보 수집하려고 내 놓은 뻥카라니까요."라고 말해보지만, 그들은 여전히 "다른 사람들이 당했다는 거랑은 분명 달라요! 이건 분명 백화점 상품권처럼 생겼어요."라는 대답만 할 뿐이다. "네, 그럼 마음껏 써 보세요. 써 보면, 당했다는 걸 분명히 알 수 있겠죠."라며 그냥 둘까 싶었다. 하지만 "그 남자는 자기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아내와는 그냥 같이 살뿐 사랑하는 건 저래요."라는 메일을 보낸 스무살짜리 대원의 사연. 유부남의 말에 홀려 '벌거벗은 아저씨'에게 당하고 있는 그 대원을 모른 척 할 순 없지 않은가. 급한 남자에게 당한 대원들의 사연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1. 이상한 여자 만들기


'급한 남자'에 관한 사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상하게 만들기'라는 방법이다. 이 방법이 왜 효과적인지는, 내가 <죄와 벌>을 읽다가 밑줄 친 문장을 잠시 꺼내 보면 알 수 있다.

"모두들 자기 견해에 대해서 얼마나 겁쟁이들인지 당신은 상상도 못할 겁니다."

-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중에서


이건 심리학과 관련된 여러 실험을 통해서도 이미 증명된 얘기다. 사람이 '전문가'나 '다수의 의견' 앞에서 쉽게 자신의 견해를 팽개쳐 버리는 일 말이다. 급한 남자의 멘트 중 "넌 굉장히 보수적인 것 같아. 조금 더 개방적이어도 괜찮을 텐데."라는 말이 있다. 떼어 놓고 보니 진지한 조언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저 말의 목적은 "그러니 어서 단추를 풀러."라거나 "자, 어서 쉬러 가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저 상대를 마음대로 하기 위해 무장해제 시키려는 밑밥인 것이다.

그렇게 목적을 살피면 "어디서 약을 팔어."라며 대꾸해 줄 말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대원들이 저 말에 이끌려 '해방'이나 '자유'를 꿈꾼다. 오, 단추를 푸는 해방과 체크인으로 시작되는 자유여! 그 해방과 자유 다음엔 왜 꼭 연락 없음으로 이어지는 지에 대해선 부킹대학 맨해튼 연구소에서 연구 중이다.

이런 사연도 있었다. 스마트폰 어플을 통해 알고 지내다 오프라인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 '술 한 잔 하자'를 슬로건으로 한 만남에서, 남자는 여자에게 무리한 스킨십을 한다. 여자가 자꾸 회피하자 남자는 좀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갑자기 뽀뽀를 하려 한다. 여자가 당황해 남자를 밀치자, 남자는 말한다.

"널 좋은 친구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친구 사이에 이 정도 표현도 못 해? 좀 고지식한 것 같아. 너."



저 얘기를 들은 여자는 사연을 통해 내게 이렇게 묻는다.

"제가 정말 고지식한 걸까요?
사실 저희 부모님이 좀 엄하신 편이라 보수적으로 자라긴 했거든요.
그 남자는 제가 자꾸 스킨십을 거절하니까 더 만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하죠?"



간단히 대답해 주면 된다.

"너, 좋은 친구들이랑 뽀뽀하고 다니는 거, 부모님도 아셔?"


라고.


2. 마사지, 안마 타령


급한 남자들 중엔 자신이 '마사지'나 '안마'에 재능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 그들을 모아 마사지 샵 같은 걸 차리고 싶을 정도다. 아니, 그렇게 '마사지'나 '안마'를 잘 하면 부모님 어깨나 좀 주물러 드릴 것이지, 왜 엄한 사람 붙들고

"마사지를 받으려면 다 벗고 받아야 하는데, 오해는 하지 마.
화가가 누드모델 보고 이상한 생각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림 그리는 것처럼
나도 아무 감정 없이 그냥 마사지를 하기 위해서 그러는 거니까. 어때?"



라며 벗기지 못해 안달인가. 안타까운 것은, 저런 해괴한 소리를 들은 대원들 중 상대를 통해 외로움에서 벗어나려 하는 대원들은 저 말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둘은 이제 막 통성명을 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마사지의 종류도 참 가지가지다. 발 마사지, 손 마사지, 허리 마사지, 그런 게 좀 노골적이라 생각했는지 두피 마사지를 해 주겠다며 다가오는 급한 남자도 있다. 물론, 마사지나 안마를 해주겠다고 해서 다 '급한 남자'는 아니다. 다만 급한 남자들이 그런 호의를 구실로 '검은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기억해 두자. 특히, 독립해서 살고 있다는 걸 안 뒤 "**씨 집에 가서 해 줄게요."라고 말하거나, "오일마사지를 하려면 베드가 있어야 하는데..."라며 떠보는 남자는 더욱 주의하자.

이처럼 '검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 남자는 더 생각해보고 말고 할 것도 없이 확실히 자르길 권한다. 이렇게 권해도 여전히 "잘라내긴 싫어요. 그냥, 대처법만 알려주시면 안 되나요? 그 사람이 계속 마사지 해 준다며 들이대지 않게요."라고 말하는 대원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아는 언니'나 '친구' 등이 에스테틱 샵을 하고 있다는 답변을 권하겠다. 그렇게 대처해도, 상대는 곧 화제를 바꿔 "강아지 기른다고 했죠? 강아지 보러 놀러 가면 안돼요?"라고 물을 가능성이 높지만.


3. 감정에 호소하기


약장수들이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다.

"무릎 아프셔서 계단 오르내리기 힘드시죠? 앉았다 일어날 때 꼭 뭐 짚어야 하고.
뜨근하게 지져도 허리 아픈 건 가시지 않고. 그죠. 이 매트 한 번 보세요.
이게 진짜 옥입니다. 옥. 여기 들어가 있는 게 옥이에요.
무릎이랑 허리만 안 아파도 살 것 같으시잖아요. 그죠? 한 번 써 보세요."



그들은 감정에 호소해 상대로 하여금 자신들이 원하는 행위를 하도록 만든다. 여기에 거짓과 과장까지 섞어가며 말이다. 일반적으로 '멀쩡하다'고 할 수 있는 상태에선 그들의 오류를 금방 발견할 수 있지만, "아, 전 어장관리라도 당했으면 좋겠어요."따위의 이야기를 하는 상태에 있는 대원들은 그러지 못한다. 연애경험이 없거나 아직 꼬꼬마인 대원들도 포함해서.

그나마 약장수들은 "애들은 가."라며 애들은 쫓아 보내지만, 일부 급한 남자들은 애건 어른이건 가리지 않고 들이댄다. 서두에서 예로 든 '유부남과 20세 소녀'의 사연이 그렇다. 음, 다 밝힐 순 없기에 간략히만 말하자면, 소녀는 유부남의 '팬'이었다. 유부남은 이미 아내와 두 자녀가 있는 상황.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아내와 자식자랑을 늘어 놓아, 외부에선 그를 '좋은 남편'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소녀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눈치 챈 유부남은, 자신의 개인적인 공간으로 소녀를 부르거나 차에 소녀를 태워 돌아다니며 계속 들이댔다. "아내와 같이 살긴 하지만, 각방을 쓴 지 오래다."라거나 "내가 정말 사랑하는 건 너야. 너도 날 사랑하잖아."따위의 말로. 이 얼빠진 멘트들을 이미 노멀로그에서 여러 번 소개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녀는 '이건, 진짜야.'라고 믿어 버렸다. 그 이후에 둘이 어떤 관계가 되었는지는 길게 얘기하지 않아도 다 알리라 생각한다.

"그 사람 부인이 너무 미워요.
저랑 같이 누워 있을 땐 저 밖에 없다고 했는데,
**씨가 인터뷰에서 가족 얘기를 하는 걸 보고 전 엄청 울었어요.
친구들이 저보고 **년이라고 하던데,
무한님도 절 **년이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2016년 새해 아침, 아나운서들이 어떤 멘트를 할 지 궁금해지는 질문이다. 여하튼 약장수의 감정을 자극하는 말에 넘어가, 후회할 짓은 하지 말길 권한다. 잔디밭에 누워 젊음을 만끽해도 좋을 그 좋은 날을, 왜 남의 집 장롱에 숨어 들어가 숨죽이고 있는가. 마음에 곰팡이 피기 전에 어서 나오길 바란다.


사실, 이렇게 적어두고 "단, 위의 이야기는 연인사이에서 벌어지는 일과는 좀 차이가 있습니다."라는 얘기를 덧붙이려 했다. 그런데 또 그렇게 적기 어려운 이유가, 그저 '검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뭐든 쉽게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우리 사귀는 거야."라는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에 여자가 마음 놓으면, 그냥 자신의 목적만 취하고는 "헤어지자. 우린 안 맞는 것 같아."라며 돌아서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헤어져 놓고는 여자에게 쿨해지길 요구하고, '쿨한 친구'따위의 얘기를 하며 지 마음대로 들락날락 하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난 둘의 만남이나 대화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살펴보길 권한다. '급한 남자'들은 무슨 대화를 나누든 꼭 '음담패설'을 등장시키는 경우가 많다. 또, '지금'만 강조하는 상대의 말에 넘어가지 말고, '내일'도 있다는 걸 기억하길 바란다. 급한 남자들은 대부분 오늘만 날인 것처럼 행동하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를 치료하려 하거나, 상대에게 치료를 받으려 하지 말길 권한다. 위에서 말한 소녀도 그 유부남을 자신이 '돌봐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 죽일 놈의 모성애. 녀석이 집에 들어가면 전화통화도 못하는 관계면서 대체 뭘 돌봐준단 얘긴가. 다시 한 번 기원한다. 사탕발림에 넘어가 감당하지 못할 채무를 지고, 훗날 혼자 고통 속에서 그 채무를 갚아나가는 대원들이 더는 없길.



"기능을 하는지, 확인하고 싶어."는 대체 무슨 즤랄인지. 아니, 비뇨기과를 가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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