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은 나쁜 여자니 좋아하지 말라는 그녀, 속마음은?
오피스텔에서 자취하던 친구가 '시베리안 허스키'를 키운 적이 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허스키는 직장인 남자 혼자 사는 오피스텔에서 키울 수 있는 종이 아니었기에, 난 친구가 허스키를 분양 받기 전부터 반대했다. 허스키는 활동량이 많은 까닭에 집에 혼자 내버려 둘 수 없는데다, 그 몸집 역시 원룸 오피스텔에서 감당할 만한 크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견 판매업자는 '잘만 키운다면'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가며 친구의 의견에 힘을 실어 주었고, 결국 친구는 어느 날 허스키를 분양받아왔다.
봄에 허스키를 데려 온 친구는, 여름에 다시 보내야 했다. 허스키가 입에 닿는 것은 모조리 물어뜯어 놓았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식탁 문짝, 복층 계단, 옷장 모서리는 초토화가 되었다. 허스키를 산책 시키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갈 땐 같은 오피스텔에 사는 사람들이 기겁을 했고, 허스키가 꼬마 아이만 보면 달려드는 까닭에 친구가 상상하던 산책도 불가능했다.
모쏠남 S씨의 사연을 읽으며 난 저 친구가 떠올랐다. 절박한 S씨의 외침에 나도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이라는 말로 화답해주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친구에게 허스키를 판 애견 판매업자와 비슷한 모양이 되고 만다. 미안하지만 현재로서는 S씨가 상대를 감당할 수 없는 게 확실하다. 상대도 그걸 알고 있다. 때문에
라는 말을 한 것이다. S씨는 저걸 '마음이 없는 까닭에 선을 그으려고 한 거절'로만 보고 있는데, 저건 당장 마음이 없어서 한 단순 거절이 아니다. 이미 상대는 S씨의 한계를 파악했고, 그 한계로 미루어 자신이 S씨와 사귀는 일은 없을 거라는 걸 표현한 것이다. 상대가 왜 저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는지, 오늘 함께 살펴보자.
칭찬을 할 때엔, 상대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칭찬해야 한다. 평소 휜 다리로 속병을 앓고 있는 여자에게 "은지씨 다리 예뻐요~"라는 얘기를 하면, 그녀는 절대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자기 다리는 예쁜 다리 아니라고 부정해도 계속 이쪽에서 "아녜요, 내 눈엔 정말 예뻐 보여요."라는 얘기를 하면, 부담이 되고 만다.
상대에 대한 S씨의 칭찬이 그렇다.
암만 봐도 저 칭찬들은 실수다. 상대는 부서를 옮기고 싶을 정도로 회사 일을 힘들어 하는데, 거기다 대고 왜 저런 얘기를 자꾸 하는지 모르겠다. 부지런하다는 칭찬 역시, 상대는 회사랑 집이 멀어서 좀 일찍 나온 것뿐인데, 그걸 가지고 부지런하다고 칭찬 하니 상대는 부정하지 않는가.
저런 대답을 들었으면 그냥 웃으며 넘겼어야 하는데, S씨는 자신의 칭찬을 굽히지 않으려 어떻게든 다른 구실을 갖다 댄다.
부담스럽다. 칭찬 못 해서 죽은 귀신이 붙은 것도 아닌데, S씨는 왜 상대가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도 칭찬하려 하는 걸까.
두 달 내내 저러고 있으니까 상대는 S씨와는 밥 한 번 먹기도 부담스러운 거다. 상대에 대해 S씨가 높은 기대치를 가지고 있으니, 만나서 밥을 먹다 작은 실수만 해도 큰 실망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S씨는
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늘 얘기했듯, 평소에 보여준 말과 행동이 S씨의 이미지가 되는 거다. S씨는 그녀에게 '나에 대해 맹목적인 신뢰를 보이는 직장상사'가 되었다. 흔들리는 순간에 보여 준 신뢰는 감동이지만, S씨처럼 끊임없이 "난 널 신뢰해. 넌 잘 할 거라 믿어."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은, 불편하고 어렵고 부담스러울 뿐이다.
호감을 가지고 먼저 다가오는 여자도, 이쪽에서 세 번쯤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주면 짜증을 낼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이쪽에서 호감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에게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주면 어떻겠는가?
아래는 지난 달 대화다.
한 달 사이에, S씨를 대하는 상대의 예의가 많이 무너진 것을 볼 수 있다. "빨리 오기나 하셔요."라는 말을 듣고도 좋다고 가서 밥을 사는 걸 보며 난 경악했다. 저건 친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냥 '밥셔틀'을 부르는 수준의 멘트다. 저기에 이용당하고 있는 모쏠 대원들이 꽤 많다. 한 대원의 사례를 보자.
어머니께서 아시면 피눈물을 쏟으실 일이다. 귀한 당신 아들이 흰쌀밥 먹고 저기 가서 밥셔틀 통근셔틀이나 하고 있는 걸 아시면 정말….
저래서 될 일 같으면 내가 "그러니까 여러분은 미리 맛집 다 파악해 두고 통장 잔고 두둑이 넣어둔 뒤, 항상 엔진을 켜 두시는 게 좋습니다."라고 얘기하지, 뭐 하러 이렇게 긴 글을 쓰겠는가. 상대의 뒤만 쫓아다니는 연애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여전히 밸도 없이 상대의 말 한 마디에 일희일비 하며 지내는 대원들이 너무 많다. 그렇게 뒤만 쫓다 운이 좋아 연애를 시작해 봐야, '가방셔틀'의 임무가 추가되는 것 말고는 변하는 게 없을 것이다. 잊지 말길 바란다.
이게 가장 치명적인 부분인데, S씨 정말 재미없다. 오죽하면 내가 카톡대화를 읽다가,
라는 생각을 했을까. 내겐 S씨와 비슷한 화법을 구사하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 친구 역시 S씨처럼 사람을 졸리게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그 친구의 화법은 아래와 같다.
저 친구는 인도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그래서 인도음악을 종종 내게 들려주곤 하는데, 서양의 음악과 달리 인도음악은 음계가 더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들려주는 음악은, 사실 내겐 고문에 가깝다. 선의로 그러는 건 알겠는데, 그 선의가 반갑지 않다. 사람을 지겹고 피곤하게 만들 뿐이다.
S씨의 긴 이야기 끝에 상대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를 살펴보길 바란다.
먼저 말을 건 건 상대였는데, S씨는 결국 상대를 재우고 말았다. 내가 만약 S씨였다면, "자요?"라고 말을 걸어 온 상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음을 간파하고, 외로움이든 심심함이든 상대 마음속에 있는 감정을 끄집어냈을 것이다. 살살 유도하면 상대가 방언 터진 듯 알아서 토로를 시작할 테니 말이다. 그런데 S씨는 상대가 말을 걸자 들떠서 '드라마 감상기'를 늘어놓았고, 결국 상대는 자겠다는 얘기를 하고 말았다.
저렇게 대화를 나눈 뒤 친해졌다고 생각해 자꾸 들이대기만 하는 것도 S씨의 문제다.
만남을 구걸하지 말고, 만나고 싶으면 '초대'하듯 상대에게 제안하자. 상대가 제안을 거절하면 거절한 대로 S씨는 자신의 하루를 보내면 된다. 표류하고 있는 사람처럼 붕 떠 있다가, 상대가 마음 바꿨다고 해서 즉시 달려 나가면, '함부로 굴어도 되는 남자'가 되고 만다. 상대로 하여금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어떠한가? 상대에게 S씨는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남자'일 뿐이다. "빨리 오기나 하셔요."라는 말에 "어, 알았어."라고 대답하는 '호갱님' 이미지에서 벗어나길 권한다. 할 말은 할 줄 아는 남자가 되어야 예의든 긴장감이든 조성되는 법이지, 지금처럼 막대해도 헤헤 웃으면 그냥 바보 되는 거다. 존중이 사라진 땅에서 연애는 자랄 수 없음을 잊지 말길 바란다.
S씨는 현재 '아낌없이 주는 나무'같은 이야기를 꿈꾸는 것 같은데, 그렇게 아낌없이 주다가 뿌리까지 뽑힌 선배대원들이 수두룩하다.
그건 데이트가 아니다. 상대에게 식사 대접하고, 상대가 심심하지 않게 알아서 수다까지 떠는 것일 뿐이다. 상대의 말과 달리 난 S씨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걸 많은 대원들이 착각하는데, '맹목적으로 헌신하는 사람'과 '좋은 사람'은 분명 다르다. 전자는 종교에 빠진 광신도들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S씨에겐 저녁 같이 못 먹어서 죽은 귀신도 씐 듯한데, "내가 맛집 아는데, (중략) 생각 있으면 말해 줘.", "저녁 같이 먹을 수 있으면 말해 줘.", "다음에 언제 저녁 같이 먹을 수 있을까?" 따위의 드럽게 박력 없는 질문은 그만하고, 딱 말하자. 금요일 저녁에 닭갈비 먹자고. 만약 상대가 안 된다고 하면 안 된다고 받아들이기 바란다. 예전 습관 버리지 못 한 채 "그럼 다음에 시간 날 때 말해줘. 난 언제든 괜찮아."따위의 얘기는 제발 하지 말고 말이다.
연애를 하려다 보면 씁쓸할 때도 있고, 가슴 아플 때도 있고, 상대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고, 기분이 확 상해 때려치우고 싶을 때도 있는 거다. 전혀 그런 척 하지 않으며, 동시에 그런 일이 발생하게 만들지 않으려고 멀리서 '안전한 질문(모든 선택권과 행동권을 상대에게 위임하는 질문)'만 던지고 있으면, 둘의 간격은 영원히 좁혀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대부분 돌직구를 날리겠다며 무리수를 두고 마는데 절대 그러지 말길 바란다. 상대가 타석에 들어서지 않으면 돌직구든 변화구든 다 소용 없다. 공을 던지고 싶은 마음은 잠시 내려놓고,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길 권한다.
▲ 어제 보낸 톡에 답 없으면 오늘은 침묵하세요. 못 참고 또 보내면 쉬운 남자 됩니다. 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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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텔에서 자취하던 친구가 '시베리안 허스키'를 키운 적이 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허스키는 직장인 남자 혼자 사는 오피스텔에서 키울 수 있는 종이 아니었기에, 난 친구가 허스키를 분양 받기 전부터 반대했다. 허스키는 활동량이 많은 까닭에 집에 혼자 내버려 둘 수 없는데다, 그 몸집 역시 원룸 오피스텔에서 감당할 만한 크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견 판매업자는 '잘만 키운다면'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가며 친구의 의견에 힘을 실어 주었고, 결국 친구는 어느 날 허스키를 분양받아왔다.
봄에 허스키를 데려 온 친구는, 여름에 다시 보내야 했다. 허스키가 입에 닿는 것은 모조리 물어뜯어 놓았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식탁 문짝, 복층 계단, 옷장 모서리는 초토화가 되었다. 허스키를 산책 시키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갈 땐 같은 오피스텔에 사는 사람들이 기겁을 했고, 허스키가 꼬마 아이만 보면 달려드는 까닭에 친구가 상상하던 산책도 불가능했다.
모쏠남 S씨의 사연을 읽으며 난 저 친구가 떠올랐다. 절박한 S씨의 외침에 나도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이라는 말로 화답해주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친구에게 허스키를 판 애견 판매업자와 비슷한 모양이 되고 만다. 미안하지만 현재로서는 S씨가 상대를 감당할 수 없는 게 확실하다. 상대도 그걸 알고 있다. 때문에
"오빠는 참 좋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혹시 저를 좋아하신다면 그러지 마세요. 저는 나쁜 여자예요."
그런데 혹시 저를 좋아하신다면 그러지 마세요. 저는 나쁜 여자예요."
라는 말을 한 것이다. S씨는 저걸 '마음이 없는 까닭에 선을 그으려고 한 거절'로만 보고 있는데, 저건 당장 마음이 없어서 한 단순 거절이 아니다. 이미 상대는 S씨의 한계를 파악했고, 그 한계로 미루어 자신이 S씨와 사귀는 일은 없을 거라는 걸 표현한 것이다. 상대가 왜 저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는지, 오늘 함께 살펴보자.
1. 그 칭찬들, 남의 얘기 같고 부담스러워요.
칭찬을 할 때엔, 상대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칭찬해야 한다. 평소 휜 다리로 속병을 앓고 있는 여자에게 "은지씨 다리 예뻐요~"라는 얘기를 하면, 그녀는 절대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자기 다리는 예쁜 다리 아니라고 부정해도 계속 이쪽에서 "아녜요, 내 눈엔 정말 예뻐 보여요."라는 얘기를 하면, 부담이 되고 만다.
상대에 대한 S씨의 칭찬이 그렇다.
"은지씨는 열정이 넘치는 것 같아요."
"역시 은지씨는 부지런하시네요."
"(말 놓은 후)은지는 정말 열심히 하는구나!"
"역시 은지씨는 부지런하시네요."
"(말 놓은 후)은지는 정말 열심히 하는구나!"
암만 봐도 저 칭찬들은 실수다. 상대는 부서를 옮기고 싶을 정도로 회사 일을 힘들어 하는데, 거기다 대고 왜 저런 얘기를 자꾸 하는지 모르겠다. 부지런하다는 칭찬 역시, 상대는 회사랑 집이 멀어서 좀 일찍 나온 것뿐인데, 그걸 가지고 부지런하다고 칭찬 하니 상대는 부정하지 않는가.
"부지런했다면 더 일찍 나왔겠죠. 지금 가야 딱 맞춰서 갈 수 있어요."
저런 대답을 들었으면 그냥 웃으며 넘겼어야 하는데, S씨는 자신의 칭찬을 굽히지 않으려 어떻게든 다른 구실을 갖다 댄다.
"그래도 어제 회식해서 숙취가 있을 텐데, 그럴 때 정시에 가는 게 대단하지."
부담스럽다. 칭찬 못 해서 죽은 귀신이 붙은 것도 아닌데, S씨는 왜 상대가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도 칭찬하려 하는 걸까.
두 달 내내 저러고 있으니까 상대는 S씨와는 밥 한 번 먹기도 부담스러운 거다. 상대에 대해 S씨가 높은 기대치를 가지고 있으니, 만나서 밥을 먹다 작은 실수만 해도 큰 실망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S씨는
"아, 저건 그냥 그녀의 기분을 좋게 해 주려는 칭찬이지,
그녀에게 높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그녀에게 높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늘 얘기했듯, 평소에 보여준 말과 행동이 S씨의 이미지가 되는 거다. S씨는 그녀에게 '나에 대해 맹목적인 신뢰를 보이는 직장상사'가 되었다. 흔들리는 순간에 보여 준 신뢰는 감동이지만, S씨처럼 끊임없이 "난 널 신뢰해. 넌 잘 할 거라 믿어."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은, 불편하고 어렵고 부담스러울 뿐이다.
2. 밸도 없는 남자, 재미없고 싫어요.
호감을 가지고 먼저 다가오는 여자도, 이쪽에서 세 번쯤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주면 짜증을 낼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이쪽에서 호감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에게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주면 어떻겠는가?
S씨 - 내가 맛있는 감자탕 집 아는데, 저녁에 감자탕 먹을까?
상대 - 저 저녁 안 먹어요.
S씨 - 그래. 금요일인데 너무 무리 하지 말고 주말 잘 보내~
(몇 시간 후)
상대 - 배고파요 ㅠ.ㅠ
S씨 - 배고파? 내가 그쪽으로 갈게 같이 먹자.
상대 - 뭐 먹게요?
S씨 - 낙지볶음에 밥 먹을까? 어때?
상대 - 숙취 때문에 국물 있는 거 먹고 싶어요. 빨리 오기나 하셔요.
S씨 - 알았어.
상대 - 저 저녁 안 먹어요.
S씨 - 그래. 금요일인데 너무 무리 하지 말고 주말 잘 보내~
(몇 시간 후)
상대 - 배고파요 ㅠ.ㅠ
S씨 - 배고파? 내가 그쪽으로 갈게 같이 먹자.
상대 - 뭐 먹게요?
S씨 - 낙지볶음에 밥 먹을까? 어때?
상대 - 숙취 때문에 국물 있는 거 먹고 싶어요. 빨리 오기나 하셔요.
S씨 - 알았어.
아래는 지난 달 대화다.
(S씨는 오프, 상대는 오후 출근을 하는 상황)
S씨 - 오늘 오후 출근이지? 점심이나 같이 먹자~
상대 - 집에서 밥 먹고 나가려구요.
S씨 - 그래. 그럼 되겠네~ 맛있게 먹어~
(역시 S씨가 오프였던 어느 날)
S씨 - 이따가 근처 지나갈 것 같은데 점심 때 잠깐 볼까?
상대 - 아니요. 저 보람언니랑 밥 먹고 오후에 외근가요.
S씨 - 그래. 조심히 다녀와~
S씨 - 오늘 오후 출근이지? 점심이나 같이 먹자~
상대 - 집에서 밥 먹고 나가려구요.
S씨 - 그래. 그럼 되겠네~ 맛있게 먹어~
(역시 S씨가 오프였던 어느 날)
S씨 - 이따가 근처 지나갈 것 같은데 점심 때 잠깐 볼까?
상대 - 아니요. 저 보람언니랑 밥 먹고 오후에 외근가요.
S씨 - 그래. 조심히 다녀와~
한 달 사이에, S씨를 대하는 상대의 예의가 많이 무너진 것을 볼 수 있다. "빨리 오기나 하셔요."라는 말을 듣고도 좋다고 가서 밥을 사는 걸 보며 난 경악했다. 저건 친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냥 '밥셔틀'을 부르는 수준의 멘트다. 저기에 이용당하고 있는 모쏠 대원들이 꽤 많다. 한 대원의 사례를 보자.
상대 - 앞으로 저희 회사 근처에서 오빠 차 안 봤으면 좋겠어요.
모쏠 - 그래…. 부담스럽다면 기다리지 않을게. 미안해.
(비가 오던 어느 날, 퇴근 시간)
상대 - 오늘 우산이 없어서 그러는데 카풀 해 줄 수 있어요?
모쏠 - 어. 내가 지금 갈게. 근데 지금 백석 근처라 시간 좀 걸릴 수도 있어.
상대 - 그럼 됐어요. 그냥 버스 타고 갈게요.
모쏠 - 아냐. 금방 가. 추우니까 안에 들어가 있어. 도착하면 전화할게.
모쏠 - 그래…. 부담스럽다면 기다리지 않을게. 미안해.
(비가 오던 어느 날, 퇴근 시간)
상대 - 오늘 우산이 없어서 그러는데 카풀 해 줄 수 있어요?
모쏠 - 어. 내가 지금 갈게. 근데 지금 백석 근처라 시간 좀 걸릴 수도 있어.
상대 - 그럼 됐어요. 그냥 버스 타고 갈게요.
모쏠 - 아냐. 금방 가. 추우니까 안에 들어가 있어. 도착하면 전화할게.
어머니께서 아시면 피눈물을 쏟으실 일이다. 귀한 당신 아들이 흰쌀밥 먹고 저기 가서 밥셔틀 통근셔틀이나 하고 있는 걸 아시면 정말….
저래서 될 일 같으면 내가 "그러니까 여러분은 미리 맛집 다 파악해 두고 통장 잔고 두둑이 넣어둔 뒤, 항상 엔진을 켜 두시는 게 좋습니다."라고 얘기하지, 뭐 하러 이렇게 긴 글을 쓰겠는가. 상대의 뒤만 쫓아다니는 연애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여전히 밸도 없이 상대의 말 한 마디에 일희일비 하며 지내는 대원들이 너무 많다. 그렇게 뒤만 쫓다 운이 좋아 연애를 시작해 봐야, '가방셔틀'의 임무가 추가되는 것 말고는 변하는 게 없을 것이다. 잊지 말길 바란다.
3. 나 좋아하는 남자 만나야 행복하다지만, 이건 좀….
이게 가장 치명적인 부분인데, S씨 정말 재미없다. 오죽하면 내가 카톡대화를 읽다가,
'이 사람, 지금 뭔 소리 하고 있는 거야?'
라는 생각을 했을까. 내겐 S씨와 비슷한 화법을 구사하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 친구 역시 S씨처럼 사람을 졸리게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그 친구의 화법은 아래와 같다.
친구 - 너 독립영화 좋아해?
무한 - 아니. 몇 개 본 적은 있는데, 챙겨서 보진 않아.
친구 - 독립영화가 진짜 철학이 담긴 영화거든.
최근에 나온 어쩌고저쩌고….
무한 - 응.
친구 - 그리고 예전에 나온 어쩌고저쩌고.
무한 - 응.
친구 - 무슨무슨 영화를 만든 감독은 우리 학교 선배인데 어쩌고저쩌고.
무한 - 응.
친구 - 진짜 그 영화를 보면 어쩌고저쩌고.
무한 - 아니. 몇 개 본 적은 있는데, 챙겨서 보진 않아.
친구 - 독립영화가 진짜 철학이 담긴 영화거든.
최근에 나온 어쩌고저쩌고….
무한 - 응.
친구 - 그리고 예전에 나온 어쩌고저쩌고.
무한 - 응.
친구 - 무슨무슨 영화를 만든 감독은 우리 학교 선배인데 어쩌고저쩌고.
무한 - 응.
친구 - 진짜 그 영화를 보면 어쩌고저쩌고.
저 친구는 인도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그래서 인도음악을 종종 내게 들려주곤 하는데, 서양의 음악과 달리 인도음악은 음계가 더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들려주는 음악은, 사실 내겐 고문에 가깝다. 선의로 그러는 건 알겠는데, 그 선의가 반갑지 않다. 사람을 지겹고 피곤하게 만들 뿐이다.
S씨의 긴 이야기 끝에 상대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를 살펴보길 바란다.
"ㅎㅎㅎ 근데 저 자야겠어요."
먼저 말을 건 건 상대였는데, S씨는 결국 상대를 재우고 말았다. 내가 만약 S씨였다면, "자요?"라고 말을 걸어 온 상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음을 간파하고, 외로움이든 심심함이든 상대 마음속에 있는 감정을 끄집어냈을 것이다. 살살 유도하면 상대가 방언 터진 듯 알아서 토로를 시작할 테니 말이다. 그런데 S씨는 상대가 말을 걸자 들떠서 '드라마 감상기'를 늘어놓았고, 결국 상대는 자겠다는 얘기를 하고 말았다.
저렇게 대화를 나눈 뒤 친해졌다고 생각해 자꾸 들이대기만 하는 것도 S씨의 문제다.
"잠깐 통화나 할까?"
"혹시 쿠키 좋아해?"
"그럼 지금 쉬고 있는 거야?"
"저녁 같이 먹을 수 있는 날 연락 줘."
"혹시 쿠키 좋아해?"
"그럼 지금 쉬고 있는 거야?"
"저녁 같이 먹을 수 있는 날 연락 줘."
만남을 구걸하지 말고, 만나고 싶으면 '초대'하듯 상대에게 제안하자. 상대가 제안을 거절하면 거절한 대로 S씨는 자신의 하루를 보내면 된다. 표류하고 있는 사람처럼 붕 떠 있다가, 상대가 마음 바꿨다고 해서 즉시 달려 나가면, '함부로 굴어도 되는 남자'가 되고 만다. 상대로 하여금
'내 마음대로 굴었다간, 이 사람의 호의를 영영 받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어떠한가? 상대에게 S씨는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남자'일 뿐이다. "빨리 오기나 하셔요."라는 말에 "어, 알았어."라고 대답하는 '호갱님' 이미지에서 벗어나길 권한다. 할 말은 할 줄 아는 남자가 되어야 예의든 긴장감이든 조성되는 법이지, 지금처럼 막대해도 헤헤 웃으면 그냥 바보 되는 거다. 존중이 사라진 땅에서 연애는 자랄 수 없음을 잊지 말길 바란다.
S씨는 현재 '아낌없이 주는 나무'같은 이야기를 꿈꾸는 것 같은데, 그렇게 아낌없이 주다가 뿌리까지 뽑힌 선배대원들이 수두룩하다.
"같이 밥 먹으러 들어갔는데, 피곤해서인지 저보고 이야기를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건 데이트가 아니다. 상대에게 식사 대접하고, 상대가 심심하지 않게 알아서 수다까지 떠는 것일 뿐이다. 상대의 말과 달리 난 S씨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걸 많은 대원들이 착각하는데, '맹목적으로 헌신하는 사람'과 '좋은 사람'은 분명 다르다. 전자는 종교에 빠진 광신도들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S씨에겐 저녁 같이 못 먹어서 죽은 귀신도 씐 듯한데, "내가 맛집 아는데, (중략) 생각 있으면 말해 줘.", "저녁 같이 먹을 수 있으면 말해 줘.", "다음에 언제 저녁 같이 먹을 수 있을까?" 따위의 드럽게 박력 없는 질문은 그만하고, 딱 말하자. 금요일 저녁에 닭갈비 먹자고. 만약 상대가 안 된다고 하면 안 된다고 받아들이기 바란다. 예전 습관 버리지 못 한 채 "그럼 다음에 시간 날 때 말해줘. 난 언제든 괜찮아."따위의 얘기는 제발 하지 말고 말이다.
연애를 하려다 보면 씁쓸할 때도 있고, 가슴 아플 때도 있고, 상대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고, 기분이 확 상해 때려치우고 싶을 때도 있는 거다. 전혀 그런 척 하지 않으며, 동시에 그런 일이 발생하게 만들지 않으려고 멀리서 '안전한 질문(모든 선택권과 행동권을 상대에게 위임하는 질문)'만 던지고 있으면, 둘의 간격은 영원히 좁혀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대부분 돌직구를 날리겠다며 무리수를 두고 마는데 절대 그러지 말길 바란다. 상대가 타석에 들어서지 않으면 돌직구든 변화구든 다 소용 없다. 공을 던지고 싶은 마음은 잠시 내려놓고,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길 권한다.
▲ 어제 보낸 톡에 답 없으면 오늘은 침묵하세요. 못 참고 또 보내면 쉬운 남자 됩니다. 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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